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죄악을 이기는 영광의 삶 (롬6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로마서 제6장은 “죄악을 이기는 영광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전개되고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칭의)을 받은 성도는 “평강과 기쁨으로 소망의 삶”을 사는 혜택(칭의의 결과)을 누린다. 롬6장은 롬5-8장 내의 일부분이다. 실제로 롬5-8장은 소망을 주제로 하는 “환구도”(環構圖, The Ring Composition)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롬1-4장은 믿음을 주제로 형성되며 롬12-16장은 사랑을 주제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
* 따라서 롬6장은 아래에서 제시된 롬5-8장의 환구도(環構圖, The Ring Composition)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이 롬5-8장의 “환구도”의 핵심사항(核心事項)은 “칭의를 받은 성도는 장래의 영광을 소망으로 간직하고 산다”는 전체적 윤곽 안에서 롬6장은 “죄악을 이기는 영광의 삶”을 소주제(小主題)로 삼고 전개하고 있다.
● A-1 (5:1-11): 장래 영광의 소망(the hope of future glory)
● B-1 (5:12-21):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new life in Christ)
● C-1 (6:1-23): 죄악을 이긴 영광의 삶(glorious life from sin)
● C-2 (7:1-25): 율법을 벗은 영광의 삶(glorious life from law)
● B-2 (8:1-17): 그리스도 안에서의 능력(power in Christ)
● A-2 (8:18-39): 장래 영광의 소망(the hope of future glory)
* 이제까지의 내용과 로마서 6장을 연결하여 본다.
가. 로마서 3장에서는 稱義(得義, 義認)가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원리와 구조를 기록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불의(죄악)의 형벌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으로 죽어야(사망)만 하였다. 그러나 죽어야 하는 사람 대신에 의롭고 순결한 예수님께서는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 이 대속의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물(propitiation, appeasement)로 받으시고 동시에 속죄함(redemption)을 입은 사람의 불의(죄악)를 간과(看過)하시고(pass over) 사람을 의롭게 보시는 칭의(稱義)의 길이 열렸다. 이런 사실을 믿고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得義).
나.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이 자기들의 체험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고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에 “믿음으로 칭의를 받는 표본”으로 제시되었다. 그리하여 불의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로 여김을 받는 칭의의 축복이 선포되었다.
다. 로마서 5장에서는 칭의의 좋은 결과로 평강과 즐거움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장래 영광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을 마지막 아담 또는 둘째 사람인 우리 주 예수 님이 은혜 중에 베풀어주신 사실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그 혜택”은 예수님의 신비(비밀)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아담이 하와를 위하여 함께 선악과를 먹고 범죄의 자리에 들어간 모형인 것같이 교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세주”가 되신 것이다. 이 신비는 교회가 세워질 뿐 아니라 칭의가 이루어진 기초(원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라. 칭의는 구원의 입문을 위한 문(gate)라고 본다면 문을 통과한 즉시로 구원의 완성을 위한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것은 “성화”(sanctification)며 “거룩한 삶”이다. 그리하여 롬6:1-8:39에는 “승천하신 예수님 안에서의 믿음의 성화”(Sanctification by Faith in the Risen Jesus)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이 나오고 있다.
마. 이제 롬6장에 들어서면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칭의)”은 곧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연합”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연합은 일회적이 아니며 연속적이며 칭의(Justification)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삶으로 발전하여 가며 아울러 성화의 축복은 세상의 모든 시험과 유혹을 극복하면서 천국백성의 영광의 삶을 산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롬6장의 내용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 (롬6:1-14): 죽음의 삶=세례
●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 의로운 종들로 산다 (롬6:15-23): 종의 삶=성화
* 롬6:1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What shall we say then? Are we to continue in sin so that grace may increase?) 라는 질문을 한 후에 그 해답을 롬6:15에서 주고 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What then? Shall we sin because we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May it never be!). 롬6:1과 6:15의 질문과 해답을 중심으로 로마서 6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첫째 부분.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 (롬6:1-14)
● 둘째 부분.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 의로운 종들로 산다 (롬6:15-23)
* 롬6:1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What shall we say then? Are we to continue in sin so that grace may increase?) 라는 질문을 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김(칭의)을 받은 자는 결코 계속하여 범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롬6장과 이전에는 누차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롬5: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1에서 “우리가 . . . 죄에 거하겠느냐”(Are we to continue in sin?)는 질문에 대하여 롬6:2과 6:15에서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God forbid.)라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롬6:2에서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NASB. May it never be! How shall we who died to sin still live in it? KJV. God forbid. How shall we, that are dead to sin, live any longer therein? NIV. By no means! We died to sin; how can we live in it any longer?) (KJV에서 “God forbid.” 즉 “하나님이 금하고 허락하시지 않는다!”)
롬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NASB. For sin shall not be master over you, for you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KJV. For sin shall not have dominion over you: for ye are not under the law, but under grace. NIV. For sin shall not be your master, because you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롬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NASB. What then? Shall we sin because we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May it never be! KJV. What then? shall we sin, because we are not under the law, but under grace? God forbid. NIV. What then? Shall we sin because we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By no means!) (KJV에서 “God forbid.” 즉 “하나님이 금하고 허락하시지 않는다!”)
* 롬6:1에서 “우리가 . . . 죄에 거하겠느냐”(Are we to continue in sin?)는 질문에 해당한 다른 해답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는 사실이다. “이미 죄로 인하여 죽었는데 어떻게 더 살겠는가?”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죽음”(death)이다. 롬4-6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죽음”을 비교하여 본다.
-롬4장에서 아브라함(사라, 이삭)의 죽음: 육체(Body)의 죽음과 부활(Resurrection)
-롬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대속(Substitution)의 죽음
-롬6장에서 성도(the believer)의 죽음: 예수님과 하나를 이룬(Identification) 죽음.
● 성도가 “죄악으로 인하여 죽었다”(died to sin or dead to sin)고 하면 더 이상 그 성도는 죄악 안에서 살 수 없다.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죄악 안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죄악 때문에는 죽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로마서 5장과 6장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substitution, objective truth): 롬5장
둘째,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는 죽음(identification, subjective truth): 롬6장
* 로마서 6장 안에는 “죽음”(death) 또는 “죽었다”(dead)라는 단어가 15회 사용되고 있다(롬6:1-22, 12, 16, 21, 23). 바울은 “믿는 자”(the believer)를 “죄에 대하여 죽은 자”(being dead to sin)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참뜻은 무엇인지 또는 “죽음”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 육체적 죽음(Physical Death): 이것은 육체(the body)가 영혼(the soul and spirit)과 분리되는 것(the separation)이다. 아담은 육체적(physically died)으로 930세를 살고 죽었다. 죽음(death)은 죄(sin)로 인하여 들어왔다. 아담은 죽었고 그가 죽은 이후에 모든 사람은 죽음(death)을 당하게 되었다.
★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창5:4-5.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 롬5:12-21; 고전15:21-22(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 영적 죽음(Spiritual Death): 이것은 영혼(the soul and spirit)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God, the source of all life)과 분리되는 것(the separation)이다. 아담은 죄를 범한 순간 영이 죽은 것이다(창2:17). 인간(mankind)은 육체는 잠시 살아있으나 죄와 허물로 죽었다(엡2:1-3). 인간은 현재(in its present state) 살아있어도 죄악들로 인하여(in sins) 또 하나님을 향하여(to God) 영적으로 죽은 존재다.
딤전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요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엡2: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3.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 이것은 “두 번째 죽음”(the second death)이라고 부르며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원하신 임재”(His eternal presence)에서의 결별(separation)을 뜻한다.
사66: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where THEIR WORM DOES NOT DIE,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where THEIR WORM DOES NOT DIE,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 총체적 사고구조로 볼 때 “죽음”(Death)이란 것은 “소멸되는 것(annihilation)이 아니며” 또 “비존재(non-existence)의 상태(a state)도 아니다.” “죽음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의 실질적 존재가 여러 부분(the various parts)으로 분리되는 것(separation)을 의미한다. 바울은 믿는 자(the believer)의 영적 상태(a spiritual state)를 언급하면서 믿는 자는 ”죄에 대한 죽음의 존재“(롬6:2, 10, 11; being dead to sin)라고 하면서 ”죄악 된 삶에서의 분리“(separation from sinful living)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바울은 “죄가 우리를 대하여 죽었다”(sin is dead to us)고 하지 않고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we are dead to sin)고 하였다. “죄인”(the sinner)은 “죄 안에서 죽은 자” (dead in sin)다. 의와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고(separated) 죄와 사망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단절된(separated) 것이다.
5. “죄와 허물로 죽었다”(엡2:1)에서 “죽음”(Gk. nekros, Eng. dead)이란 “죽은 몸”(a dead body) 또는 “시체”(a corpse)를 의미한다. 야고보서 2:26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고 정의한 대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불신자, the unsaved person)은 “영적인 시체”(a spiritual corpse)다. 육체적으로는 숨도 쉬고 걸어다니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체”에 불과하다. “죽은 것 같다”(look dead)는 표현은 부적절하며 “이미(참으로) 죽었다”(really dead)는 엄연한 사실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며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던 우리들”이라는 사실이다. “죄의 문제점”과 “영적 죽음의 심각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참 생명의 고귀함과 가치”를 추구하게 되며 “참다운 회개(repentance)”에 이르게 된다.
6. 회개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가 된다. 하나는 불신으로부터의 회개, 즉 불신자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회개다. 이 회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신앙세계에 들어온 방향수정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회개와 믿음은 구원의 조건으로 반드시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회개는 거듭남(중생)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며 이것은 단회적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믿는 자(그리스도인)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부합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여야만 하는 성화과정에서의 회개다. 성화과정의 회개는 헤아릴 수 없는 죄의 종목과 더불어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회개다. 성경말씀은 성화과정에서의 반복적인 회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4).
★ 소위 구원파에서 위 개념에 대한 착각을 볼 수 있는데, 구원파는 오히려 회개를 믿음의 단계에서의 단회적인 회개로만 알고 있으며, 성화라는 과정의 회개와 구별치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는 일생동안 한번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죄에 대한 반복적인 회개는 더 이상 없으며, 단지 자백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의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와 영화(glorification)의 과정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 가.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과거적인 개념), 현재 걷고 있는 구원(현재적인 개념), 궁극적으로 받을 구원(미래적인 개념)에 대해서 균형 있게 말하며, 이미 십자가 대속으로 죄책은 면제되었지만, 거듭난 자도 죄성을 갖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의 열매로서의 성화의 과정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회개에 대해서는 믿음의 회개와 성화를 위한 죄에 대한 회개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나. 중생(born again)과 칭의(justification)에 요구되는 믿음과 회개(하나님을 향한 회심)는 생애에 단 한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생 이후의 성화의 회개는 지속적이며 반복적이다. 특별이 성화의 회개에서는 구원의 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함께하여 깨닫게 하여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지옥 형벌)에 연관되지 않는다.
다. “죄를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회개하는 사람이 의인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신다는 주장을 하면 행위구원론자가 되며 “율법주의적 이단자”로 간주된다. 사람은 누구도 의롭지 못하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써 의로우신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여겨지는 것”(칭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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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6:3-5에서는 죽음과 직접 관련이 있는 “세례‘(baptism)를 언급하고 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 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 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3-6절에서 “세례”(baptism)를 언급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 묻힘, 부활과 연결한 것임.
3절에서: “죽음”(Death-the Cross)-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in Jesus’ death)
4절에서: “묻힘”(Burial-the tomb)-예수님과 함께 장사됨(buried with Jesus)
5절에서: “부활”(Resurrection-the empty tomb)-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연합(in)
2. 세례(baptism)라는 말과 뜻은 “죽음”과 직결된다. 본래 세례(헬, baptizo)란 선원들의 용어로써 “물에 잠기다”는 뜻이다. 그들은 배가 파선되어 물속에 빠져 들어갈 때 “세례! 세례!” (Baptizo! Baptizo!)라고 부르짖었다. 우리말로는 “사람 살려!” “나 죽어!”라는 비명이다. 이때 구조원이 와서 물속에 뛰어 들어간다. 예수님은 죽음에 처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음(물) 속에 뛰어 들어오신다. 죽음 속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붙드는 순간 예수님과 함께 구출되며 생명을 다시 찾게 된다. 이사야 53:2에서 “예수님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여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다”고 예언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의로우신 요구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21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례”(Baptizm)는 생명이 구원된다는 믿음과 소망으로 시행된다.
3. 3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united) 세례를 받는다”고 하였다. 믿는 자(the believer)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세례를 받으며 죄에 대하여 죽은 자(dead to sin)가 된다. 세례는 예수님의 죽음 속으로(into His death) 잠겨 들어가는(immersion) 것이다.
● 육적 세례(baptism bodily: 물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안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이다(immersion into the name of the Godhead). 물세례는 과거의 죄악에 대한 청산을 위하여 받는다.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 영적 세례(baptism spiritually: 중생)는 영으로 거듭 난(new birth) 새 피조물(the new creature)로써 예수님 안으로 잠기는 것(immersion into Jesus)이다. 영적 세례는 성령님 세례로써 미래의 능력 있는 새 삶을 위하여 받는다. 믿는 자는 새 피조물로써 예수님 안에(into Jesus) 삶의 자리를 놓게 된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ure; the old things passed away; behold, new things have come.
4. “세례의 정결작업”은 “인간의 내면(마음 속)의 죄를 씻어내는 일”이다. “물”(water)을 가지고 외부를 깨끗하게 하는 것 자체는 “상징, 표”(symbol)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면을 정결하게 하는 “수단, 도구”(instrument)가 되는 것이다. “상징”과 “수단”이 맞물려 귀한 생명과 진리를 실질적으로 제공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씻어지는 것과 같은 것”(just like a bath)이 아니라 “씻어지는 것”(It is a bath)이다.
행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And now what are you waiting for? Get up, be baptized and wash your sins away, calling on his name.')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5. 또한 “세례는 죽이고 살리는 작업”이 병행된다. 세례는 인간의 종교적 활동의 일환이 아니며 하나님이 허락하여주신 “거룩한 행사”(the divine activity)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Divine grace)인 것이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6. 구원을 받기 위하여서 이스라엘 백성은 반드시 애굽 땅에서 홍해를 건너야만 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세례”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례의 과정을 통과하여야 구원을 받으며 사단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죄악의 지배 아래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반드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아야 하며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은혜 가운데에서” 살아야 한다.
고전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They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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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6장은 “죽음, 죽다”와 “삶, 살다”(19회)라는 두 극단적 표현이 계속하여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죽음은 죄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그 가운데서 더 살수 없다”(2)는 것이며, “삶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그와 함께 산다”(8. live with Him)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died to sin)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라고 질문하면서 “그럴 수 없느니라”(롬6:2, 15)라는 단호한 대답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은혜가 더욱 넘치므로 죄 가운데 살 수 없다(롬5:20).
둘째, 칭의의 다스림으로 인한 은혜 가운데에서 영생으로 향하여 가는 삶의 연장선에 있으므로 죄악에서 떠난 것이다(롬5:21).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But where sin increased, grace increased all the more)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grace might reign through righteousness)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로마서 6장 15-23절에서는 종(slave)의 삶을 강조하면서 “거룩함(sanctification)에 이르는 종(slave)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롬6:1-2(6장의 전반부)와 롬6:15-16(6장의 후반부)의 시작이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유의하자.
● 롬6:1-2에서의 질의응답 (예수님 안에서 연합한 자의 확신: 세례)
질문: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대답: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롬6:15-16에서의 질의응답 (예수님 안에서 연합한 자의 확신: 성화)
질문: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대답: 그럴 수 없느니라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2. 롬6:16에서 “순종에서 발생하는 두 결과”(Obedience results in slavery): 누구에게 순종하는가에 따라서 두 가지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다. 순종은 사람의 소속감을 나타낸다. 사람은 어디에라도 반드시 소속되어 있다. 당시 로마 국민의 80%는 노예들(slaves)이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죄의 종 (slaves of sin): 결과는 “사망”(resulting in death)
● 순종의 종 (slaves of obedience): 결과는 “의”(resulting in righteousness)
3. 유대인은 애굽의 노예생활에 대한 애환(哀歡)을 잘 알고 있다. 노예생활에서의 해방은 전체적 소속감이라는 사실을 바로 왕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다.
★ 출애굽 당시의 사적을 본다.
출 6: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출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파리재앙 후에)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출10: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누구냐 (메뚜기 재앙)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흑암의 재앙)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출12: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 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경건생활과 거룩한 삶을 하게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곧 ”성화의 삶“(Sanctification)을 의미한다.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So now present your members as slaves to righteousness, resulting in sanctification. NASB)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But now having been freed from sin and enslaved to God, you derive your benefit, resulting in sanctification, and the outcome, eternal life. NASB)
* 성화(Sanctification, 거룩함)에 대한 신학적 개념을 살펴본다. 본래 성화(거룩함)이란 “성별” 즉 “떼어놓음, 성스러운 구별”(consecrating, making holy)을 의미하며 “분리하여 놓음”(set apart)의 작업이 요구된다. 구약에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였다.
레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출19: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수 3: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레22:32. 너희는 내 성호(My holy name)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출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대하29: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출29:37.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 성화(거룩함)의 개념과 내용이 신약에 와서는 완전히 다른 형태와 내용을 나타낸다.
가. 이제까지는 거룩한 세계와 세속적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이분법적 상황에서 성화(거룩함)을 정의하였던 것이 이제는 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이 인간의 “세속적 세계”에 침투하여 들어가는 형태로 달라진 것이다. “저기에 계신” 하나님이 이제는 “여기에 계신” 하나님이 되셔서 분리가 아니라 연합과 일치라는 개념 속에서 거룩한 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본래 종교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때에 인간들은 “저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동철목석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을 섬겨왔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화(거룩함)은 의심할 여지없이 거룩함 그 자체로 존재하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이미 여기에 와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모셔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분이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고 선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세속화 되었던 인간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성화)을 입으면 비록 세속화의 생활은 매일 계속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거룩함을 입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거룩함의 성별된 생활을 하게 된다.
나. 그러므로 로마서 6:19의 말씀과 같은 삶에 이르게 된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So now present your members as slaves to righteousness, resulting in sanctification.) 또 로마서 6:22의 말씀과 같이 열매 맺는 삶을 이루게 된다.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But now having been freed from sin and enslaved to God, you derive your benefit, resulting in sanctification, and the outcome, eternal life.) 세속의 삶 속에서 “거룩함에 이르게 되고,”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거룩함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의 공로를 힘입어야만 할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예수님)과 성령님만이 세속의 환경 속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면서 “거룩하게 만듬”의 사역을 이루신다.
히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후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성화(거룩함, Sanctification)이란 무엇인지 그 대의는 위에서 언급하였거니와 이제 로마서 6장에서는 그 거룩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세 가지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로마서 6장은 이 세 가지 가르침을 따라서 분류하고 있다. 그 내용을 따라서 “거룩함”(성화)에 이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 “알라”(know: 6:1-10),
● "여기라“(count; 6:11),
● "드리라“(offer; 6:12-23)
● 로마서 6:1-10 (알라, know): “알다”(know)라는 용어는 3, 6, 9절에 기록되고 있으면서 어떤 행동(action)의 바로 뒤에 사용되고 있다. 무엇을 알라는 것인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합하여, 함께, 연합하여, 죽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 처음이 ”세례 받음“이며 그 나중은 ”십자가에 못 박힘“이다.
3: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3: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3: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로마서 6:1-10에는 반복되는 용어가 계속하여 나오고 있다. “합하여”(into; 3, 3, 4), “함께(with; 4, 6, 8, 8), ”연합한“(united; 5, 5) 이라는 세 용어다. 둘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이렇게 세 가지로 표현한 것이다. 둘이 ”합하여, 함께,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사실을 ”세례를 받는 일“(baptism)과 ”십자가의 죽음“(crucifying)과 직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물세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불세례)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 로마서 6:1-10의 내용에서 예수님과 합하여 죽은 성도가 “알아야 할 사항”이 또 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어야 성화(거룩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첫째, 성도는 죄에 대하여(향하여) 이미 죽었다(He is dead to sin)는 사실이다. 바울이 예로 든 “세례”는 문자적으로는 “물에 잠긴다, 물에 담그다”(dip, immerse)라는 뜻이며 내용적으로는 “하나가 되다”(identified with)라는 뜻이다. “세례”(Gk. baptizo)란 본래 선원들의 용어로써 좌초당하여 배가 물속에 빠져 들어갈 때 “세례!”(“물에 빠진다!” “사람 살려!”)를 외친다. “나는 죽었다”는 마지막 외침과 같은 것이다. 이때 구조원은 “물에 빠져 죽은 자”를 붙들고 한 몽이 되어 함께 구원선으로 구조되는 것이다. 죄악의 세파에서 살 수 있는 길은 구원의 주 예수님과 하나가 됨(identifying)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0:1-2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모세와 한 몸을 이루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설명은 신약의 여러 곳에 나온다.
롬6:3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물세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요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둘째, 성도는 죄를 섬기지 말아야 한다(He should not serve sin)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1. 죄는 “악한 주인”과 같아서 수하에 거느릴 종(servant)을 우리 사람의 몸(human body)에서 찾아낸다. 인간의 육체란 죄악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육체(body)는 악한 것도 아니며 선한 것도 아닌 중성(neutral)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육체는 사람의 “죄에 의하여” 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조절을 받고 있는 존재다. 거듭나지(하늘로부터 태어나지) 못한 타락한 죄악성을 가진 사람은 그의 죄악으로 육체(몸)을 공격하고 지배하고 다스린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로마서 7:17-18에서 설명하고 있다.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2. 그런데 옛 사람(죄악)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육체(몸)은 더 이상 옛 사람의 죄악으로 조절 당하지 아니한다. 롬6:6에서 “죄의 몸이 죽어”라는 표현에서 “죽었다”(destroyed)는 것은 “사멸”(사멸, 죽어서 사라짐)된 것이 아니며 “비활성화 됨”(rendered inactive) 또는 “비효율화 됨”(made of no effect)을 의미한다. 똑 같은 육체(몸)인데 이제는 죄와는 관계가 끊어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로마서 7:2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여기에서 “벗어나다”(released, NIV; loosed, KJV), 즉 “풀어나다, 해방되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율법)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나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이전에 그 여인을 매고 있던 법의 효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 로마서 6:11(여기라, count)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
가. “여기다”(count)라는 말은 “계산하다, 믿다,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자산(재산, 소유)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상태다. 우리는 수표에 기록된 액수를 보고 안다(know). 그 액수가 현찰로 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뒷면에 싸인(endorsing sign)을 해야 한다. 알고 싸인 하는 행위이다. 종이에 적힌 수표의 액수는 죽어있는 글자이며 활성화 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에 대하여 죽어있는 상태”에서 “비활성화”되고 “비활동적”이기를 원치 않으신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자신을 활성화하기를 원하신다.“ 죄를 향하여서는 죽었으나 의를 향하여서는 살아있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로마서 6:12-23 (드리라, 내주라, offer, NIV; yield, KJV; present, NASB) “드리라”고 하는 용어는 6:13, 16, 19에 나온다.
13. 또한 너희 지체(the parts of your body)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the parts of your body)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present yourselves to God)
16. 너희 자신(yourselves)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the parts of your body)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가. 우리말로는 “드리다” 또는 “내주다”로 번역되어 있으나 실상은 같은 용어다. 우리의 육체(몸)은 선하게도 악하게도 사용된다. 이미 전 페이지에서 육체(body)는 악한 것도 아니며 선한 것도 아닌 중성(neutral)에 속한 것이므로 사람의 “죄에 의하여” 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조절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피력하였다. 여기에서는 우리의 육체(body)를 지체(the parts of the body)로 표현하면서 어떤 하나의 몸의 기관일지라도 바르게 내어드려야(내주다 + 드리다) 성화(거룩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나. 어떻게 하면 바르게 내어드릴 수 있겠는가를 6:12-13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게 된 자신을 알고 보화로 여기고 있지만 그 자산을 자기의 “지체”(the parts of the body)에 공급하라는 것이다. 6:13에서 “지체”를 “의의 무기” (instruments of righteousness)로 “드리라”는 것이다. “의의 도구”가 되어버리면 다르게 사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코 불의의 도구가 될수 없다. “의의 도구가 됨”(13)을 강조하는 표현이 또 나오고 있다.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라”(16절: yield yourselves servants to obey ... unto righteousness), 또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19절. yield your members servants to righteousness unto holiness)고 한다. 로마서 12:1에서는 더욱 명확한 설명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Therefore I urge you,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and holy sacrifice,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service of worship.).
우리의 몸 또는 지체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단번에”(once-and-for-all, 모든 것을 일시에) 드려야 한다. 이것은 “최종적이며(final) 완전한(complete) 순종의 행위(surrender)”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몸이 드려지기를 원하시는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고전6:19-20; 빌1:20-21).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도구(tool)와 무기(weapon)로 사용하시를 원하신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라. 신구약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도의 몸과 도구를 귀하게 사용하셨다. 모세의 손과 함께 지팡이는 애굽의 세력을 정복하였다. 다윗의 손가락 끝에 매어달린 물맷돌은 불레셋 대군을 몰아내었다. 예언자와 선지자의 혀와 입술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바울이 내어드린 발바닥으로 복음은 세상에 널리 퍼졌다. 사도 요한의 눈과 귀와 손은 계시의 말씀을 보고 듣고 기록하였다.
마. 순간적인 유혹과 시험으로 넘어질 수는 있으나 “내어드린” 우리의 몸과 지체는 회개와 더불어 회복의 능력을 입고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동행하심에 후회하지 않으신다. 시편 51편을 본다.
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청결)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눈앞의 죄)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마음의 진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듣는 귀)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깨끗한 마음)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노래하는 혀와 입)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찬양)
바. 우리는 왜 내어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핵심이 또한 롬6:14-23에서 전개하고 있다.
1)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14-15)
2) 우리로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므로(16-20)
3) 우리로 하여금 의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시므로(21-23).
*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와의 관계 비교
칭의 (稱義) 성화 (聖化)
단번에 그리고 끝까지(Once for all) 칭의 이후의 연속성(Continuing event)
하나님이 의로 여기시는 선포 하나님의 의에 거하는 영속적인 분리(Setting)
죄와 허물에서의 구원(Deliverance) 죄와 허물을 이기는 능력(Power)
의를 입히심(Imputation) 의로 분류(Impartation)
선포(Declaration) 효력(Efficient)
하나님의 의에 대한 관심 신자의 성품에 대한 관심
사람의 신앙경력(Standing) 사람의 신앙자세(State of being)
단회적 설정(Positional) 연속적 경험(Experimental)
성도를 위하여(for) 행하여짐 성도 안에서(in) 이루어짐
* 롬6:23에서 “죄”와 “은혜”와의 비교
죄 (罪) 은혜 (恩惠)
죄의 삯이 반드시 있음 (Earned) 선물로 주어짐(Gift)
결과: 죽음(Death) 결과: 영생(Eternal Life)
죽어야 마땅함(Deserved) 받을 가치가 없음(Undeserved)
죄가 삯을 준비함(Sin provides) 하나님이 선물을 준비gka(God provides)
현재성(present tense) 현재성(present t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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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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