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큰 구원의 창시자 예수님 (히2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다만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시 낮아지신 분, 곧 죽음의 고난을 통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바라봅니다. 이는 그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시려 하심입니다./ 모든 것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보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그들의 구원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완전케 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히2:9-10)
* 히브리서 제2장은 제1장에서 예수님은 “더 나으시고(better)” “초월적”(Superior)이시란 주제(Theme)를 설명하는 중에 제1장에서는 “신적 차원에서” “하나님”(God)이신 모습으로써 초월성을 설명하였고 제2장에서는 “인간적 차원에서” “사람”(Man)의 모습으로도 놀라운 “우월성”(betterness)과 “초월성”(superiority)을 나타내고 있음으로 천사들이 할 수 없는 사역(ministry)을 하시기 때문에 놀라운 비교가 되는 상항을 전개하고 있다.
* 성경학자 박스터(Baxter)는 그의 저서 “성경의 탐구”(Baxter's Explore the Book)의 히브리서 요약에서 총주제를 “새롭고 산길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New and Living Way)로 명명하고 제1부(1-7장)을 “그리스도, 새롭고 더 나은 구원자”(Jesus The New and Better Deliverer)로 하여 아래와 같이 분석하였다.
참된 신과 인간인 예수님 - 천사들보다 더 나으심 (Heb 1:1-2:18).
새로운 사도이신 예수님 - 모세보다 더 나으심 (Heb 3:1-19)
새로운 지도자이신 예수님 - 여호수아보다 더 나으심 (Heb 4:1-13).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 아론보다 더 나으심 (Heb 4:14-7).
* “새롭고 산길”(a new and living way)이라는 놀라운 용어는 히브리서 10:20에 나온다.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a new and living way opened for us)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 우리들은 성소의 휘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성소를 지나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고 또 그러한 자격을 지니고 있어서 천국백성의 신분을 향유한다.
* 히브리서 제2장에 들어서면 1-4절에 걸쳐 히브리서 특유의 “경고와 권유”의 첫 번째 설교 말씀을 듣게 된다. 그리고 계속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몸으로 오신 목적과 이유를 2:5-18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를 기록하고 있는 유형의 특성은 서신 전반에 걸쳐서 “해설”과 “경고”가 연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에서는 신앙인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경고 또는 권유”를 하고 있는데 그 전후에는 반드시 “경고”가 있게 된 사연의 해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고”의 내용을 가지고서는 “설교문”이라고 하겠으나 “해설”의 내용을 보게 되면 히브리서의 독특한 신학이 정립된다. “해설”과 “경고”를 나타낸 장절은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다.
해설, 강화 권면, 경고 (다섯 가지)
히1장 히2:1-4 (아들이 말씀한 바를 듣고 유의하라)
히2:5-3:6 히3:7-4:13 (안식에 이르지 못할까 주의하라)
히4:14-5:10 히5:11-6:12 (배교하지 말라)
히6:13-10:18 히10:19-39 (짐짓 죄를 짓지 말라)
히11장 히12:14-29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지 말라)
* 히브리서 제1장과 제2장의 제목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의 내역은 이러하다.
A. 하나님은 그의 최종적인 말씀을 아들을 통하여 하셨다(1:1-4).
B. 아들의 초월적인 존귀함(1:5-14)
C. 제1차 경고: 아들을 통하여 전해진 말씀을 무시하는 위험(2:1-4)
D. 아들의 낮아짐과 영광(2:5-9)
E. 아들이 인간들과 하나가 됨(2:10-18)
* 그런데 히브리서 2:5-18(D, E)의 설명에서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신 목적”을 이해하고나면 히브리서 2:1-4(C)의 “경고와 권유”를 잘 받아드려야 하겠다는 긍정적 신앙의 각오와 결심이 생기게 된다. 히브리서 2:5-18의 내용 중에서 핵심구절은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라는 말씀이다.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예수님”이라는 표현은 성경말씀의 전후관계에서 볼 때 혼란을 가져온다. 또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대로 계속 읽을 수 없게 된다.
* 히브리서 1:4에서는 “그(=예수님)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Being made so much better than the angels. KJV)라고 하였는데 2:9에서는 예수님을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Jesus, who was made a little (while) lower than the angels. KJV)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성경기록의 일관성 결여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언제는 천사들보다 뛰어나시고(better than angels) 또 언제는 그들보다 못하시다”(lower than the angels)라는 말인가? 그러나 여기에서 “잠시 동안”(a little while)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규명될 때에는 이해의 장이 열리게 된다.
*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으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Son of God)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Son of Man)으로 피조세계에 오셨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성취하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깊고 오묘한 표현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장 서두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God spoke)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과 뜻을 계시하신 방법론에서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하셨으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하게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고 하셨으므로 그 내용을 신구약을 통하여 추적하여야 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차원에서 구약과 신약의 기록에서 “예수님 안에서의 성취조명”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창조의 원리에서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모든 땅을 다스리는 권한(rule over)을 받았다는 사실은 천사보다 더 귀한 존재였음을 증명한다.
1. 창세기 1:26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 이러한 “다스림의 권한”(rule over)을 사람이 향유하였다는 사실을 창세기 1:28에서는 재차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권한을 천사들에게는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3. 사람이 가진 이러한 “권한”(authority)과 “다스림”(rule over)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고 행동하면 사람의 권한과 다스림은 천사들을 능가하는 놀라운 위력을 나타내도록 되어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순종함” (obedience to God)은 불변의 원리이며 법칙이다. “순종”을 포기하면 “다스림의 권한”도 포기하는 것이다.
4.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무시(ignore)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무시(ignore)하여 추락한 존재인 사탄”에게 동조하고 사탄의 말에 순종함으로써 자기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그 권한을 사탄에게 이양해주고 말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반역(불순종)의 종(노예)” 또는 “죄의 종”이 되어 “다스림의 권한”을 상실한 것이다. 본래 사탄은 천사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자기의 지위를 떠나서 하나님께 반역한 죄(sin)를 범하였다. 사탄의 죄에 물든 사람은 “완전한 순종”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반역과 저항”의 밑바탕 위에서 사는 존재가 되었다.
5.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하나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사탄(악한 죄의 영)에게 패배(defeated) 당할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사람(=Adam)은 사람 본연의 자세와 임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여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처음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바뀌거나(change) 더하거나(add) 빼거나(subtract) 할 수 없고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6. 첫 사람 아담은 변하여(changed) 죄가 더하여지고(added) 다스림의 권한을 상실한(subtracted) 죄인(sinner, unrighteous man)이 된 것은 “순종”(obedience)의 결여(lack) 가 원인이었다. 이제 완전한 순종(perfect obedience)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잘못된 기본 바탕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7. 이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둘째 사람(a second man),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으로 하여금 “완전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하려고 하신다. 그 사람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히브리서 2:5의 말씀과 시편 8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천사들에게 복종한다든지 천사들에게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주지 않으시고 사람에게 주셨음을 확인한다.
히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우리말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다스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위의 시편 8편의 말씀은 다윗이 예언한 말씀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람 되신 예수님의 회복사역을 증언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구약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구약인용의 방법론이 다른 신약 책들의 저자들과 무척 다르다. 일반적으로 신약의 기록들을 방증하는 입장에서 구약을 인용하고 있으나 히브리서는 구약의 인용이라기보다는 구약 자체를 그대로 선포하고 있으며 그 선포한 내용을 가지고 해설(강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이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첫 사람 아담이 상실한 권위(authority)와 지배(rule over)를 마지막 아담이 그대로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실한 모든 것이 이미 회복된 상태를 말한 것이다.
* 히브리서 2:7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다스림의 권한을 회복하셨는가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You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you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NIV)라고 했다.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이란 무엇인가? 또 이러한 사실이 어떻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신”(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것이 될 수 있는가?
* 히브리서 2:9에서는 2:7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설(강해)하고 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 예수님께서 “잠시 동안”(a little while, NASB)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lower than the angels) 이유는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함이다. 여기 본문에서는 첫째, 죽음의 고난으로 말미암아(때문에) (because He suffered death), 둘째,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기 위하여 (He might test death for everyman) 라는 사실로 표현하고 있다.
2. “잠시 동안”(a little while)이란 시간적인 개념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 루터는 이 “잠시 동안”이라는 시간을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죽음에 매여 있었던 때라고 하였다.
3. “못하게 하신”(lower than the angels)이란 말은 “죽음의 고난” 또는 “죽음을 맛보다”(test death for everyman)라는 말과 직결됨으로써 천사의 영원성에 비교하여 그 영원함을 상실하게 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the wages of sin is death. 롬6:23)이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예수님)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고 하셨으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심”은 천사들도 할 수 없는 일을 “완전하신 순종으로” 행하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영광과 존귀를 회복”하게 하시는 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4. 사도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빌립보서 2:5-11에서 예수님의 “완전하신 순종”이 고귀한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5. 히브리서 2:7-9의 말씀은 시편 8편과 시편 110편의 말씀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이 성취되어 사람에게 본래 주신 “영광과 존귀,” “권위와 다스림”을 회복하였다는 예언의 성취를 나타내고 있다. 이 시편들을 인용하는 중에 “잠간,” “못하게” 라는 말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사역을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는 히브리서 2:3에서 “이같이 큰 구원”이라고 설명(강해)한다.
* 그러므로 히브리서 2:10에서는 예수님을 구원의 창시자이심을 공포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이 온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많은 아들들이 영광에 들어감”을 받았다는 귀한 사실도 알려준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 예수님께서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서 1:3에서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의 “더 나음”과 “초월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과 하나(identified)를 이룰 때에 “영광”과 “권위”는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의 완성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에 이루어진다.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요2: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3. 이제 예수님께서 천사들보다 “더 나으시고” “초월적”이라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인 천사들보다 우월적이심을 제1장에서 선포하였으나 여기 제2장에서는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 되셔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심으로 천사들이 할 수 없고 심지어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탄일지라도 예수님의 “순종하신 모습”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서 이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 이제 히브리서 2:1-4에서 첫 번째 경고와 권유의 말씀인 “아들이 말씀한 바를 듣고 유의하라”을 들어보자.
1.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절)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 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절)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2. “흘러 떠내려가다”(drift away)(1절): 우리들 각자는 자기의 영혼의 배가 천국의 항구(in heavenly harbor)에서 “흘러 떠내려감”(drift away)을 반드시(must) 막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선원들의 용어로써 배를 부두(harbor)에 넣을 때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 당시의 배는 고기가 후진을 못하듯이 뒤로 갈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하여야 하였다. 만일 배를 빨리 몰면 부두에 부딪혀 깨어질 것이고 만일 배를 천천히 몰면 바람과 물살에 휩쓸려 떠나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목표지점에 바로 대지 못한다는 것은 모든 계획과 진행이 결과적으로 파멸된다는 뜻이다. 먹을 것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여 배탈이 나기도 하고 심하면 음식이 목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또 음식이 식도로 들어가지 않고 기도(氣道)로 들어가면 몸속에서 썩어 죽게 된다.
3. “유념함으로”(pay more careful attention)(1절): 신앙생활에서 유념하여야 할 것은 “들은 말씀”을 “잘 듣고 잘 적용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드려야 하며, 둘째는 받은 말씀이 무엇인지 바로 해석하여야 하며, 셋째는 받아드리고 바로 해석한 말씀을 잘 적용하고 실천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4. “들은 것”(1절)이란 “큰 구원의 말씀”(3절)인데 이 말씀은 “처음에 주로 하신 바”(first announced by the Lord, 3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자체”(the Word Himself, Medium, 매체)이시며 또한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 Message, 메시지)도 아울러 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가. 히브리서 2:3에서 “주로 말씀하신 바”(by the Lord)라는 용어에서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 되시며 예수님의 말씀(가르침)이 또한 말씀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preach)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preached among you)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preach)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preach)이라
요 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the words of eternal life)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preached peace)
나. 히브리서 2:3에서 “이 구원은 . . .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This salvation, which . . . was confirmed to us by those who heard him.)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사도들)은 ”직접 들은 자들“이며 그들이 또한 히브리서 저자를 비롯하여 모든 신앙인 형제자매들은 ”우리“(us)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전하여지며(preach) 들려지는 상항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서라도 예수님과 복음의 말씀이 전파(preach)되고 전하여야 한다.
다. 히브리서 2:4에서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으로 . . .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God also testified to it by signs, wonders and various miracles,)고 하였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witness) 전파하는 데에는(preach) 하나님께서 친히 표적돠 기사와 능력으로 증언하시고 계심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라. 히브리서2:4에서 계속하여 “하나님도 . . .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God also testified to it by . . . and gifts of the Holy Spirit distributed according to his will.)이라고 하였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자와 전하여지는 곳에는 하나님과 성령님이 증언하심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의 역사가 증거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복음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5. 히브리서 2:3에서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How shall we escape if we ignore such a great salvation?)라고 하였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면 피할 데가 없다고 의문사 직설법으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라고 하면서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는 또 빌립보서3:8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든 것을 다 해로 여길 뿐 아니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고백까지 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보다 그리스도를 더욱 귀히 여긴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귀히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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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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