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6일 월요일

2. 예수님의 비유, 천국과 천국백성 (1)

             2. 예수님의 비유, 천국과 천국백성 (1)      글쓴이: 방다니엘, 신학박사(Ph. D)

*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은 비유의 말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는 천국과 천국백성을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다. 하나님은 불의한 인간의로운 인간으로 다시 만들어 천국백성이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여주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이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 가운데에서 핵심사항과 골격을 이룬다. 예수님의 사역을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사역을 계속하셨다.
 
*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는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의 말씀은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비유. 이 비유의 내용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1:16-17)라는 말씀이다. 이 비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다음 사항을 검토하자.
 
*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비유(11:16-19; 7:29-35)천국선포에 대한 영접과 배척의 비유라는 제목이며 이 비유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1. 비유의 말씀이 있게 된 배경들(가까운 배경, 먼 배경)이 무엇인가?
2. 비유의 말씀이 있게 된 배경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3. 비유 자체가 언급하고 있는 사항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4. 비유가 언급되고 난 이후에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 마태복음 11장의 기록으로 볼 때 마11:1-15의 내용은 가까운 배경으로 볼 수 있고 또 누가복음 7장의 기록으로 볼 때 눅7:17-30의 내용도 가까운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가까운 배경의 핵심사항은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 또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된 가까운 배경으로 눅7:29-30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비유의 배경이 보여주는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 비유의 말씀이 있게 된 먼 배경으로는 마1-10장과 눅1-7장의 내용들을 들게 된다. 왜냐하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이라든지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을 알기 위하여서는 비유의 말씀이 있기 이전의 모든 일들을 참고로 하여야하기 때문이다.
 
* 이제 비유의 말씀 자체를 읽으면 알아야 할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연거푸 나오고 있다.
1. 마태복음에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 . .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 . .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 . .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고 . . .
요한의 평가 (18): 귀신이 들렸다 함 . . .
인자의 평가 (19):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 . .
세리와 죄인의 친구 . . .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느니라 . . .

2. 누가복음에서: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 . .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 . .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 . .
곡하여도 울지 아니하였다 . . .
요한의 평가 (18): 귀신이 들렸다 함 . . .
인자의 평가 (19):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 . .
세리와 죄인의 친구 . . .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 . .
 
* 마태복음은 천국”(kingdom of heaven, “하늘나라”)이라는 총제목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일정한 5개의 주제를 설교의 중심으로 삼아 정리하고 전개시켰다.
1) 산상보훈(5-7),
2) 제자들에 대한 교훈(10)
3) 천국 비유(13)
4) 교회에 관한 말씀(18)
5) 최후심판(24-25)
 
이러한 설교의 주제에서 매 주제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finished)”라는 문장으로 끝내고 있다(7:28, 11:1, 13:53, 19:1, 26:1). 마태복음에는 이루려하심이라”(fulfilled)는 말이 많이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 되심(=천국의 왕)을 보여주고 있다.
11:1 세례요한의 질문: 11:1 예수의 답변, 11:7 세례 요한을 칭찬하심, 11:20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 11:25 구원과 안식에 때한 교훈.
12:1 예수를 배척하는 바리새인: 12:1 안식일의 주인 예수, 12:9 안식의 참된 의미, 12:22 성령 훼방 죄, 12:38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
13:1 씨 뿌리는 자와 가라지의 비유: 1) 씨뿌리는 비유(13:1-23), 2) 알곡과 가라지(13:24-30, 36-43), 3) 겨자씨(13:45, 46), 4) 누룩(13:33), 5) 보화(13:44), 6) 진주(13:45, 46). 7) 그물(13:47-50), 8) 집주인(13:51, 52).
14:1 세례요한의 죽음: 14:1 세례요한의 죽음, 14:22 물위를 걸으심, 14:34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심.
 
* 세례요한(3:2)과 예수님(4:17)천국과 회개를 선포하였다. 선포의 구절은 같은데 내용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11:12-13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라고 하면서 세례요한의 날부터 예수님의 날까지를 한데 묶어 하늘나라 시대로 보고 있다.” 예수님은 천국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예언자들과 율법의 시대”(11:13), 즉 천국을 예고하는 구약시대는 요한 직전에 끝났다. 요한은 예수님과 더불어 신약의 시대(천국시대)에 속한다.
 
* 누가복음 7:18-35에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높이 평가하여주시는 내용과 아울러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세례요한과 메시아)를 배척하고 박해하는 시대적 상항을 설명하여 주신다.
1.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어떻게 평가하셨는가?
. 7:26을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선지자(A prophet)? 옳다.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much more than a prophet)고 말씀하신다. 세례요한은 한 사람(a prophet)의 선지자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선지자가 아니고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말라기 3:1의 말씀대로 지정된 그 한 사람”(the one), 그 한 선지자”(the prophet)이기 때문이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the one)에 대한 말씀이라”(27). 세례요한만을 두고 예언된 말씀을 성취한 그 선지자”(the prophet)이다. 메시아의 바로 앞에 나온 내 사자”(God's messenger)이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였기에 중요한 인물이다. “새 시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오리라고 한 엘리야는 바로 세례요한을 두고 예언되었다.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구약의 말라기에서는 심판의 날을 예언하였으나 그 이전에 구원의 축복을 선포하는 엘리야가 오리라는 것이었다. 세례요한은 바로 그 엘리야였다.

. 28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라고 요한을 평가하신다. “여자가 낳은 자혈육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2. 예수님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31) 하시면서 비유의 말씀을 하여주셨다. “이 세대”(this generation)란 예수님과 복음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들에게는 예수님과 복음이 어떠한 형태로라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본질상 빛의 자녀들”(the sons of light,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이 아니기 때문이다.

3. 따라서 예수님은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35)고 말씀하여주셨다. 여기에서 지혜는 의인화(擬人化)로 표기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지혜)을 듣고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의에 참여한 자들이다.
 
*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의 설명
1. 고대 원시 종교나 토속 신앙은 물신화”(物神化) 눈에 보이는 것을 믿었고 희랍신화에서도 동물이나 신을 인간화해서 만든 눈에 보이는 것을 숭배했다. 일본은 신사의 나라다. 전국적으로 국가에 등록된 신사만 8만개가 넘는다. 그 신사마다 섬기는 신이 각각 다 다르다. 거북이 신사, 고양이 신사, 뱀 신사, 까마귀 신사 등,,,,,,수없는 신들의 상을 만들어 놓고 제사하고 섬긴다. 이것은 일본의 토속신앙의 산물이다. 그래서 일본은 선교하기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나라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나님도 8만개의 신중에 하나인데 구태여 꼭 하나님만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논리다. 종교의 모양과 형식은 있으나, 내용, 본질이 없고, 소리와 말은 있으나 그 속에 말씀이 없다. 사원과 신사, 성전의 모양은 있으나 그 속에 참신()이 없다.
 
2.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예수님 십자가상, 마리아상, 베드로 상을 만들어 놓고 숭상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의식하다보면 사람은 그것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우리의 신앙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현상이나 우상과 혼동하면 안 된다. 유대인은 기사이적인 것을 구하고 헬라인은 인간의 지혜와 철학을 구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도 밖에는 전할 것이 없다고 사도바울은 고백하였다. 세상의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음”(nonsense)이요 구원받은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능력”(God's power)이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가시적인 환경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유토피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그곳의 주인이시며 인간을 만들어 놓고 행복하게 살도록 다스리고 통치하는 영적인 곳이다. 그러나 사탄이 끼어들어 혼란케 하는 것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먹을 것, 선악과를 가지고 유혹한다. “이것을 먹으면 네가 하나님이 될까봐 못 먹게 하는 거야!” 야훼는 우상이 아니다. 기독교는 눈으로 보는 종교가 아닌 귀로 말씀을 듣는 종교.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10:17).

3. 사람에게 적요되는 귀는 다음과 같은 세 종류가 존재한다.
첫째, “(외면)의 소리이다. 인간의 소리 및 기계문명의 소음이다.
둘째, “(내면)의 소리이다. 마음의 소리 또는 양심의 소리이다.
셋째, “(말씀)의 소리이다. 하나님의 소리 또는 영과 섭리(攝理)의 소리이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37:2).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는 귀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섭리(攝理: 하나님의 다스리는 도리)의 섭() 에는 귀 이()”라는 글자가 3개나 있다. “소리이 아닌, “말씀을 듣는 귀를 섭리의 귀, 복된 귀라고 한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귀를 기울이고 따라간다. 양은 약점 투성이의 동물인데 좋은 것 하나는 귀가 밝은 것이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복 있는 귀를 가진 동물이다.
 
4. 귀의 종교, 들음의 청각종교, 기독교: 선지자 엘리야는 850:1의 대승을 거두고 하루아침에 백성의 영웅이 되지만 그 즉시, 왕비 이세벨의 지명수배자로 쫓겨 광야, 사막가운데로 도망친다. 그 꼴이 완전 패자의 모습이다. 하룻길을 가서 로뎀 나무 아래 쓰러져 누었다가 천사가 주는 떡과 고기와 물을 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40일 길을 걸어 깊은 광야에 들어간다. 거기서 엘리야는 광야의 신, 야훼를 만난다. ‘태풍이 지나가고, ‘강한 지진 속에도 안계시고 엄청난 불속에도 안 계신다.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힘 속에는 야훼는 안 계신다. 그것들이 다 지나가고 적막 속에 세미한 음성으로 야훼는 나타나신다. 눈으로 보이는 야훼가 아니라, “귀를 기우려 들어야(listening) 들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곧 우리들이 믿고 따르는 목자다.
 
* 11:16에서 이 세대”(this generation)란 용어는 마태복음 내에서 여러 번 나온다. 모두 종말 사상을 포함한 내용인 것을 알 수 있다.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7:31에서도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의 기록은 사람들을존경하지 않고 낮추고 비하하는 부정적 차원의 어조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구절들과 비교하여 보자.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2: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a warped and crooked generation)
2:10. 그 세대(generation)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7:29.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
 
* 본문에서 아이들”(children)이란 이 세대또는 이 세대의 사람들과 같은 뜻으로 본다. 아이들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하나가 되어 놀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형편을 이야기 한다. 세례요한은 금욕주의자이며 예수님은 자유주의자라고 하면서 비난하면서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생각과 하고 싶은 일과 욕심대로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에 이해도 하지 않고 돕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피리를 불고” “슬피 울고 곡하는아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또 춤을 추지 않고 가슴 치고 울지 않는 아이들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여러 가지 학설로 설명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첫째,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가리키며 둘째,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피리를 불고(11:17; 7:32)라는 표현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리의 도구”(악기)는 특별한 뜻을 부여한다. 뜻 없는 소리가 없다고 한 것과 같이 악기의 소리는 하나님의 명령의 일환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시편 150의 찬양시를 읽어보자. 찬양은 소리,” “언어,” “대화,” “기도,” “호흡,” “생명,” “말씀인 것이다. 악기의 소리가 들려지고 말씀이 선포된다는 것은 곧 존귀와 영광으로 주님께 예배드림을 요구한다. 특별히 아이들의 찬양 소리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놀라움을 나타낸다.
1. 할렐루야 (Praise the LORD!)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

* 슬피 울고(11:17) 곡하여도(7:32)라는 표현도 위의 피리를 불고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위로가 여기에 나타난다.
시편 30편의 말씀을 읽어보자.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 세례요한 의 설교에는 성령님이 함께 하셨고 그는 예수님을 능력 있게 증언하였다.
마태복음 3장에서 그의 설교의 일부를 읽어보자.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에서 본문을 부정적으로 보면 문제가 생긴다. 만일 바리세인이나 반대자들이 천국을 부정하게 쟁탈하려고 한 것이라면 왜 세례 요한의 때부터냐 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란 세례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인물로 또는 신약을 여는 새로운 시대의 인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전한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제는 앉아서 구경만 하지 말고 천국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된다는 말이 된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하고 있다.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천국백성이 되어야 한다.
 
* 유대인들(이 세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문제)는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메시아관에 의한 거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있었다. 다윗과 같은 메시아이다. 이 세대들은 로마제국을 전복시키고 이스라엘을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윗의 왕권과 같이 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기대했다. 메시아가 오면 유대인의 세상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둘째, 천국관에 의한 거부다. 그들은 지상의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가르치므로 걸림돌이 되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에 따라서 이 땅에 왔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셋째, 영적 차원으로 위배되는 거부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철저히 영적이다. 유대인이 원하는 것은 육적이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주님을 왕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한적한 곳으로 피하셨다.

복음은 겉 사람, 표면적, 육적이 아니며(고후5:19) 속사람, 이면적, 영적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천국복음은 육체를 따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 11:19.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에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룬 말씀을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눅7: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에서는 말씀으로 인하여 구원 받은 백성을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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