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4일 목요일

10. 잃은 하나를 찾으시는 예수님 (눅15장)

    10. 잃은 하나를 찾으시는 예수님 (15)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누가복음 15장의 배경은 이러하다. 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과 죄인들을 기쁨으로 맞아드리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즐겨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였다. “이 사람(예수님)은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1). 이러한 비난과 불평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시는 비유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비유 속에는 죄인을 영접하는 아버지죄인이 영접 받은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1.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다른 점: 예수님은 죄인들을 모아드리시고 바리새인들은 죄인들을 쫓아버리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죄인들을 위하시는 백성의 지도자 예수님과 죄인들을 배척하는 민중의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과의 차이점은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에서 나타났다. 예수님은 좋은 음식을 준비하지고 않으셨고 귀를 즐겁게 하는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으셨으나 주님의 마음에서 잃어버린 백성을 찾으시고 보호하시려는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것을 발견하고 죄인일수록 예수님을 더 찾아 나오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분리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하나님의 것과 세상에 속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선민과 이방인 등등을 나누어 놓고 구별된 세계에서 살았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이해하시고 먹이시고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도와주시려고 노력하셨으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민중들 편에서 자기들을 이해하여 주시를 바랐으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민중들을 비평하고 멀리하고 정죄까지 해버리는 독선에 빠져있었다. 예수님은 사랑의 원칙을 실천하셨으나 그들은 율법의 원칙을 준수하였다.
 
2. 오늘날의 교회가 만일 성경의 가르침을 율법적으로 지키려고 한 나머지 성경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평하고 배척한다면 바리새인들의 실수(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것과 같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여 읺어버린 자들을 찾아낼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이고 노력해야 한다.
 
3. 15장의 기본 구조: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탕자의 비유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예수님은 이들 비유들을 말씀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잘못된 견해를 고쳐주시고 잃은 자를 찾는 구원의 도리가 무엇인지 설명하여 주셨다. 이 비유들은 공통적으로 1) 잃었다(4, 8, 24), 2) 찾았다(5, 9, 24), 3) 기뻐하였다(6, 10,24)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4). 아울러 구원의 요소에는 1) 구원하는 자의 노력, 2) 구원 받는 자의 노력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쌍방의 노력이 합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잃어버린 슬픔, 찾는 수고, 구원하신 기쁨이 넘친다. 한편 구원 받은 사람 편에서 볼 때에 잃어버려진 괴로움, 찾아 헤매는 마음, 구원 받은 기쁨이 넘친다.
 
4. 위의 구원의 요소를 알게 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37, 39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과 (너희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다”(살후2:13)는 구원의 신적-인적 양면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5. 구원의 결과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바라보시고 예수님은 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도 구원의 대상자들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죄인들끼리 서로 손가락질 하는 추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구원의 대상자들은 모두 서로 사랑하고 서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사람의 외모를 보기 전에 그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은혜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
 
* 누가복음 15:3-7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에서 세 가지 요점으로 말씀하여 주셨다. 1) 잃었다, 2) 찾았다, 3)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1. 잃었다는 내용은 이러하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었다”(4)는 것이다. 양은 집단을 이루고 사는 동물이다. 또 양의 집단은 자기들 끼리 살 수 없고 반드시 목자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다. 양은 양들 끼리 모여 살아야하고 또 양은 반드시 목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르면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고 하셨다. 100마리의 모든 양은 목자에게 이러한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다. 그런데 양은 매우 우둔한 동물이어서 쉽사리 양떼와 목자를 떠나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일수다. 아무리 목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도 예기치 않은 때와 장소에서 실종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자기의 길로 갔다”(53:6)고 하면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과 양을 비교하여 기록하였다. 범죄의 원인은 여러 가지 환경과 여건에 있고 또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2. 찾았다는 내용은 이러하다. 목자는 양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 즉시 그 원인이나 책임을 따지기 전에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 “99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기까지 찾아다니다고 하였다. 목자는 반드시 양을 찾아야하고 또 양은 반드시 찾아져야만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19:10). 예수님은 어떠한 곤욕을 당하시더라도 잃은 양을 찾아야만 하셨다. 목자는 양을 찾은 즉 즐거워 어깨에 매었다고 하였다. 목자는 양에게 언제 어디에서 길을 잃었느냐, 왜 이렇게 되었느냐. 무엇이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는 등의 지난 일을 캐어묻지 않는다. 양을 찾았다는 그 기쁨만이 목자의 전체 관심사이다. 목자는 양을 끌어 앉는다. 목자는 양을 어깨에 둘러맨다.

3. 기뻐하였다는 내용은 이러하다. 양을 찾은 목자는 이웃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찾은 기쁨을 함께 나눈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은 잃어버려진 자와 찾은 자의 겄일 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것이다. 찾았다는 기쁨은 모두 함께 누릴 기쁨이다. 어둠에서 광명을, 질병에서 건강을, 고난에서 안전을, 죽음에서 생명을, 순간에서 영원을 찾았다는 것은 기쁨 중에서 참 기쁨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인하여 더 기뻐한다고 예수님은 결론의 말씀을 하여주셨다.
 
* 누가복음 15:8-10 (잃은 동전을 찾은 여인의 비유):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1) 잃어버려진 하나의 질적 중요성, 2) 중요한 것을 찾아야만 하는 수고의 필요성, 3) 영적 구원의 기쁨과 그 불변성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다.
1. 누가복음에서는 짝을 이루는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셉과 마리아 부부,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 시므온과 안나 남녀 성도,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 이방인,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양 잃은 목자와 동전 잃은 여인의 비유 등이다.
 
2. 유대인들은 딸들에게 결혼 지참금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 중의 일부가 바로 열 개의 드라크마(=Heb. 반 세겔, rom, 데나리) 은 동전이었다. 이 열 개의 동전은 한 줄에 달아놓고 세메디”(Hb. semedi)라고 부르는 이마의 장식품으로 보관하게 하였다. 새로 결혼하게 되면 유산으로 받아온 여인의 모든 지참금은 남편과 아내의 공동소유물이 된다. 이때 세메디 은 동전 장식품은 여인이 결혼하였다는 표식으로 이마에 걸었다. 10개의 은 동전은 결혼한 여인의 신분을 나타내며, 유산이 딸려오는 새 가정의 경제적 안정을 보여주며, 남편과 아내의 유대관계를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가끔씩 이 세메디를 이마에 달고 나오면 그것을 보는 하인이나 종이나 노예들이 여주인의 신분을 재확인하게 되는 권위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였다. 만일 10개 중에서 하나라도 잃게 되면 9개만 가지고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의 동전은 상징적, 정신적, 실제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3. 이와 같이 중요한 동전 하나를 잃었다는 것은 그 책임이 동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며 동전을 소유한 여인의 부주의에 있다고 보아야한다. 하나를 잃으면 9개의 동전이 무가치하여지고 여인의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편 될 사람과의 아름다운 유대관계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여인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서라도 잃은 하나의 동전을 찾아내어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았다”(8)고 기록하고 있다.
 
4. 유대인의 집은 창문이 많지 않으므로 집안이 어둡다. 대낮에도 불을 켜야 잘 볼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유대인의 집 바닥은 짚이 깔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짚을 쓸어내지 않으면 작은 동전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5. 부지런히 찾았다는 말 속에는 집념과 고집,” “소란과 법석을 부리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한두 번 살펴보고 없으면 포기해 버리는 그러한 상항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6.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 듯 부지런히 영혼 구원에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성을 요란하게 하는 자들이란 비난까지 들은 것은 동전을 찾는 여인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7. 하나를 위한 수고는 곧 전체를 위한 노력이다. 작은 것 하나를 소홀히 하면 큰 것이 무너지는 원인이 된다. 예수님은 개인구원과 제자 각 사람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더욱 심혈을 기울이셨다.
 
8. 여인은 잃은 동전을 찾아내고야 만다. 찾고 나서 이웃 친구들을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었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되느니라”(10). 하늘의 천군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한 생명이 찾아지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천사들의 할렐루야 찬양의 대상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은 그 찬양 속에 나타난다고 예수님은 강조하셨다.
 
9. 특히 동전은 만든 자의 형상과 이름을 새겨놓았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한 개의 살아있는 동전과 같기 때문에 우리들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은 결코 우리들을 잃어버릴 수 없으시다. 우리들 각자는 언제나 예수님을 빛내는 장식품으로 존재하여야 하며 늘 예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누가복음 15:11-24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비유):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1) 아들을 잃게 된 원인, 2) 아들을 찾은 방법, 3) 아들을 찾은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다.
1. 이 비유는 일반적으로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고 있다. 탕자를 중심인물로 보면 탕자의 비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유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주인공은 아버지이다. 따라서 좋으신 아버지의 비유,” 또는 완전하신 아버지의 비유라고 말하게 된다.
 
2.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잃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속하여 있으면 자기는 자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탐내게 된다. 유산이란 부모의 임종 후에 받는 재산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앞당기었다. 아버지는 재제할 수 없는 그의 소원을 들어준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 떠나 유산으로 받은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마음대로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 자유의 생활은 결코 길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고야 만다. 재산도 잃고 자유도 잃고 가족도 잃었다.
 
3. 예수님은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이미 경고하신바 있다.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12:15). 둘째 아들은 비로소 참 자유란 소유물에 있지 않고 아버지의 집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 있는 하인들은 아버지를 떠나 살고 있는 아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하인들을 부러워하게 된다.
 
4. 둘째 아들이 찾아진 방법은 이러하다. 먼저 아버지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영향력은 변함없고 한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에 기인한다. 사람은 소유물로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마시며 살도록 되어있다는 것이 원칙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 아래에서 살고 있는 하인들의 신분을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 돌아가야지!” 그 외에는 살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5. 우리가 겪고 있는 죄악의 형벌은 사람마다 그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처참한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의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둘째 아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반역하고 스스로 자유를 찾으려고 하였던 과거의 행위를 회개하였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이제부터는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이 한 마디의 고백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들 다시 찾은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6. 아버지는 아들의 신분을 재확인하여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만 입힐 제일 좋은 옷과 아들에게만 끼워줄 반지와 아들에게만 신겨줄 신을 따로 가지고 계셨다. 여기에 언급한 옷과 반지와 신은 아들이 누리는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7.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로 인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었다.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24, 32)고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다시 안김으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참 자유와 참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8. 누가복음 15:25-32에는 탕자와 맏아들의 비유가 계속된다. 예수님은 맏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행위가 바로 맏아들과 같다는 점을 지적하셨다. 잃은 아들이 육체적이며 외형적인 죄악을 범하였다면 맏아들은 영적이며 내면적인 죄악을 범하고 있었던 점을 들추어 내셨다. 맏아들은 결코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도 역시 탕자와 같이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점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탕자의 비유두 탕자의 비유라는 제목을 부칠 수 있게 된다. 맏아들의 범죄를 낱낱이 들추어 살펴보자.
 
. 맏아들은 아버지(하나님)를 사랑하지도 않고 동생(이웃)도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성경말씀의 대강령(가장 크고 으뜸 되는)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부터 범하였다. 그는 자기 동생이 가정의 유산을 탕진하고 가문을 더럽힌 점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었고 아울러 그러한 탕자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드리는 아버지의 너그러운 행위도 용납할 수 없었다.

. 맏아들은 자기의 의로운 행위에 도취되어 살고 있었다. 누가복음 18:9-14에서 한 바리새인이 기도하면서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하나님께 자랑스럽게 아뢰고 있는 장면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바리새인은 보이는 행위에서 죄악을 규명해내었으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자세와 인간의 됨됨이에서 죄악을 규명해내셨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행위의 원칙보다 내면의 태도와 마음의 거룩함을 이루는 원칙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미 강조하여 주셨다.
 
. 맏아들은 시종 교만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를 섬겨오면서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자기에게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였다. 겉으로는 순종이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쌓인 생애를 살고 있었다. 눈가림만 하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처럼 가장하였고 단(순수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못하였다.
 
. 맏아들은 잃어버린 자기 동생에 대하여서는 전혀 무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기 동생이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고 집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자기중심주의로 고립되어 살다가 종이 알려줄 때에 비로소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되었다. 탕자가 집에 도착하기 전 멀리 있을 때에 뛰어나가 맞이하였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 맏아들은 분노하며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동생과 아버지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분노란 사람에게 일어나는 정상적인 감정의 일종이다. 예수님과 모세와 다윗 등이 보여준 의로운 분노나 거룩한 분노는 필요하다. 그러나 분노로 인하여 범죄 하지 말 것을 성경말씀은 가르치고 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4:26)고 하였다. 올바른 때와 장소에서 올바른 목적과 방법으로 정도에 알맞게 할 수 있는 분노는 영혼의 재산이라고 하였다. 맏아들의 분노는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이었다. 무가치한 탕자를 위하여서는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고 자기를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누구라도 사람에게서 배척받아야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누구라도 사람에게서 사랑 받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형제를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형제와 화목하지 않으면 심판을 면치 못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셨고(5:22-26), 요한14장에서도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신앙을 가진 자라(20, 21)고 지적하였다. 잃은 형제자매는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라도 기쁨으로 맞아드리는 것이 성도들의 의무이며 사명이다.
 
*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자또는 비림 받은 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로 구원을 받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그 구원의 대상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음을 확인하여주고 있다. “잃은 자는 회개와 용서의 과정을 거쳐 영원하신 아버지의 품에 안김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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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의 설명 첨부
 
* 15:1, 2, 7, 10에서:
sinner(죄인; Gk. hamartolos): 길에서 떠나고, 목표를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배반한 사람들을 총칭하여 죄인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죄인들로 보았다.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15:18, 21에서: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하늘”: 여기에서 하늘이란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완곡하고 부드러운 표현이다. 엄한 인상을 피하려는 표현법이다.
 
* 율법의 대강령은 아래와 같다.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51: 4.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4. Against you, you only, have I sinned and done what is evil in your sight, so that you are proved right when you speak and justified when you judge.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공경)하지 않음으로서 범죄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계명(5계명: 20:1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을 어긴 것이다. 이웃은 하나님이 주신 한 몸이라고 이미 설명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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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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