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5일 금요일

11. 메시아 사역의 성취방법 (마16-17장)

  11. 메시아 사역의 성취방법 (16-17)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3).
 
* 마태복음 14-17장은 저자 마태가 네 번째로 묶어놓은 이야기 부분이다. 14-15장에서 배불리 먹고도 남게 하는 메시야의 사역을 통하여 제자들이나 수많은 무리들은 만족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실증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이 영속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에클레시아=불러냄을 받은 자)의 지체의 자격을 받을 때에 성취된다. 모든 지체는 오직 믿음으로 결속되며 아울러 오직 믿음으로만 만족의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마16장에는 교회설립의 헌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요한 신앙적 기초로써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존재가 분명하게 한 지체(베드로)의 입으로 고백되고 있다. 신앙고백이 참되고 현실적이고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신앙인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마17장에 나오고 있다.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영광의 예수님 모습이시다. 그 영광의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 영광의 예수님이 천국을 건설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그 고난의 길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심을 예수님은 공공연하게 선포하신다. 천국건설에 필요한 것은 고난이라는 사실 앞에 예수님이나 모든 제자들은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의무가 주어진다. 그 고난 가운데에는 만족행복이 존재한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부활과 영생을 믿음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 네 번째 이야기 묶음의 둘째 부분인 마태복음 16-17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한 경고(16:1-12)
. “표적을 보여 주소서”(16:1-4)
.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16:5-12)
2. 베드로의 신앙고백(16:13-28)
3. 변화의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17:1-13)
4. 간질병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17:14-21)
5. 받으실 고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17:22-23)
6. 지불해야 할 성전세금(17:24-27)
 
* 마태16:1-12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한 경고 - “표적을 보여 주소서”(1-4)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없애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을 하였다. 본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성격이 전혀 달라서 의견을 하나로 뭉칠 수 없는 별개의 집단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주의자요 종교적 집단이었으므로 천사의 존재나 육체의 부활을 믿었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렸다. 한편 사두개인들은 자유주의자이며 정치적 집단이었으므로 종교적인 일에는 회의적이며 관심을 같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반대하고 배척하여 왔으나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에는 처음으로 극적인 합의를 보게 된 것이었다. 일찍이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함께 야합하여 안식일에 관한 문제를 들고 나와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 한 일이(3:6) 있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당시의 모든 집단과 지도자들에게 더욱 배척을 받게 되는 환경에 처하게 되셨다.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순수한 동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적(기적적인 사건)”을 보여주지 못하면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의 무능함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이란 구약시대에 발생하였던 기적적인 일들과 비교하면서 하는 말이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든지, 불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든지, 열 가지 재앙이라든지, 태양이 머물러 서서 진행하지 않는다든지, 달이 핏빛으로 변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의미한다. “표적”(sign)을 보여 달라는 것은 기적(miracle)과 큰 능력(mighty power)을 나타내 보이라는 요구다. 큰 표적은 보여주는 사람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게 하려는 처사였다. 반대자들은 옛 시대에 속한 옛일을 다시 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3.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표적들”(signs)과 더불어 생명회복의 사역을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행하셨다. 표적(signs)과 이적(wonders)과 기사(miracles)를 보여주셨다. 환자를 고치시고, 맹인의 눈을 열어주시고, 못 걷는 자를 걷게 하여 주시고, 말 못하는 이를 말하게 하여주시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여주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어주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고, 52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4. 표적이나 이적을 가지고 죄인을 회개시킬 수 없고 구원과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없다(16:27-31; 12:10-11; 14:8-15). 예수님의 기적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으나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호기심이나 적대심을 줄 뿐이다.
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2: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4: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5.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정직하지 못한 마음과 완고한 태도를 꾸중하시며 일반예화를 들려주셨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16:2-3).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a sign from heaven)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날씨의 분별력을 예로 들면서 하늘의 표적들“(the signs of the sky)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아울러 시대의 표적“(the signs of the times)에 대하여 분별력이 없는 그들의 형편을 꾸중하셨다. “시대의 표적"이란 마지막 때에 될 일들"이다. “메시아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때"를 의미한다. 메시아(=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그들은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the sign of Jonah)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여주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시니라”(16:4).
 
6. ”요나의 표적“(the sign of Jonah)은 이미 12:38-42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여주셨다.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마태16:1-12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한 경고-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5-12)
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면서 배 안에 떡이 한 개 밖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먹을 것 준비에 소홀하였던 것을 뉘우치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어떻게 할가서로 걱정하며 의논하였다. 이때 예수님은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음식준비에 관하여 언급하시는 줄로 오해하였다. 누룩에 대한 언급은 빵에 대한 언급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2. 예수님은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하여주신 주님의 능력을 상기시키면서 먹을 것에 대한 염려와 의논을 중단시키고 영적 관심을 갖도록 하여주셨다. 성경의 가르침에서 누룩이란 나쁜 행위를 상징한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나쁜 영향은 누룩과 같이 퍼져 있으므로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하여서는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다.
 
3. 바리새인들은 율법이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무척 노력을 많이 하였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행동을 절제하는 데에만 그쳤고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데 까지는 도달하지 못 하였다. 겉모양과 행동에서 흠과 결점이 없도록 하면서 사람이 규정한 규칙은 잘 지켰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들의 종교적 의식이나 형식이 결코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예수님은 경계하셨다. 한편 사두개인들은 부요하여 귀족적 부류의 사람들이었으며 정치에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치적 개혁과 안정을 통하여 물질적 번영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이들의 정치적 위세와 물질적 부요를 누리는 일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예수님은 경계하신 것이다.
 
4. 제자들이 먹을 것에 너무 관심을 쏟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의논하느냐”(16:8)고 꾸중하셨다. 믿음이 적은 자들의 관심은 언제나 형식적이며 물질적이며 먹고 마시는 일에 빠져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6:1).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 마태16:13-28: 베드로의 신앙고백 (참고. 8:27-30; 9:18-21)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다. 이 질문을 하신 목적은 올바른 구원의 토대를 세워주시려는 데에 있었다. 이미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가르쳐주셨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라는 조직체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주려고 하셨다.
 
2.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질의응답의 장을 여셨다. 이 지방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첫째, 바알이라는 이방 세력을 상징하는 신을 섬기는 곳이었다. 둘째, 헬라 문화를 자랑하는 그리스의 신당들이 그곳에 세워졌었다. 셋째, 헤롯 대왕이 정치권력의 최고를 상징하는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 Caesar)를 찬양하는 신전을 세워놓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종교적 건물들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고 유물의 잔재만 널려져 있는 곳이었다.
 
3.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16)라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자와 예수님 사이에서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교회가 세위진다. 교회는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심으로써 세워진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키시면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고 말씀하셨다.
 
4.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나서 예수님은 네가 복이 있도다하시며 축복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해설하여 주셨다. 이러한 해설 뒤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누가복음 9:18을 보면 이러한 기록이 나온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전에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눈과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고백하는 바른 신앙인 되게 하여주실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깃이다. 그리고나서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신앙의 질의응답을 하신 것이다.
 
5. “교회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불러내신다는 내용이다. 한 사람이 교회로써 세워질 수 있는 근거는 바른 신앙고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예수님께서 공공연하게 너는 나를 누구인줄 아느냐?”고 물으실 때 공공연하게 자기의 마음과 입으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는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내가 진심으로 받아드리고 실천하겠다는 자기 자신의 신앙적 고백을 의미한다.
 
6.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과 의지로 예수님을 믿었다가도 싫다는 생각과 마음이 들면 예수님을 버리고 믿지 않는다. 자기가 믿으면 끓는 물 같이 뜨겁게 믿다가도 믿을 수 없으면 얼음물 같이 냉랭하여 진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는지 알 수 없다. 믿음은 예수님과의 관계 설정이다. 믿음이라는 줄(도구)로 예수님과 내가 서로 묶여지는 관계다. 바른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영속적이며 예수님 중심의 생활이 전개되는 것이며 거기에는 부정적인 변화(change, 바뀜)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긍정적인 변화로써의 성화(sanctifying)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배우고 행하게 되는 것이다.
 
7.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말을 들으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16:18)고 말씀하여 주셨다. “You are Peter(Gk. petros) and on this rock(Gk. petra) I will build my church." "Petros"는 남성명사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돌맹이, 조약돌을 의미한다. ”강함과 단단함“(strength)이 그에게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Petra"는 여성명사로 운반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 암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반석(petra) 위에라는 말에서 반석”(petra)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교회는 예수님 위에세워진다.
 
8. “너는 베드로라고 하여주신 말씀은 베드로의 단단한 신앙고백을 칭찬하시면서 그 확실한 신앙고백을 확인하여주신 것이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처음 시몬을 만났을 때 별명으로 지어준 이름이며 여기 마16:18장에서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Petros), 네가 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으니 과연 단단하고 굳세구나!”라고 하시며 바른 신앙고백을 재확인하여주신 것이다. 베드로가 별명을 받은 기록을 보자.
1:42.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gave)
6:14.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Simon whom he named Peter)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9. 예수님과 제자들은 히브리인들이다. 구약의 배경과 구약성경을 아는 사람들이다. 구약에서는 사람을 지칭하여 반석”(petra)이라고 사용하는 일이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과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 메시아)에게만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터이었다.
32: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10. 베드로를 포함한 성경기자들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록에서 교회가 건축되는 반석(Petra)에 대한 증언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11. 이렇게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질 비밀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었고 예수님도 이 사실을 시인하셨다.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 하리로다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marvelous)
21: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  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  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12. 예수님은 마16:18에서 처음으로 내 교회(Gk. ekklesia)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원칙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며 건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또 교회는 하나의 모임임으로 단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육체의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교회의 조직을 통하여 신령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나가도록 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114회 나온다. 그 중에서 지역교회는 90, 나머지 24회는 신령한 하나의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13. 교회의 개념으로 백성들의 모임”(19:32), “민회”(19:39)가 나오며, 구약성경의 70인역(LXX)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모임과 활동을 가리켜 교회라고 하였다(31:30; 20:2).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교회라는 말은 지역이나 세대를 초월한 신령한 하나의 교회를 가리킨다. “내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하나님의 성전이며 새로운 하나의 몸”(cf. 2:11-3:12)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친히 교회의 건축자가 되시며 예수님이 친히 교회라는 몸체의 머리가 되신다(1:22; 1:18).
 
14.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교인이 가지는 특권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생명의 힘을 소유하는데 있다. “음부의 권세사탄의 세력”(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4:55)고 말하면서 죽음의 권세를 비웃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음부의 권세를 이긴 교회다.
 
15. 예수님은 올바른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다(16:19). “천국열쇠는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주시지 않고 교회를 구성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셨다. “열쇠권위를 나타낸다. 모든 권위는 하늘에서 주신다.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 사람(=엘리아김)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22:22)고 한 것은 열쇠를 가진 자의 절대권위를 나타낸다. 열쇠는 주로 문을 여는데 사용한다. 베드로와 같이 공식적인 신앙고백을 할 때에 믿음의 문은 열리고” “교회를 통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천국열쇠란 이 지상에서 교회(=성도)가 가진 신앙고백과 신앙행위의 권위를 의미한다.
 
16.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신앙 활동은 오순절에 유대인을 위하여(2) 또 사마리아인들(8)과 이방인들(10)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었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권위를 나타내었다. 사도바울도 이와 같은 권위를 보여주었다. “매거나 푸는 행위는 사람에 의한 활동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의 성취를 알려주신 것이다. 천국열쇠의 권위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오순절의 교회설립과 더불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성도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천국열쇠의 권위를 나타내는 능력을 소유한다.
 
17. 예수님은 공식적인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당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공식적으로 시인하셨다(16:17, 2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21).
 
18.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명 수행의 길(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에 대하여 반대하고 나섰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 “네가 복이 있도다라는 축복을 받은 베드로는 순식간에 사단아!”라는 꾸중을 들었다. 베드로는 사단의 시험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일찍이 사단은 예수님에게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보여준 모든 영광을 주겠다(4:9)고 시험하였다. 영광을 취하는 첩경을 제시하였으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물리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성도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생애의 수락과 동행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신분과 사명을 따라서 제자 된 우리들도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19.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고 일러주셨다. 제자(Gk. mathetes)배우는 사람을 의미한다. 배움은 따름이요 순종이다. 배움은 지식을 포함한 생활의 실천이다.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려고”(3:14)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으나 제자들은 특별히 함께 있는특권을 누린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한 배려였다.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따라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에 사단으로 꾸중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자기 부정이란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에는 아니요이며 하나님의 유익을 위하여서는 인 생활태도를 의미한다. 십자가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의 동일체를 이루는 일이다. 늘 기도하면서 주님의 십자가가 자기의 생활에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응답을 받아야 할 것이다.
 
* 17:1-13에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 (cf. 9:2-13; 9:28-36)
1.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을 따로 데리시고 기도하기 위하여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셔서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을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변형)되셨다. “변화라는 성경원어(Gk. metemorfothemorfe(모양)theou(하나님)의 합성어로써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하나님의 모습을 의미한다.
 
2.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광채가 나타나서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그 입으신 옷도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은 광채 즉 빛으로 나타난다. 이 빛과 광채는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보여주시는 초자연적 현상이며 기적적인 사건이다.
 
3. 예수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광채가 바로 성경말씀이 가르치는 참다운 영광이다. 성경말씀은 첫째, 오직 죄와 허물이 없으신 예수님에게만 참다운 영광이 나타난다. 둘째, 죄가 씻기어진 사람에게는 영광이 나타난다. 셋째,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는 누구라도 영광의 성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4. 제자들은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하나님의 모습) 되신 예수님을 보고 영광의 주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서 살며 지내기를 소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들이 얼마나 더럽고 누추한지 깨닫지 못하였다. 또 전혀 영적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임재(=영광)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다”(6:1-5) 라고 탄식하며 자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았던 겸손한 태도와는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를 저들은 들어내고 있었다. 영적 각성이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운 음성으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즉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단호한 명령을 내리셨다.
 
5. 예수님께서 오직 한 번 제자들에게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성도들은 세상에 살면서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라. 둘째, 성도들은 늘 자기를 살펴 허물과 죄의 용서를 간구하라. 셋째,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임재(=영광)의 체험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6.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러 산에 오른 제자들은 피곤하여 졸았다고 하였다. 그렇게 졸던 중에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하시면서 장차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과 죽음을 마지하실 것을 계획하셨다. 하산 할 때에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 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기 때문에 저들은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라도 이러한 예수님 사역의 교훈을 깨닫고 나서 변화산의 체험을 자기들의 글에 간증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사도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1:14)라고 하였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과 지극히 큰 영광을 친히 본 자라고 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갔으므로 그 아름다운 덕을 전하여야 한다”(벧후1:16-17; 벧전2:9)고 증언하였다.
 
7. 변화산의 체험을 종합하면서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눅9:28-36에서 정리하여 보자.
첫째,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리는 중에 영광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둘째,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 있을 때에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은 영광 중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셨다. “별세는 당연히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원어에서 본의를 찾으면 떠나간다또는 탈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별세는 세상을 떠나서 또는 탈출하여서 영광을 향하여 간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는 예수님의 고귀한 별세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영과에 참여하게 된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현실적이고 근시안적인 제안으로 초막 셋을 지어서 살자고 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육성의 제안을 내놓을 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엄한 명령을 명심하자. 듣는 기도의 훈련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넷째, 성도는 영광의 체험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은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영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감격으로 일평생을 살았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기들의 글에 이 사실을 증언으로 남겨놓았다. 영광의 체험은 영광의 열매를 맺기까지 믿음의 비밀로 간직하여 두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이다. 고귀한 은혜의 체험을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영광에 이르는 훈련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 마태17:14-21에서: 간질병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의 무능함의 원인을 살펴보자.
변화산 아래의 아홉 제자들은 귀신들려 간질병으로 말 못하는 아이를 놓고 속수무책이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안타까이 여기시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리고 오라고 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아이의 간질병을 고쳐주셨다. 그들은 왜 무능하였던가를 살펴보자.
 
첫째,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만일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지니고 있었으면 산이라고 옮겼을 것이다. 겨자씨는 아무리 작아도 생명체이므로 생명의 위력을 나타낸다. 살아있는 믿음이란 살아계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관계를 가진 믿음을 뜻한다. 현실생활에만 집착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진다. 저들은 서로 시기하고 교만에 사로잡혀서 자기들의 입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 제자들은 기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능을 나타내었다. 예수님이 기도하려고 산에 계실 때에 그들도 기도하였어야 하였다. 기도에 게을렀던 그들은 막상 위기가 닥쳤을 때에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귀신의 장난을 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셋째, 제자들은 신앙훈련의 부족으로 인하여 그 아이를 고쳐내지 못하였다. 17:21에서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 하느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신앙훈련에 힘쓰라는 심도 있는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의 훈련으로 능력이 나타나며 금식함으로써 현세적인 정욕과 탐욕이 물리쳐지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따르게 되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