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6일 화요일

3.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시는 성령님 (행2-3장)

 3.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시는 성령님 (2-3)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베드로가 . . . 서서 소리를 높혀 이르되 . . .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2:14).

*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교회가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여 진행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가 예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능력은 성령님의 임재가 예수님을 따르는 각 사람에게 있을 때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오순절(2:1-4) 사건에서 증거 되고 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나서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탁하신 본래의 사명을 따라 만백성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사야 42:6(“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의 예언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1. 오순절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새 언약의 성취를 의미한다.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도(율법)를 새기고 그들이 성령님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31:31; 36:24; 2:28-32). 이미 예수님은 새 언약의 약속을 완성하셨고(“이미-아직도”; “already-not yet”) 교회는 이 완성의 길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2.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해마다 열매의 수확과 약속의 이루심”(the harvest and the covenant)과 직결되는 축제의 절기다. 하나님이 주신 열매를 수확하고 나서 감사의 축제를 열고 아울러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고 나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3. 오순절의 기원은 출23:16과 신16:9-12의 말씀에서 보게 된다. 세상살이의 온갖 고난과 억압과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좋으신 하나님은 오순절의 축제에 새로운 하나님의 영(His Spirit)을 부어주시고 더욱 새롭게 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서 살게 하여 주신다.
 
23:16.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 with the firstfruits of the crops)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the Feast of Ingathering)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6: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4.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은 120명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예수님의 승천 이후 10일 만에오순절의 약속이 다시 이루어짐을 체험한 사건이다. 구약에서 약속하셨고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증거를 보여주신 주 예수님은 오순절의 약속이 반드시 땅 끝까지에 걸쳐서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셨다.
 
.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가득하였다”(2:2)고 한 것은 구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Theophany; 왕상19:11-12; 왕하2:11)임을 알 수 있다.
 
왕상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하 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 오순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고 한 것은 구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시내 산의 율법을 주심(the law-giving at Sinai; 19:16-19)과 그 상항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 각 나라의 언어(방언)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였다”(2:11)고 하였다.

19: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 새로운 오순절의 사건은 제자들이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뛰어나가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음”(1:8)을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오순절 날에 베드로의 첫 번 설교의 말씀으로 삼천 명 이상이 새 신자가 된 것은 좋은 예화로 기록되고 있다.
 
* 사도행전 제241-47[개역 개정]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라”(24:49),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 .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4-5)고 약속하여 주셨고, 그 약속은 더 구체적인 말씀으로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오시면) . . . 땅 끝까지 이르러(언제 어디에서든지)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해설하여 주셨고, 오순절 날에는 위의 모든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 제자들이 성령님의 오심과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성령님의 능력의 표현(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다른 방언으로 예수님을 증언하게 된 일)을 할 때에, 땅 끝에서부터 온 모든 백성들이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놀라며 주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 “땅 끝까지 이르는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복음소식의 전파는 예수님께서 이미 땅 끝 백성을 예루살렘에 오게 하여 저들로 하여금 이미 만국 백성들을 하나님의 계획에 연결시켜 놓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막후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님 행전과 성령님 행전은 바로 이러한 것을 두고 설명과 해석이 가능하여 지는 것이다.
 
* 이렇게 모여든 모든 백성에게 베드로는 하나님 나라의 일과 예수님의 복음에 관한 증언을 설교와 가르침의 형식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3장에서도 나면서부터 불구 된 자를 일으킨 후에도 이방인의 뜰에 모여든 만국 백성들에게 솔로몬 행각의 말씀 선포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에 주 예수님은 모든 상항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사용하여 주신다. 우리는 순종함으로 한 걸음 발을 디디고 현지의 물을 밟기만 하면 물은 주님께서 친히 갈라놓으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모든 역사를 이런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 오순절 날 성령님의 강한 임재를 보고 듣고 놀라워하며 세계에서 몰려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으로 저들에게 위대한 복음 설교 제1를 선포한다. 2:14을 보면 베드로는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고 하였다. 선포자의 선포는 소리를 높이는 것이 유일한 특징이다. 성령님의 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어찌 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베드로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일알게 하여 줄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면서 말씀의 선포”(설교)에는 반드시 말씀의 선포를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교육, 해설)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는 구체적인 가르침이 수반된 설교,” “이해하기 쉬운 설교,” “사실에 근거를 둔 명쾌한 설교를 베풀었던 것이다.
 
* 베드로는 자기를 포함한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님의 오심을 영접하고 난 이후에 다른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가운데에서성령님의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여주시는 은혜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성령님의 계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복음의 역사를 기억나게 하여주신다. 베드로는 소리를 높여 선포와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베풀려고 할 때에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 베드로가 소리를 높여 1호 설교를 하려고 할 때에 그가 깨달아지는 것은 나도 예수님의 제1호 설교대로 하여야 하겠다는 의식이 생기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선포(설교)의 본질(nature)을 정확히 규명하고 인식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이사야 611-2절을 읽고 그 내용을 바르게 적용함으로써 설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다. 설교하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써의 설교(선포)를 듣는다는 설교의 본질이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에서 말씀을 증언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다는 본질이 완전하게 충족된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러한 설교의 본질을 알고(깨닫고) 선포에 임하였던 것이다. 설교와 설교자는 올바른 본질의 구성요소다. 설교와 설교자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되어 있거나 상관관계가 결여되면 설교의 바른 본질에서 소외되며 영향력을 상실한다.
 
* 올바른 본질은 올바른 내용을 구성하며, 올바른 내용은 올바른 본질을 반영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정식으로 첫 번(1) 설교(4:16-30)를 하셨다.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과 베드로는 여기에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적용하셨다.
 
인용: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적용: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4:18, 19, 2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는 말씀이 기록된 것과 같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는 메시아의 도래가 성취되었음을 분명히 저들에게 확인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기름부음(메시아로 세우심)으로 성령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알려주셨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설교를 하셨다. 예수님의 설교는 본문설교이며 회당 설교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구약성서를 읽은 후에 행한 설교는 은혜로웠으며 예언의 성취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 메시아라는 사실을 나타내셨고 그 자격으로 사역하심을 나타내셨다. 설교의 내용은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이며, 결론적으로 주의 은혜의 해(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첫 번 설교는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설교의 본질”(설교자와 설교의 신성)을 보여주신 설교였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이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위임하고 명령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설교는 베드로가 순종할 수 있는 변화를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제자의 자리로 이끄신다. 결국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위임하시게 되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으나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가 된다.
 
*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강림하심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강림하신 것과 병행되며, 베드로의 오순절 날 첫 설교는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의 첫 설교와 병행된다. 예수님의 첫 설교에서는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예수님 당신의 설교가 주님의 기름부음(메시아)을 받았음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요엘서를 인용한 설교에서 하나님의 영(성령님)이 임하셔서 예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설교나 베드로의 설교는 모두 구약의 예언자들이 행한 하나님 말씀의 선포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특정한 상항에서 청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것과 같이 베드로도 역시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강림이라는 특정 사실에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사도들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의 선포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이렇게 사도들의 말씀설교(선포)는 예수님의 말씀 사역과 구약 선지자의 말씀 사역과 함께 하나님 말씀의 선포로 규정되며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연속성을 가지게 된다.
 
* 베드로의 설교가 성경에서 복음 설교 제1로 불려지는 데에는 이 설교자의 됨됨이뿐만 아니라 설교의 내용이 설교의 본질을 충족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설교 방법론을 깨닫게 하여주셨을 때에 순종하였고 자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였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증거를 유대인들에게 제시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구약의 예언서 중에서 요엘서를 인용하였다. 베드로가 성령님이 강림하신 때에 요엘서를 인용한 의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요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 그 후에 오는 구원과 성령님의 강림, 최후의 날과 그 후의 심판 등을 설명하고 있는 예언서다. 특별히 오순절 성령님 강림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지 확인하여주는 책이므로 베드로가 설교에서 인용할 수 있는 적합성을 제공하여 주었다. 성령님은 베드로를 요엘서로 이끌어 그 상항에 가장 적합한 인용이 가능하도록 하여주셨다. 요엘 1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 요엘에게 임하여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자손이 대대로 듣고 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도록 분부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1: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익혔으므로 구약의 말씀이 인용될 때에 곧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때 베드로는 요엘 2:28-32을 인용하였다. 인용한 요엘 본문은 아래와 같다.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 . . 있을 것임이니라.
 
그런데 베드로가 선포한 인용문(2:17-21)을 보면 다음과 같다.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in the last days)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1. “그 후에”(28)말세”(17)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말세의 강조는 선포(설교) 하는 자가 듣는 모든 백성에게 강조할 중요한 사항이다. “말세는 언제인가? NIV, KJV에서는 “in the last days"라고 표현하였고 한영사전에서는 ”the end of the world“(세상의 끝, 마지막)이라고 번역하였다. 말세(末世)라는 단어해설은 민중국어사전에서 정치·도덕·풍속 등이 아주 쇠퇴한 시대. 망해 가는 세상이라는 표현으로 현실의 상태를 나타내었고, 예수가 탄생한 때부터 재림할 때까지의 세상이라는 표현으로 기간(때부터 때까지)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옮겨놓은 해설이다. 그런데 말세쇠퇴,” “혼돈,” “멸망의 사고와 개념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말세는 하나님께서 내가 내 영(성령님)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라”(17)는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시대가 열리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영으로 새로운 시대,” “하나님의 영(성령님)으로 계시를 주신 시대를 여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곧 성령님의 사역과 동일한 시대로 나타났고 그 사실이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고 하면서 베드로는 말세의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말세예수님의 이름성령님의 능력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세대”(generation)이며 그러한 날 들”(days)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이 귀한 사실을 베드로는 설교(선포)하며 가르치면서 모든 백성이 축복의 대열에 합류하라고 외친 것이다.
 
2. “남종과 여종”(29) 남종과 여종”(18)으로 첨가하여 표현하였다.
요엘서의 원문에서 남종과 여종이란 것은 사회적 신분과 계층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영은 만민에게”(28), “남종과 여종에 이르기까지 부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강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베드로는 나의()”라는 말을 첨가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왕과 온 백성을 통틀어 신정국가관의 입장에서 구원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므로 각자는 회개와 용서를 받고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말세에 성령님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서 은혜를 베푸시고 은사를 주시고 사명을 주신다.
 
3. “여호와의 이름”(32)(나사렛 예수)의 이름”(21)으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는 복음 설교의 핵심이 되는 예수님께 그 귀결점을 맞추어 선포와 아울러 구원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구약에 약속하신 그 말세는 지금이다. 하나님은 지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 받게 하신다”(2:21)는 사실을 베드로는 능력 있게 선포한 것이었다.
 
* 베드로의 구약성경 인용에서 말 바꾸기”(변개)말 넣기”(첨가)를 한 것은 자의로 한 것이 아니며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예언의 새로운 재해석과 적용을 하게 된 것이다. 베드로의 말세에 관한 종말론적 해석은 자기의 지식에 근거를 두지 않고 성경본문을 인용하고 해설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바르게 설교한 예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중요한 부분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복음을 입증하고 있다. 시편 16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셨고 다윗도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여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한다. 또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예수님은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언급된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있다.
 
* 사도행전은 많은 연설(설교포함)들로 가득 차 있다. 24개의 연설문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도행전 전체 분량의 약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는 분량이다. 그중 특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베드로와 바울의 연설문이며, 나머지 것은 단 한 개씩 나타난다.
 
- 베드로의 연설이 8(1:16-22; 2:14-39; 3:12-26; 4:9-12(19f); 5:29-32; 10:34-43; 11:5-17; 15:7-11)
- 바울의 연설이 9(13:16-41; 14:15-17; 17:23-31; 20:18-35; 22:1-21; 24:10-21; 26:2-27; 27:21-27; 28:17-20)
-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스데반의 설교(7:2-53)
-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연설(15:13-21)
- 비그리스도인들의 연설: 가말리엘(5:35-39), 데메드리오(19:25-27), 에베소의 서기장(19:35-40), 더둘로(24:2-8), 베스도(25:24-27)
<위의 열거된 항목에서 예수님의 설교(1:4-5,7-8)와 천사들의 설교(1:11)는 별도>
 
*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설교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종류로 나눈다.
- 전도설교 (2:14-41; 3:11-26; 4:8-12; 5:29-33; 10:34-43; 13:16-41)
- 교회설교 (1:16-25; 6:2-4; 11:5-17; 15:6-11,13-21; 20:16-35; 21:20-25)
- 논쟁설교 (14:14-18; 17:22-31; 28:17-20; 28:25-28)
- 변증설교 (7:2-53; 22:1-21; 23:1-6; 24:10-21; 26:2-23)
 
* 전도설교에서 청중은 두 가지로 나누인다. 하나는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이다.
- 유대인들을 향한 설교 5(2:14-40; 3:12-26; 5:29-32; 10:34-43; 13:16-41: 여기에서 앞의 네 가지는 베드로, 뒤의 13장은 바울이 행한 설교다.)
- 이방인들을 향한 바울의 설교 2(14:15-17; 17:22-31)
- 유대인을 향한 전도설교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전도설교를 제시하는 상황의 도입
2. 예수님의 삶과 수난(죽음)과 부활에 관한 선포
3. 예수님 사건에 대한 사도들의 증인됨
4. 성경말씀(구약)을 인용한 예수님에 관한 예언의 성취 제시
5. 회개의 요청으로 결론을 맺음
 
*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설교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다음과 같이 적용된다.
1. "너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함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유대인들의 행위를 직접 관련시킨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활동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거부하고 불순종한 결과가 곧 예수님의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선포한다. 이것은 유대인을 향한 전도설교에서 큰 특성이다.
3. 불순종과 무지에서부터 회개하고 구원의 초청에 응답하라고 요구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간이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설교에서 나타난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이방인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언급한다(14:15 이하; 17:23 이하).
2. 창조주와 역사의 주님으로서의 하나님의 하신 일을 언급한다(14:15.17, 17:24.25).
3. 종말론적으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참여하라고 초청한다(14:15b; 17:30).
 
* 유대인을 향한 전도설교와 이방인을 향한 전도설교에서 다른 점은 기독론적인 언급이 후자에서는 축소되고 신론적인 내용으로 전환되거나 대치된다는 점이다. 유대인을 향한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방인을 향한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연만물과 역사를 통해서 계시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대인을 향한 설교의 핵심은 기독론적인 예수님 선포이고, 이방인을 향한 설교는 신론적인 하나님의 선포가 그 중심을 이룬다. 14장에 나타나는 바울(바나바)의 설교에서는 예수님의 선포 대신 하나님의 선포로 대치되어 있다. 17장에서의 예수님 선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확인하기 위한 증표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언급하고 있다.
 
* 베드로의 전도설교로 인한 결과는 교회의 발전과 특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 241-47절의 내용에서 나타난다. 저자 누가는 이 사실을 누가복음 8장에서도 나타낸다.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1) 가르침 (교육); (2) 교제 (친교); (3) 떡을 뗌 (성례); (4) 기도 (예배)
* 3장의 이해를 위한 성전의 모형도
베드로의 사역은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고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된다(3:1-10).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간다. 그들은 왜 유대교 성전에 갔는가?
 
신학적으로 볼 때 당시의 그리스도교는 아직 유대교의 산하에 있다고 본다. 그들은 복음을 믿었으나 유대 특권주의(구원의 복음은 유대인들이 누려야 한다는 신앙적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 성전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지만 정기적인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다. 본문에서 사도들이 기도하러 가는 것을 강조하는 데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실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성전에는 이방인 뜰, 여인의 뜰이 그대로 있어서 배타적이며 선민의식이 여전한 가운데에서
저자 누가는 성전에 올라가는 광경을 묘사하면서 제사보다는 기도를 강조하였으며 또 제사와 성전출입에 합당하지 않는 불결한 앉은뱅이가 치유되어 함께 성전에 들어감을 묘사하였다. 또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다. 성전은 이제 그 의미가 확실하게 변경되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복음전도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
 
* 1:8에서 언급된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님의 능력은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도록 이끌어주셨다.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전권(傳權)을 성령님의 능력과 함께 행사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함으로써 치유의 힘을 발휘하였다. 이 사건 후 솔로몬의 행각에서 베드로는 전도설교를 하게된다. 베드로가 설교하는 곳은 이방인의 뜰이었으며 주님은 여기에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전도설교를 들을 수 있는 광장을 미리 열어놓으신 것이었다. 세계선교의 장을 주님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열어놓으신 것이었다. 솔로몬 행각에서 선포된 베드로의 설교의 주된 요점도 예수님의 이름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은 그 이적의 수혜자인 앉은뱅이와 중재자인 베드로에게 쏠렸으나 베드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적의 근원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돌렸다. 앉은뱅이가 고침 받은 것은 제자들의 능력이나 경건 때문이 아니라 예수 이름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베드로는 병 고침 받은 사람을 증인으로 세워 오직 예수님의 이름에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능력 있게 선포하였다.
 
*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사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고(4:12), 죄 사함을 받으며(24:27, 요일2:12), 생명을 얻고(20:3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1:12).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18:20),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28:19, 2:38),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영접하게 된다고 말씀한다(14:26).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들의 신앙지식을 초월하여 신앙생활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은 지식으로 알고 있다는 소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피와 살로서의 활동능력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성전 자체보다는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거룩함이 존재하고 있다.” (cf. 3:14-15,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I am who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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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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