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요10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특성을 닮아서 요한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높은 하늘(heaven)에서 내려오신 분으로써 “하나님 되심”(Deity, 신성)을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의 사역에서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도 자신의 “신성”((Deity)을 표적(sign)과 놀라운 말씀으로 제시하며 보여주시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배척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편단심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구원 사역”을 매진하시며 여기 요10장에서도 계속하여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신다. 요10장에서는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양의 문”에 대하여도 말씀하여 주신다. (참고. 실제로 신약원본 중에서 사본 하나만 “선한 목자”를 언급하고 있고 그 외에는 모두 “양의 문”으로 기록하고 있다.) 요10장 후반부에는 예수님이 “수전절”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계신가를 설명하신다. 이러한 모든 말씀은 구약성경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의 관계가 자연적으로 이해되도록 배려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여준다.
*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으신 것을 말씀하고 행하신다. 또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목자이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신다. 그 예를 구약에서 보게 된다.
1.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 시편 80편
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3. 에스겔 34:1-7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4. 에스겔 34:15-16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1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5. 예레미야 23:1-4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민수기27:15-16
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 요10장은 “선한 목자”(the good Shepherd)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요10장 전반에 걸쳐 가르치고 있다. “목자와 양”(Shepherd and sheep)의 설명은 공관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비유”(Gk. parabole; parable)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유”는 “나타난 이야기”에서 “숨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일반 이야기”를 가지고 “하늘 이야기”를 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하늘 이야기” 또는 “하늘의 뜻”이 숨겨져 있어서 깨닫지 못하기가 일수다. 또 비유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비유가 아닌” “직유, 잠언 또는 예화” (Gk. paroimia; proverb)로써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참고. 어떤 학자들은 “알레고리”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라고 직접 설명하여주시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형식으로 주시는 말씀은 비유가 아닌 것이다.
1. “선한 목자와 양들의 예화”에서 등장하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게 된다.
가. “선한 목자”는 예수님이시다.
나. “양들”은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다.
다. “다른 양들”은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이다.
라. “양의 우리”(sheepfold)는 유대교(Judaism)의 환경이다.
마. “문”(the gate, the door)은 메시아 또는 메시아의 사역이다.
바. “문지기”(the gatekeeper)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사. “꼴(pasture)을 얻으리라”(10:9)에서 “꼴”은 풍성한 생활을 의미한다.
아. “이리”(wolf)는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하고 파괴하는 자들이다.
자. “삯꾼”(hired hand)은 자기 욕심을 챙기는 종교지도자들이다.
2. “선한 목자와 양들의 설명”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주체와 객체에 대하여 미리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 있다.
가. 매번 등장하는 “양”(sheep)이라는 단어는 복수(plural)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셔서 민족(nation)을 대표하는 “목자”(the Shepherd)가 되신다. “양들”(the sheep)은 유대인들 중에서 “선택받은 남은 자들”(the chosen remnant)이다. 사도바울은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하여 로마서 11:1-5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나. 목자는 유대인만을 위하지 않고 모든 민족을 대표하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요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에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계신다.
다. “문지기”(10:3; porter, doorkeeper)는 “나는 양의 문이라”(10:7)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활동을 지원하는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문맥(context)에서 알 수 있다.
라. “절도와 강도”(10:1; a thief and a robber)는 “거짓 지도자”를 지칭한다. 랍비 가말리엘은 행5:36-37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일이 있다.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 요10장에는 “목자”(the Shepherd)의 특성에 대하여 18번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1. 문을 통하여 들어간다(10:2).
2. 들어갈 때 문지기의 도움을 받는다(10:3).
3. 양들의 순종을 받으신다(10:3).
4. 양들을 인도하여 낸다(10:3).
5.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신다(10:3)
6. 양들의 앞에서 인도하신다(10:4).
7. 양들이 목자를 따르도록 하여주신다(10:4).
8. 양들의 문(door)이시다(10:7).
9. 오직 한 분뿐이신 참된 목자이시다(10:8).
10. 양들이 문으로 드나들며 꼴을 얻는다(10:9).
11. 양들을 위하여 생명(생활)을 가져오신다(10:10).
12. 양들을 위하여 생명(목숨)을 버리신다(10:11).
13. 양들을 아신다(knows, 10:14).
14.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도 가지고 계신다(10:16).
15. 다른 양들도 우리의 양들과 함께 하나로 만드신다(10:16).
16. 자기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다(10:18).
17. 자기의 생명을 버릴 권세(능력)을 가지고 계신다(10:18).
18. 목자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자가 없다(10:28).
* 목자에 대한 특성은 아래의 네 항목으로 요약된다.
첫째, 예수님은 유대인의 역사를 통하여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자신은 그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사실을 표적들(signs)과 함께 권위의 말씀으로 증거 하셨다. 또 유대인의 역사와 구약의 말씀과 예언을 열어 설명하시고 아버지에게서 위탁받은 사명을 따라서 공공연한 삶을 살았고 모든 사역에서 보여주신 영적권위는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었다.
둘째, 예수님은 자기의 양들을 새로운 초장(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양들의 “영적 생활의 풍요와 소생”(sustenance and refreshment)을 책임지셨다. 시23:6의 말씀대로 “양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참된 목자이시다.
셋째, 예수님은 양들의 목숨(죽음)을 대신하여 자기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신다. 예수님의 사역은 죽음을 향하여가는 길이였고 “자기의 부활로 말미암아 양들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여주셨다.
넷째, 예수님은 “유대인의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을 위하여서도 같은 사명을 수행하셨다.” 그리하여 양들은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셨다.
* “목자와 양들의 관계”에서 “양들의 중요성과 특성”을 본문에서 찾아본다.
1.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잘 식별한다(10:3).
2. 양들은 자기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른다(10:4).
3. 양들은 자기 목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로 따라가지 않는다(10:5, 8).
4. 양들의 만족함과 기쁨은 전적으로 목자를 순종하는데서 온다(10:9).
5. 양들은 모두 한 우리에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10:16).
* 요한복음 제10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라”(10:7)고 말씀하여 주셨다. “문”(gate, door)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때로 목자들은 양떼들을 이끌고 산과 언덕으로 가서 며칠씩 묵다가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에 양들을 벽이 될 만한 장소에 몰아넣고 목자는 양들 앞에 가로질러 누워서 밤을 지내기가 일수이다. 양들은 누워있는 목자를 건너질러 넘어갈 수 없게 된다. 이때 목자의 몸 전체는 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문”이시다. “문”은 양들을 지키고 보호한다. 문이 있으므로 험한 짐승이 덤벼들 수 없으며 도적들도 근접할 수 없다. 예수님의 온 몸과 생애가 양들의 문이 되시는 선한 목자다. 또 “문”이란 곧 “구원”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하루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문을 열고 닫으며 문안을 드나들고 있다. 문을 통하지 않고는 집이나 방에 들어갈 수 없다. 구원의 “문”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통하여야만 천국에 들어가며 천국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의 육체만이 하나님의 성소를 향하여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다(히10:20).
*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불러 모으신 모든 양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공급하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풍성하다”(Gk. perissos; abundant)는 성경원어는 “남는다”는 수학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만족을 채우고도 남는 만족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파도가 계속하여 밀려드는 현상이라든지 저수지의 수문을 다 열어 놓아도 계속 물이 넘치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고 12바구니에 채울 조각들이 남았다고 할 때에 풍성함을 알게 된다. 또 선한 목자의 관심사는 언제나 보다 더 나은 곳으로 양떼들을 인도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풍성함이 있다.
첫째, 언제나 남는 것이 있어서 모자라는 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언제나 보다 나은 상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러움에서 아름다움을, 의심에서 믿음을, 세상일에서 천국 일을 사모하고 앞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인도함을 받고 살고 있는 것이다.
* 요한복음 10:28-30에는 “하나님의 손”과 “예수님의 손”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선포하셨으므로 예수님의 손에서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은 만드시는 손이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당신의 생명의 더운 숨결을 불어넣으셨다(창2:7). 예수님은 손에서 피를 흘리시며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새 역사를 창조하셨다.
둘째,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은 사랑을 베푸시는 손이다. 당신이 만드셨음으로 품에 안고 먹이고 길르시며 지키고 보호하신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였고 . . .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고 . . . 내가 사랑의 줄로 이끌었노라 . . .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호세아11장에서)고 말씀하신다. 특히 예수님의 손은 내밀어주는 손이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를 고쳐주셨고(마8:3), 베드로의 장모를 만지시고 열병을 떠나가게 하셨고(마8:15), 야이로 딸의 손을 잡아 죽음에서 일으켜 주셨고(마9:25),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누워있는 그 관에 손을 대시며 다시 일으켜주셨고(눅7:14),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하여 주셨고, 손으로 흙을 이겨 눈에 발라주며 실로암에 보내는 사랑을 베푸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님의 손에 이끌려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셋째,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은 채찍을 든 심판의 손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은 손에 키를 들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신다(마3:21)고 하였다. 예수님은 채찍을 든 그 손으로 우리을 때리지 않으시고 우리 대신 죄 없는 당신 자신을 친히 때리시고 맞도록 내어 놓으셨다. 십자가에서 받으신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은 하나님의 심판과 채찍을 면케 하여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신 귀한 증거의 손이다.
* 수전절과 예수님: 요한복음 10:22-23,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라고 하였다. “수전절”은 모세오경에서 언급하는 유대인의 절기(축제)가 아니다.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이라는 단어 자체는 “성전을 수리한 기념절기”라는 뜻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절기는 유대인의 역사적 배경을 가진 절기이다. 지금도 겨울철의 크리스마스 절기에 유대인들은 “하누카”(Haukkah)라고 부르는 수전절을 지키고 있다. 그 역사적 기록은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 성전은 170BC에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라는 장군에게 점령당하였다. 이 장군은 그리스(헬라)의 문화와 종교를 따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스의 신들을 섬기는 곳으로 변조하였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대항하였던 유대인 지도자 “유다 마카비”는 결국 164BC에 점령당한지 6년 반 만에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찾게 된다. 이때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쓰던 순수한 기름 한 병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한 병의 기름을 가지고는 등불을 하루만 켜고 밝힐 수 있는 양(量)이었다. 그런데 그 한 병의 기름으로 8일간 매일 성전을 밝히고 비추는 기적이 나타났다. 따라서 수전절은 “성전을 다시 하나님께 봉헌하는 축제”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밝히는 광명의 명절”로 지키게 되었다. 수전절은 “헌당절” 또는 “광명절”이다 (참고. 제일 마카비서 4:36-59; 제이마카비서 1:9; 10:1-8).
1.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을 8일간 축제로 기념하면서 유대인들은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음미하며 기대한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presence)는 성전에 계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도 늘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목자가 돌보시는 “양떼”가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1, 6)라는 말씀을 음미하며 찬양하자는 것이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다윗의 반열(가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왕(메시아)”을 보내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므로 그 분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2. 요10:21-24에서 유대인들은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걷고 계시는 예수님을 에워싸고 질문공세를 다음과 같이 편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How long will you keep us in suspense? If you are the Christ, tell us plainly.). 그리스도(Hb. Messiah,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박해하면서도 유대인들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가. 예수님은 그때까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되심”을 밝히(plainly)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메시아는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지도자로써 민족의 해방을 가져오는 인물이었다. 예수님은 지혜롭게 그들의 견해를 피하신 것이다. 또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모독(하나님과의 일치됨)에 대한 함정(trap)을 만들려는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의 어떠한 설명도 수용되지 않는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예화나 비유의 말씀을 하여주셨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게 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이 “인자”(the Son of Man)라고 하시며 수도 헤아릴 수 없이 “신성”을 증거 하셨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을 뿐이다.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는 인간의 사고와 지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음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
나.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필요를 따라서 공공연하게 말씀하여 주셨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보면 명백한(plain)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I who speak to you am He.”)
3. 요10:30에서: 예수님은 이 수전절의 참뜻은 “새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명확하게(plainly) 이해된다. 따라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I and the Father are one.” 10:30)는 말씀을 주셨다. “하나”(“one”)라는 용어는 헬라어에서 “중성”(neuter)이므로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성”(性)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품격이 하나의 동일성을 가짐”이란 뜻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one)라는 것은 “목적(사명)이 하나”(“one in purpose”)라는 뜻이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동일한 목적(사명)을 보여주시는가에 대한 해답은 전후관계의 말씀에서 발견된다.
가. 요10:30 이전의 구절인 28-2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수님과 아버지의 사역은 다음과 같다.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양들은 “예수님의 손에서도 빼앗을 수 없고” “아버지의 손에서도 빼앗을 수 없다.” “그들은 영생(eternal life)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아버지의 사역하여 주신 결과다. “영생”이라는 것은 내일 또는 미래에 받는 것이 아니다(not futuristic). 내일 받는 것은 “천국”(Kingdom of Heaven)이지만 이미 “오늘(today) 받고 영원히 누리는 것은 영생”이다. “지금(now) 그리고 영원한(forever) 생명”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God’s life)의 특성이다.
나. 요10:30 이후의 구절인 3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수님과 아버지의 사역은 다음과 같다.
10: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 “예수님의 여러 가지 선한 일”은 “아버지의 일”과 “하나”(one)를 이루는 동일한 사역(목적)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것을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
다. 예수님은 “하나님 되심”(Deity, 신성)의 예를 시편 82:6의 말씀을 인용하시고 설명하여 주셨다. 시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gods)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라는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었고 또 애굽의 바로에게도 하나님과 같이 나타났던 예를 드셨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언하는 사명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경청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이야 더욱 잘 들어야 한다는 설명을 하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이시다. 수전절에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거룩하게 된 것과 같이 성전이신 예수님의 몸도 거룩하게 받들어 경배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겠다는 봉헌만이 성도들이 행하여야 할 새로운 각오와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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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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