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 (요14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일어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별세하여;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면서 예수님과 헤어지지 않으려는 제자들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한다. 이들의 근심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이 안 계시면 자기들의 존재는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제자들 자신이 자기들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자기들은 외부의 박해와 압력을 견디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환경에서 오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들은 우리 에게도 끊임없는 실망과 좌절, 근심과 염려에서 살게 한다.
1. 그러나 어떤 근심과 실망 중에서도 성도들을 새롭게 일으켜주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14:1)고 권유하여 주셨다. “믿으라”는 성경원어는 서술형과 명령형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첫째, “너희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나를 믿고 있다”는 서술형이다. 둘째,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는 명령형이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믿음이 활성화되기를 예수님은 원하셨다.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하여 주셨다. 믿음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연결하여주는 생명의 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줄에 든든히 매여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북돋우어 주신 것이다. 믿음의 근거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동등함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다음의 구절은 귀한 참고가 된다.
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12: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14: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2.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하라”는 예수님의 처방의 배후에는 상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또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믿으라”는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리라는 출애굽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려 주신 것과 같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예배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3). 예수님과의 이별은 잠간에 불과하다. 잠간의 이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잠간의 이별이 없이는 영원한 처소가 예비 될 수 없다. 그러나 외로운 이별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성령님으로 하여금 함께 계시도록 할 것을 약속하여 주셨다. 그들에게 주신 믿음은 “영원한 처소를 예수님이 준비하였다”는 확신이다.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 잠간의 이별이란 이스라엘 백성의 혼인제도와 직결되는 배경이 있다. 장차 결혼을 약속한 신랑은 신부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까지는 이별의 기간이 요구되었다. 신랑은 아버지의 집에 가서 열심히 일하면서 집을 마련하여야 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신랑은 아버지의 집(house)에 가서 신부와 함께 “거할 곳”(rooms) 또는 “처소”(space)를 준비하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동안 신부는 장래 신랑과 함께 그곳에서 영원히 살 소망을 가지고 믿음과 사랑으로 그때까지 인내로 기다려야 하였다. 이런 사실은 분명한 소속감을 가진 사람은 외롭지고 않고 아무 두려움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대인의 생활풍습을 따라서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2)고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4. 예수님의 “예비하심”은 구원의 삼 단계를 의미한다.
첫째, 구원을 이루신 단계: 예수님은 반드시 제자들을 떠나가셔서 홀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셔야만 하셨다.
둘째, 원수를 정복한 단계: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정복하시고 사로잡으시는 승리의 왕이 되셔야만 하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4:8).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2:15).
셋째,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는 단계: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6).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사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져야만 하였다. 이러한 삼 단계는 예수님과 함께 모든 제자들이 하늘에서 영원히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며 살게 하여주신 놀라운 은총이다. 이 모든 것은 완성되었고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모습은 이러하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2:11). 이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에 참여하게 된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신부를 취하실 때는 신부의 몸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1-52).
* 요한복음 14: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In my Father's house are many rooms;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I am going there to prepare a place for you.)의 말씀에서.
1. 이 구절에 나오는 “집”(house)과 “거할 곳”(rooms)과 “처소”(place)는 분명하게 구별된 용어들이다. “집”은 “큰 틀에서 언급하는 실체”를 의미하고 “거할 곳”은 “구체화 되고 각자가 머무를 수 있는 방들”을 뜻하고 “처소”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언급하는 자리(space)”를 나타낸다. 신앙인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이 세 가지 용어를 신앙관의 표현에서 구별 없이 영원한 천국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back and take you to be with me that you also may be where I am.)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You know the way to the place where I am going.)
2. “내 아버지 집”에서 “집”(Gk. oikia, house)이라는 말은 “하늘”(heaven)을 언급한다. 요한복음 2: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집”을 언급하였다. 여기의 “집”(Gk. oikia, house)도 똑같은 원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성전”(temple)을 가리키고 있다. 또 예수님은 이 “성전”을 당신의 몸 “자기 육체”와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다. 이 “육체”는 부활하신 영원한 “몸”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집”과 “성전”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영원히 거할 하늘나라의 “집”은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3. 또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거할 곳”을 KJV에서 “mansions”(복수 명사. 저택들)라고 번역하였고 “많도다”라고 하였으니 합쳐서 번역하면 “거대한 저택들이 많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인위적이고 물질적이며 성서적이 아니다. “거할 곳”(Gr. monai. dwelling places)이란 말은 “머무르는 곳들”또는 “방들”(rooms)을 의미한다. “monai"라는 명사는 “meno”(remain 또는 dwell)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요한14:23에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make our abode(home) with him)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는 우리가 거처할 저택이 많다”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거처할 공간(rooms)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 “방들”은 어디에나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강조되고 있는 말이다.
*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에서.
1. “길,” “진리,” “생명”이란 용어들은 추상명사로써 광범위한 뜻으로 사용될 수 있으나 성경의 헬라어에서는 모두 “그”(the)라는 정관사를 용어 앞에 붙여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 되면서 “그”(the)라는 정관사의 뜻인 “유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은 “그”(the)라는 정관사를 사용하여 추상명사를 영적인 특수성으로 승화하였고 특별히 인격체 예수님의 독특성으로 나타내었다. 이미 요한복음 서두에서 예수님은 “말씀(the Word)이 육신(flesh)이 되신 분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다”(1:14, 17)고 하였고 또 “그 말씀은 생명이며 사람들의 빛이라”(1:4)고 하면서 영적 이며 신앙적인 용어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와 함께 예수님은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다”는 뜻이 분명하여 진다. 오순절 이후에 행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예수님을 지칭하여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헹4:12)고 하였다.
2. 예수님의 유일성은 영적, 신앙적 독특성을 지니며 특별히 인간이 창안한 다른 종교의 사상이나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한 신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이르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서는 결코 하늘나라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은 어느 시대의 어떤 종교사상과 결코 타협할 수도 없고 혼합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오직 유일무이(獨逸無二)하신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며 “메시아(그리스도) 자체”이시다.
3. 예수님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시지만 실제로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절대적인 구주이시다. 따라서 제자 도마가 “주여(예수님),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14:5)라고 질문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인격체인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6)고 일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다. 천국에 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알려는 사람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뜻이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옆구리와 손의 못 자국을 확인한 도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라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요한복음은 도마와 같은 신앙고백을 예수님을 향하여 신앙인 각자가 스스로 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행동적 신앙, 주체적 신앙행위”(믿는다, believe)를 강조하는 복음서다. 요한복음서의 서두에서부터 믿음직한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자들이 고백을 하고 있으나 그 고백들이 객관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자아내고 었다. 안드레는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1:41),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1: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2), 니고데모는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3:2), 베드로는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69),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11:27) 등등의 고백들은 객관적 서술들이다. 마지막에 도마가 행동으로 표현한 주관적 신앙고백을 기록함으로써 요한복음은 개인의 신앙고백을 북돋우어주는 매우 귀중한 복음서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4.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길”(“도”=道; the Way)로 표현하고 있다. 특별히 영어표기에는 “way”를 대문자 “Way”로 기록하여 인격체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도”(the Way)를 “예수님”으로 대치하여 읽으면 내용이해가 분명해 진다.
행9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the Way)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the Way)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the Way)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2:4. 내가 이 도(the Way)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24: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the Way)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22. 벨릭스가 이 도(the Way)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 요한복음 14:7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의 중심주제 중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의 일체성(the unity)”이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일체성은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론적 일체성(ontological unity)과 사역론적 일체성(ministerial unity)을 포함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또 사역론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수행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라는 사실이다.
1.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20:31)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특별히 7가지 표적들(signs)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신성(하나님 되심)을 1-12장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이제 13-21장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제자들이 믿고 사역할 수 있도록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여야 하는 단계에서 “일체성”(the unity)에 관한 말씀을 주시게 되었다. 예수님의 신성을 확고하게 믿지 않고는 결코 제자들이 올바른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예상하였던 바와 같이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14:7)고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게 되었다. 따라서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14:8)라는 질문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가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동족인 유대인들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능력 있는 사역을 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신성(하나님 되심)을 확신하고 전하고 가르쳐야만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예수님의 증인들”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분명한 일체감의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주신 말씀이 요14:9-11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Jesus answered: “Don't you know me, Philip, even after I have been among you such a long time?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Don't you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at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I say to you are not just my own. Rather, it is the Father, living in me, who is doing his work.)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Believe me when I say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or at least believe on the evidence of the miracles themselves.)
3.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는 “안에”(“in”)의 중요성: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기초
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하나님과 일체성(unity)” 또는 “성도와 예수님(하나님)과의 일체성(unity)”을 나타내는 용어(terminology)는 “안에”(“in”)이라는 전치사다. 이 용어는 “성도와 성도간의 일치”에도 적용하며 사용하게 된다. 위에 기록된 10-11절의 말씀을 먼저 자세히 읽고 음미하자. 이 말씀의 내용이 함유하고 있는 “일체성”을 기본요소로 삼고 놀라운 가르침을 주셨다. 그 구절이 바로 요14:12-15이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has faith in me will do what I have been doing. He will do even greater things than these,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일체성이 기초가 되어서 이루어지는 사역)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And I will do whatever you ask in my name, so that the Son may bring glory to the Father.)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You may ask me for anything in my name, and I will do it.) (일체성이 기초가 되어 나타나는 사역)
나. 요한복음에서 “안에”(“in”)이라는 용어들은 요6:56; 10:38에 또 14:17, 20에도 중요한 뜻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다.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remains in me, and I in him.)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But if I do it, even though you do not believe me, believe the miracles, that you may know and understand that the Father is in me, and I in the Father.)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the Spirit of truth. The world cannot accept him, because it neither sees him nor knows him. But you know him, for he lives with you and will be in you.)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On that day you will realize that I am in my Father, and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안에”(“in”)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면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15:4.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신앙생활의 유익”을 가르쳐주셨다. 즉 예수님과 일체감을 이루는 신앙인의 삶 속에는 아름다운 결실과 열매가 맺어지며, 소원하고 계획하는 일들의 성취를 보게 되며, 진실한 사랑의 유대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제자들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라.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중보자 되시는 아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기도(High-priestly prayer)를 드리신다. 여기에서의 중요한 용어도 바로 “안에”(“in”)라는 말씀이며 “아들과 아버지와 성도들의 일체감(unity)”을 강조하신다. 아래에 몇 구절(17:20-23)만 인용하여 본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My prayer is not for them alone. I pray also for those who will believe in me through their message,)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that all of them may be one, Father, just as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May they also be in us so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you have sent me.)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I have given them the glory that you gave me,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I in them and you in me. May they be brought to complete unity to let the world know that you sent me and have loved them even as you have loved me.)
마.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trinity)도 이러한 구조를 기초로 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 되심”을 이해하도록 이끌고 있으며 성도들과 일체감을 이루게 되심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와 일체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운 은혜다. 예수님은 이러한 은혜의 좋은 소식을 제자들이 먼저 깨닫고 전하고 알리는 자들이 되도록 이끌어주신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미 서두(1:14)에서 이러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바. 하나님의 구원계획도 바로 “일체감”(unity)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다. 타락한 인간(the Fall)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모습(image of God)을 이미 상실하였으므로 결코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교제의 흐름을 마련하여 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는 말씀을 이미 요엘 2:28에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신 예언을 오순절(Pentecost) 날에 이루어주셨다.
사. “안에”(“in”)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언약(covenant of God)을 완수하여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제자들에게 풀어 설명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예레미야 31:33-34과 에스겔 37:14, 23-24, 26-27에서 확인할 수 있다.
렘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I will put my law in their minds and write it on their hearts)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7: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I will put my Spirit in you and you will live)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3.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4.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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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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