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주신 예수님 (히10장후)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10:19, 22, 39).
* “성경을 공부함” 또는 “신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사항은 “생활에의 적용”이라는 유대관계다. 단순하게 말하면 “적용 없는 신학은 없고, 신학 없는 적용은 없다”(No theology without application and no application without theology.)는 대명제를 의미한다. 신학적 진리가 신앙생활에 적용될 수 없다면 그 진리는 추상적인 지식의 향연에 불과할 것이며, 신앙생활에 적용되는 일들이 신학적인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적용은 기초가 없이 비활성화 되고야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논리가 정연하고 생활의 활력을 넘치게 불어넣는 생명의 진리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때에는 이미 그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논리성과 적용성”의 밀접한 유대관계를 보여주고 나타내는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 히브리서는 1:1로부터 시작하여 10:18(전반부)까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다각적인 방법과 구조를 동원하여 “엄연한 진리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제 10:19로부터 13:25(후반부)까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성도들의 “구체적 실천 체계”를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논리”를 근거로 하는 “적용”을 생각하면서 “구체화 된 실천성”을 정리하여야 한다. “왜 그렇게 하느냐”(행동)는 질문에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청사진)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1장, 12장, 13장을 각각 따로 공부할 지라도 그 토대는 1-10장이다. 논리의 기초가 각각의 실천 장들에게 적용의 근거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 히브리서 10장 1-3에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하는 참 형상인 제사를 드리므로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다”(히10:1-2의 핵심 요약)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속죄의 가능성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영원한 제사(피를 드리는)를 몸으로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들(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은 거룩함(완전한 속죄)을 얻었다”(히10:10, 12의 핵심 요약)고 하면서 성취된 해결책을 열어 놓았다. 새 언약의 “약속들”은 예수님의 피(죽음)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성취되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은 영원한 속죄를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실천편(10:19이후)의 서두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Let us draw near to God)고 권유한다. 이 말씀은 10:19-39의 주제(the subject)로 삼고 실천편의 첫 번째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이 부분의 내용들은 아래의 세 항목으로 분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항목, 10:19-25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자: 믿음의 근거)
둘째 항목, 10:26-31 (예수님 배반의 위험성과 따라오는 결과)
셋째 항목, 10:32-39 (인내를 요구하는 격려와 권유)
* 첫째 항목, 10:19-25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자: 믿음의 근거)의 해설
1. 히10:19의 서두에 나오는 “그러므로”(Therefore)는 10:19-13:25의 (히브리서 후반 전체; 실천편) 전반에 적용되는 접속사가 된다. 특별히 유의하여야 할 사항은 히브리서에서 유명한 “믿음에 관한 내용들”이 히브리서 후반부를 거의 장식하고 있을 정도인데 이 모든 믿음에 관한 사항들이 “그러므로”와 직결되므로 “그러므로”라는 결언 접속사가 발생하게 된 히브리서 전반 논리편의 핵심들과 함께 언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믿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전반부의 핵심사항인 “대제사장 예수님”과의 유대관계를 가지고 설명하고 해설하여야 한다.
2. 완전한 속죄의 가능성과 해결책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하나님 앞으로(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담력”(confidence)을 갖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영원한 하늘나라에 이르는” “새롭고 산 길”(a new and living way)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열어놓으신 문”(Open Door)이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담력의 근거”가 다음과 같이 분명하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His body 몸 = His flesh 살)니라
“휘장 가운데로”(Through th curtain) 통과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말은 대제사장이 성소와 지성소(the Holy of Holies) 사이의 칸막이인 “휘장”을 제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육체”(His flash, His body)를 “휘장”이라고 하였다. 육안으로 보는 “휘장”(curtain)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살(flesh)이 찢기심”과 함께 “피”(blood)를 흘리셨다. 이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겨졌다. “예수님의 살이 찢겨 죽으심”으로 “성전휘장이 찢겨진 사실”은 “옛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새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지상의 지성소”는 종식되고 “하늘의 지성소”(the Most Holy Place, 19절)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큰 대제사장”(a great priest over the house of God, 21)이 새롭게 탄생되는 순간인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새롭고 산길이 열린 것이다.”(20절) 이와 같이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다”(pioneer of salvation, 2:10). 그리고 “흠 없이 자기를 드린 피로써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mediator of the new covenant, 9:15).
막15:37-38.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마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눅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3. “담력”(confidence, 자신만만함)의 근거는 예수님의 “피”와 “몸”(육체)이므로 이러한 근거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격려사항을 제공하여 준다”고 하면서 저자는 “ . . . 하자”(Let us)는 실천사항을 히10:22-25에서 열거하고 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위의 내용은 “믿음, 소망, 사랑”(Faith, Hope, Love)의 “담력”으로 요약된다.
첫째, 믿음의 담력: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2. Let us draw near).
둘째, 소망의 담력: 소망을 굳게 잡자 (23. Let us hold fast).
셋째, 사랑의 담력: 사랑으로 격려하자 (24-25. Let us consider).
위의 내용은 “믿음, 소망, 사랑”(Faith, Hope, Love) 속에서 올바른 관계를 요구한다.
첫째, 믿음의 담력: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바르게 가지라.
둘째, 소망의 담력: 소망으로 예수님이 성취하신 은혜를 늘 자기 마음에 새겨라.
셋째, 사랑의 담력: 사랑으로 이웃을 향하여 모임 중에서 늘 서로 격려하자.
4. 히브리서는 서신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설교문”으로 볼 수 있다. 설교는 그 자체가 “선포”(Kerygma)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포의 내용을 듣는 사람들에게 “결단”(Decision)을 촉구한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문” 내에는 “선포의 알림”과 더불어 “명령”과 “권유”와 “순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선포의 알림”은 “논리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명령과 권유”는 “적용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실상은 히브리서 전반에 걸쳐서 이러한 “적용성”은 “논리성”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보여주는 특성이 있다. 그 “명령과 권유(exhortation)”의 예들을 아래에 열거한다.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We must pay close attention.)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Consider Jesus.)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Take care lest there be in any of you an evil, unbelieving heart)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Exhort one another every day)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Let us fear lest any of you to)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Let us strive to enter that rest.)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Let us hold fast our confession.)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Let us with confidence draw near to the throne of grace.)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Let us leave the elementary doctrine of Christ and go on)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Show the same eagerness in realizing)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Seize the hope set before us.)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Let us draw near.)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Let us hold fast the confession of our hope.)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Let us consider how to stir up)
10: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Recall the former days.)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Do not throw away your confidence.)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Let us lay aside every weight and sin.)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Consider Him who endured from sinners.)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Lift your drooping hands and strengthen your week knees.)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Make straight paths for your feet.)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Strive for peace with all and holiness.)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See to it that no one fails to obtain the grace of God.)
12: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See to it that you do not refuse Him who is speaking.)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Let us offer to God acceptable worship.)
* 둘째 항목, 10:26-31 (예수님 배반의 위험성과 따라오는 결과)의 해설.
이 부분은 6:4-9의 기록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의도적(deliberate)이며 도전적(defiant)이며 도피적(defection)인 배교행위(apostasy)를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이다.
1. 논리(원칙)와 적용이라는 두 가지 구조를 가지고 논리가 제시되었으면 적용의 방법론으로 진행하면 될 터인데 저자는 왜 다시 “배교행위”(apostasy)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2. 여기에서 생각하여야 할 사항이 있다. 원리와 실천이라는 구조에서 원리가 있어야 실천이 있으며 실천은 반드시 원리를 따라야만 모든 것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또 생긴다. 원리를 몰라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의 구조와 원리를 몰라도 자동차를 모는 법을 배우면 자동차를 쓸 수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원리를 따르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시고 활동 속에 원리를 간직한 채 사역을 진행하셨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대중들에게 행동으로 표현하셨고 원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실천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 사역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원리는 제자들과 사도들이 나중에 서신들 속에서 제시하고 설명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3.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의 삶속에 생성원리와 구조체제를 확립하여 놓으셨다. 천지의 운행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체계에 의하여 착오 없이 진행된다. 하나님의 진리들과 원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깨닫고 발견하고 적용하게 되는 것이 인간 활동이다. 따라서 사람이 발견한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므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생기게 되었다. 천지창조의 원리는 하나님 편에 있고 천지창조의 결과는 인간이 향유한다. 아이와 같은 사람은 철없이 세상을 즐기도록 아버지 하나님은 아무런 차질이 없이 모든 것을 다 베풀어 놓으셨다. 먹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씹을 수 있고 호흡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숨을 잘 쉬고 산다.
4. 따라서 어떤 때는 원리를 도외시하고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히브리서 저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고에 경고를 거듭 거듭 서신 전반에 걸쳐 전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배운 것을 적용합시다,” “알고 합시다”라는 간절한 교훈을 하고 있다. 저자는 결코 수신자들(동료 성도들)을 향하여 “ . . .을 하라”(Do it!)는 형식의 명령은 되도록 삼가고 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 . . .을 합시다”(Let us do it!)라는 겸손한 권고의 말씀을 제공하고 있음은 특별하다.
5. 이제 히브리서 전반에 걸친 이러한 시행착오를 개선하자는 내용을 나열하여 본다.
가. 2:1-3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떠내려가지 말라)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나. 3:12-14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지 말고 그리스도를 견고히 잡으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다. 4:1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두려움으로 사모하라)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라. 4:11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순종하는 작가 되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 6:4-6 (타락과 배교로 하나님을 배반하면 회복이 힘든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바. 10:26-31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반역하여 형벌을 받지 말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사. 10:36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는 인내(참고 견딤)가 필요하다)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아. 10: 39 (구원의 성취를 받기 위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자. 12:3-11 (어떠한 고난일지라도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기쁘게 받으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차. 13:13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짊어짐은 영원한 처소로 향하여 가는 과정이다)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6. 히10:29에서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하였다. 배교(apostasy)라는 것은 구원을 이루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거절하는 것이며 배교자들은 은혜(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선물)를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스스로 끊어버리기 때문에 또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와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7)고 하였다. 실상 “배교”라는 것은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상 “예수님을 믿고 섬기다가 돌아서는(등을 돌리는) 행위가 아니라 처음부터 돌아서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7. 히브리서 저자는 신명기 32:35-36(cf. 시135:14)을 인용하면서 배교자가 받을 심판에 대하여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10:29하)고 하였다.
신32: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36.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시135: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8.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the judgment of the living God)은 “얼마나 무섭겠느냐”(terrifying)고 하였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움으로 섬기라.
히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 셋째 항목, 10:32-39 (인내를 요구하는 격려와 권유)의 해설.
히브리서 10:36에서 저자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원칙(논리)을 적용의 인내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청사진을 만들어 놓고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효험이 없고 또 실행을 중단하고 말면 무가치하게 된다. 따라서 “약속에는 반드시 성취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성취로 인한 즐거움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지상의 생활에서는 결코 영원한 축복의 삶을 누릴 수 없다. 육체는 반드시 영성을 회복 받아야 한다.
1. 성도들을 향하여 “담대함과 인내의 필요성을 강조함”(35-36)은 아무리 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원칙적으로 성도들은 불의한 세상에서 사탄의 나쁜 영향권 아래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10:32-34에서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실상은 모든 세대에서 성도들이 받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난과 박해는 그 형태가 다양한 것임을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약속들은 반드시 성취를 이루므로 반드시 구원의 결국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는 약속하신 것을 받는다”(10:36)고 말하였다. 이미 저자는 히6:11-12에서도 “인내를 격려하는 내용”을 언급하였다.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2. 저자는 지극히 어려운 상항 가운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과 구원을 요청하던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합2:3, 4)을 히10:37-38에서 인용한다.
히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But my righteous one will live by faith.)
합2: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가. 인용된 하박국 2:3-4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약성경 중에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에서 인용할 정도의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는 갈대아 제국(신 바벨론)의 위협과 약탈의 대상이 될 정도로 연약한 상태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최상의 강대국에게 완전히 침략을 받아 초토화 될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하여 있었다. 하박국은 의로운 하나님의 선민이 어떻게 불의하고 잔인한 외적들에게 멸망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하나님께 항의하였다.
나. 하박국이 항의한 내용은 이러하다.
합1:12.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2:2)으로 응답하여 주시고 계속하여 2:3-4의 말씀을 묵시(계시)로 내려주셨다.
합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라. 히10:38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ut my righteous one will live by faith.)는 말씀 중에서 “의”(righteousness)라는 말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는 속성과 특성 중의 하나다.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양식”(the bread of God) 또는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 등의 용어와 비교하여 보면 “의”(righteousness)라는 것에 대하여 즉시 이해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God is)와 하나님이 소유하신 것(God has)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God gives)이라는 사실이다. 롬3:25-26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But the righteous shall live by faith")라는 하박국 2:4의 말씀은 롬1:17과 갈3:11에도 인용되고 있다. 똑 같은 인용이지만 사용된 방법이 매우 다르다.
(1) 롬1:17에서는 “의”(righteousness)를 “불의”(unrighteousness)와 비교하면서 “의”를 강조한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2) 갈3:11에서는 “믿음”(faith)을 “율법의 행위”(works)와 비교하면서 강조한다.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3) 히10:38에서는 “삶”(life)이란 위대한 믿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참 생명” (true life)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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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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