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13.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 (행18-21장)

 13.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 (18-21)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9:1-2).
 
* 사도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18:22-21:16)은 제2차 선교여행의 종료 후 바로 진행된 것으로 제2차 선교여행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는 사역에 힘썼으며 죽은 유두고까지도 살려내는 기적이 나타났다.
 
안디옥 -> 갈라디아, 브루기아(18:22-23) -> 에베소(19;1) -> 장기간의 에베소 사역(19:1-20) -> 마게도냐, 헬라(20:1-2) -> 빌립보, 드로아(20:6) -> 드로아에서 죽은 유두고를 살림(20:7-12) -> 미둘리네, 사모, 밀레도(20:14) ->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20:17-38) -> 고스, 로도, 바다라, 두로(21:1-3) -> 가이사랴, 예루살렘(21:7, 15) -> 가이사랴에서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21:8-14).
 
* 사도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은 제2차 선교여행의 연속이다. 2차 때 성령님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며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던(16:6-7) 곳은 소아시아의 북부 비두니아 지역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일찍부터 대도시의 전도활동이 중요한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소아시아의 북부가 아니라 서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3차 선교여행에서는 특별히 에베소 전도에 전력을 집중하게 된다. 결국 바울은 자기의 숙원을 이루어 약 3년 동안 에베소 도시에 머물렀다. 바울의 전도생활에서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른 곳은 없을 정도였다. 바울 자신의 말과 같이 에베소는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열린 문"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대적하는 자가 많아실로 다사다난한 3년이었다.
 
* 3차 선교여행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서부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에베소는 서부 소아시아의 입구에 위치하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소비도시였다. 특히 이 지역은 이방 미신이 성행하여 이교도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19:19) 사회적인 부패와 타락까지 만연해 있었다.
 
* 이러한 와중에서도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며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성장과 확장을 이루어 나갔다.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을 경고하는 고린도전후서를 기록하였고 이들이 보낸 답장의 회신도 이곳에서 기록하였다.
 
*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겪은 첫 어려움은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바울은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 아볼로(이름의 뜻: 침략자)는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며 구약에 정통한 학자였다. 그가 언변이 좋다”(18:24)고 한 표현은 그 당시에 학문이 깊은 학자라는 뜻으로 하는 말과 같았다.
 
. 아볼로의 출생지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의 인구 분포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유대인들 중에는 본국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볼로는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비록 고국 소식에 정통하지는 않았으나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하고 일찍이(청년의 나이에) 주님의 도(the way of the Lord)를 잘 배워서 예수님에 관한 것(NIV. about Jesus)을 열심으로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는(NIV. with great fervor and taught about Jesus accurately) 사람이었다. 너무나 놀랍고도 기이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유대인의 문제점은 성경말씀(구약)의 기록을 예수님에게 부합시키지 못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아볼로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깨닫고 믿고 가르치는 위대한 교사요 학자였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연결하는 역할은 세례요한이 감당하여 교량역할을 하였고, 구약시대의 예언(그림자)과 신약시대의 성취(실체)는 예수님(그리스도=메시아)에게서 발견된다. 이러한 사실을 명료하게 가르친 사람이 아볼로다. 아볼로는 성경말씀에서 예수님에게로 직접 들어와서 믿고 섬기는 자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도바울은 아볼로를 매우 존경하였다. 바울 자신도 성경말씀(구약)에 능통하였으나 예수님께로 직접 들어오지 못하고 배척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환상 중에) 만나 뵙고서야 예수님께 돌아왔다. 그러므로 아볼로는 말씀의 체험이 깊은 학자였던 것이다. 바울은 아볼로를 이렇게 높였다.

고전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그러면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18:25)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볼로는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는”(18:25) 높은 수준의 성경지식과 해석을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사역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권세와 능력을 알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내리라”(24:49) 내게서(예수님)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님)을 기다리라”(1:4)고 미리 말씀하신대로 오순절 날에 하늘로부터”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다. 이때 그 곳에 있던 제자들 즉 그들이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다”(2:4). 이때로부터 성령님의 충만하신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입은 제자들은 교회의 지체들이 되는 교회가 설립되어 교회는 성령님의 임재가 필수적인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성령님의 임재가 필수적인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영”(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교회를 의미한다. 아볼로에게는 이러한 사실의 이해와 체험이 결여되어 있었다.
 
.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을 만들고 수리하는 직업을 가졌고 바울도 같은 직업을 가졌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때 이들은 고린도에서 만나게 되었고 함께 어울려 이 직업에 종사하며 살았다(18).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과 함께 살면서 바울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런데 아볼로의 선포와 가르침에는 예수님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 예수님으로 인한 성령님과 교회와의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실은 한 마디로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하심이 결여되면 교회의 역사는 과거의 세례요한으로만 소급되며 미래로 발전하여 이방의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를 형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아볼로는 이러한 진리의 내용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통하여 배우고 깨닫게 된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18:26)라고 하였다. 아볼로는 자기 나름대로는 담대히(boldly, 용감하게) 예수님을 전하였다. 그런데 진리의 내용을 더 정확하게”(NIV. more adequately; KJV. more perfectly) 알게 된 후로부터는 설교와 가르침이 올바르게 되어서 은혜로운 설교자로 더욱 훌륭하게 부상하였다. 새로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에는 그의 설교의 영향력이 대단하였다. “그가 (고린도 교회에)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18:27-28).
 
* 사도바울이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3개월이 지나는 동안 유대인 회당 내 비판자들이 증가하면서 에베소지역의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 2년여 동안 활동하게 되었다(19:8-20). 두란노 서원은 순회 강연자들에게 제공한 강연 장소였는데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매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강론을 위하여 활용하였다. 이러한 성경강해와 공부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두란노 서원은 성경공부의 장을 펼치는 주요공간으로서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공부의 놀라운 영향력은 다음의 성경기록(19:11-20, 26)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 당시 사람들은 알찬 사회기구와 조직을 많이 형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도행전 19:24 이하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등이 사도 바울을 공격한 동기가 외적으로는 아데미여신에 대한 종교적 열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에베소 도시의 사회적 수익성 때문이었고 또 그 도시인의 공감을 사면서 행하는 종교사업의 부진을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서 여신상에 많은 유방을 새기고 생식과 생산을 주관하여 주는 여신으로 분류하게 된다. 데메드리오 등은 이러한 아데미 모형의 은감실(아데미 신전 또는 아데미 신상을 한 작은 모형 기념품)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종교 상업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각종 미신들이 난무하는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생각보다 많은 고초와 고난과 방해공작에 부딪히며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쉬운 곳은 한 지역도 없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선교는 저항을 받았고 고난과 함께 시작되고 역경과 함께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명과 소명의식을 끊임없이 일깨워 가며 복음증거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 사도바울은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설교를 하였다(20:17-35). 그의 모든 설교(13:16-41; 14:15-17; 17:2231; 22-26)들은 기독교 변증을 보여주며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밀레도에서의 설교내용은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전파 및 회개로의 권면이 빠져있고, 대신 신앙의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서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과 사역에 대한 주제로 설교하고 있고 유언형식을 띠면서 고별설교를 한다. 자기가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어서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이별에 대한 슬픔이 나타난다. 아울러 에베소 장로들에게 행하는 진심어린 권면이 이어진다.
 
. 바울의 고별설교에서 겸손눈물청결은 그의 고상한 윤리와 행실을 보여준다. 먼저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덕목을 겸손으로 정의하듯 겸손의 삶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10:35-35; 2:5-8). 바울이 추구했던 목회철학 중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예레미야에 버금가는 눈물의 사도바울이다. 그의 눈물의 흔적은 그의 서신 곳곳에 묻어난다. 고린도교회를 향해 눈물의 편지를 썼으며(고후2:4), 오늘 본문31절에서는 3년간이나 눈물로 목회했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37절에서는 에베소 장로들과의 이별에서는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9:41. 가까이 오사 성(Jerusalem)을 보시고 우시며(He wept)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 바울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말한다. ? 첫째, 어디서나 전하였기 때문이며(20: 공중에서나 각 집에서나) 둘째, 누구에게나 전하였기 때문(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2:8)라 할지라도 유대인에게 복음 전파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심지어 복음전하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40명이나 있을 정도로 거세게 반항하였다(23:12-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결코 유대인들의 복음전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도행전135절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파송을 받아 가장 최초로 복음전파한 곳은 다름 아닌 이방에 있는 유대인의 여러 회당이다(14:1; 17:1,10,16; 18:4, 19,26; 19:8 ). 심지어 바울은 먼지를 털어”(18:6)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에게 아무 책임이 없다고 공적으로 선언하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유대인의 회당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있다.
 
. 바울은 언제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다(31: 밤낮 쉬지 않고).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은 날마다(19:9)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였다. 사도행전199절의 서방사본인 D 사본은5시부터 제10시까지”(즉 오전11시부터 오후4시까지)를 첨가하고 있다. 두란노 서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시간뿐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기회만 되면 쉬지 않고 밤낮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 바울은 모범이 되는 깨끗한 행실을 보여주었다. 33절의 탐욕을 절제하는 삶,” 34절의 자급자족의 자비량 선교에 대해,” 35절에서 약한 자를 돕는 삶”, “베풀어주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일에 바울은 몸소 실천해 보임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입증할 수 있다고 하였다. 34절에서 너희도 아는 바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바울은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복하는 삶을 살았다. 얼핏 보면 우리는 에베소에서의 사역을바울 스스로, 바울자신의 능력으로모든 것을 잘해낸 것처럼 보기 쉽다. 그렇지 않다.“내가, 나는....., 나의생명을, 내가, 내가”.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성령님에 사로잡힌”(20:22) 결과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가 드러내놓을 수 있는 깨끗한 과거의 삶은 성령님의 이끌린바 된 현재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에 이끌림 받는 깨끗한 현재들이 모여 깨끗한 과거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 바울의 전도와 가르침은 에베소 교회가 교회다운 특징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에베소 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였다. 성령 충만은 교회의 어떤 전통이나 율법적인 요소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에베소 교회는 자신들의 이성과 합리성에서 주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갔다. 교회 운영이 사람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어졌다.
 
(2)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강론되었던 교회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가 현재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으로 사는 구체성이 요구된다.
 
(3) 에베소 교회는 누구든지 변화를 받았던 교회였다. 교회에서는 빈부격차가 없고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모두가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성장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4) 에베소 교회는 이적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던 교회였다. 교회에서 기록된 말씀의 강론과 선포에서 이적과 표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믿음으로 살 수 있겠는가? 이적과 표적은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5) 에베소 교회는 영적 전쟁에 탁월했던 교회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단의 공격으로 인하여 사람은 고난과 고통을 받아왔다. 이제는 사단이 전략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혼란 속에 몰아넣고 있다. 경배와 기도와 찬양이 요구된다. 에베소 교회는 이런 영적원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교회다운 교회가 된 것이었다.
 
*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가서 여러 지방의 신도들을 격려하고 그리스에 이르렀다(20:1-2). 그는 제2차 선교여행 때 세운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 등의 교회를 순방하며 교인들을 격려하였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석 달 정도의 시간을 가졌다(20:3). 그 후에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에의 여행은 바울에게 있어서 연속된 고난의 길이였다.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라고 예감하며 말하였다. 그가 도중에 들린 드로아, 밀레도, 두로, 가이사랴 등의 각지에서 형제들과의 작별은 모두 눈물이었다.
 
* 사도바울이 드로아에서 떠나기 전날 밤에 사고가 났다. 그가 신도들에게 밤이 깊도록 강론을 하였을 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잠을 이기지 못하고 몹시 졸다가 삼층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이 일으켜 보니 죽어 있었다. 바울은 내려가서 그에게 엎드려 그를 끌어안고 기도하였다(20:9-10). 그때 죽은 유두고가 살아났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처럼 유두고를 살렸다. 또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것(9:36-42) 같이 유두고를 살렸다. 유두고(: 행운아)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었다 다시 사는 행운을 잡았다. 사람들은 살아난 유두고로 인하여 한없는 위로를 받았다(20:12).
 
* 사도바울은 모든 여행을 마치고 두로 지역에 도착하여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에 이른다.그곳에서 아가보라는 예언자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이방인들 손에 넘겨질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이 말을 들은 형제들이 사도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충고하나 그는 예루살렘에서 묶이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을 한다(21:7-14). 이후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야고보 사도 및 원로들을 찾아가 인사하고 자기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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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은 사도바울의 서신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의 13개의 편지들 중에서 초기의 편지들(살전, 살후, , 고전, 고후, )은 사도행전의 선교여행의 과정에서 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도바울은 주후 47년경부터 57년경까지 총 3차에 걸쳐 세 번의 전도여행을 하였다. 이때 그는 4개의 지역(Galatia, Macedonia, Achaia, Asia)을 중심으로 순회하였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제시한 내용과 기록에서는 초기의 편지들을 확인할 수 있다.
 
(1) 예수님께서 33년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승천(昇天)하셨다고 가정하면, 바울이 다메섹 언덕에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은 그로부터 3-4년 뒤인 36년이나 37년경이 된다. 그 뒤 바울은 곧바로 열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목숨의 위협을 받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9:1-30). 그 뒤 바울은 아라비아에 갔다가 다메섹으로 간다. 그리고 3년 뒤 예루살렘을 방문한다(1:15-20).
 
(2) 그 뒤 약 몇 년의 공백 기간이 지나고 사도바울은 바나바(Barnabas)의 청빙(calling)으로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본격적인 선교목회를 시작한다(11:19-26). 바울이 처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나중에 그가 제1차 선교여행을 떠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오랜 공백 기간(empty period)이 있었다. 예수님에게도 숨겨진 생애(hidden period: 소년시절)”가 있었듯이, 사도 바울에게도 거의 10년에 가까운 숨겨진 생애(unknown years)”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메섹 사건 이후부터 그가 바나바의 초빙(招聘: calling)으로 안디옥 교회에 부름을 받기 전까지 그 모든 기간을 의미한다. 그는 이 숨겨진 기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한 한 가지 정확한 것은 그가 이 때 아라비아(Arabia)로 갔다는 사실이다(1:15-17). 그는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의 계시를 직접 받았으며(1:11-24) 삼층천(三層天)에도 다녀오고(고후12:1-4), “육체의 가시도 얻게 되는 등(고후12:7-10), 하나님께서 앞으로 쓰실 사역자로서 준비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바울은 새 사도의 훈련기간 (a training for the new apostle)”을 거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숨겨진 시기에 사도바울 길들이기를 하신 것이다.
 
(3) 이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제1차 선교여행을 떠나고(13:1-3), 사역을 잘 마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온다.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중에도 지속적으로 편지와 글을 썼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할 만한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후 50년 경 이전에 쓰여진 바울의 편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분실되었거나 또는 아예 없다는 뜻이 된다(고전5:9, 고후2:4, 4:16, 살후3:17).
 
(4) 그러나 바울이 실라(Silas)와 함께 한 제2차 선교여행부터 바울의 편지가 등장한다(15:36-41). 가장 먼저 쓰인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주후50-52년경)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전서는 성경에 수록된 바울의 13개 편지들 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편지이며, 신약성경 27권 전체를 통하여서도 제일 먼저 쓰여진 편지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쓴 지 몇 개월 뒤에 또 다시 데살로니가 후서를 기록하였다. 그리고나서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5) 그 뒤 바울은 연속하여 제3차 선교여행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갈라디아서(53-56년경)와 고린도 전후서(55-56년경)를 기록한다. 그리고 제3차 선교여행이 끝나갈 무렵 (또는 끝낸 뒤) 고린도 지역에서 그의 대작(大作)인 로마서(주후 57년경)를 기록한다. 그 뒤 바울은 체포당하고 결국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한다. 여기까지는 사도행전의 내용이다.
 
(6) 이처럼 사도 바울의 초기 편지들(살전, 살후, , 고전, 고후, )은 모두 사도행전을 통하여 정확한 역사적 추적이 가능하다. 그것들은 모두 제2차와 제3차 선교여행 때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초기 편지는 그것이 초기라고 해서 절대로 그의 사역 초기 때의 편지가 아니다. 여기서 초기 편지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수록된 그의 13개 편지들과 관련해서 볼 때에 초기 편지라는 뜻이지, 그의 사역 초기에 기록된 편지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초기 편지들은 그의 선교사역이 최절정(2-3차 전도여행)에 도달해 있을 때에 쓴 것들이다. 이러한 역사적 내용에 비추어 바울이 쓴 편지들을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 다시 끼워 넣어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7) - 바울의 다메섹 사건과 초기 사역 (9:1-30)
        - 바울의 숨겨진 기간 (9:31-11:18)
        - 바나바가 바울을 안디옥에 청빙함 (11:19-26)
        - 바울의 1차 선교여행 (13-14)
        - 바울의 2차 선교여행 (15:36-18:22) - 살전, 살후,
        - 바울의 3차 선교여행 (18:23-21:16) - 고전, 고후,
        - 로마에 죄수의 몸으로 도착해 죄인의 몸으로 행한 선교사역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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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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