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름 받은 성도의 기쁨과 사명 (눅1-2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누가복음이 기록된 목적은 1:1-4의 서두에서 분명하게 기록하였다. “예수님이 이루신 역사적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루어짐”이란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의 성취”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셨기 때문에 누가복음을 한 장씩 읽어나가면서 그 사실이 하나씩 하나씩 확인되고 아울러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총제목(Title)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 예수님”이며 이 총제목 아래에서 각 장의 주제(Main Idea)와 부주제(Supporting Idea)들이 무엇인지 일관된 파악과 연구를 하여야 저자 누가의 뜻에 부합된 결론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연구는“계획”과 “성취”라는 두 가지 명제를 마음에 심어두고 풀어나가야 한다.
* 저자 누가는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님의 성취가 사람의 지혜나 부요나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의 복음서의 관심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불구자들과 병약한 자들, 죄인들과 세리들, 여인들과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문제의 해결을 찾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광명이 찾아오는 참다운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도 예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막다른 상항 아래에서 해결되는 복음의 참뜻을 전하여주고 있다. 누가복음서의 독자는 누구라도 이 사실에서 감동을 받고 그 해결자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된다.
* 누가복음 제1-2장 (주제: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나타난 은혜)
부주제 1. 예비 된 제사장 가족의 노인들 사가랴와 엘리사벳: 눅1:5-25
부주제 2. 예비 된 신앙인 시골처녀 마리아: 눅1:26-38
부주제 3. 예비 된 은혜를 찬양하는 마리아: 눅1:39-56
부주제 4. 예비 된 메시아의 구원을 찬양하는 사가랴: 눅1:57-80
부주제 5. 예비 된 인구조사의 숨은 비밀: 눅2:1-7
부주제 6. 예비 된 관심 밖의 하층 노동자 목자들: 눅2:8-20
부주제 7. 예비 된 신앙의 노인들 시므온과 안나: 눅2:21-40
부주제 8: 예비 된 아기 예수님의 성장의 비밀: 눅2:41-52
* 부주제 1. 예비 된 제사장 가족의 노인들 사가랴와 엘리사벳: 눅1:5-25
(1) 복음서들을 읽을 때마다 등장하는 “제사장”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구별이 있다. 하나는 특권층 제사장이며 다른 하나는 서민층 제사장이다. 특권층 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의 행정, 재정, 및 의식을 장악하고 있었고 정치 종교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었고 예루살렘 주위에 살면서 귀족과 같은 생활을 하는 계층이었다. 서민층 제사장은 말 그대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고 특성이라고는 제사장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성전에서 제사장에게 주는 생활비는 극소수였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면서 가난한 생활을 하여야 하였다.
(2) 이스라엘에는 레위 족속 아론의 자손 중에서 24반으로 조직된 제사장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다(대상24:1-10). 한 반은 1년에 2회 7일간(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씩 성전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제1세기에는 약2만 명이나 되는 제사장들이 한 반에 9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직무수행자를 제비로 뽑아 성소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이런 상항이므로 제비에 뽑혀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해 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제사장 사가랴(Zechariah)는 24반 중에서 8번째 반인 아비야 반열에 속하여 있었고 그 중에서 뽑히어서 제사장직무(성소봉사)를 수행하게 된 것이었다.
(3) 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이 두 사람(=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이 “의롭다”(righteous)고 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의로 여김을 받은 것이며 바리새인들이 평가하는 행위의 결과로 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잘 지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흠이 없다.” 시편119: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Blessed are they whose ways are blameless, who walk according to the law of the LORD.)라고 하였다. 그들의 가는 길이 흠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며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명령과 법도를 준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죄 없는 온전한”(sinless perfection) 사람으로 여길 수는 없다. 사가랴의 믿지 못함이 1:18-20에서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4) 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이들이 슬하에 자녀가 없음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또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나이가 들도록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의 생활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가정에 아이가 없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큰 수치로 알았다. 그 이유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면 자기 가문이 앞으로 올 메시아와 관계가 끊어지며 또 자기 자손 중에서 나올지도 모를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노부부를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5) 사가랴는 성소 안의 지성소 앞 분향 단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서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라고 무서워하였다. 그때까지 약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혀 나타나지 않으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잊어버리신 것과 같이 느껴지는 암흑시대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 일은 너무나도 두렵고 떨리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예비하신 때에 예비하신 사람 사가랴에게 나타나셨다. 사가랴의 이름은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천사는 “사가랴여, 너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것이니 요한이라고 하라. 그 아기는 주님 앞에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눅1:13, 15)라고 말하였다. 주님이란 곧 예수님(메시아)를 의미한다. 사가랴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그런 일을 믿을 수 있습니까?”(18) 하며 믿음으로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천사의 말은 그대로 성취되었고 사가랴는 아기가 날 때까지 10개월이나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렇게 된 것은 믿음을 키워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계시로 기쁜 소식을 받았고 동시에 성령 충만의 은혜까지 받게 되었다.
* 부주제 2. 예비 된 신앙인 시골처녀 마리아: 눅1:26-38
(1)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 기르는 예수님의 모친이 되는 큰 축복을 받았다. 1:28,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말로 천사는 마리아를 축복하였다. 1:42,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다”고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불러 말하였다. 눅11:27,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어떤 여인은 마리아를 향하여 소리치면서 마리아가 축복 받은 여인임을 찬양하였다.
(2) 마리아가 받은 축복은 재정적인 부요나 육체적 안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므온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마리아가 받을 고난을 예언하면서 “칼이 너의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2:34)고 말하였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주신 예언이었다. 말씀대로 마리아는 고난과 어려움과 가난이 연속되는 일평생을 살았다. 그런 중에서도 예수님의 사역을 뒷받침하는 위대한 신앙의 모범 세 가지 사실을 남겨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마리아는 어떤 환경에서도 성령님의 능력을 믿었다. 그녀는 “성령님이 나에게 임하셨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나를 덮고 계신다 - The Holy Spirit will come upon you, and the power of the Most High will overshadow you”(눅1:35)고 믿고 살았다. 성령님은 언제나 혼돈과 어두움 속에서 질서와 생명을 창조하신다. 이 사실을 알고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자기 몸에 영접하여 잉태하였다.
나) 마리아는 말씀의 능력을 믿었다. 그녀는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눅1:38)고 믿었다. 마리아는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높이고 공경하여 “주의 계집종(the Lord's servant)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옵소서”(눅1:38)라고 말하였다.
다) 마리아는 신앙공동체의 능력을 믿었다. 그녀는 “성령님이 충만한 신앙동료와 신속하고도 밀접한 교제를 가져야 한다”(눅1:39-45)고 믿고 그대로 실천하였다. 마리아는 처녀임신으로 인하여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위험에 처하였을 때 제도에 연루된 랍비나 제사장을 찾기 전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입고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3개월간 그곳에 머물면서 엘리사벳과 함께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렸다. 또 마리아는 오순절의 다락방에서도 여러 성도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한 신앙인이었다.
성경말씀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마리아)에게 나게 하셨다”(갈4:4)고 하였다.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차질이 없이 계획하신 때와 장소를 따라서 계획하신 사람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성취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적용된다. 성령님의 능력과 말씀의 능력과 신앙공동체의 능력 안에서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일평생 믿음을 굳게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 부주제 3. 예비 된 은혜를 찬양하는 마리아: 눅1:39-56
(1) 마리아의 찬양(Mary's Magnificat)은 주님(the Lord)의 은혜를 높이고 영광 돌리는 히브리인의 시(poem)와 노래(song)이다.
시34: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시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2) 마리아의 찬양(눅1:46-55)은 신약성경에서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찬양이다. 이 찬양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고 성취하시는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눅1:49, 50), 하나님의 거룩하심(눅1:49), 하나님의 사랑(눅1:50), 하나님의 언약(눅1:54, 55)으로 새 사람과 새 세계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여주고 있다.
(3) 마리아의 찬양 (주제: 새 인간 새 세계의 완성): 마리아의 찬양을 “혁명의 시”리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혁명이란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새 창조의 내용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나 같은 비천한 계집종이 이제부터는 만세에(영원히) 복 있는 여자가 되었다(눅1:48)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보잘 것 없는 자기와 같은 시골처녀라도 택하셔서 사용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었음을 찬양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눅1:51),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고(눅1:52),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다(눅1:53)는 것이다. 구원의 사업은 인간이 가진 교만과 권위와 부요를 대적하고 물리치는 사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은 언제나 교만한 마음을 들추어내어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드신다. 따라서 성경말씀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 벧전5:5; 잠3:34)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셋째,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고(눅1:50),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1:51),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눅1:53)는 것이다.
(4)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낳기 전 즉 자기 몸에 잉태하고 있으면서 이 찬양을 불렀다. 이 찬양은 그 내용들이 앞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미래사항으로 말하지 않고 이미 그와 같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는 데에 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리아의 믿음은 축복을 바라보는 믿음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미 받은 축복을 즐기는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은 축복을 이미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 드린다. 우리들의 입술과 마음은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따라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어야 한다(엡5:18, 19).
* 부주제 4. 예비 된 메시아의 구원을 찬양하는 사가랴: 눅1:57-80
사가랴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예언을 하였다. 그의 찬양과 예언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먼저는 메시아에 관한 것(눅1:68-75)이며 다음은 세례요한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것(눅1:76-79)이다. 사가랴는 자기 눈으로 3개월 동안이나 이미 임신한 마리아를 목격하고 임박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하였다. 그 내용은 사람의 입으로 나온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한다. 사가랴는 자기 아들 세례요한이 탄생되기까지 말 못하는 벙어리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닫는 기회로 삼게 되었다. 깊은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통하여 가브리엘 천사가 들려준 하나님의 계시(눅1:13-20)를 재삼재사 음미하면서 눈앞에 닥아 온 메시아(=예수님)의 모습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메시아의 모습을 총정리하고 난후에 입이 열렸을 때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고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첫째, 사가랴는 자기백성을 돌아보시는 메시아를 찬양하였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 보사 속량하셨도다”(눅1:68). “돌아보다”는 신약원어는 “여기에 오시다” 또는 “방문하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미 메시아의 모습으로 “여기에 오셨다” “방문하셨다”고 선포하였다. 사가랴가 이 찬양과 예언을 하고 있을 때 메시아 예수님은 이미 마리아의 몸에 계셨다. 그가 만일 벙어리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믿음의 찬양은 드릴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감히 메시아가 오셨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둘째, 사가라는 메시아가 죄를 용서하셨고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다(눅1:68-69)고 찬양하였다. “구원의 뿔”이란 “무한하신 메시아의 능력”을 의미한다.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은 자기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신다는 선포다.
셋째, 사가랴는 메시아가 다윗의 집에서 나왔다고 찬양하였다. 예수님은 영원한 왕으로 다윗의 가문에서 나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므로 왕의 왕이 되신다는 것이다.
넷째, 사가랴는 우리들이 이제 메시아(=예수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고 두려움 없이 살게 되었다(눅1:75)고 찬양하였다.
성경말씀 히브리서 12:9-10에서 “우리가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가랴의 어려운 환경이 그에게 신앙의 성장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받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능히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받아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부주제 5. 예비 된 인구조사의 숨은 비밀: 눅2:1-7
(1)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메시아의 탄생은 이미 구약성경 미가 5:2에 그 장소가 예언되었다. 예수님이 나실 때의 유대 땅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로마의 첫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신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당시의 세계를 군사력으로 다스렸다. 그는 징병제도와 세금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명령하게 되면서 나사렛의 요셉과 그의 약혼녀 마리아가 그들의 조상(=다윗)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가이사는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에 인구조사를 명령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준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평탄한 길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80마일의 도보여행을 감행하였다. 해산할 방도 없어 동굴을 파서 만든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낳았고 입힐 옷도 없어서 강보고 싸고 동물의 음식 그릇에 눕혔다. 강보란 넓은 붕대이며 예수님은 이 붕대에 둘둘 말려 동굴 속에서 세상의 첫날을 마지하셨다. 그런데 이 모습은 동굴 속 관에 놓인 시체를 연상시켜준다. 실상은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들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메시아)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라는 예언대로 예수님은 낮고 천하게 태어나고 성장하는 환경에 처하게 되셨다.
* 부주제 6. 예비된 관심 밖의 하층 노동자 목자들: 눅2:8-20
(1) 목자들은 하층계급의 노동자들로써 예루살렘 성 밖에서 양들을 치고 사는 천민들이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는 소외되어 사는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여 주었다. 천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며 “심부름꾼,” “사자(使者),” “대리인”이라는 뜻을 원어(Hb. malek)에서 가르치고 있다. 천사는 하나님이 맡기신 특수한 말씀과 일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았다”(히1:14)고 하였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복음(=기쁜 소식, 예수님)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갈1:8)고 하였다.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였고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고 예수님의 승천에 동참하였고 또 예수님 재림의 때에도 함께한다. 천사들의 메시지는 목동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들려졌다. 하나님이 택하여 쓰시는 목자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10).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Savior)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Christ the Lord)시니라”(눅2:11). 때와 장소와 내용이 분명하였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위한 복음은 목자들의 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 목자들이 목격한 천사들은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함께 있어 모든 계획과 성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눅2:13).
13. 홀연히 수많은(허다한, a great company of the heavenly host)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가) “허다한 천군천사”라는 말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뜻이다. 천사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라”(계5:11)고 하였다. 몇 만에 몇 만을 곱하고 몇 천에 몇 천을 곱하여야 할지 알 수 없는 허다한 수라는 뜻이다.
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praising God and saying)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계속하여 찬양하면서 또 계속하여 말하였다”는 뜻이다. 언어(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천군천사의 찬양은 운을 맞추어 시를 읊는 것과 같은 “글 읽는 말소리,” “합독,” “낭독의 찬양”으로 이해된다. “합독찬양의 말소리”를 우리들도 시도하면 큰 감동이 있을 것이다. 방언기도와 방언찬양이 하늘 언어의 표현이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에 목자들은 통역된 “낭독 찬양”을 듣게 되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눅2:14).
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는 찬양을 잘 관찰하여야 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잘못된 요약을 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선포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다. 평화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이 누린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에게 보장된 평화다. 예수님은 “나의 평안(평화)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아니 하니라”(요14:27)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다. “평화”(Hb. shalom)라는 원어는 “완전한 것,” “완성된 것,” “건전한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완전한 평화를 줄 수 없다. 평화의 근원은 오직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밖에는 없다. 평화의 메시지는 목자들이 전하여준 하늘 천사의 찬양이다.
라) 목자들이 치고 있는 양떼들은 실제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희생 제물로 드려지는 양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이신 어린 양 예수님이 나신 소식을 처음으로 듣게 된 것이었다. 목자들은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2:12)는 영적인 메시지를 들었다. 무엇이 표적이란 말인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표적이란 것이다. “강보”란 “넓은 붕대로 된 천”이다. “구유”는 “짐승의 밥통”이다. 죽은 시체와 같이 붕대로 둘려 싸였고, 짐승의 밥통에 누여진 아기, 가서 보니 동굴 속에 있는 아기, 이 모든 것은 표적(sign)이었고 쉽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희생제물이 되기 위하여 기다리는 어린양 예수님의 출현을 본 것이다.
* 부주제 7. 예비 된 신앙의 노인들 시므온과 안나: 눅2:21-40
(1) 예수님은 탄생하신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받으시고 “예수”(Jesus)라는 이름도 이 날에 받으셨다(눅2:21). 할례란 남성생식기의 끝부분을 덮고 있는 여분의 포피를 제거하는 포경수술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수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받아드렸기 때문에 약속의 표로 할례를 시행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고 할례 받은 자손을 보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확인하게 되었다(출22:30). 난지 8일째 되는 날 아버지가 할례수술을 집행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들을 훈련할 것을 다짐하였다. 부인들은 할례 받은 남편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가정임을 확인하였고 개인적으로도 자기와 가정이 성별되었다는 신앙의식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잘 지켜야 하는 것은 할례 받은 자의 본분이었다. 그렇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완고하고 교만하면 그런 자를 “할례 받지 못한 자”(렘6:10; 레26:41; 겔44:7, 9)라는 꾸중을 받기도 하였다. 할례의 표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며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2) 예수님은 여인의 아들이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므로 할례를 받으셨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다(갈4:5). 또 할례와 관계없는 이방백성은 새 언약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본래 할례는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인데(롬4:11) 초대교회에서는 할례 자체로 인한 문제가 속출했다. 믿음은 표보다 마음속의 산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레 26:41; 신10:10, 16; 레4:4)과의 충돌이었다. 현재 우리가 가진 믿음의 표는 세례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롬6:8)는 믿음의 표로 받는다.
(3) 예수님은 구약시대의 할례를 신약시대의 세례로 바꾸어주셨다. “예수님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고 하였다. 만일 우리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할례”(세례)를 받았다면 우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큰 선민의식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4) 예수님은 할례를 받으신 후에 또 40일 만에 모세의 법을 따라 하나님께 바쳐졌다. 이것은 율법을 따르면서 율법의 예언을 성취하는 생활을 지키는 중요한 예가 된다(시45:6-7; 히1:8-9; 사50:4-9; 빌2:5-7; 갈4:4; 히5:7-9). 이때 나이 많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예수님을 품에 안고 축복과 예언의 말을 하였다. 시므온은 제사장도 아니며 백성의 지도자도 아니며 평민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신앙생활은 의롭고 경견할 뿐 아니라 성령님이 늘 그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사는 삶을 원하였으나 “너는 메시아(=예수님)를 보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눅2:26)는 성령님의 지시로 인하여 메시아 볼 때까지 “이스라엘의 위로”(=메시아의 오심)를 기다리며 살았다. “시므온”이란 이름은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는 정치와 종교의 타락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리는 “숨어서 섬기는 종”이었다. 이러한 종을 통하여 하나님은 메시아를 확인하여 주셨다.
(5)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자”이신 아기 예수님(=메시아)을 품에 안고 감격과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그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위로가 성취되었다는 선포가 있게 되었다.
가) 시므온은 구원 받은 개인의 축복을 선포하였다. “종은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이제 종은 메시아를 품에 안았은즉 평화롭게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눅2:29)라는 신앙고백을 선포하였다.
나) 시므온은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선포하였다. 비록 이방인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을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메시아는 만민을 위하여 예비 되었고 이방을 비추는 빛입니다”(눅2:32).
다) 시므온은 물론 이스라엘의 위로가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였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입니다”(눅2:32).
(6) 나이 많은 여성도 안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아(=예수님)을 선전하였다. 안나는 평신도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예언의 은사를 받은 여선지자였다. 그녀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으므로 그녀의 족보까지 들추면서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로 기억되고 있었다. 아셀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잃어버려진 지파였으나 그녀로 인하여 아셀 지파가 다시 기억되었고 하나님의 계시가 아셀 지파의 한 노인 여자로 인하여 열려지면서 메시아의 현존에 대한 확인을 보여주신 사실은 하나님께는 잊어진 사람이나 백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준다.
가) 안나는 결혼하고 7년 후에 과부가 되어 84년간 성전 중심, 신앙 공동체 중심의 생활을 하였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예배와 제사에 참여함으로서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예언과 축복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일평생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다(눅2:37). 예수님도 “금식과 기도만이 믿음의 능력을 나타낸다”(마17:21)고 가르쳐주셨다.
나) 안나 할머니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메시아가 오셨다,” “나는 메시아를 보았다”고 선전한 말은 능력 있는 믿음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비 된 사람을 들추어내어 사용하시면서 약속의 성취를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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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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