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권위의 사역을 능가치 못할 박해 (마11-12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의 영적 권위를 주시고 아울러 제자들이 사역에 임할 때에 지녀야 할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어떠한 상항에 처한다고 하여도 부름 받은 사명자의 사역은 하늘의 놀라운 권위를 “받았으므로 주어야하는 삶”이라는 원칙 아래에서 일관성 있는 “받고 주는 사역”(Receiving-Giving Ministry)에 전념할 것을 분부하여 주셨다. 이렇게 마태는 예수님의 두 번째 강화의 기록을 마치고 다시 가르침의 실천을 위한 사역에 임하신 내용을 11장-12장에서 나열하고 있다.
* 마11장-12장에서는 메시야의 권위는 모든 박해를 능가하여 초월된 능력으로 부정적인 힘이 만연되고 있는 환경 안에서 천국백성을 찾아내고 구원하는 긍정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긍적적인 힘”이라는 표현을 “인간이 가진 어떤 가능성”으로 오해하여서는 안 되며, “영적 전쟁”에서 “부정”(어두움, 죽음, 육성, 사탄의 세력)을 “긍정”(빛, 생명, 영성, 예수님의 권능)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의 능력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인간과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문과 의심, 도전과 박해 등을 “강압적인 힘”으로가 아니라 “포용적인 힘”으로 능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 마태 11장-12장에서 전개되는 저항과 배척에 관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세례요한의 바른 이해와 하나님 나라의 요소 (11:1-19)
2. 저항하는 도시를 향한 고발과 반항세력을 향한 초청 (11:20-30)
가. 갈릴리의 도시들에 대한 고발 (11:20-24)
나.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초청 (11:25-30)
3. 의견 대립과 이에 따른 표적들 (12:1-30)
가. 안식일에 관한 의견 대립 (12:1-13)
나. 손 마른 자의 치료에 대하여 (12:9-13)
다. 메시야를 죽이려는 모의를 대처하는 지혜 (12:14-21)
라. 표적들에 대한 의견 대립 (12:22-30)
* 마11장-12장에서는 메시야의 권위는 모든 박해를 능가하여 초월된 능력으로 부정적인 힘이 만연되고 있는 환경 안에서 천국백성을 찾아내고 구원하는 긍정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긍적적인 힘”이라는 표현을 “인간이 가진 어떤 가능성”으로 오해하여서는 안 되며, “영적 전쟁”에서 “부정”(어두움, 죽음, 육성, 사탄의 세력)을 “긍정”(빛, 생명, 영성, 예수님의 권능)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의 능력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인간과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문과 의심, 도전과 박해 등을 “강압적인 힘”으로가 아니라 “포용적인 힘”으로 능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 마태 11:1-19: 세례요한의 바른 이해와 하나님 나라의 요소
1.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두고 다음과 같이 칭찬하셨다.
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A prophet? Yes, I tell you, and more than a prophet.)(마11:9).
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there has not risen any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마11:11).
다.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he is the Elijah who was to come.) (11:14).
2. 여기에서 세례요한이 “큰 이”(전무후무의 위대한 인물)로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이유는 무엇인가를 정리하여야 한다.
가. 세례요한은 신약을 여는 새로운 계시를 받고 구약의 틀에 매여 있지 않은 영적 부모(사가랴와 엘리사벳)를 모신 아들이었다(눅1장을 참고할 것).
a. 천사의 지시를 받고 그대로 지킴.
b. 요한의 이름을 제사장 가정의 이름으로 짓지 않음.
c. 엘리사벳과 마리아와의 성령님의 교제와 배 안의 아기들의 영적 교제.
d. 요한이 성장하기까지 회당교육이 아닌 “빈들”(광야)에서 자라게 함.
나. 세례요한은 자기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의식한 선지자임.
a.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마3:3; 막1:3; 눅3:4; 요1:23)
b.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눅3:16)
c.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요1:6)
d.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요1:8)
e.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공공연히 말한 사람(요1:20)
f. 하나님의 아들을 증언하는 사람(요1:34)
g. 신랑의 친구(요3:29)
h. 쇠하여야 할 사람(요 3:30)
i. 땅에서 난 이(요3:31)
j. 아들을 믿는 자(요3:36)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비교를 보려면 요3:22-36을 자세히 읽을 것-)
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신분을 분명히 의식한 선지자임.
a. 마3:11-12.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3:8-10.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이러한 심판은 오실 메시야가 반드시 이루실(성취하심) 것을 세례요한은 믿었다).
b. 막1:7-8.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눅3:16).
c. 요1: 15.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cf. 요1:30).
d.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cf. 요1:36).
e. 요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f. 요3:28-36에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 “그는 흥하여야겠고,” “위로부터 오시는 이,”(from above -> “거듭 태어남”이란 본래 “위로부터 태어남”을 뜻한다. 위로부터 태어난 자 즉 거듭 태어난 자는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 태어나려면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이,” “하나님이 성령님을 한량 없이 주신 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아들,”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신 이” 등으로 요한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 위의 기록에서 본 것과 같은 배경을 가지고 본문 마태복음 11:1-19을 이해하여야 바른 이해와 깨달음이 있게 된다.
가. 예수님이 칭찬하여주신 세례요한은 옥중에 갇혀 있었을 지라도 그 마음이 연약하여진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담대하게 불의를 규탄하고 살았던 세례요한에게는 자기의 사고구조에 맞는 메시야의 모습을 그때까지 못 보았다. 그리하여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아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11:3) 하며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나. 메시야의 사명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인간구원을 위한 희생양이다.
둘째, 세상 죄와 불의를 태우고 심판하시는 왕의 왕(King of kings), 주의 주(Lord of lords)의 모습이다.
다. 초림의 주님이신 메시야 예수님은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것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이신 메시야 예수님은 나팔소리와 함께 군림하시며 호령하시고 심판하시는 주님이시다.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활동이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심판의 형태로 나타날 것을 예언한바 있다.
라. 실제로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두 모습을 다 보기를 원하였으나 후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전자의 모습을 확인하여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메시야상이 당신의 삶을 통해서 잘 드러나지 않느냐고 웅변하는 듯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은 메시야를 통해서 못 보는 사람, 못 걷는 사람, 나병환자, 죽은 자, 못 듣는 자, 가난한 자들에게 가장 먼저 구원과 치유가 일어나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사 35: 5∼6, 61: 1∼2).
마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사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4.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개역개정)라는 가르침에 대하여 살펴보자.
- 침노를 당하다(biazetai: is forcibly treated); 침노하는 자(biastai:forceful men).
(참고 1: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다' (biajetai). 한글 개역성경의 '침노를 당하고 있다‘는 현재 '수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로 번역한 것이다. 세례 요한이 메시아 나라를 선포한 이래로 천국은 여러 세력의 반대를 겪고 있다. 한 예로 선구자인 요한이 투옥되어 있다. 그런데 “침노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biajo (강요하다, 나아가다)의 ’중간태‘ 직설법으로 본다면 “천국은 힘있게 나아가느니라”로 번역이 가능하다 (리델보스, 1991:338). 우리가 천국을 여기서 누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천국 확장이라는 대세를 거스릴 수 없다는 점이다. )
(참고 2: 헬라어의 biazetai는 침략, 폭력, 공격이라는 말이지만 헬라의 철학에서는 이 단어를 외면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내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수님도 다른 곳에서 언어적으로 적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셨다. 예를 들어 바알세불 이야기에서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결박하고야 그 집을 늑탈 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본문의 원문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전후 맥락과 배경적으로는 긍적적인 말씀으로 보게 된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치 삭개오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표준새번역.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또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또는 침략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공동번역성서.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현대인의성경.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현대어 성경. 세례요한이 설교하고 세례를 주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공격 받아 왔고 공격하는 자들이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였다.
우리말 성경.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략당하고 있으니 침략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NIV.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KJV.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NASB.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s violence, and violent men take it by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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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개역개정): (biazetai: is forcing, is pressing)
NIV. The Law and the Prophets were proclaimed until John. Since that time,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is being preached, and everyone is forcing his way into it.
KJV. The law and the prophets [were] until John: since that time the kingdom of God is preached, and every man presseth into it.
NASB. The Law and the Prophets [were proclaimed] until John; since then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is preached, and everyone is forcing his way into it.
* 마태 11:20-30: 저항하는 도시를 향한 고발과 반항세력을 향한 초청
가. 갈릴리의 도시들에 대한 고발 (11:20-24): 갈릴리의 성들은 특별한 특권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큰 빛이 비추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빛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명확한 이적과 기사와 함께 전해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도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이 미래에 받을 심판의 엄중함은 복음과 예수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복음과 예수님이 그토록 귀한 만큼 그것을 거부하거나 무시한 성들이 받을 심판은 매우 큰 것이다. 명확한 증거가 주어져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온 세상 만물에 주님의 솜씨가 드러나건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나.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초청 (11:25-30):
a. 어려운 여건과 박해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예수님의 권위는 그 모든 부정적인 여건들을 사랑의 포용으로 덮어주시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권위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요구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초청은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의 초청이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안식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렘31:1-3). 그런데 바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참된 안식을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렘3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b.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 속에는 놀라운 권위와 능력이 내포되어 있음을 살펴보자.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 “짐 진 자”(28절)와 “내 짐”(30절)의 구절에서 율법의 613가지나 되는 계율의 “짐을 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가벼운 내 짐”을 지우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예수님의 짐은 율법의 짐보다 가벼운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교의 613가지 계율(금령365, 명령248)을 황금률(마7:12)과 사랑의 이중계명(22:36-40)으로 환원시키셨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부여.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29). 마태는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을 권위의 능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별히 “온유”는 내재적인 폭발력을 가진 큰 힘(dynamite)이라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 바람과 돛단배, 야생마의 길들이기)
(3) “내 멍에는 쉽다”(30). “멍에”란 두 마리의 황소를 서로 묶고, 또 그 황소들을 그것들이 끄는 짐에 묶어놓은 무거운 나무토막이다. 또 지나치게 많은 짐을 지우거나 멍에를 너무 심하게 메어서 아픈 상처가 생긴 짐승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암시한다. 멍에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복종의 강요를 암시한다. 율법학자들과 랍비들은 “토라(Torah)의 멍에"를 기쁘게 지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날로 더욱 복잡해지고 잡다해진 토라의 요구는 견딜 수 없는 짐이 되고야 말았다.
* 마태 12:1-30: 의견 대립과 이에 따른 표적들
가. 안식일에 관한 의견 대립 (12:1-13):
나. 손 마른 자의 치료에 대하여 (12:9-21):
a.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자신이 베푼 사실을 소문 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구약의 예언(사42:1~4)을 이루려 하신 것이다.
b. 예수님은 시끄럽게 언성을 높이지 아니하시고 조용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셨다.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에 대한 모독과 율법만을 고집하면서 악을 행치 아니하셨다.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모든 만민들에게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진정한 창조주로써 사랑을 행하셨다.
다. 예수님과 바알세불 (12:22-37):
a.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신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하였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설명하시고 “성령님을 훼방하거나 거역하는 자는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바알세불이란 원어는 “하늘에 거하는 주인”이란 뜻이며 사단의 다른 이름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단의 힘을 의지하여 마술과 묘기를 부렸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치유를 천하게 취급하면서 바알세불과 연결시킨 것이다.
b. 사단은 이 시대에 왕국을 가진 왕으로 사람들의 몸에도 거처하고 있다. 그런데 사단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지신과 자기의 거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능력은 사단의 활동이 아니다. 예수님의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단의 왕국에 들어와서 사단의 힘을 파괴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다.
c. 성령님의 능력과 사단의 힘을 결코 조화를 이루거나 타협할 수 없다. 성령님을 거역하면 예수님을 괴롭힌 것이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님을 거역하면 시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가르침이다. 또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작은 이야기)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라. 요나의 표적 (12:38-45):
a.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참 메시야이시며 부활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주신 것이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요구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요구였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다음과 같았다.
b. 첫째,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위하여 부름 받은 요나 선지자의 사건이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고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부활의 표적을 제시하여 주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이것을 믿지 않았다. 요나는 실제로 죽지 않고 살아났으나 예수님은 죽어서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사셨다. 요나는 사랑도 없이 니느웨의 심판을 경고하였으나 예수님은 사랑과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 요나의 기적도 큰데 하물며 예수님의 부활은 얼마나 크고 엄청나겠는가?
c. 둘째, 이방인 스바의 여왕이 유대인인 솔로몬의 지혜를 보기 위하여 방문하였던 사건이다. 스바의 여왕 못지않게 우리 성도들은 솔로몬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축복을 누리게 되므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d. 셋째,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떠나간 사람의 마음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귀신이 나간 사람은 변화된 새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그 마음이 비어있으므로 더 많은 귀신이 다시 들어와서 더 나빠질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깨끗하다고 자처하여도 그 텅 빈 마음 속에 요나의 전도보다 더 귀한 영생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능력 있는 지혜와 생명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기적 중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아드리는 일이다.
마. 하나님의 가족 (마12:46-50):
a.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내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어떤 사람이 “보십시오.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으신 후에 주신 말씀이다.
b. 이 세상의 가족관계는 가장 가깝고 친밀하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 또는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말한다. 그러난 하나님의 가족관계는 혈육의 관계보다 더 가깝고 더 중요하고 언제나 먼저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혈육관계나 가족의 중요성을 결코 도외시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자신이 어머니의 말씀을 공경하시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셨고 십자가상에서도 제자에게 어머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와의 영적관계에 있어서는 이 세상의 육적관계보다 그 중요성을 앞에 두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세상의 가족은 폐쇄된 울타리이다. 그러난 하나님의 가족은 공개된 울타리이다. 하나님의 가족은 누구든지 그의 형편과 처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 폐쇄된 이 세상의 가족관계는 여러 모양으로 파괴되고 있으나 공개된 하나님의 가족은 생명의 말씀과 사랑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건설되고 있다.
c.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신앙가족은 참된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이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서 기록되었다.
(1) 모세 유형론(Moses Typology)
-모세의 권위 밑에서 살아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모세에 견주어 예수 그리스도 소개하고자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더 큰 이임을 설교한다.
(2) 유대 적인 특징
-빈번한 구약 성서의 인용-100회 가량-"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 "이에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졌느니라."
(3) 이방 지향적 경향
-마태 족보에 언급된 네 명의 이방 여인들- 1) 다발 2) 라합 3) 룻 4) 밧세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19:30, 20:16).
(4) 윤리적 행동에 대한 강조 (하나님의 의로 위선과 불의를 물리치는 삶)
-선한 행동에 따르는 보상을 말한다. 7:19, 5:16, 13:47-50, 10:42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신앙고백하면서 생활로 아무런 믿음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당시의 이름뿐인 기독교인들, 형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에 부합되는 선한 행실 선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5) 교회적인 관점
-"교회"라는 단어가 세 번(16:18, 18:17) 사용되었으며, 선교적이며 교육적인 훈련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본문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28:19-20, 마16:13이하) 예배 시에 사용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예, 마6:9-13 비교: 눅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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