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7. 예수님을 영접한 바울의 사명 (행9장)

  7. 예수님을 영접한 바울의 사명 (9)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26:17-18).

* 사도행전 9:1-19; 26:14-18 [개역 개정]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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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의 회심(Saul's Conversion, 그의 변화, 전환): “사울은 히브리 이름이다. “Asked of God,” “Lent of God,” 하나님께 대여 받은 자로서 큰 자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첫 왕의 이름이 그러했고 사울도 히브리 종족 중에서 큰 자로 살았다. 사울은 바울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Paulus”(Latin)라는 로마 말로 작은 자”(little)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는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 된 것이 아니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게 되면서 그의 이방인 이름인 바울을 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름 그대로 큰 자로 살다가 작은 자로 바르게 살게 된 것이다. 사울은 자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NIV. one abnormally born; KJV. one born out of due time)라고 하였고(고전15:8)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NIV. KJV. the least of the apostles)라고도 하였다(고전15:9). 사울은 자기를 향하여 나 자신은 없고 예수님만 계신다고 강조하며 예수님께 모든 생애를 헌신하였다.
 
2. 사울은 회심(회개)한 자로써 복음의 기초를 놓으므로 명성이 높다. 본래 유대교의 한 분파인 바리새파에 속하여 율법주의자로 율법을 엄격히 지키면서 제사장 그룹인 사두개파와 함께 유대인들의 지도적 그룹에 속하여 살았다. 그의 회심은 특이하다. 본래 회개(Gk. metanoia; meta() + noes()의 합성어로 그 후의 마음”) 3 단계의 현상을 의미한다. 첫째, 죄를 깨닫는 것, 둘째, 죄에 대해 마음을 아파하며 고백하는 것, 셋째,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의 경우 그의 회개첫째, 하나님을 잘못 믿은 죄에서, 둘째, 마음을 돌이키고, 셋째, 예수님(하나님)을 잘 믿었다3 단계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사울의 회심을 통하여 참다운 회개가 무엇인지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사울이 회개하여 예수님께로 전적으로 돌아온 사실에 대하여 사도행전의 기록 뿐 아니라(9:1-19; 21:37-22:21; 26:1-32) 사울 자신의 13개 서신들에서도 잘 반영하고 있다.
 
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친히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므로 회개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울을 온 이방세계의 선교의 기초를 놓게 하며 복음(예수님)의 증인으로 삼으신 일은 부름 받은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원리의 제공이 된다. 사울의 사건(9, 22, 26)에서는 다음 항목들의 핵심을 정리하여야 한다.
. 사울의 교회 핍박
. 사울의 예수님 만남
. 사울의 사도됨과 사명
. 사울의 복음의 열정
 
4. 사울의 교회 핍박(9:1-2): 사도행전에서 사울이 처음으로 나오는 곳은 7:58-8:1이다.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Gk. neamias; young man)이라는 기록에서 청년이란 24-40세의 남자다. 청년 사울은 스데반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박해자들)이 스데반의 벗겨진 옷을 자기 발 앞에 두게 함으로써 돌 던진 박해자들의 행위를 합법적으로 시인하여 주었다.” 사울은 명성이 높았던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며 바리새인이라는 종교지도자의 세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통적 유대교의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사울은 예수님의 도를 말살하고 여기에 속한 유대인을 유대교로 돌이키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로마 제국은 유대인의 종교에 관하여서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로마의 정치권력 하에 산재해 있는 지중해 연안의 흩어져 사는 약 6백만 명의 유대인의 종교생활은 예루살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산헤드린이 장악하고 있었다. 사울은 산헤드린 권력의 배경을 가지고 예수님의 유대인 제자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유대교를 뒤집어 엎은 배역한 폭도로 보고 예수님의 도” (이때는 아직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 때이다)를 말살하려고 열심을 낸 것이었다. 사울은 유대교(Judaism)의 철저한 신봉자일 뿐 아니라 광신적(fanatic)인 유대교인으로 그리스도의 신앙을 적대시한 원수로 보아야 한다.
 
5. 9:1에서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라고 하였다. 그는 매우 지성적인물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통적 유대교의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나머지 새로운 예수의 종교 운동에 대한 핍박(persecution)을 합리화 하여야 한다는 사고 구조를 체계화 하여 법조문과 공문을 만들었고 그러한 자들은 누구나 처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 받았다. 그는 매우 실천적인물이었다. 언제 어디에라도 찾아 가서 유대교와 율법에 역행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에까지 끌어오는 열정을 가진 자였다. 이러한 사울에게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체험적 신앙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구약의 기록(율법과 예언서)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넘치고 그러한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체험을 한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의가 결여된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로마서 10장에서 언급하였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사울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람의 지식과 사람의 의를 따라 행하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게 됨으로써 그는 종교적 활동”(하나님을 찾아가는 행위)에서 계시적 신앙체험”(하나님이 찾아오신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6. 9:3-5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하게 된다. 9:3-4에서 사울은 하나님(예수님)의 계시의 임재를 보는 체험을 하며 9:4-5에서 사울은 하나님(예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는 체험을 한다.
 
7. 9:3-4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9:3)고 하였다. 놀라운 하나님(예수님)의 임재의 모습이다. “하늘로부터비추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의미한다.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빛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비추시는 빛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셰키나”(Shekinah), “영과의 빛을 비추시는 계시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임하여 사울을 두르고 비추어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옷을 입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26:13-14)라고 사울은 간증하였다. 하나님(예수님)의 임재 앞에서 모두가 엎드러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울은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는 가운데에서자기가 지금 박해하고 있는 예수님(하나님)을 보고 만나게 된것이다.
 
8. 9:4에서 사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직접 소리(Gk. phonen)를 들었다고 하였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4)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예수님)의 소리(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 이것은 하나님으로 임재하시는 말씀의 계시인 것이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9:7)라고 하였다. 그런데 22장에는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22:9)라고 하였다. 한편 26장에는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22:14)라고 하면서 사울 자기만 소리를 들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해석상의 해결은 다음과 같다. 헬라어의 “phone”라는 것은 소리”(sound) 말하는 소리”(speech)의 두 가지의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울과 동행하던 자들은 소리”(sound)만을 들었을 뿐 그 소리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던 반면에 사울 자신에게는 그 소리가 말하는 소리”(the voice spoke)로 듣게 되었고 주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9. 9:4에서 예수님은 사울아, 사울아!”를 두 번 씩이나 연거푸 부르신다. 예수님은 사울을 알고 계신다. 사울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예수님의 음성이 어떠하신지를 전혀 모른다. 주 예수님의 부르심(calling)은 사랑과 애정의 부르시는 소리(음성)”이시다. 음성”(소리)하나님의 영으로 사울을 깨우는 놀라운 하나님(예수님)의 부르심과 만남의 역사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시몬아, 시몬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런데 사울은 처음으로 뵙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식별할 수 없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여기서 주여”(Lord)는 단순한 경칭어(“Sir”)에 불과하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9:5). “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은 곧 나를 박해하는 것이다. 나와 그들은 하나이니라.” “박해란 말은 원수(enemy)를 찾아가서 죽이는 행위이다. 나중에 사울은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라”(22:4)고백하였다.
 
. 예수님은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고 하시며 사울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NIV로는 “It is hard for you to kick against the goads.”이며, KJV로는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이다. 지성적이며 열정적인 청년 사울에게 가시 채,” “the goad”(자극물, 괴롭히는 것), “the prick”(찌르는, 쑤시는, 양심에 가책을 주는 것)이란 것은 무엇이겠는가? “가시 채라는 것은 끝을 가시처럼 뾰족하게 만든 나무 지팡이를 가리킨다. 동물들(, , 당나귀 등)을 길들일 때에 사용하는 도구다. 주인이 가시 채를 가하면 통증이 심하게 느껴지므로 그 가시 채를 뒷발로 차버리기가 일수다. 주인과 동물과의 대결이다. 주인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동물은 몇 번씩이나 저항하면서 뒷발질을 계속하다 보면 자기 몸도 상하고 뒷발도 상하고 상처가 나며 피가 계속 흐르고 아프기가 한량 없다. 결국 동물은 저항을 포기하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 전도서 14: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goads)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고 하였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사울에게 말씀의 가시 채를 가하여 주셨다.
 
. 지금까지 사울은 자기의 지성과 감성과 열성으로 영성을 부정하고 영이신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하고 나사렛 예수님(=자기 주인이신 하나님)을 항거하고 배척하고 박해하여왔다. 대제사장,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및 종교지도자들과 하나가 되어 지극히 인간적이며 종교적 행위로 일관하여 온 것이다. 예수님의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도,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하심으로 사역하는 사도들과 제자들의 전도(말씀 선포)와 기사와 표적과, 귀신을 쫓아냄 등 모든 것이 가시 채가 되어 열심히 뒷발질하면서 고생하여 왔던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예수님)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56)고 하였으나 하늘이 열렸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다,” “나는 인자를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천사의 얼굴로 평안히 영면하는 모습도 가시 채로 알고 뒷발질 하였다.”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주인(창조의 주님)의 모든 것을 영접할 때 새로움이 시작된다. 사울의 유대교 신학은 이제 바울의 기독교 신학으로 올바르게 전환하게 된 것이었다.
 
10. 예수님(하나님)이 오셔서 만남을 베풀어주시는 계시의 모습(영광의 빛)과 계시의 말씀(음성)을 처음으로 체험한 사울에게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울은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What shall I do, Lord?” 22:4)라고 질문하였다. 사울은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22:10)고 하시면서 아나니아를 만나게 하여주셨다. 사울은 3일간 금식하면서 가시 채를 순순히 받아드리게 되었으며 새로운 변화의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새 창조의 인간으로 탄생되었다.
 
11. 사울의 사도됨과 사명(9:7-19):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육안의 눈이 멀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3일 동안 어두움에서 헤매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빛주 예수님의 음성의 계시는 그가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들을 수 있게 하여주었다. 예수님은 이미 사울을 만나주셨다. 사울에게는 예수님이 계셔서 함께하여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사울은 예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다메섹에 들어간 사울은 직가(Straight Street)라는 거리의 유다(Judas)의 집에 안내되어 들어가자마자 기도하기 시작하였다”(9:11). 사울의 삶은 (Spirit)과 기도(prayer)"로 사는 참다운 신앙인의 삶으로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은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어주신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내 이름이란 곧 예수님이시며 전 인격체 하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이름구원”(salvation)의 모든 것이며 인간세계에 난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해답을 준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salvation)을 받으리라”(2:21)고 하였다. 예수님은 사울을 선택하여 나의 택한 그릇” (My chosen instrument or vessel)이라고 하셨다. 사울 속에는 예수님이 계신다. 사울은 자기 속에 간직한”(KJV. bear) 이 예수님을 어디에라도 운반하기 위하여” (to carry)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뽑아내신그리고 완전히 갖추어진 그릇”(vessel, instrument, outfit), “장비또는 도구로써 어디에라도 누구에게라도 가서 자기 속에 있는 내용물을 전달하여 줄 수 있다. 그릇은 어디에 고정시키고 부착하는 부속품(fixture)이 아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누구에게나(=이방인, 임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님을 전달하여주는 하나님의 도구와 그릇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사울은 평생 그러한 도구로 살았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6)고 말씀하신 대로 사울은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증언하였다(26:16-18).
 
26: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12. 아나니아는 예수님의 계시를 받고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여주면서 예수님 이름의 능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신다”(9:17)라고 일러준다. 그 후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다“(9:18-19). 예수님께서 만남을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보게 되는 치료를 받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어 충만하게 하여주시는 영적체험을 통하여 사울은 예수님의 그릇, 성령님을 모신 영의 사람으로 일평생 살게 된 것이었다.
 
13. 예수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된 사울은 일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고귀하신 예수님께서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자기와 동행하여 주시며 모든 고난을 통과하여 살았던 과거를 고린도후서 11:23-33에서 증언하고 있다.
 
고후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4. 사울의 복음의 열정(9:20-31): 이제 사울은 회심하고 개종(converted)하였다. 이전에 교회를 박해하던 열정으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장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6)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울은 고난의 생애를 꿋꿋하게 지켜나갈 수 있었다. 또 놀라운 사실은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으면서”(9:19) 교제를 나눈 후에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고”(9:20)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였다”(9:22)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충만하심을 받은 이후로 사울의 영안은 활짝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 공부하여왔던 구약(O.T.)의 모든 예언의 성취(fulfillment)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진리가 확인되고 믿어진 것이다. 유대인 모두의 대망의 존재이신 메시아(그리스도)가 곧 나사렛 예수님이란 부동의 사실을 모든 유대인 백성들에게 전하여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의 바른 이해에서 귀결되는 엄연한 사실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아진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다윗의 권좌에서 영원히 세상을 다스릴 메시아는 오직 예수님뿐이시다라는 결론이다. 먼저 나단의 예언을 보자.
 
삼하7: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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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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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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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25과 행9:26 사이에는 사울의 아라비아 3년의 은둔생활이 있었고 그 후에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의 제자들(사도들)을 사귀고자 하였다”(9:26)는 사실이 갈라디아서 1:16-19에서 확인된다.
 
1: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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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울(바울)은 자기의 체험이 모든 백성이 구원 받기에 합당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디모데에게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딤전 1:15-16을 보자.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 of whom I am the worst. (NIV)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of whom I am chief. (KJV)
16. 그러나 내가 긍휼(mercy)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unlimited patience)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an example; a pattern)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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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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