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순종으로 믿음을 키우자 (눅17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누가복음 16장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삶을 지금 준비하라”는 교훈을 받았다. 영원한 안식의 전날 밤(the eve of the Sabbath)에 영원한 축복의 안식에 들어갈 준비를 잘 갖추라는 것이었다. 안개와 같이 곧 사라질 현세에서 우리는 주어진 모든 자산(시간, 건강, 재물)을 영원을 위한 준비에 힘쓰자는 내용이었다. 이제 17장에 들어서면 영원한 삶을 준비하려는 삶의 방해요소로 인하여 “죄를 범하게 되며” “믿음을 지킬 수 없게 하므로” “믿음을 지키고 키우는 순종의 삶이 먼저 요구된다”는 깊은 신앙의 결단을 맺게 하는 내용의 교훈들을 예수님은 주시고 계신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을 하느냐?” 아니면 “순종으로 믿음을 키우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는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그때그때의 상항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여준다.
* 누가복음 17:1-2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이 만일 작은 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메여지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죄를 짓게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1. 작은 자란 어린 아이들과 아울러 신앙의 성장도가 낮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눅10:21; 마18:1-6). 특히 여기 본문의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서부터 연속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한다고 원망하고 비난할 때에 주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 나오는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작은 자로 보셨다. 소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처하는 신앙인들이 작은 자들 앞에 걸림돌을 놓고 그 연약한 자들을 넘어지게 하고 있는 언행을 예수님은 보셨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범죄는 제자들이라도 범하기 쉽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시고 경고하여 주신 것이다.
2. “실족케 한다”는 성경원어는 “덫을 놓는다” 또는 “걸림돌을 놓는다”는 말에서 파생하여 “유혹한다, 죄를 범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심한 충격을 주며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그 사람은 바로 걸어갈 수 없고 넘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에 우리들의 언행은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다.
3.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야 하실 것을 예고하셨을 때에 주님을 붙들고 그렇게 하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을 실족케 하는 자리에 있었고 다음과 같은 꾸중을 들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우리들은 자기의 이성이나 감정, 판단력이나 경험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형제자매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삼가하게 될 것이다.
4.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메이어지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고 하신 말씀은 글자의 표현대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며 범죄하게 한 자의 화가 크고 형벌이 무겁다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5:29-30에서도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고 하신 것도 범죄의 원인과 근원을 차단하라는 명령이다.
5. 바리새인들이 한 사람의 잃은 영혼을 도외시하고 있는 습관리라든지 현세에서 돈을 좋아하고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생활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넘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6. 사도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전6:12)라고 하면서 자기의 언행이 다른 성도들에게 덕이 되도록 무척 노력하였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고 유익을 주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 누가복음 17:3-6에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자의 죄악이 가증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러한 일을 직접 당하였을 때에는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 것인지 가르쳐주셨다.
1. 첫째, 실족케 하는 자와 함께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우리로 죄를 범하도록 권유하는 형제들의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부드러운 말로 유익한 결과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면 모든 유혹과 핍박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 받게 된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든지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 대로 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 둘째, 실족케 하는 형제나 자매를 구원하라고 하셨다. 실족케 하는 자는 고의로 하는 경우도 있고 모르고 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구원 받아야 할 대상자들이다. 그 구원의 방법은 “경계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의 두 가지라고 예수님은 가르쳐주셨다. “경계하다”는 성경원어는 “견책하다” 또는 “꾸짖는다”는 뜻이다. 죄를 범하는 형제자매에게 직접 찾아가서 사랑의 권고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형제를 찾아가면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찾아가지 않으면 자기와 그 형제가 아울러 그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없게 된다. 또 형제를 구원하려면 반드시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만일 그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셨다. 회개가 먼저 있어야 용서가 따르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용서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회개가 받아질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희생을 치루셨다. 이러한 사랑을 기초로 하는 회개와 용서가 연결되는 것이다. 또 용서는 무제한으로 하라고 하셨다. 하루에 7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7이라는 수자는 거룩하고 완전한 수자이므로 호리라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용서해 주어야 한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구절(마18:21)도 참다운 용서란 490번까지 수를 헤아릴 필요도 없는 무제한의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3. 셋째, 실족케 하는 자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용서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믿음의 분량을 예수님에게 요구하였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경고하여주고” 또 “용서하여주는” 일은 믿음의 분량에 의하여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판가름이 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하겠다”는 “순종의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주셨다.
* 누가복음 17:5-10에서 예수님은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먼저 참다운 봉사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행실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질 칭찬과 상급을 기대하였다. 이러한 못된 신앙관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속에서 나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이러한 삐뚤어진 신앙관은 아래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시정되어야 한다.
1. 첫째, 성도는 자기가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종이라는 신분은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소유물에 불과하다. 종의 모든 일과 활동은 주인의 계획과 뜻에 의하여 언제 어디에서나 무슨 일이든지 진행되고 유지되며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무익한 종”일 뿐이다. 무조건의 순종만이 요구되는 존재다. “무익하다”는 원어는 “요구가 없다,” “이익이 없다,” “빚이 없다”는 뜻이다. 주인에게는 종이 있어도 없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고 주인은 언제라도 부담 없이 종을 마구 사용할 수 있다. 여기 비유의 말씀에서 주인은 종에게 밭을 갈게 하고 양도 치게 하고 음식도 수종 들게 하고 있다. 들에서 수고하고 집에 돌아와도 칭찬과 보수가 없고 도리어 집에서도 하여야 할 일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 종에게 감사하거나 사례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그러나 종의 입장에서는 주인에게 “무익한 것을 사용하여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인생관과 세계관이 바뀌어진다.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며 자기는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명도 생활도 거저 받은 빚진 자요 그 빚은 갚을 길이 전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도 감사하며 주인이 종으로 삼아주신 것도 감격하게 된다.
2. 둘째, 성도는 주님의 명령을 다 따르겠다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일 외에도 주인의 손과 발을 씻기고 주인이 잡수실 음식을 준비하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며 주인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내용들은 다양하다. 이 다양한 일들은 모두 주인을 받들고 섬기며 수종하는 일이다. 성경말씀의 다양하고 수많은 명령은 모두 이웃과 형제자매를 위하여 하는 것이지마는 실상은 곧 주인을 위하여 순종하며 지켜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3. 셋째, 성도는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을 착실하게 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밭갈이, 양치기, 음식준비는 일평생 하루고 건너지 않고 매일 하여야만 하는 일들이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뽕나무를 옮길만한 능력도 일상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 일초도 쉬지 않고 우주를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때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들도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종의 마음으로 매일 일하고 움직이고 수고할 때 곧 산을 옮기고 뽕나무를 뽑아내는 기적을 나타내며 이것이 곧 “즉시 기쁨으로 순종하는 겨자씨 한 알의 작은 믿음” 이다.
4. 예수님은 누가복음 12:37에서 “깨어있고 부지런한 종에게는 주인이 시종 들어 준다”고 약속하여 주셨다. 무익한 종이 되어 일을 할 때에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상급은 이와 같이 주님과 종이 상호 섬김을 주고받는 뗄 수 없는 관계의 무한한 축복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누가복음 17:11-19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방의 경계를 지나가실 때에 10사람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기적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 전의 비유에서 구원을 받은 자의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며 여기에서는 구원 받은 자가 받은 은혜는 감사로 표현되는 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1. 그 당시의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곁을 지나갈 때에 “아메, 아메”(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 하고 소리를 지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았다. 10사람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들을 긍휼이 여기소서” 하며 질병의 치료를 호소하였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들의 몸을 보이라.”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을 만지지도 않으셨다. 믿음을 권유하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 말씀 한 마디만 하여주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순종하였다. 그들은 가다가 자기들의 몸이 깨끗하여진 것을 발견하였다.
2.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자기 몸이 치료된 것으로 인하여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렸다. 믿음의 표현이다. 그는 제사장에게 가기 전에 예수님께 돌아와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렸다. 그는 자기가 직접 예수님께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예배드리며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그는 자기가 직접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벧전2:9)는 성경말씀의 산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 사마리아인의 신앙행위에 대하여 성경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눅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3. 15절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하였고 16절에서는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16절의 구절은 신약 전체에서 오직 한 번 나오는 중요한 구절로써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기록이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여 주셨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18절) 하시고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여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심을 확인하여 주신다. 이방인 사마리아인에게서 놀라운 신앙고백이 행위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이곳 이외에서는 “감사”를 하나님께 직접 드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예를 본다.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 다
눅22: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 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행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행28: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5.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또 율법에 의하여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였다. 이 아홉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나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에는 부족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이 사람들도 치료를 받았다. 믿고 감사드릴 수 있는 첫 단계에 들어갔고 제사장에게도 찾아가서 율법의 규정대로 행하였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갔으나 그 믿음은 잠간에 불과하였다”(눅8:13). 그들은 좋은 땅과 같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구원)하지(8:15) 못 하였다. 처음과 나중이 뒤바뀌는 결과를 만들어 낸 자들이다(11:24-25). 나중 형편이 좋아지지 못하여 구원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아홉 사람들은 나중에 이러한 상항에 이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누가복음 13:26-27을 인용한다.
눅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 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 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6. 주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받은 백성은 감사와 찬양의 생활을 늘 하여야 한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기 없느냐”고 하시며 아홉 사람의 유대인을 찾으셨다.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줄 아는 성도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선포된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 누가복음 17:20-21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유대인들은 어떤 정국의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질문하며 접근한다. 이러한 질문은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질문이기도 하다.
1. 유대인들은 예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기대와 염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들은 정치적 속박과 경제적 빈곤에서 구출되고 자유와 번영의 때를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여 주셨다.
2.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가르쳐주셨다. “볼 수 있게 임한다”에서 “본다”는 원어는 “관찰한다”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외부적으로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고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벌써 3년 동안이나 그들이 보는 가운데에서 역사하셨으나 전혀 아무것도 관찰하지 못한 어두움의 상태에 있음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천국관은 정치, 경제, 사회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이며 영적 차원에서는 백지상태였다. 그들의 천국관은 유대인만을 위하였고 이방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영적이며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신 것이다. 영적 각성과 거듭남의 중요성(요3:1-8)을 깨닫고 천국백성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영안이 열리고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게 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3.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외부를 관찰하는 육체의 눈이 아니고 내부를 들여다보는 영적 눈을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안에 있다”는 말은 “속에 있다,”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마음속에도 있고 개인과 이웃 사이에도 있다는 뜻이다.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은 “나의 마음속에도 계시며” 또 “나와 이웃 사이에도 계신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속에도 계시며 또 그들 사이에도 계셨으나 그 나라의 왕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하였고 이미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4.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셔드린 성도들 개인의 마음속에 또 성도들의 사이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님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18).
* 누가복음 17:22-37의 내용은 “천국의 완성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라”는 각성을 주고 있다.
1. 예수님은 천국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고 영안으로 보면 이미 성도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천국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인자의 날”에 완성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다. 그 날은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침같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에 순간적으로 나타난다고 하셨다.
2. 예수님은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오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기 나타나셨다 또는 저기 계신다는 소문에 속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생각지 않은 때,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눅12:40, 46)에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참고: 마24:15-51; 마25:1-13; 살전5:1-9; 벧후3:8-10).
살전5: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 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 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 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 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벧후3: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 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 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 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 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인자의 날”은 노아의 홍수시대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때와 같이 갑자기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상생활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때에도 지금과 같이 인구팽창의 문제가 심각하였으며(창6:1), 불법이 성하였고(6:5), 폭력이 난무하였고(6:11, 13), 가증스런 행위가 만연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소식과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탐욕과 정욕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들은 갑자기 임하는 심판의 “물”과 “불” 가운데에서 멸망을 당하였다. 예수님께서 친히 “노아의 때”(26)와 “롯의 때”(28)는 “인자의 때”(26)와 같고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30)고 언급하셨으므로 그 때의 일들을 구약에서 자세히 살피고 그 특성과 교훈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 매우 주요하다.
가. 노아의 때(창6:5-9:29): 성경에서 언급한고 있는 당시의 상항을 열거해 보자.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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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창6: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7: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 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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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9: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 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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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롯의 때(창18:16-19:38):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당시의 상항을 읽으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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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국은 심판과 함께 나타난다. 천국백성이 아닌 자들이 심판을 받고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과 죽음의 썩은 고기를 독수리들이 물고 뜯으며 버림받을 남자들과 여자들이 버림받을 때 천국은 완성된다고 하셨다.
5.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천국이 완성되는 날이라고 하였다. 그 날은 심판도 아울러 나타나는 날이다. 그 날은 갑자기 생각지 않은 때에 나타나므로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롯의 아내와 같이 땅에 속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예수님의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33).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천국을 간직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되는 그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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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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