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버지의 일을 나타내신 예수님 (요9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요한복음 제9장 1-11의 성경기록은 다음과 같다.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와 목적은 요20:30-31에 명시되어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을 요약하면 아래의 네 항목과 같고 요20:30-31의 말씀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의 모든 기록을 일관성 있게 읽고 또 예수님을 믿고 알고 섬겨야 한다.
첫째, “예수”(Jesus)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여호와”와 “호세아”의 합성어로써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으로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을 나타내 신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되시고 신성(Deity)을 가지셨다.”
셋째,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을 구원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Gk. christos; Hb. Messiah; 메시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가 되신다.
넷째, “사람의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갖는 것이 다.”
* 요한복음 제9장은 저자가 선별한 7가지 표적들(signs) 중에서 6번째로 “맹인으로 태어난 걸인의 눈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기적”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육체의 질병과 더불어 영혼의 질병까지 치료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이미 요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맹인을 빛에서 다니도록 생명의 치료를 베풀어주셨다.” 고침을 받은 맹인은 “주여 내가 (예수님을) 믿나이다”(8:38)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8:39)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을 가르쳐주셨다. 육적치료는 궁극적으로 영적치료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8:2)라는 신학적 질문에 대하여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the work of God)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8:3)고 예수님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일들, the works) 곧 내가 하는 그 역사(일들, the works)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요5:36)라고 하셨다. “역사”가 곧 “일”어다. 예수님은 표적들(signs)로 “일”(the works, 사역)을 하셨다. “표적”(sign)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신호”다. “표적은 곧 예수님의 신성과 예수님의 사역을 지적하며 가리킨다.” 예수님의 표적은 육적치료와 영적치료를 동시에 이루신다. 요9장에서는 육적치료와 영적치료라는 두 차원의 치료를 첫째, “진흙을 침으로 이겨 바르시며 고치심”(9:3)과 둘째, “안식일(Sabbath)에 고치심”(9:14)에서 나타내고 있다. 전자는 “기름부음”(anointing)을 상징하며 후자는 “창조(creation)와 보존(preservation)”을 가리키며 실현하는 일들이다. 이제 요9장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1. 요한복음 제9장은 예수님께서 초막절 바로 이후에 초막절의 은혜로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중에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실 때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나면서부터 맹인 된 걸인을 치료하여주신 일이다. 이 사건의 본문(9:1-12) 중에서 중요한 요절은 3-5절에 있는 말씀이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3).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4).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5).
2. “빛”이라는 것은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광선을 의미한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영적 존재를 표현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일반 대상물과 예수님의 실체를 대비하면서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그 실상은 다음과 같다.
육적 대상물 (육적 실체) 영적 실체 예수님 (영적 교훈)
야곱의 우물 --> 영원한 생수의 샘
바람의 출처와 결과 --> 성령님의 출처와 결과: 예수님
하늘의 만나 --> 영원한 생명의 떡
초막절의 반석 --> 영원한 생수의 근원
실로암 연못 --> 보냄 받으신 그리스도(메시아)
맹인의 시력회복: 바로 믿음 --> 세인의 영안: 그리스도 인식의 성장
3. 특히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생수가 언제나 흘러 들어오는 생수의 연못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맹인이 새로운 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서는 “실로암”(예수님)에 보냄을 받아야 한다는 깊은 영적 비밀이 숨어 있다. “이방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6; 사9:2)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보냄을 받고 오신 예언의 성취자이심을 증거한다. 이사야는 더 구체적인 예언도 하였다.
사29: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사35: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42: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4. 맹인은 육적 시력의 회복을 예수님을 통하여 받은 후에 영적 시력까지 열러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알게 된 4단계의 과정을 여기 제9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열쇄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일 단계: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9:11).
이 단계: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9:17).
삼 단계: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9:32-33).
사 단계: “네가 인자(메시아, the Messiah)를 믿느냐”(9:35), “주여 내가 믿나이다”(9:38).
9: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the Son of Man)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5.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질병의 근원에 대한 질문은 신학적이다. 특별히 불구자로 태어난 경우에는 “왜?”라는 심각한 질문이 있게 마련이다.
첫째, 부모의 죄로 돌리는 경우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민14: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신5: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둘째, 부모의 죄로 돌리지 않는 경우
렘31: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겔18: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셋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려는 경우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 불구자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한 많은 영적 지도자들을 기억하자.)
6. “하나님이 하시는 일(the works of God)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3)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무엇인가? 같은 내용을 4절에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the works of him)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일”(the works, 일들)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다른 구절을 참고하여 본다. 요5:36을 보면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일들, the works) 곧 내가 하는 그 역사(일들, the works)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라고 하였다. 여기의 “역사”가 곧 “일”과 같은 용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signs)이 곧 “역사”(the works)이며 “일”(the works)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이 친히 행하신 기적들이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일들, the works)”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the works of God)이란 곧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signs)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표적들의 일“(the work of signs)을 제자들에게도 행하여야 한다고 부탁하셨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the works of him)을 우리(we)가 하여야 하리라”(9:4). “표적”(sign)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신호”다. “표적은 곧 예수님의 신성과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키고 있다.”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고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증거 되고 표적을 통하여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7.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3)에서 “나타내다”(display, manifest)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이루어진 일(기적)이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뜻을 “전개하신다,” “보여 주신다”는 뜻을 가리키고 있다.” 원어(Gk. planeroo)에서는 “알게 하다, 드러내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의 일은 물론이며 제자들의 일도 하나님의 뜻의 결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면서도 우리는 때때로 마음으로 낙심하고 의심할지라도 그 행한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의 “나타내다”와 요한복음1:18의 “나타내다”는 전혀 다른 뜻을 가리킨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여기의 원어(헬, exegesato)는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자세한 내용들을 설명한다 또는 해설한다”는 뜻을 가진 표현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계시하시고 보여주신다는 것이므로 뚜렷한 구별이 있다.
8.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맹인)의 눈에 바르시고”(9:6) 역사(일)하셨다. 왜 침을 뱉으셨고 왜 진흙을 이기셨나? 말씀만으로 하실 수 있지 않았을가? 손을 직접 눈에 대고 하실 수 있지 않았을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또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놀라운 영적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고 추적해야 할 것이다.
가. 침 뱉음: 침 뱉음으로 질병을 고쳐주신 내용이 마가복음에 두 곳 나오고 있다.
막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막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 첫째, 침 뱉음에는 상처의 치료를 위한 일반인의 습관과 행동이 숨어있다. 몸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든지 화상을 입었을 때 그 부위에 즉시 침을 바른다. 눈에 염증이 있을 때에도 침을 바르곤 한다. 치유의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둘째, 다른 사람의 침이 묻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나 부부 관계에서 침 묻은 음식을 개의치 아니하고 서로 주고받고 먹는다. 간격이 없는 동일체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구원 받은 백성은 신랑과 신부라는 영적관계를 생각할 때 “사랑의 침 바름”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10:12).
* 셋째, 침을 타인에게 뱉는 것은 상대편에 대한 모욕을 의미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예수님은 수난을 당하시면서 얼굴에 침 뱉음과 얼굴의 뺨을 맞는 수치를 당하기도 하셨다.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마26:67).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에 대한 멸시와 천대였다.
* 넷째, 막8장의 기록에는 “침과 안수”를 병행하여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침 바름”은 “기름 부음”(anointing)의 상징으로써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영적은혜와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 진흙 이김(반죽 만듬): 초대교회 시대의 이레니우스(Irenaeus)는 진흙 이김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같다고 해설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창조사역의 주역이신 예수님께서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신 한 예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 침 뱉음과 진흙 이김: 종합적으로 볼 때 침 뱉음에서는 구원 받을 자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인간을 향한 애정의 표현과 아울러 육적질병에 대하여서는 치유를 주시고 영적질병에서는 새롭게 하여주시기 위한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맹인은 “실로암”에 보내어지게 된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사람은 사랑하여야 할 대상이며 육체와 아울러 영혼의 질병/죄악은 치료/퇴치하여야 할 대상이다.”
9. 예수님은 맹인에게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9:7)고 하였다. “실로암”이라는 헬라어는 “실로아”(Hb. Shiloah)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말이다.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실로암 연못은 기드론(Kidron) 골짜기의 시냇물에서 예루살렘 성내로 보냄을 받은(끌어들인) 연못물이다. 늘 생수로 넘친 연못이었다. 구약시대의 히스기와 왕의 사적을 보자.
왕하20: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대하32: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도 예수살렘 성내의 백성이 성 밖으로 가지 않고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물 근원에서 600yds나 되는 바위를 뚫고 성내로 끌어들인 연못이 바로 “실로암” 연못이다. 실로암의 물은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라고 언급한 “구원의 물”이었다. 참으로 실로암의 물은 예수님의 하시는 사역과 기적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한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좋은 실로암 물을 배척하였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사8:6). 그리하여 앗수르의 대적이 홍수같이 밀려들어와서 유대 백성들을 유린하였다.
10. 맹인 걸인이 “실로암”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의 주님, 메시아”에게 보냄을 받았다는 내용을 상징하고 있다. 예수님은 맹인 걸인에게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시면서 실로암 생수의 연못에 보낸 것이다. 맹인 걸인은 예수님의 말씀(명령)을 받았다. 가까운 “베데스다” 연못도 있는데 하필이면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실로암”에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예수님은 “가서 씻으라”고만 하였지 “보게 되리라”는 약속은 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순종을 통한 믿음을 주시려고 명령을 내려 주셨다. 그는 “가서 씻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복하여 가서 씻은 결과 몸의 눈과 영의 눈이 함께 열린 것”이었다.
11.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9:15)와 “누가 보게하여 주었느냐”의 문제: 예수님의 치료방법은 맹인으로 하여금 그의 평생에 불변의 신앙체험을 남겨주었다. 눈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에 몸이 받은 자극, 예수님의 입의 침이 주는 신비한 자극, 먼 길을 헤매며 실로암을 찾아가던 괴로움 등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신앙체험으로 남게 되었다. 바울이 밝은 빛의 자극과 더불어 다메섹에서의 새로운 신앙체험 즉 예수님을 만난 체험은 그의 삶 속에 일평생 생생하게 남아서 간증의 토대가 된 것과 같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방법과 상항은 다를지라도 그 받은 은혜와 사랑의 결과는 복음증거의 원동력이 된다. 시력을 회복한 맹인이 아는 지식의 모든 것은 “예수님”이었다. 자기가 눈을 어떻게 떠지게 되었는지 “침 뱉음”도 “흙 이김”도 몰랐고 오직 “예수님의 음성”만 들었다. 또 “예수님의 이름”만 들었을 뿐이다. 또 아는 것은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였다. 그 은혜의 결과를 붙들고 그는 신앙의 용감성을 끝까지 발휘하였다. “내가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9:25). 그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나 유대인 사회에서는 결국 추방되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9:34). 사람에게서 버림받았으나 예수님에게 영접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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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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