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3일 토요일

16. 포도나무와 가지에 숨겨진 비밀 (요15장)

 16. 포도나무와 가지에 숨겨진 비밀 (15)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성경말씀: 요한복음 (John) 151-11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요한복음 15: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포도나무는 포도생산을 가져다주는 생활필수품이며 수입의 근원이었다. 포도나무가 생활의 근거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언제나 생활의 근거이다. 여기에는 믿음으로 밀착된 유대관계가 토대를 이룬다. 포도나무와 가지, 목자와 양, 신랑과 신부의 세 가지 예화는 예수님과 성도들이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명료하게 가르쳐 준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중에서도 포도나무라고 하셨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포도나무는 세 가지의 종류로 설명하고 있다.
 
1. 첫째. 과거에 있었던 옛 포도나무. 구약시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과 나라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정한 땅에 심으신 포도나무라고 하였다. 그들은 애굽 땽에서 뽑아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옮겨 심으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극상품포도나무로 심으셨고 ”(귀한) 종자 포도나무로 심으셨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는 이방 포도나무의 약한 가지가 되었고 들 포도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버리고 베어버림을 당하게 되었다. 아래의 구절에서 보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 포도원에 오셨을 때에도 그를 사로잡아 죽이기까지 하였다(21:33-46). 이스라엘 백성은 참 포도나무가 될 수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80: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5: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19:10. 네 피의 어머니는 물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11.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12.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13.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바 되고
       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10: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둘째. 장래에 있을 땅의 포도나무. 14:14-20의 기록을 보면 땅의 포도나무라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세계의 세력과 조직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도 자기들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를 거두고 그것을 먹고 마시며 즐기지만 이것은 하늘의 검으로 베어버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이 세상의 땅에 심겨진 포도나무는 참 포도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3. 셋째. 현재 존속하는 참 포도나무. 이 참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옛 포도나무땅의 포도나무는 현재 존속하며 영원한 참 포도나무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가 아닌 것에 메어 달리지 말도록 경고하셨다. 참 포도나무는 규모도 크고 강하기 때문에 그 가지가 사방에 뻗히고 그 원 줄기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런던 테임스 강가에 있는 포도나무는 수백 년에 걸쳐 그 가지를 뻗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예수님과 성도들의 연합은 사랑의 연합,” “영원한 연합,” “약속의 연합으로 영생의 열매를 맺는다.
 
* 요한복음에는 비유”(Gr. parabole, parables)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비유라는 단어가 우리말 성경에 4회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비유라는 원어(Gr. parabole)가 아니고 은유”(은유)라는 원어(Gr. paroimia)로 표기되어 있다. “은유라는 것은 수사학 표현을 하기 위한 문채(글월문, 무늬채, figures of speech)의 한 종류다. 이것은 결코 비유 자체가 아니고 비유의 한 종류다. 비유는 이야기, 은유는 비교하는 말이다. 한글성경의 개역개정에는 비유라는 단어를 4, 개역성경에는 비유라는 단어 대신에 비사”(比辭, 비교하는 말)라는 단어로 3회 사용하고 있다.
 
10: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16:25. 이것을 비유(개역: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개역: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16: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개역: 비사)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1. 비유와 은유의 해설: 성경에는 약 250여개의 비유가 나오는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 중에 3분의 1 이상이 비유로 되어 있다. 비유란 하늘의 의미를 지닌 지상의 이야기”(an earthly story with a heavenly meaning)이다. 어떤 진리나 교훈을 전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짤막한 우화,” “도덕적, 영적 진리를 밝히기 위해 일상생활의 사건들 혹은 간단한 이야기로 정의한다. 비유란 마샬(Hb. mashal) 혹은 파라볼레(Gr. parabole)라고 하는데 헬라어에서 파라(para. 옆에) 볼레(bole. 던지다)라는 뜻이다. 희랍사상에 있어서 비유”(parabole)라는 말은 비교(comparison). 예증(illustration), 유비(analogy)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하여 우리는 예화를 주로 비유라고 이해하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비유에는 이와 비슷한 여러 종류가 있다. 직유(similes), 은유(metaphor), 잠언(proverb), 유사(similitude), 예화(example stories), 우화(allegory) 등이다.
 
2. 예수님의 모국어는 희랍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와 아람어였다. "비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마샬” (לשׁמ)이며 아람어로는 마슬라(malthla)라는 말이다. 구약에서 마샬“~과같다”(to be like)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에스겔은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לשׁמי)를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 하리라”(16:44)에서나 삼상 12:12에서 그곳의 어떤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לשׁמל)이 가로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12:12). “내가 입을 열고 비유(לשׁמ)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시편 78:2). 이와 같이 마샬의 의미는 속담(proverb/잠언)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마샬은 웃음거리 말(byword), 풍자(satire), 비웃음(taunt) 조소의 말(word of derision)을 언급하기도 한다.
 
3. 신약에서 사용된 비유라는 용어는 속담(잠언/proverb)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하는 속담”(παραβολη)을 인증하여 내가 말하기를...”(4:23) 뿐만 아니라, “비유는 비유적 말(figurative saying) 혹은 은유적인 비유(metaphor)를 의미하기도 한다. 은유와 직유는 서로 다르지만 그 차이는 극소하다. 은유는 두 상이한 사이의 은근한 비교(implicit comparison)를 말하는 반면 직유(simile)~(like) ~같이(as), 마치 ~인 것처럼(as if), ~보이다(seems)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직접적인 비교(explicit comparison)를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에서 우리는 양 다 같아서라는 말은 직유(simile)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16:6)에서 누룩은 은유이다.
 
4. 또 다른 예를 들면, “나는 선한 목자다”(10:11)라는 문장과 나는 선한 목자와 같다에서 전자는 확장된 은유(Gr. paroimia/ extended metaphor or metaphorical saying)이며 후자는 직유이다. 전자나 후자에 있어서 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예수님은 선한 목자와 같다라는 말의 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양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직접 버리신 유일하신 분이다. 그러나 선한 목자와 같다는 말에서는 유일하신 선한 목자라기보다는 그럴 수 있는(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 한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직유는 예증적이지만 은유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게 된다.
 
5. 비유를 해석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아래와 같다.
. 그 당시의 상황과 풍습을 알아야 한다. 2천년의 시대의 격차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서사전을 참고하여 그 시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현시대에 적용할 원리를 깨닫게 된다.
. 사실적 이야기 또는 비사실적 이야기들이 혼합되어 있으므로 그 비유에 근거하여 신학적 가르침을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 그 비유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 비유 안에 있는 작은 메시지들은 묶어서 한 가지 큰 메시지로 정리되어져야 한다.
.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와 연결되므로 도전과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
 
* 참 포도나무와 가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15:4).
 
15:1. 포도나무의 가지는 원줄기에서 떨어지면 가치가 없다. 에스겔 15:2-4의 기록을 본다.
       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1.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하는 핵심단어는 안에 있으라,” “거하라는 두 단어로 표현된다.
첫째, “안에 있으라”: 성도의 생활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을 예수님은 요구하셨다. 특별히 어떤 안에 있으라는 것인지살펴보아야 한다. (1)“(예수님) 안에,” (2) “내 말(계명) 안에”(7), (3) “내 사랑 안에”(10), (4) “내 기쁨 안에”(11) 있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둘째, “거하라”: “거한다”(Gr. meinate, abide, remain, reside)는 성경원어는 존속하다, 머무르다라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라도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는 계속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2. “안에 있으라그리고 거하라는 두 단어는 연합교류라는 중요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연합과 교류를 통하여 약한 것이 강하여지고 부족한 것이 채워지고 무너진 것이 세워지고 병든 것이 고쳐진다. 그리고나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 신약성경은 헬라어에서 각 나라와 종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적혀져 있는 글이다. 비록 번역되어 자기들의 말과 언어로 표기되어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헬라어의 문법적 흐름이 담겨져 있고 아울러 헬라의 사상이 내면에 흐르고 있다. 오늘은 헬라어 동사의 현재형과 현재 명령형이 어떠한 체계를 포함하고 있는지 잠간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헬라어의 현재형 동사(The present tense in Greek)의 이해: 현재형 동사를 볼 때마다 그 현재형 안에는 계속적인 동작”(continuously), “반복적인 동작”(repeatedly), “습관적인 동작”(customarily), “방해할 수 없는 동작” (uninterruptedly), “변함없는 동작”(constantly)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또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내가 현존하는 한 현재형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둘째, 헬라어의 현재 명령형 동사(The present imperative in Greek)의 이해: 현재 명령형 동사를 볼 때마다 그 현재 명령형 안에는 위의 현재형 동사가 요구하고 있는 내용들을 요구하고(order) 지시하고(command)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또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적용 예: 요한복음 15:4을 예로 들어본다.
내 안에 거하라(현재 명령)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안에) 붙어 있지(거하지, 현재형)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거하지, 현재형)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개역개정).
Remain(abide) in me, and I will remain(abide)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abide)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abide) in me.”(NIV)
 
1. 안에: “계속적으로”(continuously), “반복적으로”(repeatedly), “습관적으로”(customarily), “방해할 수 없게”(uninterruptedly), “변함없이”(constantly), “안에 있으라는 뜻이 된다.
 
2. 거하라: 계속적으로”(continuously), “반복적으로”(repeatedly), “습관적으로”(customarily), “방해할 수 없게”(uninterruptedly), “변함없이”(constantly), “거하라는 뜻이 된다.
 
3. 헬라어 현재형 동사 및 현재 명령형 동사는 이와 같이 그 언어 속에 깊은 뜻넘치는 능력을 함축하고 있으므로 여러 가지 제한성을 가진 우리들은 그와 같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신이 먼저 그러한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되기를 구하라”(기도하라)는 요구와 명령을 주신다. 구하라”(기도하라)는 현재 명령형 동사도 우리는 계속적으로”(continuously), “반복적으로”(repeatedly), “습관적으로”(customarily), “방해할 수 없게”(uninterruptedly), “변함없이”(constantly), 구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4. “구하라는 헬라어 원어(Gr. aiteo)는 영어로는 “ask”로 번역되어 단순히 물어보다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구절의 원어에서는 간청하다”(entreat), “빌다, 구걸하다”(beg), “탄원하다”(supplicate)라는 내용으로 기도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단어는 제자들과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사용되었고 예수님은 기도의 생애를 사셨으나 예수님께는 이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15: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구하라(ask, 기도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ask, 기도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5. 요한복음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른 예(Gr. aiteo)를 들어본다.
4: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질문, 요청)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질문, 요청)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질문, 요청)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기도)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기도)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예수님의 기도, Gr. erotao, request)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6: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질문) 자가 없고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질문)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질문)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질문)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기도)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기도) 아니하였으나 구하라(기도)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기도)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예수님의 기도, Gr. erotao, request) 하는 말이 아니니
 
6.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는 “erotao"(Gr.)로 표기되어 있다. 이 단어도 “aiteo”(Gr.)와 같이 문의, 질문하다”(ask)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나 대화하는 상대가 서로 매우 친숙하고 막연한 관계를 가질 때 사용한다. 따라서 아들 예수님아버지 하나님께 말씀하는 기도, 비옵나니라는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확인하자.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pray) 내가 비옵는(pray)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5. 내가 비옵는(pray)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pray)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 “제거해 버리다”(cut off) 깨끗하게 하다(prune)”: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He cuts off (=take away)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 fruit, while every branch that does bear fruit he prunes so that it will be even more fruitful.”(NIV)
 
1. “제거해 버리다의 원어(Gr. airei)“take up, lift up, pick up"(5:8-12; 8:59) 또는 “take away, remove”(11:39; 16:22; 17:5) 또는 “destroy”(11:48)의 뜻을 나타낸다. 여기에서는 제거해 버리다”(cut off, take away, remove)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의 말씀과 관련하여 밖에 버린다”(thrown out), “불에 던져 태운다”(thrown into the fire and burned)의 말씀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래의 구절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처음부터 순수한 신앙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 바리새인, 서기관, 가롯유다 등은 위에서 언급한 제거해 버리다,” “밖에 버리다,” “불에 던져 태우다의 세 가지 제거의 사항에 적용된다.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 “깨끗하게 하다”(prune)의 원어(Gr. kathairei)“cleanse, make clean, prune, take away, cut off" 등의 개념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단어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들은 제거하고 열매 맺는 가지들은 깨끗하게 한다는 구별을 나타내면서 사용하고 있다. 생산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농부는 이미 판단하고 제거함깨끗하게 함의 작업을 하고 있다.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열매란 무엇인가?: 2절 내에서도 열매란 단어를 4회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매란 성도의 좋은 성품이나 선한 행위를 가리키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3: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1.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의 기록한 목적이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20:30-31)을 얻게 하려는 데에 있으므로 그 열매란 당연히 영생”(eternal life)에 귀결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요한복음 제15장은 예수님(포도나무)와 제자(가지)와의 영원한 유대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가진 가지는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곧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의 심각한 문제인 것을 사도요한은 지적하는 것이다. “생명의 열매를 맺고 있을 때 생명의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도요한은 이중구조를 논한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5: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 세상이 미워하는 예수님의 제자 (15:18-16:4)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그 원인과 대책을 미리 알려 주셨다. 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세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가리킨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1:10)고 한 대로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둘째,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3:16)고 하신 것은 곧 모든 인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과 사회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떠나버린 모든 인간과 그들의 계획, 철학, 조직, 활동 등을 세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을 요한12장에서 지시하였고 그러한 세상에서는 본받을 것이 없다고 로마서 12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1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 심각한 위험과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예수님은 열거하여 주셨다.
 
첫째, 제자들은 예수님과 똑같이 보여 지기 때문이다. 미움과 박해는 예수님이 당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을 핍박하였던 사울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몸이므로 박해를 함께 받는다.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둘째,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다.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3:1)인 성도는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상과 야합하지 않는다. “새 피조물”(고후5:17)인 성도는 옛 습성들”(벧전 4:1-4)을 청산하며 살기를 노력한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벧전4: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 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셋째, 제자들은 세상의 영적 무지로 인하여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15:21). 박해자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이는 하나님(=예수님)을 섬겨야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8:19). 박해자들은 무지하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른다.

넷째, 제자들은 세상의 죄악으로 인하여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 세상의 죄악은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다. 세상의 죄악은 의인들의 피를 흘리는데 열심을 더하고 있다.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런데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모든 미움과 박해를 증거하신다고 하셨다. 우리들은 고난 당할 때마다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기 때문에 고난과 미움과 박해 중에서도 우리들의 믿음은 더욱 성장하게 하여주신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 중에 있다는 확인을 받게 된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귀한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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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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