2016년 8월 2일 화요일

6. 제자들이 보여준 복음의 빛과 능력 (눅9-10장)

  6. 제자들이 보여준 복음의 빛과 능력 (9-10)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누가복음 9:1-2에는 예수님께서 12사도를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권세능력이라는 신임장을 주셨다. 이 신임장이란 것은 몸에 걸친 가운도 아니며 손에 들려진 임명서서류 뭉치도 아니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실질적인 신임장이었다.
 
1. 당시의 종교지도자(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정식훈련을 받고 자격을 부여하는 특수한 신임장을 주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달랐다. “사도의 표된 것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고후12:12)이었다.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칠 때마다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는 권세와 능력이었다.
 
2. 신임장을 주신 예수님도 형식적인 신임장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표적을 행하셨다. 이러한 능력을 보고 니고데모(바리새인 랍비)는 전통적 교육배경이 없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면서 밤에 찾아왔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고 고백하였다(3:2).
 
3. 사도들도 권세능력으로 기적을 베풀게 하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복음의 증거가 나타나게 하여주신 것이다. “권세능력은 말씀으로 인하여 나타났다. 오늘날도 사역자의 실질적인 신임장은 말씀”(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예수님의 이름으로 해하여지는 권세능력이다. 주님이 신임장을 주셔야만 구원사역에 임할 수 있다.
 
4. 12사도들은 모든 권세능력을 예수님에게서 거저 받았다. 따라서 주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분부하셨다. 한때 사도 베드로가 사마리아에서 성령님의 능력을 베푸는 것을 본 마술사 시몬은 돈(money)을 내어 놓으면서 나에게도 이런 권능을 주소서라고 요청하였다. 이런 요청에 대하여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8:20)라고 베드로는 말하였다. 거짓교사나 삯군 목자들은 이와 같이 탐심을 가지고 천국건설을 방해하므로 이런 자들은 생명을 멸망케 한다(벧후2:1-3).
 
* 누가복음 9:3에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예수님은 일러주셨다. 마태복음 10:10에서는 이는 일군이 자기의 먹는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는 말씀이 추가되어 있다.
 
1. 예수님 당시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굵은 허리띠와 같은 동전 주머니에 금, , , 등으로 된 화폐를 집어넣고 허리에 감았다. 또 음식 담은 주머니를 메었고 혹시 노숙할 경우를 대비하여 담요를 대신하는 겉옷 하나를 더 준비하였고 도보여행에 필수적인 신을 한 벌 더 마련하였고 강도나 맹수의 공격에 대비하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 이러한 준비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다. 개인 업무의 여행이나 상업차 여행에 있어서는 준비를 철저히 갖추는 것이 상례였다.
 
2.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여행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분부하셨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천국복음 전도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 아버지께서 다 예비하여 주신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모양으로라도 친히 준비하여 주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도여행이라는 것이다. 전도여행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로 알고 시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먹고 마시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 중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복음전도는 이 세상의 이해타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생명의 작업이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육적 작업이 아니며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되는 영적 작업이다. 수평과 수평이 만나는 지평을 넓히는 것이 아니며 수직과 수평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몸의 필요를 위한 것을 공급하여주지 않으시고 영의 구원에 필요한 권세능력을 주셨고 말씀으로 역사하도록 가르쳐주셨다.
 
3. “일군이 자기의 먹는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은 전도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반드시 공급된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나가라는 가르침이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8:14)고 하였고,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니라”(딤전5:17-18)고 하였다.
 
4.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없었나이다”(22:35) 하고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천국백성들의 생활은 신령한 것을 서로 주고받을 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것을 모으며 나누어 쓰는 것이 특징이다. 복음전도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을 열심히 전하여야 할 것이며 복음을 받아드린 자들은 전도자들에게 아낌없는 대우로 뒷받침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 누가복음 9:4-5(cf. 10:11-15; 6:10-11)에서 예수님은 전도자가 도달한 마을이나 도시에 가서 보여주어야 할 태도에 관하여 말씀하여 주셨다.
1.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라”(10:11). 그 마을에 복음이 잘 전해지려면 전도자를 따뜻하게 받아드리는 사람과의 사귐이 중요하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누구에게나 호의로 받아드려질 수 있게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그 합당한 자의 집에 떠날 때까지 머무르라”(10:11). 머무는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기면 여러 가지 오해를 자아내게 된다. 전도자는 편안함과 안일함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는 어느 환경에서라도 복음이 전하여지느냐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3. “합당한 자의 집을 위하여 평안을 빌어라”(10:5). 전도자는 머물고 있는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전도자는 말씀의 대언자이므로 그의 축복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55:11). 예수님은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10:6) 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사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을 축복하였고 , 축복하고는 저주하지 않았다”(12:14; 벧전3:9).
 
4.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 곳의 먼지를 발에서 떨어버리라”(9:5). “먼지라는 것은 도덕적인 행위의 결과나 영향력을 의미한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린다는 것은 그들의 배척행위에 사도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구원의 소식을 배척하는 것은 전도자를 배척하는 것보다 더 엄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 복음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나 전도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전하여야 한다.
 
  * 12사도들이 첫 선교여행을 하게 된 것은 앞으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역하게 될 일에 대한 실질적인 훈련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권세능력을 체험하여야 하였다.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제자들이 행하여야 할 말씀사역”(preaching)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주님의 말씀 (the Word of the Lord; 8:4; 15:35)
행 8: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 그리스도 예수님 (Jesus as the Christ; 5:42)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8:12)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 복음 선포 (the good news; 8:25, 40; 14:7, 21; 16:10)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14:6-7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예수님 (Jesus; 8:35)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 평안 (peace; 10:36)
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 주 예수님 (the Lord Jesus; 11:20)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 약속 (the promise; 13:32)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 예수님의 부활 (Jesus and the resurrection; 17:18)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 누가복음 9:7-9에는 분봉 왕 헤롯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놀라운 사역에 관한 모든 일을 듣고 당황하면서 예수님을 향하여 하는 말은 곧 이 사람이 누군가?”(Who is this?) 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고자 하더라”He desired to see him(Jesus)(9)고 하였다. 정치인의 속셈은 언제나 백성의 추앙을 받는 인사를 제거하려는데 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당신의 신분과 정체에 대하여 신비하고 이해되지 않는 인사였다. 정치인, 종교인, 백성들, 제자들까지 똑 같은 질문을 예수님을 향하여 던졌던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는 사람의 이해와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신 분이다. 누가 저자는 이러한 놀라우신 예수님에 대한 의혹을 낱낱이 열거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서 우리는 정리해 두어야 한다.
 
1. 5: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2. 7: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3. 7: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4. 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5. 9: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6. 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7. 20: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8. 22: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 도 너     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     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   라
9. 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10. 23: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 누가복음 9:10-17에는 예수님께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의 군중을 먹여주시는 기록이 나온다. 풍랑을 잔잔케 하신 주 예수님을 보고 이 분이 누구이신가?”(Who is this?) 하며 놀라워하였던 제자들과 같이 똑 같은 질문을 하는 헤롯왕에게 주는 대답은 무엇인가? 성경말씀의 전후 문맥이 해답의 열쇄를 제공하는 것과 같이 여기에서도 그 해답은 바로 “52어로 5천명을 먹이시는 분이라는 것이 해답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실 분은 메시아(그리스도)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1.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이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 그러난 수많은 무리들은 무작정 예수님을 따라서 몰려들었다. 계속하여 천국복음을 강론하여주시며 치유를 베풀어주셨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잔치를 베풀어주신다. “메시아의 잔치”(Messianic banquet)이다. 이 잔치는 제자들이 베풀 수 없는 잔치의 내용을 의미한다. 메시아 예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잔치다. 이러한 잔치에 대한 예언은 이러하다.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65: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4.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78: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81:16.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 게 하리라 하셨도다
 
3. 예수님은 52어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사기도또는 감사기도를 드리셨다”(9:16). 그리고 제자들과 무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먹고 다 배불렀다.

4. 예수님은 메시아의 잔치에 대한 언약의 성취를 부분적으로나마 52어의 기적에서 보여주셨다. 이 성취는 메시아 시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완성을 향하여 진행 중인 것을 알린다. 메시아의 잔치에 만족한 무리들은 잔치를 베푸신 메시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였다.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다. 그러나 메시아의 잔치는 완성의 때가 따로 있으며 지금은 잔치의 주인인 메시아를 아는 지식이 저들에게 요구되었다.
 
5. 52어의 메시아의 잔치는 곧 가지게 될 성만찬”(the Lord's Supper)의 예표(foreshadows)가 된다. 성만찬은 인자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베푸시는 메시아의 잔치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 누가복음 9:18-27에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의 눈이 열릴 수 있도록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셨다.
 
1. 이제는 예수님 편에서 질문하여 오신다. “내가 누구냐?”(Who I am?) 그러나 직언을 피하시고 간접적으로 물으셨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Who do the crowds say I am?”). 그리고 나서 재차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Who do you say I am?”).
 
2. 예수님의 기도(중보기도)를 아버지께서는 응답하여 주셔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The Christ of God”). 마태복음16장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로 대답하였다. “이러한 대답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예수님은 해설하여 주셨다. 예수님의 기도가 이렇게 응답되었다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대답은 객관적인 진술이 아니고 주관적인 자기고백이다. “나는 너희에게 누구냐?”라는 물음에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님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베드로는 고백한 것이다.
 
3. 믿음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선물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결과이었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믿은 것도 하나님의 계시의 임재인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베드로 자신의 신앙고백이 되었다.
 
4.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여기에서 또 다시 분명하게 언급하여 주신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22).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 수도 없었고 깨닫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주님의 죽음을 놓고 근심과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16:21; 17:9, 23) 말씀하실 정도로 중요한 진리인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믿지 않았고 허탄한 말이라고 하면서 일축하였다. 이러한 제자들을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하다고 꾸중하셨다. 성도가 말씀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미련하고 더디 믿는 것”(24:25)믿음이 적은 사실”(17:20)을 이해하시고 반복하여 가르치시고 또 가르쳐 주셨다.
 
* 누가복음 9:23-27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3)고 하시면서 제자가 되는 조건(방법)을 세 가지로 명시하여 주신다.
 
첫째,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결심이 분명하여야 한다. “제자”(Gr. mathetes)배우는 사람을 의미한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야 배우게 된다. 예수님은 지식생활을 아울러 가르치셨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려고”(3:14)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모든 것을 배우게 된다. 베드로가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고 할 때에 예수님은 사단이라고 하시며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꾸중을 하셨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여야 한다.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소유와 재산, 시간과 기술, 가정과 사회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소유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자기 부정이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아니요,”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일에는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생활태도를 의미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따라 사는 평생 작업이다.
 
셋째,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달갑게 지는 것이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자기와 소유를 내어 놓을 때 십자가의 도는 이루어지며 제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반드시 예수님에게 배워야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11:29).
 
* 누가복음 9:28-36에서는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Transfiguration)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제자들에게 보여주신다. “변화”(Gk. metemorfothe)“morfe”(모양)“theou"(하나님)과의 합성어다.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변형은 하나님의 모습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 출현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목격한 제자들의 체험을 통하여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하여 변화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첫째,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어 영광의 모습을 나타내셨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을 때 그의 얼굴에 영광의 광채가 나타났다. 엘리야는 가멜 산에서 기도할 때에 제단에 불이 떨어지고 마른 땅에 비를 내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나누는 교제다. 기도, 임재, 영광은 동시적인 상항 속에 존재하는 축복의 요소다. 성도의 성화는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둘째,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 있을 때에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은 영광 중에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셨다. “별세”(Gk. exodon)죽는다는 말이지만 원어에서는 떠나가다,” “탈출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별세는 죽고 세상을 떠나서 영광을 향하여 간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여(=출애굽)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의 장소로 향하여 가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죽음은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고귀한 별세를 통하여 영광으로 입성하셨다.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수고, 인내, 희생으로 영광의 열매를 맺는다.
 
셋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베드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말로 초막 셋을 지어 세 분을 모시겠다고 하였다.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동일시하는 과오를 범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적 깊은 차원의 안내와 인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예수님은 9:27에서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베드로가 보게 될 것을 미리 알려 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다. 예수님의 영광은 창조주의 영광이며 모세와 엘리야의 영광은 피조물의 영광이다. 다르다.
 
. 예수님은 9:29에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고 하였다. “변화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란 사실은 이미 언급하였다. “희어져”(Gk. leukos; white) “광채가 나다”(Gk. exastrapto; glistering)에서 예수님이 입으신 옷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희어져란 영어에서 “dazzling white” 눈부신 흰색을 가리킨다. 속에서 밖을 향하여 뿜어냄으로 눈이 부셔서 희다는 것이다. 창조주의 빛은 안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다. 외부에서 조명으로 밝히고 환하게 보이게 하는 형상이 아니다. 또 이 빛은 순결”(purity)영광”(glory)을 발산한다. “광채가 난다는 것은 현재분사형으로 기록되었다.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낸다. “번개와 같이 계속 번쩍이다,” “방사선과 같이 방출하다는 뜻을 전해준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그 얼굴에 광채가 나고 밝은 빛을 나타낸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 흰옷이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을 참조하자.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20: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 에, 하      나는 발편에 앉았더라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3: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은 옷)
 
. 베드로가 자기의 제안을 예수님에게 고집하고 있을 때에 구름이 몰려왔고 구름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9:35). 하나님의 꾸중소리 앞에서 저들은 무서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넷째, 성도는 영광의 체험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영광에 참여(머무름)하게 된다.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 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여 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두었다가 성경말씀을 기록할 때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전하여주었다. 우리는 어떠한 영광의 체험일지라도 그것을 믿음의 비밀로 간직하야야 하며 무슨 자랑거리로 말을 할 때에 고귀한 은혜에서 떨어질가 조심하여야 한다.

벧후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  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  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  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     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누가복음 9:37-43에서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능함을 나타내는 기록이 나온다. 물론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그 아이를 낫게 하여 주셨으나 문제는 제자들은 왜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였는가 하는 데에 있다. 제자들은 솔직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9:28).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고 예수님은 일러주셨다. 마태복음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17:21)고 되어있다.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 계셨을 때 산 밑에 있던 제자들은 기도하지도 않았고” “금식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에서 귀신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 누가복음 9:46-48에는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는 변론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주시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는 해답을 주신다. 예수님이 쓰시던 아람어로 아이”(child)”(servant, slave)은 동의어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는 것은 곧 섬기는 종이 되라는 것이다. 천국백성은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들이며 자기를 높여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섬기는 자 곧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사셨다. 어린 아이에게는 언제나 순종을 요구한다. “말 잘 들어!”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셨다.
 
* 누가복음 10:25-37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교훈이 나온다. 율법의 대강령은 첫째, 하나님 사랑, 둘째, 이웃 사랑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나를 낳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낳으신 형제(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집안 식구의 일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하는 질문을 하는데 있다. “저 사람이 내 이웃이면 사랑을 베풀 수 있으나 만일 원수라면 사랑할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과 선민사상에 의하여 나온 고달픈 생각이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셨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해답은 명료하다. “이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네가 그 사람의 이웃이다라는 놀라운 진리의 말씀이다. 계명은 이렇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웃의 출처는 네 자신이다. 네 몸에서 이웃이 나왔다는 가르침이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 자신에게서 이웃 형제자매인 하와가 생성되고 출현하였다는 놀라운 사건을 기억하여야 한다.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떠나서 우리들의 이웃이 되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먼저 우리에게 오셔서 이웃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 누가복음 10:38-42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예수님 접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자매들의 접대하는 모습과 태도에는 전혀 다른 점이 나타났다.
 
1.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들어오시는 즉시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자이었다. 예수님을 만나면 먼저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마리아의 습관이었다.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자기 오빠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였고(11:32),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기도 하였다(12:3). 예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성화를 위하여 노력하면서 주님과 사랑과 은혜의 교제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 귀한 축복의 시간을 누가 감히 빼앗아 갈 수 있겠는가?
 
2. 마르다는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오셨을 때 매우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였다.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기 위하여 몸도 마음도 몹시 분주하였고 자기의 최선을 다하였다. 마르다는 자기의 원하는 바를 따라서 많은 일을 진행하였고 그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에는 마음의 평안을 잃고 염려와 근심과 불평이 생기고야 말았다.
 
3. 마리아는 한 가지만이라도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는 칭찬을 받았다.
 
4. 마르다는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구나라는 타이름을 받았다. 후에 마르다는 예수님의 훈계를 따라 변화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요한복음 12:1-2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과 12제자, 그리고 나사로와 마리아 도합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잘 치러 내었다.
 
       ---------------------------------------------------------------------------------------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