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1일 화요일

9. 율법을 이기는 영광의 삶 (롬7장)

       9. 율법을 이기는 영광의 삶 (7)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7:12, 14)

* 로마서 7장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전의 내용(3-6)과 그 후의 내용(7-8)과 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아래와 같이 큰 그림으로 그 핵심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로마서 3장에서는 稱義(得義, 義認)가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원리와 구조를 기록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불의(죄악)의 형벌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으로 죽어야(사망)만 하였다. 그러나 죽어야 하는 사람 대신에 의롭고 순결한 예수님께서는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 이 대속의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물(propitiation, appeasement)로 받으시고 동시에 속죄함(redemption)을 입은 사람의 불의(죄악)를 간과(看過)하시고(pass over) 사람을 의롭게 보시는 칭의(稱義)의 길이 열렸다. 이런 사실을 믿고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得義).
 
.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이 자기들의 체험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고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에 믿음으로 칭의를 받는 표본으로 제시되었다. 그리하여 불의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로 여김을 받는 칭의의 축복이 선포되었다.
 
. 로마서 5장에서는 칭의의 좋은 결과로 평강과 즐거움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장래 영광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을 마지막 아담 또는 둘째 사람인 우리 주 예수 님이 은혜 중에 베풀어주신 사실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그 혜택은 예수님의 신비(비밀)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아담이 하와를 위하여 함께 선악과를 먹고 범죄의 자리에 들어간 모형인 것같이 교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세주가 되신 것이다. 이 신비는 교회가 세워질 뿐 아니라 칭의가 이루어진 기초(원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 칭의는 구원의 입문을 위한 문(gate)라고 본다면 문을 통과한 즉시로 구원의 완성을 위한 좁은 길을 따라가야 구원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성화”(sanctification)이며 거룩한 삶”(The Holy Life)이다. 그리하여 롬6:1-8:39에는 승천하신 예수님 안에서의 믿음으로 인한 聖化榮華”(Sanctification and Glorification by Faith in the Risen Jesus)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이 나오고 있다.
 
. 이제 롬6장에 들어서면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稱義)”은 곧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연합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연합은 일회적이 아니며 연속적이며 칭의(Justification)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삶으로 발전하여 가며 아울러 성화의 축복은 세상의 모든 시험과 유혹을 극복하면서 천국백성의 영광의 삶을 산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6장의 내용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 (6:1-14): 죽음의 삶=세례
          ●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 의로운 종들로 산다 (6:15-23): 종의 삶=성화
 
. 위의 내용들을 더욱 요약하여 본다. 3-4장에서는 稱義(得義)의 방법론을 가르치며, 5장에서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루신 신비(비밀)稱義(得義)의 기초를 세우시며 칭의(득의)로 인한 혜택(평강=화목, 기쁨)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이며, 6장에서는 稱義(得義)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세례) 함께 사는() 연합이 있을 때에 칭의(Justification)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삶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 “성화의 삶이란 것은 우리 마음속의 죄악이 말소(eradication)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는 결코 우리를 향하여 죽지 않고(Sin is not dead to us.) 늘 살아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화의 삶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매순간마다 깨우쳐주는 깃이다(We are to reckon ourselves dead to sin.). 또 성화의 삶이란 주님께서 우리를 억지로(suppression) 또는 자동적으로(automation)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 가주시는 일이 아니다. 성화의 삶이란 오히려 우리 편에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법”(the new law of life in us)과 함께 죄악과 죽음의 법”(the law of sin and death)에서 떠나고 자유와 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들의 구체화된 작전행동(the operation)이다. 8:1-2, 5-6의 설명을 본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그러므로 稱義(得義, Justification)의 열매(the fruition)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며 성화의 온전한 열매(the full fruition of sanctification)는 장차 우리들이 누리게 될 영화(榮華, Glorification)인 것이다. 8:26-30을 본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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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제7장은 율법을 이기는 영광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전개되고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칭의)을 받은 성도는 평강과 기쁨으로 소망의 삶을 사는 혜택(칭의의 결과)을 누린다. 7장은 롬5-8장 내의 일부분이다. 실제로 5-8장은 소망을 주제로 하는 환구도”(環構圖, The Ring Composition)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1-4장은 믿음을 주제로 형성되며 롬12-16장은 사랑을 주제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
 
* 따라서 롬7장은 아래에서 제시된 롬5-8장의 환구도(環構圖, The Ring Composition)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이 롬5-8장의 환구도의 핵심사항(核心事項)칭의를 받은 성도는 장래의 영광을 소망으로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 전체적 윤곽이다. 그런데 죄악율법소망의 삶을 무너뜨리는 방해요소가 되므로 이 두 방해꾼들(죄와 율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롬6장에서는 죄의 유혹에서 이기는 방법, 7장에서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함으로써 분명한 소망의 삶은 그러한 방해요소들을 제거하는 데에서 이루어짐을 제시하고 있다.
 
          ● A-1 (5:1-11): 장래 영광의 소망(the hope of future glory)
                  ● B-1 (5:12-21):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new life in Christ)
                              ● C-1 (6:1-23): 죄악을 이긴 영광의 삶(glorious life from sin)
                              ● C-2 (7:1-25): 율법을 벗은 영광의 삶(glorious life from law)
                  ● B-2 (8:1-17): 그리스도 안에서의 능력(power in Christ)
     ● A-2 (8:18-39): 장래 영광의 소망(the hope of future glory)
 
* 로마서 6장에서는 거룩함, Sanctification)을 이루는 방법이 세 가지로 제시되었다.
첫째, “알라”(know: 6:1-10)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된 것은 세례 받음”(Baptism: 6:1-14)"십자가에 못 박힘"(Crucifying: 6:15-23)의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하여(united) 한 몸이 되어 죽고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둘째, “여기라”(count; 6:11)는 것이다. 죽었던 자기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음으로 이제는 (생명)의 자산이 죄악에 대하여는 죽고(무능함)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유능함)의 귀한 존재여기라”(믿고, 생각하고)는 것이다. 불의한 삶은 살수 없고 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자기 존재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셋째, “드리라”(offer; 6:12-23)는 것이다. 구원 받은 자기의 지체()가 귀하므로 귀하게 사용되도록 자기의 몸을 의의 도구”(instruments of righteousness)"드림으로써 "순종의 종으로 또는 의의 종으로 사용되고 결국은 성화(거룩함)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단번에” (once-and-for-all, 모든 것을 일시에) 최종적이며(final) 완전한(complete) 순종의 행위(surrender)로써 드려야 한다. 결코 뒷걸음질이나 후퇴가 있을 수 없다는 각오에 변함이 없는 드림이다.
 
성화(거룩함, Sanctification)의 결론적인 상태는 로마서 6:14에서 표현하고 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For sin shall not be your master, because you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고 하였다. 이것을 다시 번역하면 죄는 너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너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로 된다. 은혜의 주 예수님과 일치된(Identification) 삶의 영향 아래 사는 자의 생활은 죄악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고 성화의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단적인 표현이다. 6:14에서 칭의와 성화에 연루된 자법 아래에 있지 않다”(not under law)고 하였으나 법과 더불어 살고 있음”(live with law)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롬7:1에서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The law has jurisdiction over a person as long as he lives)고 언급하고 있다.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사는 평생에 법을 떠나서 살 수 없고 언제나 법의 권한과 지배를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믿는 자가 법을 이기고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바울은 롬7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 믿는 자의 성화와 소망의 삶을 방해하는 율법을 제거하는 방법론은 일맥상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로마서 6장에서 제시된 원리는 로마서 7장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롬6장과 롬7:4을 비교하면 평행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이 나타난다.
 
         로마서 6()                                                     로마서 7:4 (율법)
죄에 대하여 죽다”(6:2, died to sin)             율법에 대하여 죽다”(dies to the law)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6:4-5)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의와 하나님의 종들(slaves)”(6:18,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음”(6:22)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음

* 7장에 기록된 단어들의 회수를 세어보면 롬7장의 흐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the law; 12), “율법”(The Law; 12), “계명”(the commandment; 6)이라는 단어로 도합 30회 기록되고 있다.
. “”(I; 9), “”(my; 28)라는 단어가 도합 37회 나온다.
. “”(sin)라는 단어가 15회 나온다.
. “그리스도”(Christ)라는 단어가 2회 기록되고 있다.
. “성령님”(Holy Spirit)이라는 단어가 1회만 언급되고 있다.
 
    위에서 단어가 기록된 회수를 볼 때 롬7장에서 법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이며, 또 법과 나     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2)성령님”(1)의 언급이 너무 희박한 점을 볼 때 롬7장은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와 법과의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 로마서 7장은 ”(Gk. ego, “I”)라는 단어가 37회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 는 누구이며 또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규명하여야 한다. “”(ego)라는 단어는 바울 자신이 화제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울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을 진술하고 있다.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7: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9: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11: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6: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 7:1법의 자명한 원칙(axiom)”을 언급하고 있다. “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The law has jurisdiction over a person as long as he lives.)는 사실이다.
 
1. 예를 들어본다. 어떤 사람이 속도를 위반하였거나 신호등을 무시하고 갔으면 그것을 목격한 교통순경은 교통위반자에게 교통위반딱지”(red ticket)를 먹인다. 그런데 만일 그 위반자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가다가 큰 나무와 충돌하여 사망하였으면 티켙을 뗄 필요도 없이 사망자와 자동차를 정리해버리고 만다. 사망자는 티켙과 상관이 없다. 이 예화는 법과 사망자와의 상관관계가 무엇이며 그 영향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2. 바울은 롬7:2-3에서 결혼법을 예로 들고 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 바울은 이 예화에서 이혼(divorce)이나 재혼(remarriage)에 대한 법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죽음과 법과의 관계를 언급하였다. 배우자의 한 편이 사망하였으면 남은 한 편은 사망한 자와의 매임(bind)”에서 풀어지며 얽매임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법에 의하여”(by law) 선포되는 것이다.

. 법은 여인과 남편과의 사이에서 매임과 풀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여인이나 남편은 죽음으로 인하여 매임과 풀림의 상항에 노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 예화나 비유를 대하면 그것의 핵심사항이나 원칙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규명하여야 한다. 위의 비유는 사망과 법의 효력에 관한 것이다. 사망자로 인하여 법의 효력(=매임 또는 풀림)과 영향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 예화의 핵심사항이 깨달아졌으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때 예화에 나오는 육하원칙의 내용을 적용하려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위의 예화에서 사망과 법의 효력을 적용하여야 하며 여인, 남편, 결혼, 음난등을 적용하면 오용이다.
 
3. 7:4 7:2-3의 예화를 다음과 같이 적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예수에게 연합되었으면(united) 이전의 매임(bind)에서 풀림(release)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 그러면 우리는 이전에 어디에 또는 누구에게 매여 있었는가? 여인의 이전 남편과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 바울은 여기에 해당하는 답변을 이미 롬6:22-23에서 내어놓았다. “우리는 전에 죄와 죄의 삯인 사망에 매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의 죽음죄와 죄의 삯의 매임에서 풀림(=해방과 자유)을 주었다는 것이다. 법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죄와 죄의 삯에 매어있다고 더 이상 선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옛 죄와 죄의 삯에서 풀림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함”(We might bear fruit for God.)이라는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1)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의미한다.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열매를 맺는 작업이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 7:5-6에서 죄와 죄의 삯인 사망의 열매를 맺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 “우리의 죽음과 죄에서의 풀림에 대한 사실을 놓고 바울은 너희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You were made to die to the Law)고 표현한 것이다. “율법 자체는 우리를 죽이는 것도 아니며 살리는 것도 아니다. “조문”(the letter, 글자)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들이 보고 읽고 깨닫게 하여주는 문자(文字)인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을 의문”(儀文=樣式文字)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개역에서는 의문”(儀文)으로, 개역개정에서는 율법조문으로, KJV에서는 “the letter”, NASB에서는 “the letter of the Law” 또는 “the letter”, NIV에서는 “the letter” 또는 “written code” 등으로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다.
 
2: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7: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고후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위에서 죄악율법소망의 삶을 무너뜨리는 방해요소가 되므로 이 두 방해꾼들(죄와 율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롬6장에서는 죄의 유혹에서 이기는 방법에서 세례”(=죽음)”(=자기부인)을 언급하였고, 7장에서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남편의 죽음을 예화로 언급하였다. 이 세 가지 예화들은 죽음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종합할 수 있다. 실제로 율법은 죄가 아니며 죄를 드러내는 역할만 한다.” “율법은 선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다.” 이 사실을 롬7:7-13에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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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13에서는 죄악과 율법”(Sin and the Law)과의 관계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1. 롬7:7에서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율법은 죄가 아니     다”(The Law is not sin). “오히려 율법은 죄를 드러낸다”(Rather, the Law reveals sin)고 천     명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거니와 율법은 의문(儀文)이다.” 훌륭한 교과                 서”(Excellent textbook)라고 비유하고 싶다.
 
2. 예화를 들어 심장내과 의사와 X-Ray Film을 보면서 대담하는 세 환자들의 이야기에서 심장의 문제점이 의학교과서(textbook)와 비교할 때 확실하게 나타남을 일러준다. X-Ray 진단결과 Film에 심각한 문제점이 나타난 상태에서의 대화결과다.
 
첫째 환자: 이 환자는 자기 심장의 X-Ray Film이 괜찮다고 말한다. 의사는 의학교과서의 표준 심장을 보여주면서 비교하여 보라. 그러면 당신 심장의 문제점을 곧 알게 된다고 일러준다. 환자는 책을 안 보겠다고 거부한다.
둘째 환자: 이 환자는 자기 심장의 X-Ray Film이 의학교과서의 심장사진보다 깨끗하고 더 낫다(better)고 주장한다.
셋째 환자: 이 환자는 자기 심장의 X-Ray Film과 의학교과서(Medical textbook)를 보고나서 건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질문을 한다.
 
3. 바울은 십계명의 제10계명(the 10th commandment) 탐내지 말라”(Don’t covet!)는 가르침을 예화로 들면서 자기의 경험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열 번째 계명은 마음속에 감추어진 내면의 죄악상을 들추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탐욕은 마음속의 문제다. 마음의 문제는 외부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판단해내기 어렵다. 살인이나 도둑질은 눈에 보이는 죄악이며 누구에게나 즉시 증거물(시체, 잃은 물건로 인하여 확인된다. 탐욕은 마음의 죄악이며 누구도 찾아내기 힘 든다.
 
. 탐욕은 육체가 범하는 죄악들 중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우리들의 육체는 하나님의 뜻과 맞서는 경향과 성품을 가지고 있다. 어떤 욕망이나 색욕이나 식욕 등은 금지된 욕심 중의 일부다. 이런 내부의 욕심은 범죄를 유발하게 된다.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벧후2: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 탐욕은 다른 죄악들을 유발하는 온상이 되기도 한다. 탐욕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살인이나 도둑질의 동기를 제공한다.
 
. 탐욕은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죄악이다.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7)고 말하였다.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법과 상응할 수 있는 법률은 지상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탐욕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는 않고 있다. 탐욕은 저주거리도(condemned) 아니며 법으로 막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교훈하는 것에(commended) 불과하다.
 
.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 과거의 무법한(lawlessness) 행위를 돌아보면서 그러한 경험이 탐욕행위”(coveting)였음을 자각하고 있다. 바울을 외부에서 보면 어느 일반법에 저촉되는 행위르 하지 않았고 유대인의 율법도 잘 지켰다고 자부하였다.
 
.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법(The Law of God)을 대면하고(face to face) 깨달음이 왔을 때에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3:4-12의 자기고백을 본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바울은 롬7:9에서 자기의 변화되기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율법을 깨닫기 이전                                    율법을 깨달은 이후
       죄가 죽다(Sin is dead)                                  죄가 살다(Sin is alive)
      바울은 살다(Paul is alive)                            바울은 죽다(Paul is dead)
    죄를 적용하지 않고 간과했다                    죄가 살아났다(Sin became alive)
       탐욕은 문제가 되지 안했다                    자기의 문제는 탐욕임을 깨달았다
 
4. 바울은 롬7:10-13에서 죄악과 율법”(Sin and the Law)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 이 기록에서 율법(the Law)은 결코 죽음(death)을 가져오지 않으며 죄악(sin)이 죽음(death)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율법(계명)생명에 이르게 하며,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10, 12).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by John Bunyan)을 보면 한 기독도(Christian)가 마른 먼지(dust)가 가득하게 쌓여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먼지는 죄악(sin)을 상징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와서 방의 먼지를 빗자루로 쓴다. 어떤 사람이란 율법(Law)을 상징한다. 방에는 먼지가 자욱해지면서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율법의 기능은 이런 것임을 보여준다.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은 방을 쓰는 사람(Law)이 아니고 방에 가득한 먼지(sins).
 
* 로마서 7장은 ”(law)이란 용어가 30회나 기록될 정도의 율법에 대한 강론이므로 율법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바울은 이미 롬7장 이전에 율법의 특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율법은 죄를 깨달게 함”(through the Law comes the knowledge of sin)(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 “율법은 의롭게 하지(apart from the law) 못함”(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 “율법은 진노를 이룸(brings)”(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4.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increased)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 “율법은 은혜와 상반됨”(contrary to grace) (6:14-15.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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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7:14-25에서는 7:1-13에서 가르친 율법(the Law)은 결코 죽음(death)을 가져오지 않으며 죄악(sin)이 죽음(death)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의 입증들(evidences)”을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증명하고 있다.
 
1. 자연법(the Natural Law)과 육체(the Flesh)를 비교할(contrast) 때에 그 사실을 알 수 있다(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 자연법(the natural law)이란 무엇인지 규명하여 본다. 신학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무한(無限)하시고 피조물은 유한(有限)하다. 이 사실을 법이라는 기준으로 보면하나님은 자율적(autonomous)이시며 피조물은 타율적(heteronomous)이며 의존적이다. 이런 자율성과 타율성은 법의 제한을 받지 않고 법 위에 있으면 자율성이며 법의 제한을 받고 법 아래 있으면 타율성이다. 하나님만이 법의 제정자이시며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명령을 내리시며 하나님(창조주) 이외의 모든 것(피조물)을 당신의 명령에 복종시킨다. 피조물은 법을 만들 수 없고 그들에게 법은 주어질 뿐이다.
 
. 사람이 자율적이 되려는 것은 자율적인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무모한 행동이며 법 위에 있겠다는 타락을 의미한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명령)은 하나님이 선과 악의 기준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으면 자기가 선과 악을 결정하겠다는 하나님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이다. 이것이 타락이며 죄악이다. 하나님의 자율적으로(스스로) 정하신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자율적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 법을 어기는 자(죄의 종)가 될 뿐이다. 하나님은 법으로 인간을 지배하거나 구속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법을 지키는 자유와 기쁨을 주신다.
 
.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을 만드시고 모든 만물을 일차적으로는 당신이 정하신 자연법(natural law)으로 다스리시고 이차적으로는 신법(divine law)으로 다스리신다. 이때에 하나님 자신은 영원한 법(eternal law)으로 존재하신다.

1) 영원한 법(eternal law)은 하나님 자신이 우주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당신만이 스스로 가지고 계신 법이다. 인간은 영원한 법을 알 수 없으나 그 영원한 법을 반영하는 자연법과 신법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모든 법은 영원한 법에 기원을 둔다.
 
2) 자연법(natural law)은 모든 피조물의 내면에 본성으로 새겨져 있는 법이다. 피조물은 이 자연법에 따라서 자연적인 선(natural good)으로 이끌어진다. 이것을 한편으로는 마음에 새겨진 법이라고도 부른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 분의 뜻과 법을 만물 중에 자연법으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자연법은 자연과 인간의 모든 영역에 포함시켜 주셨으나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아니다.
 
3) 신법(divine law)은 영원한 법의 계시로써 성경에 반영된 법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주는 법이다. 자연법은 피조물을 자연적으로 이끌어 가는 반면 신법은 사람이 자연법을 넘어서 하나님의 선으로 인도한다. 자연법은 창조와 더불어 적용되었으나 신법은 역사를 통하여 때를 따라서 주여졌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옛 신법(old divine law)을 받았고 모든 성도들은 약속을 성취하는 새 신법(new divine law)을 구원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았다.
 
4) 한편 인간 사회에는 상황에 맞추어 자연법을 적용하거나 구체화 한 인간의 법으써 국가의 법(national law)과 시민의 법(civil law)을 소유하게 되었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대명제가 인간의 법에 적용되고 있다. 인간의 법은 궁극적으로는 그 법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자연법과 신법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는 법은 법이 아니다.
 
. 이러한 원칙적인 법적 테두리를 염두에 두면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법과 죄악의 상관관계를 뚜렷하게 조명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은 죽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며 죽음은 죄악(sin)에서 유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14의 말씀대로 신령한 법은 죽음의 근원이 아님으로 죄악의 다스림이 급선무다.
 
.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구별되듯이 바울은 롬7:14에서 신령한 율법과 죄 아래에 있는 육신(flash)을 구별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다.
 
1) 바울은 신법 중에서 모세의 율법(the Law of Moses)을 언급하고 있다.
2) 모세의 율법은 법을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3) 성경은 모세의 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5: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4) 성경은 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고 사람은 죄인이며 저주 아래에 있으므로 예수님과 더불어 칭의(득의)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5) 성경은 육신(flash)을 가진 사람이 율법을 순종하지 않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6) 육신이라는 것은 뼈와 살을 넘어서 사람이 가진 죄악성을 의미한다. 사람의 죄악성을 하나님의 율법을 안 지키고 반역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기 자신이 이러한 복음의 역행자요 율법을 잘 몰랐던 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7) 바울은 자기의 모습을 예로 들면서 모든 믿는 자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자기는 육신에 속하여 죄악의 매임(bondage)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2. 죄악의 힘(the Power of Sin)은 막강하게 우리들을 노예로 사로잡고(enslavement) 있음을 보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7:14-17)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위의 롬7:14-17의 구절들은 영원한 현재형의 문장으로 계속적인 활동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자기 마음속의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고백한다.
. 심한 당뇨병을 가진 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걸어가지 못하고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영적 질병에 걸린 경우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율법이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며 죄악(질병)이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이끌어 간다.
 
3. 우리들의 육체에는 선이 결여되어(the absence of good in our flash)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실로 알 수 있다(7:18-20).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여기에 나온 구절들은 14-17절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 같으나 다른 점이 있다.
 
                 롬7:14-17                                                        7:18-20
      바울은 미워하는 악을 행한다                   바울은 원하는 선을 행치 못한다
       “율법이 두 번 언급되고 있다                    율법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율법과 바울의 생활과의 비교                 바울의 뜻과 바울의 행동과의 비교
    나쁜 것은 율법이 아니고 죄에 거함           나쁜 것은 율법이 아니고 죄에 거함
 
. 믿는 자는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 수 있는가를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For it is God who is at work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에서 설명하고 하였다. 바울은 자기의 조건(condition)육신에 속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으나자기의 입장(position)그리스도로 채워짐(fulfilled in Christ)”으로 율법의 바른 목적을 따른다는 시실을 고백한다.
 
4. 우리 마음속에 영적전쟁(the spiritual warfare within)이 있음을 보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7:21-23).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 영적전쟁(spiritual war)는 언제나 계속되고 있다. 영적전쟁은 마음속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실패하고 죄에 사로잡히고 있음을 느낄 때에 많은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영적전쟁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법(the Law)과 하나님께서 선하게 역사하고 있다는 실증이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the victory of Jesus Christ)가 확실함을 보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7:24-25).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바울의 호소와 절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바울은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이겨낼까?”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하지 않는다.
 
. 바울은 특별한 해답(a specific answer)을 요구하며 질문하고 있다. 그 해답은 자기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질문하고 있다. “누가 나를 건져내라?”(Who will set me free?)라는 점이다. 간절한 기도와 찬양(prayer and worship)을 드리고 있다.

1)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없음을 알고 있다.
 
2) 그리스도인은 먼저 죄를 미워하며 자기의 상황이 어떤가를 의식한다. 그래야만 죄 해결의 다음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3) 그리스도인은 죄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사실을 안다. 죄악은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죄악은 자연법에 속한다. 만유인력의 법칙(the law of gravity)이 존재하듯이 존재한다. 우리들은 죄악을 모르며 또 알 수도 없으므로 그 죄악을 인정하되 그 안에 빠져 들어가면 안 된다. 바울은 죄의 법”(the law of sin)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4) 죄악에 연루되었을 때는 죄악을 해결하는 자,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여주는 자를 찾아야 한다. “누가 나를 건져내라?”(Who will set me free?)고 하면서.
 
5) 바울은 문제의 해답과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Thanks b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the law of God)을 섬기노라!”
 
6) “율법”(토라)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기록된 계시(revelation)로 주신 가르침(teaching)이다. 유대인은 율법”(토라)을 타락한 인간(fallen man)이 반드시 행하여야 하는 의무의 율법”(a Torah of obligation)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모든 성도에게 율법(토라)약속의 율법”(a Torah of Promises)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방편”(a way of salvation)으로 주어진 것이다.
 
* 율법은 피조세계의 피조물의 일환이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 예수님은 친히 모든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신다(11).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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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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