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 (롬2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로마서 1:18-32은 로마서 본론의 시작부분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죄악” 즉“불의”와 “경건치 않음”(18)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롬2장에 들어와서는 “남을 판단하는 사람”(2:1) 특별히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아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알고 있으나 그들도 역시 “불의”를 따르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이러한 “쌓음”(store up, 모아놓음, 저축, 연속적인 행위 등)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나타내게 하였다(2:5)고 언급하고 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은 한결 같이 불의한 존재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는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의”의 필요성을 향하여 가기 위한 포석이다.
*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이 자랑스러운 “율법”(the Law)을 소유한 백성이고 또 “할례”의식으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축복을 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부스고(demolish) 있다. 롬2:1의 서두에 “그러므로”(therefore)라는 접속사는 어떤 말의 결론을 내린 후에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논지를 전개할 때에 사용한다. 바울은 1장에서 모든 사람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전개하였고 이제는 2장에 들어와서 “유대인”도 “불의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논리를 전개한다. 그런데 롬2:1에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라고 하면서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이 계속하여 “사람”을 언급하다가, 롬2:17절에 가서야 비로소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라는 문장이 나오면서 “사람”이라는 것이 곧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가. 이 구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보훈(마7:1-5)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나. 성경말씀 안에서 예화와 설명들을 볼 수 있다.
(1) 요8:3-11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2) 삼하12:1-9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3) 시51편10-17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 롬2:1의 말씀은 “Therefore you have no excuse.”(그러므로 네게는 핑계가 없다)가 주문장이다. “excuse”는 “변명, 해명, 사과, 이유, 구실, 핑계, 발뺌”을 뜻하는 명사다. 유대인들은 어떠한 형편에 있더라도 “그들의 범죄 행위에 대하여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이 말씀과 똑같은 구절이 이미 이방인에게도 적용되었다. 롬1:20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내 they are without excuse)”고 하였다.
* 롬2:1-16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 성경본문에서 살펴본다.
가. 심판의 확실성 (The Certainty of Judgment)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5절)
나. 심판의 보편성 (The universality of Judgment)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3절)
다. 심판의 원칙 (Principle of Judgment)
제1원칙(2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제2원칙(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제3원칙(11절):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제4원칙(16절):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라. 심판의 결과 (The results of Judgment): 롬2:6-10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이방인)들을 판단하면서 자기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진 일반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1-32)고 하셨을 때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33)고 대답하며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버림받은 백성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2) 우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백성들은 결코 저주 아래에서 살지 않는다고 그들은 확실히 믿고 있었다.
3) 우리들은 할례를 받은 백성들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할례의 규례를 지키면서 할례 받은 백성은 구원 받은 백성이며 결코 버림받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선택하신 표를 몸에 가진 백성의 특권을 자랑하는 그들이었다.
*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advantages)과 자부심(arrogance)에 대하여 그 내용을 롬2:17-22에서 열거하였다.
롬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1) 유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월성: “유대인이라 불리는”(17).
2) 유대인이 가진 율법의 의존성: “율법을 의지하며”(17):하나님의 법을 가진 독특성.
3)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의 우월성: “하나님을 자랑하며”(17): 이방의 우상과 다름.
4) 유대인이 소유한 율법지식: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18).
5) 유대인이 소유한 지도력: “맹인의 인도자며, 어두움에 처한 자의 빛이며,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교사요 선생이라”(19-20).
* 롬 2:17-24에서 가르치는 자들과 지도자들의 유의할 사항을 열거하여 본다.
가. 하나님과의 관계(The Teacher's Relation to God):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17-18).
나. 타인과의 관계(The Teacher's Relation to Others):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19-20).
다. 가르침의 요소(The Teacher's Foundation): “율법”를 “진리”로 볼 것(17, 18, 20).
라. 가르치는 자의 책임(The Responsibility): (21-23).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마. 가르치는 자의 위험(The Teacher's Danger): 판단과 비판적 자세를 경계하라.
바. 가르치는 자의 죄악(The Teacher's Sin):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4절). 일관성 없는 언행과 위선적인 태도와 교만한 자세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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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의 우월성과 자부심은 전적으로 “율법”의 소유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 “율법”(law)이란 단어의 이해: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모세오경과 선지서들(예언서들)을 가리키고 있다. 구약성경은 율법서(the Law), 시서(the Psalms), 예언서(the Prophets),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반적인 뜻으로 "율법" (the Law)이라고 하면 모세의 다섯 책들(창, 출, 레, 민, 신)을 의미한다. 한정된(좁은) 범위의 뜻으로 “율법”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지시사항들”(the instructions)을 의미한다. 이 지시사항들 안에는 세 종류의 묶음들이 있다.
첫째, 십계명이 포함된 도덕율법(The Commandments of moral law, 출20:1-26): 도덕법칙은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 되는 법률이다. 자연현상 속에는 인과관계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있는 것과 같이 인간세계에도 사람이 준수하여야 하는 보편타당한 행위의 원리가 있어야 한다. 이 도덕률은 사람의 의지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국가이므로 하나님과 백성 또 백성 사이의 관계에 관한 법칙이 요구된다. 십계명이 여기에 들어있다.
둘째, 민법이 포함된 재판율법(The Judgments with civil law, 출21:1-24): 일상생활은 법률의 관계를 초월하고 살 수 없다. 결혼, 가족 구성, 상속, 구매, 등 개인과 개인 사이의 법률이 곧 재판법이다. 무엇보다도 생활에 직결된 법률이다.
셋째, 제사의식을 포함한 율법(The Ordinances, 출24–31장):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방법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와 제사를 드려야 한다. 날과 때와 장소와 제물 등의 모든 규정은 제사제도에 따라서 엄격하게 지켜야 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표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나. 위에 열거한 모든 율법(the Law)의 구분과 항목과 세칙이 다양할 지라도 “모든 율법은 하나의 율법의 일부분이다.” “율법은 하나다”(The law is one). 한 분 하나님(God or the Lord)이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하나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한 사람 모세를 통하여 오직 하나의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다. 이러한 “율법”(the Law)을 놓고 “하나님의 율법이냐”(law of God) 또는 “모세의 율법이냐”(law of Moses)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또 그 차이점(a difference)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려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다”라는 원칙 하에서 아무런 차이점 없이 상호 교류하며(interchangeably)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예를 성경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누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눅2:22. 모세의 법(the Law of Moses)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the Law of the Lord)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the Law of the Lord)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39. 주의 율법(the Law of the Lord)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 마리아는 “주의 율법(the Law of the Lord)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친 것”이며 “십계명(the Commandment)을 따라 한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율법”(주의 율법)을 모두(NIV. everything; KJV. all things) 마치고(NIV. had done; KJV. had performed) 라고 하였다.
라. 예수님께서 율법(the Law)을 완성하셨다고 한다면 위의 내용을 적용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은혜의 삶을 살게 된다. 결코 율법에 매인바 되지 아니하고 율법의 저주 아래에 속하여 살지 않는다.
롬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롬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 려 함이라
마.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율법을 주셨는지 규명하여야 한다. 갈라디아서 3:19을 본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개역개정)라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1. NIV. What, then, was the purpose of the law?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2. KJV. Wherefore then serveth the law? 율법은 무엇을 위하여 섬기고 있는가?
3. NASB. Why the Law then? 왜 율법이 있는가?
★ 먼저 "그런즉"(then)이란 접속사는 시간상의 전후관계를 연결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자. 이제 질문에 해당하는 해답이 갈3:19의 후반부에 곧 나오고 있다.
★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후).
★ 이 해답의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인식하게 된다.
1) 율법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law): "더하여진 것“(added)이란 이전에 무엇인가(something) 존재하고 있었던 그것에 보태어졌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있었던 그것에 대하여 범법함(transgression)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것에 대한 규명“이 있어야하고 ”그것을 어떻게 범법하였는가“ 하는 사실도 동시에 규명되어야 한다. 율법은 더하여진 후에 자기가 할 일을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2) 율법의 마지막(the end of the law): "오시기까지 있을 것"(It was added ... till)이라는 말은 존재의 기간을 의미한다. 율법은 “더하여진 후 어느 시기까지에만 존재 한다”는 뜻이다. 그 율법의 존재기간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고 나면 율법은 자기의 할 일에 종식을 고하게 된다. “약속하신 자손”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16에서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규명하고 있다. 이 사실을 세례요한은 요한복음1:17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3) 위의 두 가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율법을 왜 주셨는가의 설명이며 롬4:15에서는 “율법 자체가 주어진 목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Because law brings wrath. And where there is no law there is no transgression. 롬4:15). 갈라디아서 3:19에서 이미 “율법은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The law was added because of transgressions.)고 하였다. 죄악(sin)이란 범법(transgression)과 같다는 사실을 계시하기(to reveal)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범법이 무엇인지 몰랐다가 율법이 생긴 후에는 범법을 알게 된 것과 같이, 죄악(sin)은 반역(rebellion)을 하고도 죄악(sin)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율법을 보고나서 죄악이 범법과 같다는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죄악(sin)은 율법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면 율법이 범법에 대한 진노와 심판을 불러오는 것과 같이(Law brings wrath.)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율법을 주신 목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 율법은 “더하여진 것”(added)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언제” “무엇”에 더하여졌는가? 주부들이 빵을 구울 때에 “밀가루에 달걀을 넣어야 한다면” 밀가루가 먼저 있어야하고 거기에 달걀을 넣어야 한다. 율법은 그 무엇에 추가된 것이다 그 무엇을 추적하자.
갈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 갈3:17에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의 언약”(the covenant of grace)을 약속한 후 430년 전까지는 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맺은 “은혜의 언약”은 무조건적으로(unconditionally) 주신 약속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이삭, 야곱, 요셉과 그들의 후손이 “은혜”(grace) 아래에서 살았다. 그들은 은혜로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넜고 은혜로 시내산에까지 도달하였다. 율법은 이때에 하나님께서 “은혜에 더하여 주셨다”(The law was added to grace)고 하였고 그러나 이때에 율법이 더하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은혜의 언약을 폐기하지 못하고 그 은혜의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였다”(갈3:17)고 설명하고 있다.
나. 출애굽기 19-20장에서는 은혜위에 율법을 더하여주신 배경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출19:1). 여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라웠다. 노예생활에서 풀려나온 은혜를 받고도 저들은 삼일이 지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역하였다. 그들은 마라에 이르러서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고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였다(출15:23-24).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출15:25).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엘림으로 인도하셨다. 거기에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물 곁에 장막을 치게 되었다(출15:27).
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
출16: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라. 이스라엘 백성은 신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러서 또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출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마.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이제 그 은혜가 지속되는 중에 하나님은 새로운 계명(the Ten Commandments)을 주시려고 계획하는 것이다. 그들의 죄악과 반역을 본다면 “은혜를 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은혜 위에 율법을 더하여 주실 것을 계획하신다.”
출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 5절에서 “만일 내 언약을 지키면”(if you obey)라는 말씀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아무 조건 없는” “무조건적”(unconditional) “은혜”(grace) 아래 살았던 저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셨다. 그것이 바로 “ ... 하면”(if) 이라는 조건(condition)이 수반되는 의무다. 이러한 조건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예“(YES!)로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8). 만일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지키면 그들은 축복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겠습니다.”
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여기서 알 수 있다. 무조건적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하면서 조건적 은혜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어리석음은 여기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자기의 행위의 결과로 얼마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가치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기를 원합니다. 조건을 철회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응답만이 곧 인간이 보여주어야 하는 바른 자세이다.
사. 하나님은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에 사는 백성의 무력함과 죄악성을 깨닫게 하여주셨다.
롬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아.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었다. 율법을 범한 자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 율법과 은혜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을 살펴본다.
가. 율법주의(legalism): 율법주의는 첫째, 형식주의다. 외형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관심을 갖는 태도에서 발현한다. 둘째, 율법주의는 욕심에서 발현한다. 무언가 크고 놀랍고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양심으로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있으나 자기만족과 탐욕을 채운다. 셋째, 율법주의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서 유익과 좋은 평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며 세속주의와 연결된다. 율법주의는 자기숭배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면, 따라서 그들은 칭찬과 영예와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율법주의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에게 영광을 들리는 것이다. 바울의 복음은 인간적인 안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율법주의의 대표적인 예가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고 경건생활에 힘쓰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율법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준수하므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을 먹은 사람들이었다.
나. 반율법주의(antinomianism):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에 의한 것이지 행위나 도덕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도덕적 의무나 원리들로부터 자유롭다고 하는 주장을 뜻한다. 반 율법주의는 율법의 폐기론으로써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행동을 하던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1)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오해하고는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에 그 은혜의 보답하는 삶을 살기위해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가증한 것과 연합하는 죄를 지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뿐만 아니라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고도 통회하지 않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고전5:1-6)은 아마 반율법주의자였을 것이며, 니골라당(계2:2,15)과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계2:14)이나 이세벨을 용납했던 자들(계2:20)이며, 분명히 비슷한 경향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2) 반율법주의자들의 경계를 위하여 신약성경 중에 야고보서가 존재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난 후에 율법 없이 그저 내버려지거나 율법 없는 자가 된 것이 아니다. 야고보서는 “그의 윤리에서는 자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과 행위는 모든 그릇된 언행을 심판하는 자유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3) 그리스도와 율법사이의 관계성을 잘 밝혀주는 3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a. 율법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무분별과 무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b. 그렇다고 하나님의 율법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c. 지속적인 율법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법에 매이는 것”이다.
다. 갈라디아주의(Galatianism): 이 명칭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 중에 가장 널리 퍼져 있던 사상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행위로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기는 하지만 구원받은 다음에는 율법에 절대 순종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행위로 그 구원이 보존 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교묘한 속임수다. 율법에서 해방된 우리에게 다시 궁극적인 구원은 율법을 지키는 데에 있다고 속임으로써 다시 율법에 얽매이게 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정되고 만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예리하게 반박한다.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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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의 기능에 관한 성경구절들: 율법의 부정적 요소에서 긍정적 요소인 그리스도로 향함
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released from the law)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율법에서부터 해방됨)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I died to the law)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율법을 대면한 죽음)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죽음의 법)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Christ redee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다시 찾음)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Christ is the end of the law)이 되시니라 (그리스도, 율법의 마침)
* 로마서 3:1에서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Then what advantage has the Jew?) 할례의 유익(the benefit of circumcision)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아래의 세 가지 사항을 내세우면서 우월성(advantages)과 자부심(arrogance)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1)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요8:33)고 대답하며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버림받은 백성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2) 우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백성들은 결코 저주 아래에서 살지 않는다고 그들은 확실히 믿고 있었다.
3) 우리들은 할례를 받은 백성들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할례의 규례를 지키면서 할례 받은 백성은 구원 받은 백성이며 결코 버림 받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선택하신 표를 몸에 가진 백성의 특권을 자랑하는 그들이었다.
* 유대인들의 우월성(advantages)과 자부심(arrogance)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심을 베풀고 계심은 롬2:4에서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고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들의 상항이 어떠할 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회개”를 강조하고 있다.
1.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Riches of God’s Kindness): “인자하심”(Gk. chrestotes)은 어떤 경우에도 품고 있는 인자함과 친절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성전청결을 감행하실 때에도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을 용서하실 때에도 “chrestotes”를 품고 계셨다.
2. 하나님의 풍성한 용납하심(Riches of God’s Tolerance): “용납하심”(Gk. anoche)은 휴전(a truce)에 사용되는 용어다. 적대심의 종식(a cessation of hostility)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회를 잘 사용하여 “회개할 것”을 바울은 권유하고 있다.
3. 하나님의 풍성한 인내하심(Riches of God’s Patience): “인내하심”(Gk. makrothumia)은 상대방을 향하여 참는 마음이다. 보복할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저들이 “회개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4.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In the days of Noah)에도, 롯의 시대(In the days Lot)에도, 모세의 시대(In the days Moses)에도, 이스라엘의 시대(In the days of Israel)에도, 예언자들의 시대(In the days of Prophets)에도, 구세주의 때(In the Savior’s Times)에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In our own days)에도 참고 계시므로 회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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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례”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찰하고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가를 추적하자.
★ 할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였다. 할례는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할례와 관련된 비참한 이스라엘 역사의 한 이야기가 창세기 34장에 기록되어 있다.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16.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17. 너희가 만일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24.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7.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징표로 육체에 할례를 거행하게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육적 할례는 행하였으나 마음의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여 선민의 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범죄 하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렘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렘9: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 결국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70년간 고난을 받고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진 후에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된다.
*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의 모형이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고 하였다.
가. 할례의 실상인 예수님은 오셔서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요3:1-13)고 하시면서 육체의 할례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이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감을 알게 하였으나 니고데모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은 눈과 귀가 어두워 복음의 실상인 예수님을 붙잡지 않고 복음의 그림자인 육체의 율법을 붙잡고 있었다.
나. 바울이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칠 때에 유대인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여 변론이 일어났고 예루살렘에서도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주장하므로 베드로가 말하되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를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다(행15:1-11).
다. 바울은 할례에 관하여 여러 번 서신에 기록을 남겼다.
고전7: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 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롬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갈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골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빌3: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라.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성령과 불(고난)로 세례를 주셨다(마3:11). 이 물은 눈에 보이는 물이지만 실상은 말씀을 가리킨다.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벧전3:21. 물(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롬3:1에서 바울은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Then what advantage has the Jew?) 할례의 유익(the benefit of circumcision)이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은 어떤 ”나음“을 가지고 있으며 할례의 유익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이다.
가. “나음”이란 원어는 형용사적 표현으로 “탁월한”(extraordinary), "놀라운“(remarkable) 이란 뜻이다. 유대인에게는 ”탁월함“과 ”놀라움“이 분명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영어로는 “advantage" 또는 “privilege”로 번역되어 “유리함, 우월함, 장점”으로 이해된다. 로마서 2:25에서 “할례자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고 만일 율법을 범하면 할례는 무할례가 된다”고 하면서 “율법과 할례”를 받은 유대인의 “탁월함과 우월함”(유리한 점)은 무엇인가를 재정리하는 질문을 펼치고 있다.
나. 바울은 1절에서 물어본 질문의 해답을 2절에서 전개하고 있다. “범사에 많으니 우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Great in every respect. First of all, that they were entrusted with the oracles of God. NASB).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을 심도 있게 강조하고 있다.
다. “하나님의 말씀”(the oracle of God)이란 특별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말씀”(the oracle)은 하나님의 목소리(the voice of God)가 나오는 “말씀하시는 장소”(the speaking place)를 의미한다. 실제로 지적하면 성전이나 성막의 지성소(the holiest place)이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약궤 위의 두 구릅(cherubim)이 있는 시은소(mercy seat)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 시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2) 행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living oracle)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모세)이라
(3) 롬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4) 히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elementary principles of the oracles of God)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5)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the oracles of God)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라. 종합하여 “하나님의 말씀”(the oracles of God)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여야 한다.
(1) 살아계신 말씀(The lively oracles):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
(2) 말씀(The oracle): 지성소의 시은소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The living oracle of God): 인격체로 나타나신 예수님.
(4) 오늘의 말씀(The oracle of today): 교회(주님의 몸) 안에서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말씀
마. “말씀”(oracle)은 “하나님의 특수한 명령” 즉 “신탁”(神託)이며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메시야의) 구원의 약속”(the promise of messianic salvation to Israel)이다. 이러한 신탁(oracle)은 어느 민족에게도 주신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탁월함과 놀라움이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써 율법과 할례를 받은 비밀의 놀라움을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신탁)의 성취가 메시야 예수님에게서 성취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만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2)으로 또 그 하나님의 말씀(oracle)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흥황하게 되었다. 우리들의 구주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God's oracle)을 성취하셨다.
바. 롬3:3-8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advantage)이란 것이 그들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반역과 죄악"(irrational objections and sins)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하나님의 미쁘심(God’s faithfulness)은 더욱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3절) (What if some did not have faith? Will their lack of faith nullify God's faithfulness?)는 질문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탁월성”(advantage)을 받고도 실패하였다면 아직도(still) 그 “하나님이 주신 탁월성”(“나음” advantage)은 유효한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무능하거나(powerless)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분(unfaithful)은 아니겠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롬3:4절이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2) 거짓된 인간은 자기의 거짓을 합리화 한다. 자기행위의 결과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합리화한다.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흠을 찾으려한다. 자기 잘못은 결과에 불과하며 그 원인은 자기 이외의 무엇에 돌린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다 거짓되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은 참되시다.”며 다윗의 시편 51:4가 인용된다.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관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51:7).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다윗의 범죄가 어떠하던지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며 성취하여 주신다.
* 롬3:1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advantage)이란 현상이 실제로는 “온 인류의 죄악” (Universal sin)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유대인의 나음(advantage)이란 현상은 확대되어 모든 인류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롬3:9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그리고 계속하여 시편의 말씀(하나님의 말씀, 신탁, oracle)에서 인간의 전적타락상을 열거한다.
10. (시14: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시5:9)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시140:3)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시10:7)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사59:7)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시36:1)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교회의 성도이며 아울러 교회의 성직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을 공부하며 신앙가정 출신이며 경건생활에 힘쓴다고 하면서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바르게 받지도 않고 바르게 행하지도 못한 결과이다. 늘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oracle)에 임하여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oracle)이 우리들의 생활에서 제외되고 "하나님의 말씀"(oracle)이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꾸중을 받아야 마땅하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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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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