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7일 월요일

7. 아론보다 더 큰 대제사장 예수님 (히5장)

 7. 아론보다 더 큰 대제사장 예수님 (5)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3:1; 4:14)
 
* 히브리서의 신학을 연구하는 주제들 중의 하나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신약의 다른 저자들이 조직적인 논리를 전개하지 않은 사실과 큰 비교가 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시편 1101, 4절에서 창세기의 멜기세덱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확인하고 있다.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피조물 인간에게 당신의 뜻과 계획을 알려주신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의 계획을 따라서 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후에 언어와 대화를 주신 기록이다.). 지음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를 지은 자(근원, 뿌리)를 찾는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지은 자를 찾지 못할 때에는 강력한 힘을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 의존하는 다시 말하면 피조물을 신으로 삼고 우상을 섬기게 된다. 그런데 계시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나주심으로 인하여 관계(relationship)가 성립되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화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창조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여주신다. 인간의 마모된 영성을 회복하여 주시기 위하여 또 계시의 올바른 이해와 수용을 더하여 주시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적교제를 중재하는 중보자로써 제사장을 두시게 되었다.

. 초기 이스라엘 시대에 각 가정의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family priest)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아래 창세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 모세의 율법이 생긴 이후에는 세습적인 제사장 제도가 생기면서 특별히 레위 지파의 아론의 가정에서 아들들이 제사장 직을 물려받고 이스라엘의 유대종교의 특성을 이루고 레위 제사장 직분”(levitical priesthood)이란 말이 생기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구약성경에는 제사장”(Hb. kohen, priest)이란 단어가 700회 이상 등장한다.
 
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참고. 레위기 21, 22)
 
제사장 직은 종신직이며 아론의 가족 내에서 승계된다. 아론 이후에 296년 동안 엘르아살(Eleazar), 그 후에는 이다말(Ithamar)의 계보에서 엘리 제사장이 승계되고 아비아달(Abiathar)에까지 이른다. 솔로몬 왕은 아비아달을 해임하고 다시 엘르아살의 계보인 사독(zadok)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왕상2:35). 정치가 종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게 된다.
 
. 신명기 339-10에는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족속에게 축복하여 주는 표현 중에서 레위 족속에 관한 글은 제사장들의 임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 특별히 제사장은 몸과 마음의 이상이나 불구가 있어서는 안 되고 부정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해서도 안 되며 불구자나 이혼녀나 음난녀와의 결혼도 허락되지 않았다(참고. 21:17-22).
 
. 이스라엘의 종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결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었기 때문에 두 사이의 중보자(mediator) 역할을 하는 제사장은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하였고 그리고 나서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과 사명을 수행하여야 하였다.
 
. 초기 이스라엘의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가정 중심으로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으나 제사장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첫 번째로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으로 멜기세덱” (Melchizedek)이 창세기 14:17-20에 등장하면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내용이 나온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에 중요성을 두고 설명한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 히브리서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비교논리(comparison and contrast)를 전개하면서 믿는 자들의 신앙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방법론은 매우 독특하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서의 기록 중에서 보여주고 있다.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 3:1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high priest)이시라고 하였고 히4:14에서는 큰 대제사장”(a great high priest)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fix your thoughts) “그에게 신앙고백을 굳게 하고”(hold fast our confession)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hold fast the confession of our hope without wavering) 라고 권고하고 있다.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었고 후계자 여호수아가 그들은 인도하여 들어갔다. 이때 그들은 육체의 안식(physical rest)을 누리게 되었으나 약속된 영적 안식(the promised spiritual rest)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4:8-9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율법의 제도화에서 처음으로 임명된 아론과 그 이후의 대제사장들은 어떤가? 그들의 제사와 제물, 예배와 섬김을 통하여 과연 고난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은 안식을 얻었는가?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를 통하여서 영혼의 안식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옛 조상들의 이스라엘 성전과 예배의식에 향수를 느끼며 눈에 보이는 종교행위에서 안식을 누려보려고과거로의 역행을 일삼게 된 것이었다.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보는 것”(by sight)을 우선적으로 따르며 믿는 것”(by faith)은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상례다. 이러한 상항 아래에 있는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참다운 안식영원한 안식은 오직 하늘에 계신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예수님과의 일치를 위한 가르침과 권고를 하고 있다.
 
* 우리는 실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언제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셨으며 더 나아가서 대제사장이 되셨단 말인가? 언제 거룩하고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의 옷을 입고 예루살렘 성전엘 거닐었단 말인가? 언제 양과 소의 목을 자르고 피와 고기를 제물로 드리는 일을 하셨는가? 이러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 . .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4:14)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영적진리의 선포다. 어떠한 논리나 설명을 하더라도 마모된 영적감각에 이해력을 돋구어줄 수 없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되며”(고전2: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아드리지 아니한다”(고전2:14).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4:14)라고 하였다. 따라서 사도바울도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고전2:12)고 가르치고 있다. (참고.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들 중에서 대제사장을 언급한 일이 전혀 없다. 이 사실은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작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interceding) 자시니라"고 하였고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one mediator)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다.) 따라서 히브리서 4:14의 말씀은 히브리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절이며 잠자던 영혼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일발의 강타며 은혜의 말씀이다. 천국으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가르쳐 준 요절과 함께 종합하면 하늘에 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중보자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시는 주님으로 정리할 수 있다.
 
* 4:14의 말씀이 히브리서를 관통하는 요절이라면 히4:14-16의 말씀은 히브리서 전체의 눈동자로 이해하고 익혀야 한다. 3-4장에서는 상처에 옥도정기를 바른 쓰라림이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기름을 바르고 쓰라림을 완화하여 주는 부분이 된다.
 
첫째, (4:14) 그러므로 . . .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
         (Let us hold fast our confession.)
둘째, (4:16) 그러므로 우리는 . . .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Let us therefore draw near with confidence to the throne of grace)
셋째, (4:15) 큰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We have a high priest who sympathizes with our weaknesses.)
                  (syn=함께 with, path=느낌 feel -> 함께(같이) 느낀다)
 
. 4:16에서 사용하고 있는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draw near with confidence)라는 용어는 본래 성전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지성소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는 감히 들어갈 수 없고 대제사장이 오직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사용되는 말이었다. 실제로 성전의식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영적으로(spiritually) 승화하여 상징적인 언어로 수차례에 걸쳐 사용하고 있는 것은 히브리서 기록상의 놀라운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얼마든지 담대하게” “믿음으로” “가까이” “보좌 앞에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행사할 것을 간곡히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4:16에는 은혜”(Gk. charis, grace)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와 같은 용어의 사용은 히브리서가 논쟁적이 아니며 성도들의 신앙향상을 위한 권유의 설교문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서 은혜는 아래와 같이 사용되고 있으면서 아무런 공덕이 없을지라도 누구든지 하나님이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선물과 축복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 우리가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우리의 모든 상처와 문제를 해결 받고 영혼의 안식과 영원한 안식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놀라운 사실에 기인한다. 어디에 가서도 누구에게 가서도 안식의 위로와 평안을 취할 수 없는 이유는 모두가 죄와 더불어 탄식하고 있기때문이다. “죄는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벧전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     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1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이제 예수님께서 아론보다 더 나으신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히브리서 저자가 가르치는 내용을 네 가지 항목으로 살펴볼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초월적인 이름(a superior title)을 가지고 계신다(4:14-16).
.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a GREAT High Priest)라고 부르고 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시다. 구약에서는 누구에게도 이러한 명칭이 부여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왜 큰 대제사장이신가?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다.”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운다. 이 명칭은 사람과 같이 되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수님”(Jesus)라는 말은 구원자”(Savior)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대표하여주고 있는 독특한 언어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겸비함으로써 사람을 하나님께로 하나님을 사람에게로 연결할 수 있는 독특함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 예수님은 인격에서(person) 뿐만 아니라 지위(position)에서도 초월적이시다. 아론과 후계자들은 성전 내에서 사역을 하였고 또 일 년에 오직 한 번 대속죄일(the Day of Atonement)에 지성소(the holy of holies)에 들어갔다. 예수님은 승천하신”(passed through the heavens) 대제사장이시다. 아버지께로 승천하실 때에 피조세계의 하늘(heaven)을 통과하여 창조의 세계로 오르셨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체험을 간증하면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고 하였다. 하늘의 성전에서 사역하시는 예수님은 얼마나 초월적이라는 사실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지위는 하늘에 보좌를 갖고 계시는 분”(He is enthroned in heaven.)이시다. 이 보좌는 곧 은혜의 보좌인 것이다. 은혜는 장막으로 가리워져 있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구약의 어느 대제사장도 은혜의 보좌에 앉기는커녕 은혜를 베풀자격이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이미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는 구절들을 살펴보았다. 신앙고백의 대상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모세도 아론도 어떤 대제사장도 신앙고백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여기에 구절을 인용한다.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사역하실 때에 온갖 고초와 시험과 유혹을 받으셨으나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그러므로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어떠한 연약함이라도 동정하신다”(4:15). 우리의 넘어짐은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세워진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초월적인 임명(a superior ordination)을 받으셨다(5:1, 4-6).
.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은 아무라도 스스로 자기를 임명할 수 없었고 반드시 임명을 받아야만 하였다. 사울 왕은 제사장권한을 무시하고 자기가 스스로 그 제사직 권한을 대행하였다가 그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삼상 13). 비록 레위 족속의 자손이라도 고라와 그 일당이 일어나서 모세를 거역하고 자기들도 제사장이 있음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16). 웃시아 왕은 강성한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이 수행하여야 할 향단의 분향을 자기가 임의로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를 쳐서 나병이 이마에 나게 함으로써 그 후로 평생 나병환자로 살다가 죽었다(대하 26:16-21).
 
. 아론은 하나님에 의하여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28). 그는 사람들 중에서 뽑히어 사람들을 위하여 성전 사역을 하였다. 그는 제단에서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는 직분을 수행하되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대로 하여야만 하였다.
 
.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대제사장 직분을 임명하지 않으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임명을 받으셨다. 히브리서 5:5에서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고 기록한 것은 시편2:7의 인용이다. 시편 2편은 이미 히브리서 1:5에서 인용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하였으나 히브리서 5:5의 인용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의 신성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며 대제사장의 직분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13:33-34에서 사도바울이 시편 2:7을 인용한 내용과 같은 것임을 보여준다.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라는 표현은 아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사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인용이며 예언의 성취를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새 몸을 입으시고 승천하셔서 은혜의 보좌에 앉으셨고 영원한 하늘의 대제사장이 되셨다. 아론은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이었으나 예수님은 당신을 제물로 드려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신 것이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5:6)고 예수님을 임명하셨다. 이 말씀은 시편 110:4의 인용이다. 이 말씀도 히1:13에서 이미 인용되면서 예수님은 모든 원수들을 다 진멸하고 승리의 주님이 되심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이와 같이 직접 임명하신 일은 없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다. 이러한 사실은 아론의 반열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히브리서에서 강조하는 특징인 것이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King of Righteousness)이며 평화의 왕”(King of Salem[peace])이시다. 그런데 멜기세덱의 특성은 제사장(a priest)이며 왕(a king)이라는 사실이다. 율법이 생기기 전에 보여주신 대로 예수님은 왕좌에 앉으신 대제사장”(a High Priest on a throne)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예수님은 레위 족속이 아니며 다윗의 왕권을 이은 유다 족속의 족보를 가지셨다. 히브리서 7-10장에 걸쳐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오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초월적인 동정심(a superior sympathy)을 베푸신다(5:2, 7-8).
.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무식하고 미혹된 백성들을 능히 용납할 수 있었다”(5:2)고 하였다. 대제사장도 역시 죄인임으로 백성과 동일하며 대속죄일에는 자기와 백성의 죄를 용서받는 제물을 동시에 드려야 하였다(16; 9:7). 그런데 죄인은 죄인을 도울 수 없고 죄는 눈을 어둡게 하며 다른 사람을 해칠 뿐이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간절하고 애절한 기도의 모습을 보고도 술을 끊으라고 말할 정도로 동정을 베풀 수 없었다(삼상1:9-18).
 
. 그러나 육체로 계실 때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연약함과 고난과 박해와 시험과 유혹을 다 체험하시면서 그 가운데서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하였다. 5:7에서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히브리서 저자의 기록은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기억하게 한다(26:36-46). 예수님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라고 하시며 죽음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죽음을 이겨내는 기도를 드리셨다. 예수님은 자기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을 당하셨다.

. 우리들이 어떠한 시련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촌푼의 의심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음을 간증한다.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4. 예수 그리스도는 초월적인 희생제사(a superior sacrifice)를 드리셨다(5:3, 9-10).
.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내용은 히브리서 9-10장에서 자세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은 첫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제물도 드리실 필요가 없으셨다는 것이며 둘째, 예수님은 단 한 번의 희생제물로(once for all) 구약시대의 반복적인 제물드림을 대치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님은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became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되신”(5:9)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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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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