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수님의 비유, 천국 왕과 천국백성의 기도 (6) 글쓴이: 방다니엘, 신학박사(Ph.D)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13)
* 누가복음 11장의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와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는 천국백성들의 기도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누가복음의 특성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1. 약자들에 대한 관심
첫째, 소외계층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눅2장에서 목자들이 등장한다. 당시 목자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하여 법정증인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다. 7장에 죄 많은 여인(47절), 매국노라고 불리는 삭개오 등이 나온다. 소외된 사람들을 기사화를 하고 있다. 유명한 방탕자의 비유(눅15장)는 누가복음의 진수라고 할만하다. 여기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하나님이 인류를 구제하시 는 도리가 간명하게 드러나 있다. 탕자가 구원 받은 것은 그 행위에 인한 것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믿고 의지함에 있었다. 탕자는 죄를 지은 몸 그대로 아버지께 와서 그 신뢰심으로써 구원 되었다.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면, 전적 은혜의 사면을 전한다.
둘째, 죽음으로 고통당하는 부모들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있다. 나인성 과부(눅7장), 딸이 죽은 야이로 등이 있다.
셋째,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관심이 크다. 마리아의 찬송 시에서 보면 “가난한 자를 높여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사역의 시작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라”고 한다. 예수님은 4:18, 19절의 첫 번 설교의 말씀 중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말씀이 이루었다고 하신다. 평지설교에서도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잔치비유에서도, 부자와 나사로, 삭개오의 말, 두 렙돈을 바친 과부 등에서도 나온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신 위로의 복음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약 1/3은 비유의 말씀이다. 이 말씀들은 “눌린 자들의 교훈과 위로를 주시기 위한 것이다”라고 헐조그(W R Herzog II)는 그의 저서 “Parables as Subversive Speech”에서 주장하고 있다.
넷째, 여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당시 랍비들은 여인들을 가르치는 것을 죄라고 하였다. 마리아, 엘리사벳,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마르다 마리아, 18년간 꼬부라진 여인, 12년간 혈루병으로 고생하는 여인, 예루살렘의 딸들, 십자가와 무덤가의 여인들이 나오고 있다. 누가는 당시 많은 여인들의 불평등과 그들의 한숨을 보았다. 로마제국사상은 남성 중심이었다. 남성우월사회에서 여성들을 부각시켜서 여성들의 위치를 정립시키고 있다. 또 여성들의 역할을 제시한다.
2. 성령님에 대한 강조
예수님의 탄생기사에서 7번,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사역과 관련해서 4번 나온다. 누가는 성령님이 예수님의 사역을 수행케 하는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기도생활과 직결되며 특별히 누가복음의 후편인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행전으로 불릴 정도로 기도와 성령님의 사역이 직결되고 있다.
3. 기도의 특별한 강조
누가복음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계속 강조한다. 세례 받을 때(3:21), △하늘이 열림 △성령님 강림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림 △하나님의 음성 △확신 등 5가지 영적인 장면이 벌어진다. 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철야기도 하심(6:12), 변화산에서 기도하시고 용모가 변하심(9:28-29), 시험 당하실 때,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셨다(23:34). 또 11장에는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가르치신 내용이 있기 때문에 누가복음 11장을 기도학교라 한다. 누가복음의 중심주제가 기도생활이기 때문에 누가복음을 기도의 복음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기도는 다음의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예수님의 기도는 성령님이 영향을 끼치시는 기도였다.
누가복음 11장 1-2절은 예수께서 기도하시고 마치셨을 때 그 예수님의 기도하심에 감동을 받고 난 후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으로 가르친 기도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였다. 예수님의 기도는 영과 진리의 기도였다.
둘째,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을 위한 중보 기도였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에는 사탄이 베드로를 집어삼키려고 하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 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다시 일으켰다.
* 누가가 기록한 기도에 관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1) 예수님의 기도 모범(눅3:21-22; 4:42; 5:16: 11:1-4; 22:31-32, 39-46).
눅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4: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눅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2) 예수님의 사역 목표 설정과 시행(눅3:21-22; 5:16; 6:12-16; 10:21-22)
눅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6:12.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눅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 (3) 예수님의 중보기도(눅9:18-20, 28-29; 10:21-22)
눅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 (4) 예수님의 천국보좌의 중보기도(행7: 55-60).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5)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과 비유(눅18:1-8)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특별히 누가복음 마지막장(24장)의 마지막 부분과 사도행전 처음장의 처음 부분을 비교하여 보면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진행에 있어서 숨겨져 있는 기도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1) 엠마오 제자들과 함께 유하시며 함께 떡을 잡수시기 위하여 축사하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눅24:30-31)는 사실에서 예수님이 드리시는 기도는 제자들의 눈, 귀, 마음을 열어주시는 중보자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
(2) 열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에도 생선을 잡수시면서(눅24:42-43) 그들의 마음 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여주시며(눅24:45), 사도들과 함께 모여 식사하시면서 (while He was eating with them)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 명령을 주신 사실에 서 심각한 신앙의 내용이 매일 순간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
(3)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24:49)는 말씀에서 중보자 예수님을 믿고 “머물며 기다리는” “기도”가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
(4)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눅24:49),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행1:4),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는 사실에서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어 주신다는 것.
(5) “능력”(눅24:49)과 “권능”(행1:8)은 “위로부터,”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행1:8) 받게 되는 중보자 예수님과 직결된 기도의 영역이라는 것.
(6)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손을 들어 축복하시더니”(눅24:50)와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는 사실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까지 우리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고 계신다는 것. 손을 들어 축복하시는 모습은 제사장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수난 받으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인 공회에서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눅22:69)고 예언하셨다. 이제 지상의 사역은 마치셨고 천상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이 늘 성도들과 함께 계시는 축복”을 약속하셨다.
* 누가는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는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의 사역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을 특별하게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일명 성령님 행전이라고 부른다. 기도 없는 성령님 행전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기도행전이다. 또 기도행전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예수님 행전이다. 따라서 지상에서 천국백성들이 복음사역을 행할(act) 때 성령님이 행하시고(act) 기도가 행하여지고(act) 그 곳에 이미 예수님이 늘 함께 사역에 행하여(act) 주심을 알 수 있다.
* 누가복음 11:1-13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예수님은 기도의 생애를 사셨다.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은 기도생활에서 나왔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는 어떤 기도의 모양이나 형식을 찾아볼 수 없었고 기도의 결과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의 비결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2.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 제자들은 기도의 형식과 방법을 배우고 경건한 신앙인의 자격을 갖추려고 한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다니엘 선지자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던 대로 실천하고 있었고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금식과 기도에 힘쓰며 의식주의와 절제생활과 금욕생활을 하면서 경건생활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유대인 랍비들은 기도의 형식을 가르치는 것이 상례였다. 그들은 서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내어 기도하였고 때로는 두 손으로 가슴을 치고 겉옷을 찢으면서 기도의 간절함을 보여주었고 금식과 아울러 베옷을 입고 먼지와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서 울부짖는 기도의 형식을 나타내었다.
3. 예수님은 기도의 외형적 형식에 대하여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으시고 기도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가르쳐주셨다. 중요한 핵심은 첫째, “기도하라”(Pray!), "구하라“(Ask!) 그러면, 둘째, “받는다”(Receive), "주신다"(Give) 는 원칙이다. 사람 편에서 구하면 하나님 편에서 주신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아들이 구하면” “아버지께서 주신다”는 불변의 원칙을 강조하여 주셨다. 아버지께서 자녀들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실지라도 자녀들은 필요를 따라서 아버지에게 요구하여야 한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36:37).
4. 눅11:2-4에 기록된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자.
2.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주기도문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먼저 “아버지”를 부른다. 하나님(God)을 아버지(Father)라는 명칭(Title)으로 부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예가 15회 나온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 아버지라고 부른 예는 한 번도 없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공관복음에는 65회, 요한복음에는 100회 이상 나온다. 165회 이상의 언급은 모두 예수님께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예수님과 따르는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찾고 부르는 특권을 가진다. 온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을 소규모의 가정 속에 한 남성 아버지로 축소시키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면당하고 박해를 받은 것이었다. 지혜의 근본이며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예수님은 더욱 철저하셨다. 아버지는 아들과 가장 친밀하신 분이므로 “아빠”(Abba)라고 부르신 것이다. 영어로는 “Daddy"로 표현된다.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갈 4: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6. 주기도문의 중요한 핵심은 “나라가 임하옵시며”에서 “나라”(Kingdom)에 집약된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실상은 “아버지의 나라”이며 “아버지의 집(가정)”이 된다. 아버지의 “나라의 백성”(Kingdom People)이 되었다는 것은 “가정의 아들(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아버지)의 나라”(그의 가정)이 가장 귀중하다. 제일 먼저 구하여야 할 것은 “그의 나라”(Thy Kingdom)인 것이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고 영원히 살 그 나라 (그 집)인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His Kingdom; Father's Kingdom)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7. 구약의 모든 내용과 예수님의 사역의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도래(come)에 집약되고 있음을 알아야 성경의 바른 해석을 할 수 있고 바른 신앙의 정립을 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에서 하나님은 나라를 이루시는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여주고 계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은 “나라”와 “의”(=> 뜻)로 집약된다.
가. 구약에서 하나님은 네 가지의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계신다.
첫째, 구원을 주심(제공): 승리를 위하여
둘째, 모임을 이룸(형성): 교회를 위하여
셋째, 지식을 기름(양성): 순종을 위하여
넷째, 축복을 누림(향유): 영생을 위하여
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네 가지 계획을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안에 현존하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닥아 온다. 이때 복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역사하며 권세와 능력이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지역이나 영역(territory)의 개념보다는 “하나님의 통치”(the rule of God)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임재하셔서 우주적 차원에서 모든 만물의 구원을 이루셨다. 사악한 세력에 얽매인 사람을 구원하실 분은 왕이요 창조의 주님이신 하나님 밖에는 없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영광의 왕이시며 영원한 통치로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선포는 왕 되신 예수님 자신도 그대로 선포하여 주신다.
다.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내실 자라는 선언은 구원의 차원이 현세적일뿐 아니라 우주적이며 영적 차원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사람을 말하게 하신 것은 악을 파멸하여야 그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능력을 보이신 것이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정복할 수 없는 흑암과 사탄의 세력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구원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임마누엘) 하시는 역사인 것이다.
라. 왕의 구원은 공동체(교회)를 형성하여 왕의 백성을 이루고 영원한 왕국(Kingdom)에서의 삶을 누리게 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 . . .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16:18)고 하신 말씀은 구원이 베풀어진 결과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나는 여호와니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출6:7)는 말씀과 같은 내용이다. 교회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다. 왕국 백성은 개인의 구원을 통하여 집단과 공동체를 형성한다. 크게는 공동체이나 내용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들(자녀들)의 가정”이라는 단순함을 나타낸다. 능력이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왕국백성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을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신앙고백만으로 된다. 이것이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열방의 소망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마. 공동체(교회)의 구성원이 되면 “왕국백성”으로서 늘 하나님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그 사랑과 보호를 알고 느끼며 산다. 이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영적 지식의 소유자로 성장시켜 준다. “나는 . . . .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줄6:7).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된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눅18:16-17).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드리는 자”들이다. 어린 아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이다. 배우고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어린 아이의 삶이다. 오직 순종으로 성장한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18:3-4). 천국백성은 자기는 죽고 없다. 어린 아이에게는 아버지만 있고 아버지만 따른다. 제자는 예수님에게 배우고 그대로 행하고 살면 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과 하신 일을 본대로 들은 대로 우리들에게 옯겨 놓으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제자들의 지식은 하나님(예수님)의 임재 가운데서 형성되고 시행된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의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약속하신 것은 우리들의 겸손한 순종을 요구하신 말씀이시다. 변화산의 체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것을 보여주신 “지식”과 “체험”의 일환이었다. 또 구원 받은 백성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들은 모두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의 체계를 세워주신 일들이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목적과 진행이 바로 이러한 것임을 보여주셨다.
바. 하나님의 계획의 넷째는 “축복(생명)의 향유”라고 하였다. 구약에서는 “땅”이 선물과 축복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이 땅을 영해(spiritualize)하면 “하나님의 나라”로 해석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구원을 영생(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은 영생이 보장된 축복이다.
사.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18:18) 하며 질문하였던 한 젊은 관원은 큰 부자였다. 어려서부터 율법의 계명을 다 지키며 살았으나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축복을 향유하지 못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수 없으므로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18:23). 구원을 받은 자가 누리는 축복은 재물(부요)에 의존하지 않으며 하나님(예수님)을 섬김에 의하여 내려진다. 예수님의 말씀의 근저에는 구원 뿐 아니라 축복과 기쁨이 두꺼운 층을 이루며 깔려져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약속의 가나안과 마찬가지로 영적 풍요가 가득히 넘친 삶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영원성이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3).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8.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아들들의 소원을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신다. “우리에게 날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11:3-4). 그리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구하시옵소서”(마6:13).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와 “시험과 악에서의 구원”은 나라(Kingdom)의 백성들에게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따라서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서 우리들은 함께 구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 누가복음 11:5-13에서 예수님은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계획(의, 뜻)은 성도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성도들은 이것을 위하여 기도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기도로 요청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약속이 곧 9-10절의 말씀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느냐”(13). 성령님의 충만을 받고 성령님의 은사를 받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그 결과는 “밤에 나를 찾아 온 형제를 위하여 은혜를 베풀게 된다.” 신앙공동체의 유익은 이와 같이 전적으로 기도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사역에 의존한다.
* 누가복음 17:5-10에서 예수님은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먼저 참다운 봉사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1. 첫째, 성도는 자기가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종이라는 신분은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소유물에 불과하다. 종의 모든 일과 활동은 주인의 계획과 뜻에 의하여 언제 어디에서나 무슨 일이든지 진행되고 유지되며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무익한 종”일 뿐이다. 무조건의 순종만이 요구되는 존재다. “무익하다”는 원어는 “요구가 없다,” “이익이 없다,” “빚이 없다”는 뜻이다. 주인에게는 종이 있어도 없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고 주인은 언제라도 부담 없이 종을 마구 사용할 수 있다. 여기 비유의 말씀에서 주인은 종에게 밭을 갈게 하고 양도 치게 하고 음식도 수종 들게 하고 있다. 들에서 수고하고 집에 돌아와도 칭찬과 보수가 없고 도리어 집에서도 하여야 할 일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2. 둘째, 성도는 주님의 명령을 다 따르겠다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일 외에도 주인의 손과 발을 씻기고 주인이 잡수실 음식을 준비하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며 주인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내용들은 다양하다. 이 다양한 일들은 모두 주인을 받들고 섬기며 수종하는 일이다. 성경말씀의 다양하고 수많은 명령은 모두 이웃과 형제자매를 위하여 하는 것이지마는 실상은 곧 주인을 위하여 순종하며 지켜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3. 셋째, 성도는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을 착실하게 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밭갈이, 양치기, 음식준비는 일평생 하루고 건너지 않고 매일 하여야만 하는 일들이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뽕나무를 옮길만한 능력도 일상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 일초도 쉬지 않고 우주를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때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들도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종의 마음으로 매일 일하고 움직이고 수고할 때 곧 산을 옮기고 뽕나무를 뽑아내는 기적을 나타내며 이것이 곧 “즉시 기쁨으로 순종하는 겨자씨 한 알의 작은 믿음”이다.
4. 예수님은 누가복음 12:37에서 “깨어있고 부지런한 종에게는 주인이 시종 들어 준다”고 약속하여 주셨다. 무익한 종이 되어 일을 할 때에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상급은 이와 같이 주님과 종이 상호 섬김을 주고받는 뗄 수 없는 관계의 무한한 축복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누가복음 17:11-19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방의 경계를 지나가실 때에 10사람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기적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 전의 비유에서 구원을 받은 자의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며 여기에서는 구원 받은 자가 받은 은혜는 감사로 표현되는 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1. 그 당시의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곁을 지나갈 때에 “아메, 아메”(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 하고 소리를 지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았다. 10사람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들을 긍휼이 여기소서” 하며 질병의 치료를 호소하였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들의 몸을 보이라.”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을 만지지도 않으셨다. 믿음을 권유하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 말씀 한 마디만 하여주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순종하였다. 그들은 가다가 자기들의 몸이 깨끗하여진 것을 발견하였다.
2.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자기 몸이 치료된 것으로 인하여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렸다. 믿음의 표현이다. 그는 제사장에게 가기 전에 예수님께 돌아와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렸다. 그는 자기가 직접 예수님께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예배드리며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그는 자기가 직접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벧전2:9)는 성경말씀의 산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 사마리아인의 신앙행위에 대하여 성경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누가복음 17:20-21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유대인들은 어떤 정국의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질문하며 접근한다. 이러한 질문은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질문이기도 하다.
1. 유대인들은 예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기대와 염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들은 정치적 속박과 경제적 빈곤에서 구출되고 자유와 번영의 때를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여 주셨다.
2.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가르쳐주셨다. “볼 수 있게 임한다”에서 “본다”는 원어는 “관찰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부적으로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고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영적이며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신 것이다. 영적 각성과 거듭남의 중요성(요3:1-8)을 깨닫고 천국백성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3.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안에 있다”는 말은 “속에 있다,”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마음속에도 있고 개인과 이웃 사이에도 있다는 뜻이다.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은 “나의 마음속에도 계시며” 또 “나와 이웃 사이에도 계신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속에도 계시며 또 그들 사이에도 계셨으나 그 나라의 왕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하였고 이미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4.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셔드린 성도들 개인의 마음속에 또 성도들의 사이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님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18).
* 누가복음 18:1-8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당한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의 중요한 것이 끈질긴 기도생활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 마지막 때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비도덕, 음난, 폭력, 살인, 미움, 싸움 등이 들끓기 때문에 사람들이 삶의 소망을 잊어버리고 낙망하기 쉽다. 이럴 때 일수록 성도는 무슨 일을 당하여도 실망과 낙담을 버리고 소망 중에 항상 기도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1. 과부는 원수(사탄)로 인하여 생긴 원한(3, 5, 7, 8)이 있었고 결코 지울 수 없었다. “원한”이란 무엇인가? 성도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불의한 일”(unjust)을 의미한다. 해결할 길이 전혀 없고 호소할 곳이 없는 “억울한 일”이다.
2. 과부란 남편을 잃은 여인이다. 영적 해석을 하면 모든 성도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과부들이다. 영적인 문제는 재판관 되신 하나님이 해결하여 주신다.
3. 비유에서 “불의한” 재판관이란 표현은 성경에서 현세의 조직과 구조를 망라하여 사용하는 단어다. “돈”도 불의하며 “청지기”도 불의하다. 불의한(unjust)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비유로 불의한 현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의로우신 하나님 나라의 영적 비밀을 알려준다.
4. 예수님 당시에 민사소송과 재판을 이동식 천막을 차려놓고 재판관이 출장 나와서 일을 보는 사례가 허다하였다. 유대인들은 여자가 직접 소송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 놓았다.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억울하고 이러한 규정이 세워진 것도 분하다. 이 과부는 지혜를 써서 재판관에게 접근하였다. 그 유일한 방법은 재판관이 앉아있을 만한 곳의 이동식 천막 주위를 맴돌며 자기의 원한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길 밖에 없었다. 그녀는 매일 반복하였다. 천막 안의 재판을 방해하고 재판관을 성가시게 하였으나 의법 처단하기보다는 문제해결을 해주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5. 하나님은 재판관과 비교할 수 없다. 졸지고 주무시지도 않고 당신의 자녀들을 보살펴주신다. 이러한 아버지를 아는 자녀들이 어떻게 기도의 특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말인가?
6. 어두움의 세력이 날마다 우리들을 흔들어 놓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열심히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가르침이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기도”(7)를 드림으로써 “응답을 받으면서” 더욱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 누가복음 18:9-14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는 성도는 특별히 “겸손히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아울러 분부하여 주시면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1.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바리새인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1-12). 그는 자기를 높은 자리에 놓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발표하였다. 또 그는 다른 사람을 비평, 판단, 정죄 하면서 그의 죄를 고발하고 있었다. 자기의 공로를 인정받고 싶었다.
2. 세리는 자기의 모습을 감추었다. 하늘을 우러러 볼 수도 없었다. 가슴을 치기만 하였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처절하기만 하였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빌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호소하였다.
3. 예수님은 늘 아버지에게 기도하면서 섬기는 자로서 겸손한 생애를 사셨다. 바른 기도를 드리는 자는 천국백성의 바른 생활을 하게 됨을 친히 삶으로 본을 보여 주셨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