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0일 토요일

6. 성경의 단어 해석법

        6. 성경의 단어(Words) 해석법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성경을 해석(Interpretation)하는 첫 번째 작업은 문자(Literal)로 기록된 문장들의 기초 단위가 되는 단어(Word) 하나하나의 의미(Meaning)”를 바르게 밝혀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기록된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 문장을 읽은 사람의 이해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단어의 의미”(Meaning)를 밝히려고 할 때에는 먼저 의미의 뜻”(Meaning of “the Meaning”)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의미(Meaning)”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Word)가 기록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배경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열거한 배경들은 모두가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의미의 출처는 다양하다는 뜻이다

. 저자가 의도한 의미 (Meaning of Author)
. 본문이 함축한 의미 (Meaning of Text)
. 청중이 이해한 의미 (Meaning of Audience)
. 현장에 감추인 의미 (Meaning of Reality)
. 문자가 풍기는 의미 (Meaning of Literature)
. 언어의 색다른 의미 (Meaning of Language)
. 문화의 독특한 의미 (Meaning of Culture)
 
이러한 요소들은 개개의 단어(Word)와 문장(Sentence)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단어 하나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문장의 전후관계 즉 문맥(context)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만일 조심하지 않고 쉽사리 단어의 의미를 단정(斷定)하고 그 의미를 어디에나 적용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 그러면 바른 의미”(Meaning)를 밝혀내지 못하게 하는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신학자들이나 성서 번역가들은 아래에 열거한 문제점들 때문에 옳지 않은 단어의 의미를 표현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은 겸허한 자세로 여러 번역 성경들을 비교하거나 성구사전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단어(Word)의 바른 의미”(Meaning)는 언제나 조심성과 인내를 가지고 찾아내어야 한다.
 
첫째, 원어번역(Translation) 신중성의 문제: 성경원어(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번역사전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바른 의미을 선택하는데 혼동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헬라어의 “paraklesis”는 영어의 번역에서만 보아도 위로(comfort), 격려(encouragement), 호소(appeal), 높힘(exhortation) 등의 명사형 또는 동사형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어떤 번역을 사용할 것인지 주저하게 된다.
 
둘째, 원어 어원(Root) 맹신의 문제: 단어의 바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하여서는 원어의 어원을 (etymology of the word) 탐색하는 경우가 많다. 어근(Root)은 단어의 초기발전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므로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겠으나 의미 자체는 아님으로 문맥(Context)과 맞지 않으므로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셋째, 시대구조(Time-Frame) 착각의 문제: 옛 시대의 원어를 직역한 단어의 의미는 그 시대의 시대구조에서 통용되었으나 오늘의 시대구조에 사용되기 위하여서는 전문가들이 문맥에 맞게 바른 의미로 번역하여야 한다.
 
넷째, 과부하(過負荷, Overload)된 의미의 재사용 문제: 거의 모든 단어는 몇 가지의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할 때마다 일률적으로 그 의미들을 적용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spring”, 초기, 도약, 활력, 용수철, 탄력, 샘물. 원천, 근원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문맥에 따라 사용되기 때문에 일시에 모두를 적용할 수 없다.
 
다섯째, 단어반복(Word-Count)시 동일개념의 문제: 단어가 반복하여 사용될 때에 언제나 동일한 의미로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반복된다고 하여도 단어의 의미는 늘 가까운 문단(Immediate Syntax)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갈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Have you suffered so much for nothing--if it really was for nothing?”에서 괴로움(고난) 받다”(suffered)라는 표현은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으나 여기의 문맥에서는 긍정적 의미로 경험하다라는 뜻이다.
 
여섯째, 단어개념(Word-Concept)의 전횡적 사용의 문제: 지난번에 공부한 단어의 의미를 다음번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교회에클레시아라는 헤라어(Gk. ekklesia)를 번역한 단어다. 그러나 언제나 교회가 아니고 때로는 그리스도의 몸,” “성령님의 전(temple),” 또는 믿음의 가정등으로 사용된다.
 
일곱째, 선별적증명(Selective-Evidence) 재활용의 문제: 자기가 충분히 입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의 의미라고 하더라도 사용되는 장소에 따라서는 다른 의미로 다르게 사용될 수 있으므로 늘 그 증명을 가지고 주장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다르게 증명되는 (evidence) 소지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단어들 중에서 그 바른 의미를 알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연구하고 확인하는 지혜와 열심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 위에서 여러 가지로 살펴보았으나 언어학적으로 말하자면 의미”(Meaning)란 어떤 단어(Word) 자체가 본래부터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란 관계들의 결과에 기인한 집합체이며 단어(Word)로 명기된 글자(Letter)는 그러한 관계들을 모아놓은 언어적 상징이며 기호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문맥(Context)에 따라서 의미(Meaning)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제 단어공부를 위한 몇 가지 지침을 정리하여 본다.
 
첫째, 문단(Passage) 안에서 결정적으로(Crucial) 중요한 단어들(Words)을 선택하고 공부하라. 모든 단어들이 다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어떤 단어(Word)가 매우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는 주문장(Main Sentence)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주어(Noun Subject)와 목적어(Object)와 동사(Verb)가 매우 중요하며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단어들(Words)로 인하여 문단(Passage) 자체의 중요성이 나타나며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둘째, 문단(Passage)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단어들(Repeated Words)에 관심을 기울여라. 일반적으로 저자는 의도적으로 모종의 단어를 반복사용하면서 중요성의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왜 그 단어가 반복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셋째, 문단(Passage) 안에서 비유(Figures of Speech)로 기록된 단어들에 관심을 기울여라. 비유로 쓰여진 단어들은 그 단어가 쓰여진 글자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단어가 풍기는 냄새(flavor), 그림(picture), 형상(image) 등의 배경에 중요성이 실려 있다. 비유로 쓰여진 단어의 형상은 자동적으로 의미를 나타내지 않으며 그 단어가 사용된 배경에 따라서 의미가 결정될 때에 그 심오한 뜻을 깨닫게 하여준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나는 문이라”(10:9, I am the gate)고 말씀하신 것은 문 자체의 의미보다는 예수님이 어떤 문의 기능을 하고 계시는가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자라는 동물은 예수님과 사탄에 공히 비유로 사용되고 있는데(5:5; 벧전5:8) 어떤 점을 적용시키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은 연구를 통하여 설명된다.
 
넷째, 문단(Passage) 안에서 분명하지 않고(unclear), 의혹이 생기고(puzzling), 난해한(difficult) 단어들(Words)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라. 어떤 단어는 단어 자체가 알기 어렵고, 어떤 단어는 성경마다 다르게 기록되었고, 또 어떤 단어는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럴 때에는 매우 중요한 단어일수록 두통거리를 준다”(The most important words are those that give you trouble)라는 학자들의 통용어를 기억하고 그런 단어일수록 더 공부하여야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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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문단들(Passages)에서 단어(Words)의 의미(Meaning)를 공부하여야만 하는 단어는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본다.
 
[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       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     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으로 위의 말씀을 주셨다. 예수님은 이 문단(Passage)에서 예수님이 계획하신 뜻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명령하여 주셨다. 그러나 이 문단 안에 나오고 있는 단어들(Words)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교회사역에 혼선을 빚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 위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네 가지의 명령을 주셨다고 오해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있다. “가서”(19)가라”(전도와 선교), “삼아”(19)삼아라”(제자화와 친교), “베풀고”(19)베풀라”(예배와 성례), “가르쳐”(20)가르치라”(교육과 봉사)라고 하면서 네 단어들을 모두 동사(verb) 명령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큰 잘못이며 여기에서 혼동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복잡하게 네 가지의 명령을 목표로 삼고 사역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더라도 목표(goal)는 언제나 하나이어야 한다.
 
. 해석은 바른 의미”(meaning)를 밝히는 것이다. 위에서 네 가지의 단어들(Words) 중에서 동사명령형제자로 삼아라”(Make disciples)는 단어(Word)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세 가지 가라,” “베풀라,” “가르치라는 것은 동사명령형이 아니며 분사형(participles)으로써 “ . . .을 하면서라는 진행을 나타낸다. 따라서 가면서”(going), “베풀면서”(baptizing), “가르치면서”(teaching)의 세 가지 분사형 단어들은 진행형으로써 목표인 동사를 보조하는 수단(방법)의 역할을 한다. “제자를 만들기위하여서는 가면서”(전도), “베풀면서”(예배), “가르치면서”(교육)이라는 방법들의 뒷받침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원히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제자들이 사역하는 제자 만들기사역에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시고 계심을 약속하여 주셨다. “제자 만들기사역은 하늘에 계신 주 예수님의 뜻을 제자들이 지상에서 실현하는 놀라운 구원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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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12]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위의 산상설교(The Sermon on the Mount)의 서두에서 복이 있다”(Gk. makarios, Blessed)고 기록된 단어(Word)는 구약과 신약에서 공히 나오는 축복”(blessings)의 일환이다. 아래에 그 예들을 기록한다.
 
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2: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1: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계 1: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복이 있다”(blessed)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지칭하여 하는 말로써 행복하다”(happy), “행운이 있다”(fortunate), “축하 받을만하다”(to be congratulate)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상항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응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생애 가운데 예비하여 놓으신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게 될 것이 확실하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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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3, 7-10]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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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 위의 문단(Passage)에서 여러 번 나오는 ”(Gk. thyras. door)은 글자대로 실질적인 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문과 같다고 하지 않으시고 문이다라고 단언하신다. 그리고 문과 더불어 비유와 상징의 단어들을 계속하여 언급하신다. “”(sheep), “우리”(pen, fold), “절도(thief), 강도(robber), 도둑(thief), 타인(stranger),” “목자”(shepherd), “문지기” (watchman, doorkeeper), “양의 이름”(name of sheep) 등이다.
 
. 단어뿐 아니라 상징적 문구(clause, phrase, sentence)들도 사용하시는데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등등이다.
 
. 상징과 비유의 설명에는 이해의 혼선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내가 문이라,”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였는데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라고 설명하신다. 앞에 나오는 이 예수님이시면 뒤에 나오는 은 무엇인가?
 
. 이 문단(Paragraph)의 말씀 안에는 비유와 상징이 아닌 부분도 함께 나오고 있다. 9절의 후반부를 본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에서 구원을 받고꼴을 얻으리라는 직언이다. 10절의 하반부를 본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에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표현도 직언이다. 그러므로 상징과 직언의 설명에서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단어와 문장의 이해는 문맥(Context)에 의존하므로 전후관계를 살펴본다.
 
. 실제로 위의 기록에는 두 문단(Paragraphs) 1-6절과 7-18절로 되어 있다. 첫 문단에서는 명쾌한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6절에서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음 문단 즉 선한 목자의 기록을 읽으면 앞의 문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이후의 문단 즉 10:22-39절과 이전의 문단 즉 9:35-41절을 읽으면 더 폭 넓은 이해가 생기게 된다. 예수님은 왜 나는 선한 목자”(I am the good shepherd)라고 말씀하셨는가? 에스겔 34:10-12의 말씀을 읽어본다.
 
1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 이 문단(Paragraph)을 더 확실하게 이해하려면 요7-9장의 내용연구를 하여야 한다.
 
. 예수님은 이시며 특별히 양의 문이시다. 들에서 양을 치다가 저녁이 되면 언덕의 쑥 들어간 장소를 우리로 삼고 양들을 그곳에 다 들여다 놓고 목자는 양들 앞에 눕는다. 그러면 양은 목자를 넘어가지 않으므로 목자 자신은 문의 역할을 한다.
 
. “절도, 강도, 도둑, 타인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서기관, 바리새인, 헤롯당원 등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예수님은 나는 문이다”(I am the gate), “나는 선한 목자다”(I am the good shepherd)라고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nature)”을 가르치신 것임을 성경전체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3:14. I Am Who I Am.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고 말씀하시면서 영원성을 시사하여 주셨다. 이러한 배경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의 기록에서 영원한 믿음의 주님이 되신다는 뜻으로 여덟 가지 나는 . . .이니라나는 생명의 떡이니라”(6:35. I am the bread of life.),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8:12), “나는 문이니라”(10:9), “나는 선한 목자니라”(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14:6), “나는 포도나무라”(15:5)를 선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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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12]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요한복음은 믿음의 복음서”(Gospel of Belief).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20:30-31)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믿음과 생명을 주려는 것이다.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1-12장은 일반 대중을 위한 믿음과 생명의 기록이며 요13-17장은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믿음과 생명의 기록이다. “믿음이란 올바른 관계의 맺음을 의미한다. 특별하게도 요한복음 15(1-27)에서는 믿음의 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일체감, identity),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존속, abiding), “제자들 서로의 관계”(호의, passion), “제자들과 세상과의 관계”(적대관계, hostility), 제자들과 성령님과의 관계”(증거자, co-witnesses) 등이다.
 
. 요한복음 15장은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를 중심으로 주신 비유의 말씀이다. 포도나무의 존재의의는 열매를 맺음에 있으므로 열매라는 단어(Word)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중복되는 단어의 중요성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열매가 맺어지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결됨이 필수요건이다. 위의 문단에서는 연결의 표현으로 거하다, 붙어있다, 머무르다, 남아있다, 살아남다, 체류하다, 오래 지속하다, 지탱하다, 살다”(remain, abid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15:1에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I am the true vine)라는 비유와 상징의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여 포도나무로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백성으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하였을 때에는 버림과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참된 목적을 회복하기 위한 당신의 참된 모습을 이렇게 포도나무로 표현하시게 되었다.
 
80: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5: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   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15:1.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     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   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17: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10: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     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    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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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우리는 중요한 단어(Word)를 문단(Paragraph) 안에서 선택하는 방법으로 주문장(Main Sentence)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주어(Noun Subject)와 목적어(Object)와 동사(Verb)에 우선순위를 두자로 하였다. 그러면 로마서 12:1에서 주문장은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I urge you to offer your bodies to God)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는 주어, “권하노니”(urge)는 동사, “너희를”(you)는 목적어가 된다. 그런데 내가 너희를 권한다는 문장만으로는 추상적이며 구체적인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바울에 로마의 교회 교인들에게 권하는 내용은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to offer your bodies to God)가 된다.

.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to offer your bodies to God)에서 드리라”(NIV. offer)라는 동사 단어(Word)의 바른 의미”(Meaning)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 “드리다”(Gk. paristemi; NIV. offer: KJV. NASB. present)이성호 저성구사전에서 찾아보면 신약 내에서 아래의 구절(개역개정, NIV)에서 발견된다.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firstborn male is to be consecrated to the Lord"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딤후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드리다”(Gk. paristemi; NIV. offer: KJV. NASB. present)Stephen D. Renn , “Expository Dictionary of Bible Words”(=Vine's Expository Dictionary)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paristemi is a verb with the primary meanings "stand," "stand by," "present," as well as several other minor senses, in the forty or so context in which it is found.”
 
. 위에서 찾아본 대로 드리다는 바울의 서신들 중에서 발견되고 있다. “몸을 드린다는 말에서 이란 육체”(the physical body)를 의미하지 않고 인격체”(the whole person)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 제물과 같이 드리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인격체 모두가 전적으로” (totally) 그리고 계속적으로”(continuously) 하나님을 향하여 생명을 가진 몽으로” (living) “희생제물과 같이”(as a sacrifice) 드려지는 생활을 의미한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이러한 삶이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2:23의 기록대로 아기 예수님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또 사십일 되는 날 정결예식을 마친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 거룩한 자로 드리게(consecrated) 되었다. 하나님께 드려진(presented) 예수님은 드려진 생애를 사셨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드려지심은 사람들에게도 제공(presented)되어 누구든지 믿는 자도 드려져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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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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