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요8:12)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2)
* 요8:12-30: 어두운 세대에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초막절이 지난 후 첫날 아침에 예수님이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셨을 때에 백성이 다 나아왔고 예수님은 “앉아서 그들을 가르치셨다”(8:2)고 하였다. “앉으시다”(Gk. kathisas; sitting)라는 표현은 당시에 권위 있는 랍비(a rabbi)의 가르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인데 여기에서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의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실 때에도 앉으셨고(4:6), 산상보훈의 말씀을 주실 때에도 않으셨고(마5:1), 다락방의 교훈을 주실 때에도 앉으셨다(13:12).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나왔다. 이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방해하면서 간음한 여인을 몰고 나왔던 것이다.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음모를 세우고 나왔으나 오히려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 까지” 물러가고 말았다. 방해꾼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 예수님은 대중에게 계속하여 말씀을 가르치셨다. 여기에서의 가르치심은 중요한 초막절 행사의 깊고 오묘한 내용들과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즐겨하셨고 말씀과 표적으로 제자들과 대중들에게 교훈하시며 그들을 훈련하셨다.
1. 예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말씀은 놀라운 선포(proclamation)였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8:12).
2. “나는”(Gk. ego eimi; “I am”)이라는 말은 평범하게 일인칭의 “나” 또는 “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요한복음의 핵심교훈에서 멀어진다. 요한복음 기록의 중요한 목적은 “예수님의 신성”(Deity,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려는 것이며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게 될 때에 믿는 자가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가 된다는 신앙적 확신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는데 있다. 그러므로 “나는”(“I am”)이라는 말은 출애굽기 3장에서 언급한 “하나님 이름의 특성”과 같은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who I am.” 출3:14)고 모세에게 알려주신 대로 예수님도 “나는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는”(“I am”)이라는 아래에 기록한 일곱 가지의 내용을 주축으로 삼고 예수님의 신성(Deity)을 전개하고 있다.
첫째, “나는 생명의 떡(빵)이니라” (The bread of life; 6:35, 48, 51)
둘째,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 (The light of the world; 8:12; 9:5)
셋째, “나는 문이니라” (The gate; 10:7, 9)
넷째, “나는 선한 목자니라” (The good shepherd; 10:11, 14)
다섯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11:25)
여섯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The way, the truth, the life; 14:6)
일곱째, “나는 참 포도나무니라” (The true vine; 15:1)
3.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I am the light of the world.”)는 말씀은 초막절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과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성전입구인 미문(Beautiful Gate) 바로 안에 있는 “여인의 뜰”(The Court of the Women)에서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는 생수의 초청을 하셨다. 또 “여인의 뜰”에는 사방(동서남북)에 네 개의 “금 기둥”과 그 위에 기름으로 채워진 “금대접”(golden bowl)이 있었다. 이 금대접에 “불”(light)을 피우고 어두운 성전을 밝게 비추게 하였다. 이 “불”(light)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불/구름 기둥”(the cloud/pillar of fire)의 인도와 보호함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게 하여준다. “불/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함께하심” (theophany)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적 실재를 염두에 두시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하나님 되심(deity)”을 분명하게 말씀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4. “빛”(Light)은 이미 구약에서 메시아에게 적용하고 있음을 아래 구절에서 확인하자.
사9: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darkness)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great light)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darkness)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darkness)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thick darkness)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the brightness)으로 나아오리라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5. 위에서 인용한 사9:1에 “(여호와께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glorious) 하셨느니라”는 구절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가 갈릴리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갈릴리 지역에서 흑암에 사는 백성에게 비치는 큰 빛을 보리라”(사9:2)고 하였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빛으로 나타나신다”는 “하나님의 임재”(theophany)를 가리킨다.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배경으로 삼고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선포와 함께 이미 “초막절 생수의 초대”를 베풀어주셨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귀한 말씀을 깨닫지 못한 채 “갈릴리에 나타난 큰 빛이신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7:41-42), 또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7:52)고 하였다.
6. 위에서 인용한 이사야서의 구절들을 보면 “빛”(light) 또는 “광명”(the brightness)과 함께 여기에 대비되는 “어둠,” “그늘,” “흑암,” 또는 “캄캄함”을 언급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위와 아래,” “하늘과 땅,” “내려옴과 올라감,”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영과 육,” “안에와 밖에” 등등 이중구조(二重構造)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특성이다. 이중구조의 제시는 “문제점과 해결점”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인간의 문제와 하나님의 해결”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준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는 선포를 뒷받침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Are there not twelve hours of daylight? A man who walks by day will not stumble, for he sees by this world’s light./ It is when he walks by night that he stumbles, for he has no light.”(요11:9-10)고 하셨다.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1:17에서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자”고 하였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떠한 “어둠과 그늘의 환경”에서 살고 있던지 매일 시간마다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인도”하신다.
7. 요11:9-10에서 “낮과 밤의 대비(對比)”에서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또 “그 때(time)와 시간(hour)”이 언제든지 “실족(失足)하지 않고 승리하신 모습”을 요한복음 전반에 걸쳐서 제시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앙인들과 동행하며 격려하시는 표본이 된다. “어둠”(그늘, 캄캄함)이 있는 그 곳에 “빛”이 공존하여 그 부정적인 요소를 결국은 제거하여 주신다. 그 때와 시간에 관계된 구절들을 열거하여 본다.
가. 인자의 빛이 나타난 그 때(시간): 요2:4; 12:23.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나. 구세주께서 고난당하시는 그 때(시간): 요7:30; 8:20; 17:1.
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8: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다. 구하는 자를 부르시는 때(시간): 요1:39.
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라. 죄인이 구원 받는 때(시간): 요4:6, 29.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마. 은혜를 공급하여주시는 때(시간): 요4:52-53.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바. 성도가 섬김을 베풀어주는 때(시간): 요19:27.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사. 성도가 영적으로 승화할 때(시간): 요4:21-23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 목자가 안식하는 때(시간): 요13:1.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자. 영혼이 슬픔을 당하는 때(시간): 요12:22; 16:21.
12: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차. 제자들이 모두 사라지는 때(시간): 요16:32.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카.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때(시간): 요19:14.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타. 하나님 아들의 탁월함이 나타나는 때(시간): 요5:25-29.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상호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생명의 떡(빵)이 되심”을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7장에서는 광야의 반석에서 나온 “물”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영원한 생수가 되심”을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8장에서는 광야에서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한 “불/구름 기둥”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되심”을 말씀하셨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생명의 삶”이다.
1. “빛은 생명”이며 또 “생명은 빛”이다. “빛과 생명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그(말씀=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의지하며 사는 자는 생명의 빛 안에서 산다. “빛은 어둠을 향하여 비치며”(요1:5) “빛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므로”(요1:9) 그 빛을 받은 자는 “빛과 함께 살면서 빛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갖는다.” “비친다”는 말은 “영원한 현재형”이다. 성도가 “빛(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어두움을 몰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산다”는 귀한 약속이 담겨진 말씀이다.
2.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그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모습을 본 베드로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과 지극히 큰 영광을 친히 본 자”(마17:2; 벧후1:16-17)라고 증언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갔으므로 그 아름다운 덕(빛)을 전하여야 한다”(벧전2:9)고 말하였다. 베드로와 함께 변화산에서 빛으로 변화하신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을 체험한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 서두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증언하고 있다.
3. “빛은 사람의 생활을 변화시킨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일을 하던 중에 어떤 날 “하늘에서 해보다도 더 밝은 큰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빛에 엎으려졌다.” 이때 사울은 “빛이신 예수님”에게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탄원을 하였다. 결국 사울은 사도 바울로 사역하게 되었고 “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는 빛이 되었다”고 증언하였다(행9:3; 13:47; 22:6, 9, 11; 26:13).
4. “빛은 먼저 비쳐지며 그 후에 빛 가운데에서 보고 활동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빛을 비추어주신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먼저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다. 따라서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36:9)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우리들은 생명의 빛을 가진 빛의 자녀들이다.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맹인(장님)이다. 어두운 생활을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귀한 빛”을 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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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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