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령님을 체험한 제자들의 영향력 (행6-7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사도행전 5:41-42; 6:1-10 [개역 개정]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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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본문 말씀에 보면 “그들(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한 결과로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고 하였다. 주 예수님의 복음이 바르게 전하여질 때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제자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의 성장원리”라는 사실이다.
* 2. 그러나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 발생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였다”(1)는 것이다.
* 3. 6장 1절에서 단어를 찾아서 그 뜻을 규명하면서 단어 뒤의 배경을 살펴보자.
가. “헬라파 유대인” - (the Grecian Jews: Greek-speaking Jewish Christians)
나. “히브리파 사람” - (the Hebraic Jews: Aramic-speaking Jewish Christians)
다. "원망하니“ - (NIV. complained against; KJV. murmuring against)
라.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the number of disciples was increasing)에서 “제자”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에 28회 나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to Christians in general) 수 있는 단어다. 마태복음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였고, 곧 이어 2절에서는 “12 제자들”을 “12 사도들”(the twelve apostles)라고 부르고 있다. 다른 점이 무엇인가?
(1) “제자”란 광범위한 뜻에서 “주님”(대 스승: the Master, 예수님)을 “바르게 따르는 자”(Gk. mathetes; true follower)로써 헬라어를 직역하면 “배우는 자”(a learner)이다. 주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써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배우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위를 “보고” 예수님의 생활(life)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거룩하게” 성장한다.
(2) “사도”란 여러 가지의 관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헬라어(Gk. apostolos)를 직역하면 “사명을 가지고 보내어진 자”(one sent on a mission)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 장소에 파송 명령을 받은 자”다. 실상은 주 예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기쁜 소식(복음)”을 주어서 생활터전에 내어보낸 사도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2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목격자들이 되어서 “사도의 바른 사명”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주위의 제자들이 보고 듣고 배우게 되는 기록을 사도행전과 서신들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사도”라는 단어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 한 번씩 나오고 누가복음에는 여섯 번 나온다. 그러나 사도행전에는 30번, 바울서신에는 40번 이상 나오고 있다(마10:2; 막10:2; 요8:16; 눅6:13; 9:10; 11:49; 17:5; 22:14; 24:10).
(3)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라는 것은 “참 제자”와 “참 사도”가 되어서 말의 뜻과 같이 자기의 생활이 그렇게 되어서 사명에 충실할 때에 “영적 지도자로써 영향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마. “과부들”과 “매일의 구제” - (widows & the daily distribution of food) 그 당시의 로마의 세계는 지중해 연안에 인접한 나라들이었다. 이 나라들이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속국이므로 라틴 문화권에 속하였고 문화적으로는 헬라(Greece) 문화권에 속하였으므로 헬라의 언어인 그리스말(헬라어, Greek)을 사용하였다.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도 날 때부터 익혀온 헬라어를 유창하게 쓰기 때문에 저들을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노년이 되어 고향이 그리워 본국으로 돌아와서 죽겠다는 노인들 중에는 “과부”가 많았다. 구약 룻기에서 남편과 아들들을 잃은 “나오미”가 귀국한 내용을 연상하면 곧 이해가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과부”와 “고아”를 잘 돌보아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서 구제의 형태가 다양하였다. 그 하나가 “구제의 그릇”이라는 제도이며 다른 하나는 “구제의 바구니”라는 제도였다. 전자는 “매일의 음식을 공급하는 그릇”이며 후자는 “필요한 의복과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바구니”였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원활한 소통이 오고가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바. 교회가 시작되는 개척시기에는 “복음 전도자”들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이리저리 빠진 것이 나오고 미흡한 일이 생기게 된다. “그 때에” 제자들도 많아지면서 12 사도들의 하여야 할 일도 “많아졌다.” 이것이 “원망 -> 시기, 미움 -> 분열 -> 죄악”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모세도 혼자 모든 일을 하다기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출18:13-27). 이 기록의 일부를 보자.
출18:13.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4.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
18.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25.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을 삼으매
26.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 하더라
사. 1절과 2절 사이에는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 또 셀 수없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의 날들”이 얼마였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을 때에 “이미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충만하심”을 받은 사도들은 성령님의 지시를 받게 된 것이다. 성령님은 언제나 믿음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려주며 “예수님을 보도록!” 인도하여 주신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들이다. 예수님을 다시 보고 예수님에게 다시 듣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바쁘셨던 생애를 바라보았다. 예수님은 그렇게 바쁘신 일과 중에서 “기도의 시간”과 “아버지의 말씀 듣기의 시간”을 철저하게 매일 지키셨던 사실이 제일 먼저 기억 되었다.
아. 예수님의 사역에는 사도들의 사역과는 다른 일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가복음의 기록(막1장)을 살펴보자.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 예수님이 아버지와의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사항이었다. 우선순위가 언제나 첫째였다. 그것은 예수님의 꽉 찬 스케줄 위에 더해진 어떤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연결되는 생명선이었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일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육신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보다, 무리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하는 일보다, 다른 그 어떤 일보다 예수님의 삶에서 더욱 중요했다.
자. 그런데 사도들은 너무 바빴다. “구제”(1절, 봉사)와 “접대”(2절, 재정 출납)으로 인하여 “힘써야 할”(4절) 자기들의 임무(예수님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어 지금 이곳에 보내신 임무)에 소홀히 하고 있음이 들어났던 것이다. 사도들은 예수님 계시던 때처럼 “기도 안하는 자”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되는 자들이다. 주님과의 깊은 교제는 그들의 최상 최고의 임무였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기도는 사역이며 사역은 기도였다는 사실을 저들은 기억해 낸다. 엄밀히 말하면 기도가 사역이며 사명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여 주셨다. “기도”를 언급한 누가복음의 기록을 아래에 언급하였으나 실제로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기도(대화)”로 사신 삶이셨다.
- 세례를 받을 때(눅3:21) -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 열 두 제자를 뽑을 때(눅6:12) -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 제자들의 신앙 고백에 앞서(눅9:18) -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변화 산에서(눅9:28-29)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 주기도를 가르치기에 앞서(눅11:1) -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 베드로를 위한 기도의 약속(눅22:31-32)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눅22:41-45) -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 죽음 직전에(눅23:34, 46) -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차. 그리하여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기도에 전념하는 패턴을 심어놓고 있다. 그 예를 보자.
- 맛디아를 뽑을 때(행1:24)
- 오순절 성령 강림을 받을 때(행1:14)
- 베드로와 요한이 석방되었을 때의 공동체의 기도(행4:23-31)
- 일곱 사람을 뽑을 때(행6:6)
-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을 때(행8:15)
-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릴 때(행9:40)
- 고넬료의 사건: 베드로와 고넬료가 모두 기도할 때(행10-11장)
- 바울과 바나바를 세울 때(행13:3)
- 바울과 실라가 갇혔을 때(행16:25)
- 바울의 치유(행28:8)
카.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저자 누가가 사도들의 활동 가운데서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하여 준다. 교회는 기도의 공동체였다. 개인의 기도도 중요했지만, 공동체의 공동 기도가 매우 중요했다. 교회의 지도자의 중요한 임무는 기도하는 일이다.
타. 사도행전에는 "예배"라는 말이 행13:2에만 언급되어 있다. 이 예배(섬김)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도행전 전체와 여기 본문의 전후를 살펴볼 때에 예배의 중심은 기도와 말씀이었다. 행13:2에서 “섬겨”는 “worshiping”(예배)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성령이 이르시되(the Holy Spirit said)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 6장 2절에서 12 사도들은 곧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쇄는 “오직 기도”라는 증거를 모든 제자들에게 보여주게 된 것이다. 해답이란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다.
- 가.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재정출납)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2).
- 나. 모든 제자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다(3).
- 다. 사도들은 이 일(구제, 봉사, 접대, 재정출납, 행정 잎체)을 그들에게 맡긴다(3).
- 라.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쓴다(4).
- 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을 택하다(5).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의 일곱 사람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 제자였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활용하셨는가 하는 사실을 밝혀낸 일이다. 예수님과 11사도들은 북부 갈릴리 지방의 출신들이었는데 오직 한 사람 가롯 유다만은 남부 유대 지방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재정 관리를 갈릴리 제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가롯 유다에게 맡겼다는 사실이다. 유다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겨 사도들 중에서 소외된 상태에 있지 않도록 배려하셨다. 사도들은 선택된 일곱 헬라파 유대인을 기꺼이 수락하고 그들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 바.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다(6). 법과 제도로 규정하다. 모세가 후계자 여호수아를 선택할 때의 기록(민27:15-23)을 보자.
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 6장 7절과 그 이하를 보면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영적지도자(사도들)들의 놀라운 영향력이 나타난 것이 나타난다. 복음의 흥왕과 바른 제자들이 “도”(예수님 믿음)에 복종하였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 행6:8-7:60에는 스데반이 박해를 받는 현장의 모습과 그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 누가는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누가복음에서의 예수님의 기록과 같이 사도행전에서도 사도들이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았다는 실증을 보여주고 있다. 왜 그렇게 그리고 싶어 했는가? 예수님도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 아버지의 증언자로서의 모델이므로 교회의 성도나 영적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모델을 닮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교회는 맡겨진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과 스데반의 기록을 보자.
-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눅22:66-67) 앞에서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 "백성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행6:12) 앞에서 심문을 당한 스데반.
- 거짓 증인들(눅23:2; 행 6:12)
-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인한 죽음
- 운명 직전에 한 말
예수님: "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눅23:46).
스데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행7:59).
- 운명 직전의 중보기도
예수님: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스데반: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
* 사도행전의 요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공동체나 공동체의 일원들은 증언(witness)하는 증인(witnesses)으로서의 기능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은 기본 원칙이며 그것은 그들이 지킨 불변의 신앙이다. 베드로, 바울, 스데반은 모두 그러한 모범적인 증언자들이었다. 사도행전 연구는 시종일관 요절의 말씀을 위주로 하면서 증인의 행전이 어떠하였는지 또 증언의 행전 기록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르게 정리하면서 현재 우리 제자들의 삶에도 그렇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도록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데 귀결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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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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