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히브리서 서론)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1:1-2)
* 우리는 첫 강의시간에 메릴 테니가 “더 나음”(Better)이라는 총 주제(Theme)를 가지고 히브리서 전체의 개요를 아래와 같이 전개하였던 것을 살펴보았다. “더 나음”(Better)에는 “초월적”(Superior)이란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히브리서의 서두에서부터(히1:1-4);서론)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전체가 이러한 주제를 분명하게 지키고 기록할 것이라는 기록상의 계획을 먼저 보여준다.
I. 더 나은 전달자: 그 아들 (1:1-2:18) The Better Messenger: The Son
II. 더 나은 사도 (3:1-4:13) The Better Apostle
III. 더 나은 제사장 (4:14-7:28) The Better Priest
IV. 더 나은 언약 (8:1-9:28) The Better Covenant
V. 더 나은 제사 (10:1-31) The Better Sacrifice
VI. 더 나은 길: 믿음 (10:32-12:29) The Better Way: Faith
VII. 결론: 믿음의 실행 (13:1-25) Conclusion: The Practice of Faith
* 히브리서는 서신(Letter)으로 보기보다는 설교문(Sermon)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그 이유는 독자를 깊이 의식하고 독자와 대화를 나누고 질의응답 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의 서문, 즉 히브리서 1:1-4에서 서문의 특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문의 특성은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설교가 어떤 주제(topic or topics)를 가지고 전개한다는 제시와 안내를 한다. 계속 설교하면서 이 주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상기시키면서 청중이 주제에 몰입하게 되도록 이끌어가야 한다.
둘째, 서문의 내용과 주제가 청중의 관심을 집중하도록 끌어내어야 한다. 청중과 청중의 시대적 상항과 그들의 요구에 부합할 때에 문제해결의 해답을 얻기 위하여 관심과 주의가 한 곳으로 몰리게 된다.
*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와 지금의 상항은 다르지 않다고 하는 점에서 히브리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관심이 집중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서신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현실생활 속에서 그 특성을 상실한 채 하나님을 떠나 표류(falling away)하기 때문이다. 신앙을 멀리하거나 포기하는 상태가 급증하고 있으며 믿음의 살아있는 모습은 매우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교회와 지도자는 히브리서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을 찾아내고 실천하여야 한다. 히브리서 저자가 표제로 제시하고 있는 “더 나으신 예수님”(The Better Jesus)을 명확하게 깨닫고 알게 될 때에는 계속하여(consistently) 하나님께로 나가는 모습이 우리 중에 나타날 것이며 그러한 신앙생활은 성도 서로의 유익을 가져오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되며 발전하여 나간다. 이러한 사실을 히브리서 본문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3: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의 서문(1:1-4)에서 첫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God)이다. 그리고 동사는 “말씀하셨다”(spoke)는 단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God spoke.)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계획을 알려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God's revelation)가 임하셨다는 뜻이다. 히브리의 사고구조(Hebraic mindset)는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그 존재여부에 대하여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로 말씀을 하셨다든지 안 하셨다든지에 대한 의심의 여부가 전혀 없다.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면 계시를 받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계시하다”(revelation)의 반대말과 같이 여겨지는 단어는 "발견하다“(discover)이다. 하나님이 계시하시면 그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선민인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면서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디아스포라에 흩어져 사는 히브리인(=유대인)들도 히브리의 사고구조를 가지고 살았으나 그들의 생활환경이 헬라-로마(Greco-Roman)의 영향권 아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정치적 영향권과 헬라의 문화적(Hellenism) 영향권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 열성은 대단히 높았다. 비록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헬라파 유대인들도 구약성경(LXX)에 대한 믿음과 지식의 추구는 어느 이방민족이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 히브리서는 이러한 헬라파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삼고 저작하여 내어보낸 것이므로 저자는 히브리적 사고구조를 가지고 구약성경을 기록한 형식을 따라서 구약성경의 권위를 배경으로 삼고 히브리서를 쓰면서 서론에서 저들의 관심을 최대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God spoke.)고 하였을 때에 히브리서를 읽는 사람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받아드렸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요1:1) 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창1:1)의 장엄한 선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당신의 계획과 뜻을 자세하게 “말하면서 가르쳐주는 대화”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Spoken Word)을 “듣는”(hearing, listen) 사람은 반드시 “하신 말씀”에 대한 응답(response, obedience, applying)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분명한 요구가 있고 요구에 부응하는 신앙의 향상과 정진에 심혈을 기우리도록 권유하고 있다.
* 히브리서의 저자는 천성을 향하여가는 순례자(pilgrim)들이 역행하거나 퇴보하는 위험성을 극복하고 바로 진행하여(progress)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서신의 내용을 설교의 형태로 전개하고 있다. “뒷걸음질 하지 말자!”(부정적 권유),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긍정적 권유), “더 나은 예수님과 함께!”(분명한 목적의식). 이것이 히브리서의 중심사상이다.
* 히브리서 1:1-4을 분석하여보자.
1. 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God spoke)는 주어와 동사는 히브리서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중요한 문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된 신앙인들은 말씀에 순응하여야 할 것을 강조한다.
2. 1-2절은 히브리서와 또 서문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구절이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3. 위의 두 구절은 하나님이 어떻게, 언제, 누구에게, 말씀하셨는지 방법론을 서술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심 (하나님의 계획)
(God Spoke) (His Better Idea)
옛 계획(Old Arrangement) 새 계획(New Arrangement) 어떻게(How)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단편적) 모두 그리고 최종적으로
언제(When) 옛적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누구에게(to Whom) 우리 조상들에게 우리에게
누구를 통하여(by Whom) 선지자들을 통하여 아들을 통하여
★ 위의 도표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통하여 당신이 세워놓으신 계획을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서 진행하신 사실을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최종적인 완성과 성취(final fulfillment)를 이루게 하신 사실을 구체적으로 “더 나음”으로 나타나고 보여지게 된 것을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 1절의 헬라어는 “여러 부분(Gk. polymeros)과 여러 모양으로(Gk. polytropos)"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다. 이 두 헬라어는 히브리서에만 나오는 용어로써 특성을 지니고 있다. 히브리서는 다른 신약의 기록에서 볼 수 없는 용어가 160개 이상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놀라운 특성의 하나이며 권위와 공신력을 추가하는 사항이다.
가. ”poly"(many)와 “meros”(part)를 합치면 “많은 부분들”(many parts)이란 뜻이다. 이 단어를 “at many times”(NIV), “in many portions”(NASB), “at sundry times”(KJV, 무수한 때, 수많은 시간) 등으로 번역하여 시간의 개념이 있다.
나. ”poly"(many)와 “tropos”(way)를 합치면 “많은 방법들”(many ways)이란 뜻이다. 이 단어를 “in various ways”(NIV), “in many ways”(NASB), “in divers manners”(KJV, 다양한 방법, 여러 가지 모양) 등으로 번역하였다.
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때와 장소와 사람과 여건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reveal) 주셨다. 조금씩 부분적으로 알맞게 계시하여 주심으로써 사람들이 그 계시를 받고 발견하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데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주신 것이다. 이와 같은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는 사람이 여러 가지로 제한성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라. 계시의 방법과 모양에 있어서도 다양성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장막과 제사제도의 다양성이라든지 말씀을 비유와 시편으로, 또는 꿈과 환상으로, 또는 자연법칙과 우주의 질서로, 또는 이방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Every truth is God's truth.)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든 질서와 법칙은 하나님의 진리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부분들(parts)이 조합하여 하나의 뭉치(unit)를 형성하는 비결도 바로 이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자동차 하나가 수많은 부품으로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은 결코 상습적으로 판에 박힌 것과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행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넉넉히 알 수 있다.
욥33: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호12: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I spoke to the prophets, gave them many visions and told parables through them.)
마. 선지자들(Heb. nambi; the prophets)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309회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선지자들이란 선지서를 기록한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라 소선지서의 저자들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한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다. 아브라함(창20:7), 모세(시34:10), 아론(출7:1), 미리암(춟15:20) 등이 역시 선지자의 반열에 속한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반열에 속하고 있음을 히브리서 저자는 암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 “이 마지막 날들”(in these last days)라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모든 날들(day)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 히1:2에서 “아들을 통하여”(by His Son)라고 하였고 1:3에서 “그 아들”(the Son)이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으며” 서신 마지막까지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위격(位格, the person)에 대한 실상을 잘 정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을 바로 보고 바로 따를 수 있게 하여주고 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 하나님의 아들(God's Son)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이신지 히브리서 1:2-3에서는 명확하게 7가지 사항으로 정의하고 선포하고 있다. 우선 제시된 본문을 열거한다.
2.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상속자”(heir of all things)로 “세우심을 받으셨다”(He appointed.). 예수님이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신다(history's heir)는 뜻이다. 아버지의 유산(땅과 재산)은 한 가정의 아내, 자녀들, 하인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유산은 그 나라 전체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왕의 유산은 한 아들에게 위임(transfer)하여 주게 된다. 그러므로 “그 아들”(The Son)이라는 용어가 특출한 뜻을 지니게 된다. 히브리서 저자는 1:5에서 “왕가의 시편”(a royal psalm) 제2편을 인용하고 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히1:5; 시2:7).
이 “내 아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하였고(identified) 따라서 “내 아들”에게 모든 충성과 섬김을 다하여야 할 것을 게속 선포하였다(시2:11-12)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그 아들”의 다스림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까지”(in these last days, 1:2) 이르며 “모든 피조물”(all things)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에 순복할 것을 강조한다. 결코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the Anointed One)를 대적”(시2:2) 못한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그로 말미암아)” (through whom he made the universe.) 예수님이 “만유의 상속자”로써 모든 피조물을 소유하고 통치하실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세계(자연과 인간)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이 함께 지으신 것이다. “세계”(Gk. aiona)를 직역하면 “the ages”이며 시대(세대)와 세대의 사람들을 통틀어 쓰는 용어다. 세계를 “the universe”(NIV), “the world"(KJV, NASB)라고 영역하고 있으나 실상은 모든 자연과 인간의 생성과 유지, 성장의 역사(history)가 만드신 분의 손에 의존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나 세대의 역사는 다 ”그 아들“ 예수님에게 속하여(belong to Him) 있음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다.
요1: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골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셋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다”(The Son is the radiance of God's glory.) “영광”(glory)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할 때 사용하며 그 임재 가운데에는 “광채”(radiance)가 나타난다. 이 광채는 창조주의 광채이며 결코 피조적 물체에서 발생하는 빛이 아니다. 이 광채는 우리의 육안으로 보는 실체가 아니며 영안으로 보게 되는 특수성을 지닌다. 이 광채로 인하여 새로움과 변화의 역사가 발생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광채(영광)”을 숨기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므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식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신성을 보여주실 때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섬광”(radiance)의 빛들로 인하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여 그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변화산의 모습, 마17장). 신성을 겸비하신 예수님은 “영광의 요구”를 간구할 수 있으셨다.
출16: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출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사40: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 하셨느니라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요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넷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다.” 영어의 번역으로는 (the exact representation of his being. NIV) (the exact representation of His nature. NASB). (the express image of His person. KJV) 고 하였다. “형상”(Gk. charakter. character or nature)이라는 말도 신약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오고 있는 단어로써 예수님의 독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철이나 돌에다 어떤 형태를 조각할 때에 사용한다. 동전이나 우표 등에는 형상을 각인하여 그 모습이나 형상의 월등함과 특수성을 나타낸다. 동전에 찍힌 왕이나 대통령의 초상화가 그 사람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단어를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를 나타내고 보여주고 계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구약의 본문에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본다는 사실로 인하여 히브리서의 전체 주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본다”(We see Jesus)라는 사실로 집약됨을 알 수 있다.
★ 예화를 하나 들어본다. 로마에는 로스피그리오시(Rospigliosi)라는 유명한 궁전이 있는데 그 하늘 천정에는 “오로라”(The Aurora,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새벽의 여신 이름)라고 부르는 루네(Guido Reni) 화가의 걸작화폭이 건물 자체에 그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그림에 매료되어 한 동안 천장을 쳐다보고 난 다음에는 목이 뻣뻣해져서 모두가 고생을 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궁전의 관리인은 그림의 바로 아래 땅바닥 위에 대형 거울(mirror)을 설치하여 놓았다. 그 거울 속에는 유명한 그림 “오로라”의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으므로 그 거울을 자세히 보는 것으로 실물을 대신하여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물체에 관한 비유이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아들 예수님도 그대로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과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시다” (sustaining all things by his powerful word.). “만물”은 모든 피조세계와 피조인간을 의미한다. 창조주는 만물을 만드시고 그 만물을 계속하여 “능력의 말씀으로”(powerful word) 붙들고 유지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시다.” 골로새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고 하였다. 만물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모두 함께 굳게 서 있다.
시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사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8: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 “붙드시는”(Gk. phero. sustaining)이라는 헬라어는 현재형 능동분사다. “적극적인 현재의 활동상태”를 나타낸다. “붙드신다”는 내용에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들어올리다”(upholding), “유지하고 부양하다”(sustaining), “옮기고 운반하다”(carrying)라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쉼이나 중단이 없는 활동을 의미한다. 목적 달성을 위한 작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일이 ”몸에 배어있는 상태“(to bear)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말은 다음의 다섯 가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만물을 이렇게 붙들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가. 유지 부양을 위하여 지닌다 (to bear to sustain)
나. 안내, 지도를 위하여 지닌다 (to bear in the sense of guide or rule)
다. 끝까지 참으며 지닌다 (to bear patiently to endure)
라. 무엇이 이루어지기까지 만든다 (to create to bring into being)
마. 모든 잘못과 죄악을 지닌다 (to bear the faults and sins)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Gk. rhema, word) 붙드신다고 하였다. 여기 히브리서에서는 “말씀”을 언급하면서 “Word”(Gk. Logos)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rhema”는 히브리서에서 4회(1:3; 6:5; 11:3; 12:19) 사용되고 있다.
가. 1: 3.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나. 6: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다.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라. 12: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 그러면 히브리서 저자는 왜 “rhema”(말씀)을 사용하고 있는가? 항목 가. 다. 를 보면 창조와 관련되어 동작(the act of creation)을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서의 서두(1:1)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God spoke)는 동작과 일치하려면 동작과 상응하는 명사(rhema)를 사용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말씀(rhema)은 활동능력이므로 “그(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은 당연히 “rhema”가 된다.
여섯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he had provided purification for sins.). 세상은 불의하며 사람도 불의하여 죄(sins)로 완전히 물들어 있다. 결코 의인은 하나도 없다. 불의를 해결하여 의롭게 할 사람은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다. “정결하게 함”(Gk. katharismon, purification)이란 용어는 히브리서 내의 8:1-10:18에서 더 자세히 언급되며 설명되고 있거니와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특성의 요점을 먼저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죄가 깨끗하게 씻어지는”(for cleansing of sin) 상항을 알려준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7회(복음서 5회, 히브리서 1회, 벧전 1회) 사용되고 있으나 마태복음이나 바울서신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he had provided purification for sins.)는 것은 제사장의 일이다.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셔서 행하신 내역은 4:14-8:5에서 전개하고 있다.
일곱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아계신다”(He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Majesty in heaven.). 이 사실은 구약성경 시편 110:1을 배경으로 하는 인용이다.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 “우편”(the right hand)이라는 용어가 구약성경에서 사용될 때에는 “초월적인 능력이나 지위나 존경심”을 나타낸다.
시80: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 “여호와의 우편”(at Yahweh's right hand)에는 “충만한 기쁨”(abundance of pleasure, 시16:11)과 배움(learning, 시45:4)과 "정의“(righteousness, 시48:10)가 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45:4.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시48: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 특별히 시편 110편은 “왕가의 시편”(a royal psalm)으로 시편 2편과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시가서의 일부다. “여화와의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the Lord)은 능력이 한이 없으시며 어떤 원수라도 다 굴복시키신다. 이 시편들이 신약성경에서 인용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지심(exaltation)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높은 지위를 달라고 예수님께 호소한 것이었다(막10:37). 그런데 무소부재하시고 편만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것은 제한이 없는 “모든 장소”(everywhere)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피조적인 온 우주(the universe)와 창조의 세계를 지배하시는 분이시다.
* 예수님의 초월성(Superiority)과 더 나음(Betterness)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2-3).
1. 예수님은 만유의 상속자이시다 (He is the Heir).
2. 예수님은 모든 세계의 창조자이시다 (He is the Creator).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빛이시다 (He is the Glory and the Light).
4.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자이시다 (He is the Revealer).
5. 예수님은 만물을 붙드시는 자이시다 (He is the Sustainer).
6. 예수님은 만인의 구속자이시다 (He is the Redeemer).
7. 예수님은 우주의 지배자이시다 (He is the Ru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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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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