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8일 월요일

13. 진실한 회개와 겸손한 믿음 (눅18-19장)

       13. 진실한 회개와 겸손한 믿음 (18-19)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누가복음 17장에서 영원한 삶을 현세에서 준비하라는 주제와 함께 마지막 부분의 단락인 눅17:20-37에서는 인자의 날에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잘 지키어 나가기를 예수님은 권유하여 주셨다.

   그리고 18장에 들어서면 곧 인내로 기도하여야 하는 이유와 목적과 방법을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 가르쳐주신다. 불의가 성하여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기 힘들다”(18:8)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믿음을 지키기 위한 기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를 당하며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고 교만한 인간의 모습을 더욱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 요구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믿음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강조하여 주셨다.
 
   계속하여 19장을 보면 겸손과 회개로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삭개오의 기록이 나오고 평소에 늘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열 므나의 비유에서 강조하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19:46)고 하였으니 성도는 성전을 장사하며 강도질 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고 믿음의 기도를 드릴 곳으로 지켜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누가복음 17-19장의 주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자의 날이 매우 가까이 온 마지막 때에 영원한 삶을 준비하기 위하여 성도는 모든 자산을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투자하며 더욱 겸손하게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끈질긴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 누가복음 18:1-8에서 예수님은 중요한 요절로 8절 말씀을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는 누가복음 11장과 18장을 함께 살펴보면서 기도의 핵심을 살펴본바가 있다. 그 요지는 아래의 첫째와 둘째 사항에서 정리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제13강의에서 누가복음 18장을 살펴볼 때에는 셋째와 넷째의 사항이 첨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가정의 부자(父子) 관계는 하향적 은혜가 주어지는 관계다. 아들이 구하면 아버지께서 주시는 관계다. “기도하고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는 원칙이 성립된다

셋째, 아들(성도)은 배우자(예수님)를 잃고 과부가 되어 폭력, 살인, 음란, 싸움 등이 들끓는 불의한 세상에 살면서 권세능력도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권세능력을 회복하여야 하는데 그 길은 오직 끈질긴 기도외에는 없다.
 
넷째, “권세 회복은 수평적 차원(권력, 재력)에서가 아니라 수직적 차원(영력)에서 이루어진다. 성도의 권능은 절대로 성도 자신에게서 회복되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권능이 제3의 원인과 출처에서 입혀져야만 한다. 그 출처가 의로우신 재판관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그 원인은 가장 좋은 아버지의 선물인 성령님”(11:13)이시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밤중에 여행 중에 찾아온 친구를 먹일 수 있게 되고(11:5-8) 불의한 세상에서 맺힌 원한들을(unjust, 18:3, 5, 7, 8)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은 이러한 권능은사”(Gifts)로 성도들 각자에게 그 필요를 따라 채워주시며 나가서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여주신다.
 
* 누가복음 18:9-14에는 바리새인과 세리가 드리는 기도의 비유가 나온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14절에서 비유의 결론을 내리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신(justified before God) 사람은 세리였다. 그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God, have mercy on me, a sinner)를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였다. 회개의 기도는 용서를 낳았고 용서는 의의 축복을 받았고 세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었다. 겸손한 세리는 하나님께 높임을 받은 자임을 예수님은 증명하여 주셨다. 인자가 오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겸손히 회개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므로 의인(義認, Justification, 의롭다 함을 인정받음)을 받고 영적 능력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행위)를 높이 평가하면서 큰 소리로 주위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기도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을 이미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6:15).
 
3. 모든 사람이 가장 시험에 들기 쉬운 항목이 바로 교만영광”(칭찬)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믿음이 떨어지고 기도의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고 말세에 사는 우리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12:43).
 
* 누가복음 18:15-17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어린 아이를 두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as a little child)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7). 예수님은 16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고 먼저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에게 속하여 있다”(belong to these)라고 하지 않으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에게”(belong to such as these) 라고 하셨다. 어린 아이 모두에게 천국이 귀속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며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성품(some quality)을 지적하시면서 그것이 천국에 들어갈 요소임을 가리키셨다. 그런데 그 성품(quality)이 명료하게 설명된 곳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여러 가지 견해를 살펴본다.

첫째, 어린 아이들이 가진 겸손으로 보는 입장이다.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전 9-14절의 비유에서 바리새인이 드린 기도를 보면 꾀나 자랑하는 것이 많은 반면 세리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또 마태18:4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였다.)
 
둘째, 어린 아이들이 가진 의심 없는 단순한 믿음으로 보는 입장이다. 누가복음 17:5-6에서는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으므로 단순한 믿음(a simple faith)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하여 어린 아이의 믿음으로 보는 견해는 이상하고 또 그런 믿음이 단순한 믿음 또는 의심 없는 믿음이라고 보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겨자씨는 작아도 생명이 그 속에 있지 않은가?
 
셋째, 어린 아이들이 가진 것이 없다는 소유 부족(결핍)을 보는 입장이다. 소유 부족이 천국에 들어갈 조건은 되지 못한다. 다음의 단원(18:18-30)에서 나오는 재물이 많은 부자 관원과 같은 입장을 가진 어린 아이는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세 가지 견해 중에서 첫 번째 견해가 무난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입장이다. 또 성경의 전후 문맥의 연결과 해석상으로도 이 견해가 적합하다고 본다.
 
* 누가복음 18:18-30에는 부자 관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영생을 얻는 것”(18)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계명을 잘 지킨 모범 신앙인으로 자처한다. 그러난 예수님은 그의 문제를 지적하신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2).
 
1. 관원 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분명하게 해설하여주고 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23). 근심한 결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는 뜻이다. “근심또는 염려라는 말은 공중에 무엇을 세우는 것또는 탈 괴도라고 하였다. 재물로 인한 근심 때문에 그 부자는 영생”(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였다.
 
2. 이미 예수님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6:13)고 말씀하여주셨고 여기에서는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4-25)고 말씀하여주셨다. “섬겨야 할 자는 누구인가? 부자는 비록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으나 앞에 계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섬기는 눈이 가려져 있었다.
 
3. 장차 누릴 영원한 생명(=영생)을 얻기 위하여서는 현재 그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는 시작이 있어야 한다. 그 체험이란 바로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것이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4. 저자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하게 보여 지고 있는 현실적 차원 즉 예수님에게 역점을 두고 기록을 전개하였다.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5. 저자 누가가 강조한 사실은 이러하다. 부자는 지금(now) 그 자리(here)에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고 영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재물의 방해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6. 저자 누가는 구원을 얻는 방법은 무엇이며 재물이 구원을 방해하는 위험요소인 것을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모든 것을 팔라는 내용의 성경구절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5: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 버리라, 포기하라는 내용의 성경구절
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7: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8: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 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   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 을 돌 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11: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 하리라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      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  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  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7.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켜온 모범 신앙인(21), 정부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관리(18), 부요를 소유하고 있는 큰 부자(23), 이러한 사람이 영생을 얻고(18)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24, 25) 구원을 얻는 일(26)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그렇게도 어려우면”(24) . . . 도데체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26). 매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여 주신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나니라”(27).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다.
 
* 누가복음 18:31-34에서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채찍질 받으며 죽임을 당하고 그 후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예고하여 주신다. 세 번째의 똑같은 예고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구원의 사역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시게 된다는 말씀이다.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설명을 하여주셨으나 제자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34).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무지하며 그 방법이나 원칙을 알 수도 없고 깨닫지도 못한다. 예수님은 홀로 묵묵히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길을 순종으로 일관하시며 나아가고 계신다.
 
* 누가복음 18:35-43에는 여리고에 들어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한 맹인을 고쳐주시는 기록이 나온다. 이 맹인은 나사렛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크게 지른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38). 이 맹인은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소외자다. 보잘 것 없는 눈먼 걸인이 어떻게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꾸짖으며 잠잠하라”(39)고 하면서 그를 제외시킨다. 이러한 눈먼 걸인은 구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언제까지 소외되어야 하는 존재인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26)라는 질문은 부자에게만 해당되고 눈먼 걸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단 말인가?
 
1. 구원은 사람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행한 일로 따지면 관원 부자는 구원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키었기 때문이다(21).
 
2. 눈먼 걸인은 구걸만을 일삼아 살아온 사람이다. 구원의 행위를 그에게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었다. 다윗의 왕권을 가지고 오신 메시아임을 믿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38, 39)이라는 외침은 믿음과 찬양과 경배였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은 눈먼 걸인의 모든 문제(구원까지도)의 해결자였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 39),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41) 하며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였다. 예수님은 응답하여 주셨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42).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나니라”(27).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여주셨다.
 
3. 관원 부자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 하며 영생과 구원의 해결을 내가,” “하여야하는 결과로 이루어지는 줄 알고 선한 선생님, 예수님”(18)을 찾아와서 자문을 요청하였을 뿐이었다. 자문에 응답하여 주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예수님의 응답이 내가,” “하여야 할”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행위다. 예수님이 이루어주신 구원은 반드시 하여야만 하는 필수적인 하나님의 계획 준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혀 알 수 없는 구원의 사역을 친히 행하신 것이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34).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은 사람이 전혀 모르는 예수님(하나님)의 일이셨다.
 
* 누가복음 19:1-10에는 여리고에서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를 구원하시는 사건이 나온다.
1. “삭개오라는 이름은 의로운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름의 뜻과는 달리 삭개오는 모든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지목하고 손가락질 하는 인물이었다. 이방나라 로마를 위하여 충성하는 세리라는 점에서 조국을 배반한 죄인이었으며 세리장의 직책을 가지고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는 그 중의 일부를 부당하게 자기의 몫으로 소유한 부자라는 점에서 또한 죄인이었다. 이와 같은 여건 하에서 그는 유대인들과 막역한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있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재물을 모아드렸으나 그 부요와 재물로 마음의 안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2.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통과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뛰어나갔다(4). 당시에 고위 관직에 있는 자나 부자들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절대로 달음박질을 하지 않았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나 부자의 체면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보려는 일념만을 가지고 뛰어나간 것이었다. 그는 키가 작았다그리고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는 열정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4).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인하여 수치를 제쳐놓았다. 목적을 달성하였다. 나무위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게 되었다.
 
3. 그런데 놀랍고 신비한 구원의 역사가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게 됨을 보게 된다. 그 내용이 19:5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When Jesus reached the spot, he looked up and said to him,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이 구절 속에는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진리의 말씀과 신비한 구원의 내용이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알알이 못 박혀 있듯이 꽉 들어차 있다. 그 내용을 보자.
 
. 예수님(Jesus - Savior): 구원의 사역은 그 계획과 진행과 결과 등 전체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과 권능의 도구로 사용되며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17:10)고 하면서 하나님(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 그 곳에(the spot): 예수님은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장소를 선택하셨다. 그 곳이 바로 여리고의 마을 중에서 그 무화과가 자라고 있는 그 지점이었다. 우연의 일치란 에수님의 구원 계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주 예수님은 계획하신 바로 그 곳에서 삭개오를 만나주셨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4:4)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예정하신 계획을 따라 반드시 사마리아의 수가성 우물 가 그 곳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것과 같은 계획과 진행이 나타나고 있다.
 
. 이르사(reached): 예수님은 그 곳에 드디어 도착(이르사) 하셨다. 삭개오가 감람나무 위에서 이상한 모습으로 나뭇가지를 꼭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확한 그 시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와 장소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 쳐다보시고(looked up): 여기에서 본다라는 원어(Gk)내용을 알고 목적을 가지고 본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아시고” “쳐다보신다.” 나무 위에 왜 저렇게 가지를 붙들고 있는지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쳐다보시는 놀라운 순간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예수님)나를 알고 보신다는 뜻이다.
 
. 삭개오야(Zacchaeus!): 어떻게 삭개오라는 이름을 아셨을가? 사람의 사고구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아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그때 그곳에” “자기 양”(삭개오)에게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또 예수님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신다”(10:3). 삭개오를 알뿐 아니라 그의 이름도 넉넉히 아신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불러 살려내실 때에도 사울아, 사울아하고 그 이름을 부르셨다. 그때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름으로 불려졌다. 하나님(예수님)은 우리들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이시다. 삭개오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기쁨이 넘쳤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무시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외로움 속에서 살았던 그에게 예수님이 부르시는 음성은 메마름 속의 단비와 같았다. 목마른 그에게는 생수와 같은 음성이었다. 시편 147편의 찬양을 들어보자.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 속히 내려오라(come down immediately; make haste, KJV): "즉시 내려오라,“ 또는 서둘러(지체하지 말고) 내려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내려졌다. 구원의 은총이 순식간에 선물로 주어지는 시간이다. 죄인은 주님의 명령에 즉시 순복할 수밖에 없다. 은혜는 이렇게 즉시,“ ”기대 밖에주어진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다. 또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오늘을 강조하신다. 우리는 지금,“ ”오늘,“ ”즉시,“ ”지체하지 않는은혜의 줄에 매여 살고 있는 것이다. 은혜를 갈망하는 우리의 소원을 주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후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For he says,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예수님은 반드시 삭개오의 집에 방문하셔야만 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러”(to seek and to save) 오셨다. 매우 일방적이시다. 매우 강압적이시다. 예수님 편에서 삭개오를 초청하셨다. “유한다”(remain, 체류한다)는 원어(Gk)"고요히 함께 산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마음의 집) 속에 고요히 함께 사시겠다!“고 먼저 선포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그렇게 “(Yes) 하며 당신의 초청에 응할 것을 이미 아셨다. 이제는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자.“ ”나도 말하고 너도 말하라. 우리들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가 아닌가?“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11:19; 7:34) 라고 하지 않느냐? 과연 그러하다.
 
4. 예수님을 바로(, 제대로) 만나면 회개와 용서가 따르며 구원이 선포된다.” 삭개오의 회개는 이러하였다. “주여(예수님)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8).
 
.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잘못 되었던 과거를 청산하였다. 재물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신앙인의 바른 결단을 하였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자원하여 내어놓았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며 영원한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삭개오는 부정수입을 철저하게 들추어내고 거기에 해당하는 4배를 갚겠다고 하였다. “4배를 갚겠다는 말은 도적질 한 것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삭개오는 도적질은 하지 않았으나 그와 같은 철저한 회개를 하리라는 순수성을 회복하였다. 구약에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간음죄를 직책 할 때에 어떤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죽였다고 말하자 다윗은 분노하면서 그 4배를 갚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때 나단은 그 부자가 바로 다윗 왕이라고 지적하자 다윗은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삼하12:6). 삭개오는 철저하게 회개함으로써 거듭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 예수님은 삭개오를 기쁨으로 받아드렸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9-10)고 선포하여 주셨다.
 
. 예수님을 향한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길 잃고 방황하였던 과거를 청산하는 회개, 이 두 가지 요소는 지금도 우리들을 거듭나게 하여주고 은혜 받게 하여주는 귀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