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행13-14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님이라”(행13:23).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13:44).
* 사도행전 13-14장에서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의 내용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모든 이방나라들에게 확산되어 나가는 첫 번째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된다. 이것을 세계를 향한 영적 전쟁의 선포이며 하나님 나라의 광명(생명의 빛)이 어두운 세계를 비치는 작업이다. 복음사역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재빠르게 옮겨가면서 복음 선교의 대상지가 영적 대적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상항에 마주 대하여 싸워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역의 지도자와 사역의 기본형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세 번째 단계(행9-28장)로 등장하는 세계선교를 위하여 첫째 단계(행1-6장)과 둘째 단계(행6-8장)에서 준비되었고 아울러 세 번째 단계의 행9-12장에서도 여러 가지 사항들이 준비되어왔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인 세계선교의 시작은 행13장에서 열리게 되는 것이다.
* 복음사역의 활동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져야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는 복음전도사역을 시작할 수 없게 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는 백성들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는 요소가 되었다.
•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는 복음의 지도자들을 체포하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심판과 파멸의 장소로 예비하고 계셨다.
• 하나님은 새로운 복음사역의 중심지를 전개하고 계셨다.
• 이방백성들은 열심을 다하여 은혜를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고 하였다.
• 이방백성들은 예루살렘 외부의 자기들의 사는 곳에서 주님을 섬기게 되었다.
• 그리하여 이방세계에서 복음사역의 중심지들이 새롭게 발생 증가하게 되었다. 행13: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The word of the Lord spread through the whole region.)에서 “전 지역에 확산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중심지들”이 새 롭게 등장하여야만 하는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때에 “비시다아 지방의 안디 옥”은 “수리아의 안디옥”과 더불어 새로운 “복음 선교의 중심지”로 부상되고 있었다.
*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에서 다섯 사람의 이름이 “선지자들”(prophets)과 “교사들”(teachers)로 기록되어 있다. 에베소서 4:11에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누가 선지자이며 누가 교사인지는 구별하지 않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들은 두 자기 기능을 겸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는 기록대로 교회의 기초를 든든하게 세워놓았다.
* 행13:2-3에서 위의 성령님의 임재가 충만한 지도자들은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별도로 구별하여 복음 선포를 위한 사역자로 삼고 다른 세 사람이 “안수하고” 보내었다(3)고 하였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2)라고 기록한 대로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님의 “부름”(calling)을 받고 성령님의 “시키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엡4:11에 의하면 이들 두 사람은 “선지자들”이며 “교사들”이었는데 이제는 “복음 전하는 자들”(evangelists)이 되는 사역을 더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울의 경우 “내가 이방인의 사도(apostle)"라고 하면서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11:13)라고 하였고 아울러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2:7)고 하였다. 사울(바울)은 “목사” (pastor)의 직분을 제외하고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직분을 가지고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과 함께 동행 한 마가(요한)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13:5)는 기록대로 교회의 지도자(leader)가 아니었고 다른 지도자들의 “안수”를 받지 않았고 영적 전투에 임할 충분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들 모두는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Cyprus)를 첫 번 전도 대상지로 삼고 떠나게 되었다.
* 행13:4-12의 내용은 바나바와 사울의 선교여행 첫 번 장소인 구브로(Cyprus)에서의 활동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으로 방문한 곳은 구브로의 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살라미(Salamis)이며 다음은 구브로의 서남부에 위치한 바보(Paphos)이다.
1. 살라미에서: 행13:5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려 회당에서 전할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2)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하였다는 사실과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중에서 바나바는 구브로(Cyprus) 출신으로 주로 헬라 말(Greek-speaking)을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써 헬라 말(Greeks)로 번역된 구약성경에 익숙하였다. 이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은 “70인역 구약성경”(七十人譯, the Septuagint, LXX; 유대12지파 x 6명 = 72명의 번역인; 주전 2세기경에 완역된 첫 번 번역판이다)이라고 부른다. 본래 유대인의 성경인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당시 로마-헬라 문화권(culture of the Greco-Roman world)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Diaspora Jew)에게는 히브리어보다는 헬라어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사울도 역시 헬라파 유대인으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할 줄 알고 LXX를 사용했다. 바나바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고 한다면 구약성경(LXX)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이 어떻게 예수님에게 귀결되어 예언의 말씀이 현재 우리들에게 성취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고 설명하므로써 예수님(메시아=그리스도)을 믿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분명한 의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선포하는 목적이 되는 것이다. 행13장 안에도 구약을 인용한 부분이 많다. 그 예를 보자.
1) 22-23절(삼상13:14; 시89:20):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시89: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2) 33절(시2:7):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시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3) 34절(사55:3):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사55:3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35절(시16:10):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시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5) 41절(합1:5):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합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6) 47절(사49:6):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따라서 성경말씀을 이미 가지고 있는 모임(texted community)에서는 말씀을 심도 있게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말씀이 없는 모임에서는 성경말씀의 공급이 먼저 요청되며 그 후에 말씀의 강론이 따라야 한다. 유대인의 회당에는 어디에나 언제나 성경말씀이 비치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성경말씀 중심의 사역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나.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하였다: 이방인을 향한 선교라고 하면서 왜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복음전도에 매우 중요한 원칙을 제공하여주는 내용이 숨겨져 있다. 유대인의 회당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첫째, 순수 유대인이(Jew) 있고, 둘째, 유대인으로 개종한 이방인이(proselyte) 있고, 셋째, 아직 유대인으로 개종하지 않았으나 개종의 후보자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the God-feared)라고 부르는 이방인이 있다. 다시 말하면 회당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여서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들려줄 수 있고 특히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은 이방인들은 직접 예수님께로 안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백부장은 이러한 이방인의 좋은 예가 된다. 사울에게는 여러 가지로 구체적인 이유로 회당중심의 전도정책이 확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신학적 면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언약은 결코 무효화(nullified) 되지 않았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라고 하였다. 또 로마서 11장에서 유대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면 복음과 구원의 근원은 유대인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유대인이 예수님(메시아)를 밀어버리고 이방인은 받아드렸으나 원 줄기는 유대인이며 접붙힌 줄기가 이방인이다. 아브라함의 뿌리에서 줄기가 나와서 자라나며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원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신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회당의 유대인 모임(the Jewish community)에 들어갔으며 여기와 연결된 이방인의 모임(the Gentile community)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사울은 결코 개인 대 개인 전도(person to person evangelism)나 한 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선교) 전략을 세운 것이 아니다. 전도(선교)의 근원과 발생이 하나님 또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회당 -> 교회 -> 천국”이라는 한 덩어리의 묶음, 모임, 몸(community, body)을 중심으로 하는 확장에 근간을 둔 것이었다. 예수님의 몸에 예수님이 예비하신 백성이 돌아와 참여하도록 안내하고 선전하는 역할로서의 전도(선교)였던 것이다.
2) 예수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I was sent only to the lost sheep of Israel."(마15:24)고 말씀하시고도 이방 여인의 소원대로 그녀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시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고 말씀하셨고 구원을 베풀어주셨다. 이 가나안 여인(두로와 시돈 지방)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받는 은혜와 혜택(자녀의 떡; the children's bread)의 일부분(개가 받아 먹는 부스러기)으로도 충분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3) 예수님은 12사도들에게 전도하려 보내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0장의 기록을 보자.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또 예수님이 사울을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도행전을 보자.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26: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2. 바보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바보(Paphos)에서 바예수(Heb. ‘예수 또는 여호수아의 아들’)라는 유대인 거짓 마술사와 격돌한다. 바예수는 전도자들을 대적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지 못하게” 방해한다. 전도(선교)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영적 전쟁의 내용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배척, 방해, 박해, 비난, 시기, 거짓 등의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첫째, 먼저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13:9)라는 기록을 앞세워 영적전투인의 “실존과 상태”를 강조하고 있다. “사울”(Heb. 큰 자)이 “바울”(Lat. 작은 자)이 되어 전에는 육적 차원에서 “높은 자세”로 살던 사울이 이제는 영적 차원에서 “낮은 자세”로 임하는 바울이 되었다고 서술한 것이다. 이 기록을 시작으로 “사울”은 “바울”로 언급되며 지도체계가 “바나바와 사울(바울)”에서 “바울과 바나바”라는 순위로 바꾸어진다(예: 13:13, 43, 50). “작은 자 바울”과 “에수의 아들 엘루마”의 전투현장이 전개된다.
둘째, 바울은 작은 자로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님이 충만하였다”(9)고 하였다. 충만하신 성령님과 거짓 선지자로 분장한 마귀(사탄)과의 싸움이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았고”(9:17),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님께서 부르시고 따로 세우시고 안수하게 하여주시고”(2),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았고”(4), 여기에서는 “성령님이 충만하여 마술사 엘루마를 주목하게 하셨다(9). ”주목하다“(Gk. atenizo. 직역, gaze = 응시하다, 주시하다, 뚫어지게 보다; NIV. looked straight at; KJV. set one's eyes on; Amp. look steadly on)는 ”목표물을 끈질기게 뚫어지도록 똑바로 보는 자세“를 의미한다. 영적 전투자들이 악령의 존재를 대하였을 때에 취하여야 하는 자세다. 이럴 때에 성령님께서 보게 하여주시고 깨닫게 하여주시고 하여야 할 말을 알게 하여주신다.
셋째, 바울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두 가지 사항을 선포한다. 먼저는 악령의 상태에 대한 폭로이며 다음은 그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1) 악령의 상태: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10).
(2) 하나님의 심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11상).
(3) 심판선포의 결과: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11하).
넷째,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12). (When the proconsul saw what had happened, he believed, for he was amazed at the teaching about the Lord.) 총독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7)고 하였다. 결국 바울은 성령님의 사역에 충실하게 이행하여 마술사의 행위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하여”(about the Lord) 강론하였을 때에 총독은 바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동시에 보면서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전도의 열매가 되었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 가운데 반영되어 알게 된다.
다섯째,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은 반드시 방해가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영적무장은 늘 되어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성령님께서 친히 어느 상항에서도 동행하여주시도록 자기를 완전히 맡겨야 할 것이다.
엡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 제1차 선교여행의 시작으로써 구브로(Cyprus)의 살라미(Salamis)와 바보(Paphos)에서 행한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사역은 모든 선교의 핵심요소가 어떠하여야 하겠는가를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는 기록이다. 이제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의 대륙에서 전개되는 각 지역에서의 활동내용은 그 곳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와 해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 행13:13-52의 기록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바보(Paphos)를 떠나 내륙지방의 버가 (Perga)를 통과하여 비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디옥(Antioch) 도시에 있는 한 회당에서 행한 설교를 위주로 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세워진 교회는 또 다른 선교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가. 내륙지방에 들어오기 전에 “요한(마가)는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떠나갔다”(13)고 하였다.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선교팀에서 이탈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측한다. 여행 중에 오는 고향의 향수로 인하여, 앞으로 있을 내륙지방의 더 험난한 도보여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선교의 리더가 자기 삼촌 바나바로부터 바울로 옮겨짐으로 인하여 등등이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마가는 아직 험난한 영적전쟁을 치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으로 인하여 떠나간 것이다. 마가에게는 성령님의 충만하신 임재로 인한 믿음과 용기가 결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 바울은 회당에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회중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16)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같은 위치에 놓고 같은 대상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임을 입증한다. 실제로는 유대인들 보다는 이방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예수님께로 돌아왔다.
행13: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여기에서 “주의 말씀이 퍼졌다”는 기록을 유의하여야 한다. 이미 살펴보았거니와 행13장 전체에 흐르고 있는 “말씀 사역의 강조”를 살펴보자.
(1) “하나님의 말씀”: 13:5, 7, 44, 46, 48,
(2) “말씀”: 13:29, 42, 49
다. 바울의 설교는 이전에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그 어떤 설교들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모든 성경(13:33, 35-37)을 성취하는 데 필수적인(13:46)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cf. 눅 24:44-45).
행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라. 바울의 연설(13:16-41)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체류하던 시기로 시작해서 다윗의 통치를 거쳐 예수의 도래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묘사한다(13:16-25).
둘째, 이스라엘의 최근의 역사를 다루면서 예루살렘에서 처형당한 예수님과 하나님이 그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내용이다(13:26-37).
셋째, 결론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이 제공되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멸망하게 된다는 경고가 주어진다는 내용이다(13:38-41).
* 행13:42-52에서 “유대인들”(the Jews)이라는 표현(13:45, 50)은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고 반대하고 핍박하는 유대교에 속한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있다.
행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바울과 바나바는 거부하는 자들을 향해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떠나 버린다(13:51). 이러한 행동은 누가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들(12제자, 9:5; 70인 제자, 10:11)이 보여준 선교의 특징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유대인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부정한 자들이라는 선언적 의미를 나타낸다.
* 행14:1-7에는 이고니온(Iconion)에서의 복음 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가. 바울과 바나바는 로마 속주인 갈라디아의 남쪽에 위치한 이고니온에서 루가오니아의 두 성인 루스드라(Lystra)와 더베(Derbe)까지 이동한다(14:1, 6, 11). 첫 번째 도시인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지역 회당에서 설교를 시작하여 허다한 무리가 믿고 돌아오게 한 반면 “유대인들”의 반대 세력에 부딪힌다.
나. 이고니온에서의 사역에서는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를 “두 사도”(14:1, 3, 4, 5)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사도라는 호칭이 사용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분명히 사도로 부르고 있는데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도들과 동등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한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사역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알리려는 의도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이 믿음의 문을 열리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중대한 일을 하였다.
* 행13:8-20에는 루가오니아에서 일어난 치유의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
가. 바울이 루스드라 선교 도중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소생시킨 기적은 사도행전 3장에서 사도 베드로의 초기 선교를 생각나게 한다. 베드로와의 관련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바울을 베드로와 동등하게 중요한 사도로 여기게 한다. 비록 바울의 경우 베드로가 1:21-22에서 제시했던 사도의 자격 기준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증인이 되었고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동료 사도들과 똑같이 기사와 이적을 베풀었다. 바예수 사건과 앉은뱅이를 소생시키는 기적 이후로 이제 바울은 베드로와 같은 “사도”로 독자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한다(14:4, 14).
나. 루스드라에서의 바울의 운명은 과거 박해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극적인 역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일로 바울(사울)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동시에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다가 옥에 가두는 예루살렘 폭도들을 지휘했다(7:58-8:3). 이제 여기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끌려서 성 밖으로 내쳐지고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은 신세가 되고 만다(14:19). 스데반의 시련과 잘 어울리지만 바울의 최후 운명은 다르다. 그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고 바나바와 함께 더베(Derbe)로 가서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계속하게 된다(14:20).
* 행14:21-28에는 두 사도가 교회를 돌보는 사역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가.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돌보는 사역의 형태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바울은 14:22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요청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말씀(눅9:23)을 상기시킨다.
둘째, 각 교회에 지역 지도자들을 임명하는 일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23절에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이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장로를 임명하는 장면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세움을 받았던 상황을 상기시킨다(13:2, 3). 그러나 이 경우에는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역 교회에 주재하면서 교회의 일을 관장하도록 임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임명된 지도자들은 안디옥에서처럼 예언자들이나 교사들(13:1)이 아닌 “장로들”(elders)로 불린다. "택하다“라는 원어(Gk. cheirontoneo)는 ”손을 내밀다“(to stretch out the hand) 또는 ”투표할 때 손을 들고 있다“(to hold up the hand as in voting)는 뜻이다. 이러한 본래의 뜻에서 “투표하다,” “손을 들어주다,” “선택하다,” “임명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두 사도는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전도했던 곳엘 다시 방문하면서 교회를 살피는 중에 “장로들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 선출방법은 그들이 사도권을 행사하여 임명한 것이 아니고 모든 교인들의 “투표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께서(the Lord) 함께하여 교인들을 돌보는 목양의 사명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개척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장로들의 양육을 통한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