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대제사장 예수님의 중보기도 (요17장)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성경본분: 요한복음 17:1-6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I have finished the work which thou gavest me to do.)
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 영적 신앙생활을 요14-16장에서 강조하신 예수님
1. 육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순한 대답은 “사람이 자기(=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영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오직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이 곧 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창6: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에서 사람에게는 그들의 육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이 떠나갔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육적이며 영적일수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2.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성을 회복하고 영적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요15장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과의 연합”이 곧 영성회복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계신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unless it abides in the vine, so neither can you unless you abide in Me.)
3.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하는 핵심단어는 “안에 있으라,” “거하라”는 두 단어로 표현된다. “안에 있으라” 그리고 “거하라”는 두 단어는 “연합”과 “교류”라는 중요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연합과 교류를 통하여 약한 것이 강하여지고 부족한 것이 채워지고 무너진 것이 세워지고 병든 것이 고쳐진다. 그리고 나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영성이 회복된 결과임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안에 있으라”: 성도의 생활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을 예수님은 요구하셨다. 특별히 “어떤 안에 있으라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1)“내(예수님) 안에,” (2) “내 말(계명) 안에”(7), (3) “내 사랑 안에”(10), (4) “내 기쁨 안에”(11) 있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둘째, “거하라”: “거한다”(Gr. meinate; abide, remain, reside)는 성경원어는 “존속하다, 머무르다”라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라도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는 계속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가르침의 헬라어에서 참뜻을 살펴본다.
* 헬라어 동사의 현재형과 현재 명령형이 어떠한 체계를 포함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첫째, 헬라어의 현재형 동사 안에는 “계속적인 동작”(continuously), “반복적인 동작”(repeatedly), “습관적인 동작”(customarily), “방해할 수 없는 동작” (uninterruptedly), “변함없는 동작”(constantly)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둘째, 헬라어의 현재 명령형 동사 안에는 위의 현재형 동사가 요구하고 있는 내용들을 요구하고(order) 지시하고(command)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한복음 15:4을 예로 들어본다. “내 안에 거하라(현재 명령)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안에) 붙어 있지(거하지, 현재형)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거하지, 현재형)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개역개정).
셋째, ● 안에 있으라: “계속적으로”(continuously), “반복적으로”(repeatedly), “습관적으로”(customarily), “방해할 수 없게”(uninterruptedly), “변함없이”(constantly), “안에 있으라”는 뜻이 된다.
● 거하라: “계속적으로”(continuously), “반복적으로”(repeatedly), “습관적으로” (customarily), "방해할 수 없게“(uninterruptedly), "변함없이”(constantly), “거하라”는 뜻이 된다.
넷째, 헬라어 현재형 동사 및 현재 명령형 동사는 이와 같이 그 언어 속에 “깊은 뜻”과 “넘치는 능력”을 함축하고 있으므로 여러 가지 제한성을 가진 우리들은 그와 같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신이 먼저 그러한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되기를 “구하라”(기도하라)는 요구와 명령을 주신다. 이 “구하라”(기도하라)는 현재 명령형 동사도 우리는 “계속적으로”(continuously), “반복적으로” (repeatedly), “습관적으로”(customarily), “방해할 수 없게” (uninterruptedly), “변함없이”(constantly), 구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요15: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구하라(ask, 기도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ask, 기도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다섯째, “구하라”는 헬라어 원어(Gr. aiteo)는 영어로는 “ask”로 번역되어 단순히 “물어보다”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구절의 원어에서는 “간청하다” (entreat), “빌다, 구걸하다”(beg), “탄원하다”(supplicate)라는 내용으로 “기도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단어는 제자들과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사용되었고 예수님은 기도의 생애를 사셨으나 예수님께는 이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요한복음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른 예(Gr. aiteo)를 들어본다.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기도)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기도)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예수님의 기도, Gr. erotao; request)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질문)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기도)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기도) 아니하였으나 구하라(기도)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기도)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예수님의 기도, Gr. erotao, request) 하는 말이 아니니
여섯째,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는 “erotao"(Gr.)로 표기되어 있다. 이 단어도 “aiteo”(Gr.)와 같이 “문의, 질문하다”(ask)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나 대화하는 상대가 서로 매우 친숙하고 막연한 관계를 가질 때 사용한다. 따라서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말씀하는 기도, 즉 “비옵나니”라는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확인하자.
요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pray) 내가 비옵는(pray)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5. 내가 비옵는(pray)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pray)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4. “내 안에 거하라”(Abide in Me)는 구체적인 방법은 예수님 편에서 함께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이며 아울러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another Comforter)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라는 약속이다.
첫째,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둘째,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 떠나가면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함께 있게 하리라.
셋째, “다른 보혜사”(성령님)가 있으므로 “다르지 않은 보혜사가”가 계신데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1요2: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an Advocate; 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에서 입증하고 있다. 여기서 “대언자는 원어에서 보혜사(Gr. paracletos)와 같은 단어다. 예수님은 ”본래의 보혜사“이시며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주실 것을 약속하여주신 것이다.
넷째, 보혜사는 번역하기 어려운 특수용어이므로 영어나 우리말에서 직역될만한 용어가 없으므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 헬라어의 “파라클레토스”(paracletos)를 직역하면 “옆에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보혜사이시므로” “보혜사”를 다양하게 번역한 모든 “용어들”은 직접 예수님께 적용된다. 즉 예수님은 “언제나 옆에 계시면서” “보호자,” “협조자,” “돕는 자,” “대언자,” “위로자,” “상담자,” “중재자,” “힘을 더하는 이”가 되신다. 실제로 예수님은 지상사역(earthly ministry)을 수행하시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혜사, 대언자”(Gk. paracletos)가 되심을 제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셨다. 이제 예수님과 육체적 이별(헤어짐)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실존하시고 이별(헤어짐)이 없는 현상을 영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인데 “다른 보혜사” 즉 “성령님”께서 오셔서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보혜사, 대언자”(Gk. paracletos)로써 사도들과 장차의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하여주신다는 약속을 하여주신 것이다.
5. 제자들은 연약한 육성을 가지고 육적으로 살면서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보혜사 예수님은 이제 “대제사장 예수님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여주신다는 사실을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보여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영적 신앙인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선별하시고 성별하여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지상에서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함께하여 주시는 혜택을 받으며” 아울러 천상에서 “본래 보혜사이신 예수님께서 큰 대제사장이 되셔서 중보기도로 함께하여 주시는 혜택을 받으며” 살게 된다. 그러므로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두거나 외로운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 요한복음 14-16장에서 제자들에게 고별사를 말씀하신 후에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드리는 중도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신다. 참고로 히3:1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high priest)이시라고 하였고 히4:14에서는 “큰 대제사장”(a great high priest)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fix your thoughts) “그에게 신앙고백을 굳게 하고”(hold fast our confession)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hold fast the confession of our hope without wavering) 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3:1; 4:14)
1. 실제로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언제 제사장 또는 대제사장이 되셨는가? 언제 제사장의 옷을 입으셨고 성전에서 봉사하셨는가? 육적으로는 그러한 일이 없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신 제사장 제도는 영적진리를 가르치는 상징이 된다.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 . .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4:14)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말씀은 영적진리의 선포라는 사실을 숙지하여야 한다. 육적감각을 가지고서는 영적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되며”(고전2: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아드리지 아니한다”(고전2:14). 사도바울도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고전2:12)고 하였다.
2.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다. 히브리서에서는 “왜 예수님에게 대제사장의 직무를 부여 하였는가?” “대제사장의 직무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승천하신 큰 대제사장”(A great high priest who has passed through the heavens. 히4:14)이라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고 반드시 중보자인 대제사장을 통하여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성을 가진 대제사장은 사람의 제한성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시며 제사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을 “승천하신 큰 대제사장”으로 부르면서 예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를 이해할 수 있다.
3.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temple)에서 선택한 백성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중보기도를 드리는 매우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청결작업을 행하시고 가르치신 중요한 말씀은 요2:12-22에 나온다.
요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참고. 마21:13.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막11:1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사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My hous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가. “성전”의 용어가 헬라어 원어에서는 두 가지로 구별된다.
(1) 요2:14(“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과 요2:20(“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에 기록된 성전은 “성전의 구조물”을 의미하는 원어 “hieron”(the temple structure)이다.
(2) 요2:19(“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과 요2:21(“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에 나오는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신 성소”(sanctuary) 또는 “지성소”(holy of holies)를 의미하는 헬라어 “naos”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 장소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곳이며 예수님은 하나님 되심을 가리키면서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요2:21).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몸을 가지고 영원한 성전이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언급하셨다.
(3)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킴”과 동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막11:17.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고 말씀하셨다. 만민을 위한 기도는 오직 승천하신 대세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전(Gk. naos)에서 드리신다. 이것이 바로 만민을 위한 대제사장의 중보기도다.
(4) 대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시며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다. 요13:30-31(“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에서 예수님은 선택한 11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시며 요17장에서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이 대제사장의 중보기도에서 “세상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고” “제자들과 장차 올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신 것이다.
4. 대제사장은 중보자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는 단절되어 있으나 대제사장이 중간에서 양편을 붙들고 연결고리의 역할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의 교류가 가능하여진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인도하시는 길(the way)이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대제사장 예수님이 중간에서 중보기도를 하여주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중보자와 중보기도라는 사실이다. 아래의 성경구절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interceding, 중보기도) 자시니라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one mediator)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high priest)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중보자)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중보기도)
1요2: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advocate. 중보자; paracletos, 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5.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는 전체내용으로 보면 “대제사장의 중보기도”이며 제목을 부여한다면 “예수님의 기도”(Jesus’ Prayer)가 된다. 이 예수님의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기도”(The Lord’s Prayer)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드리고 있는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와는 다른 점이 무엇인가?
가. “주기도문”은 제자들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11:1)라고 요청하였을 때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눅11:2)고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 따라서 이 기도문의 제목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제자의 기도”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문이다. 주기도문 중에는 “우리 죄를 사하여(=용서하여) 주옵시고”라는 내용이 있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은 이 기도문을 사용하실 수 없다.
나.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는 내용의 핵심이 우리 모든 성도들을 위한 대제사장의 중보기도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요13:31. “그(가롯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라는 구절에서 보는 대로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나간 후에 11 제자들에게 “새 계명”(13:34. 서로 사랑하라)을 주시고 계속하여 요14-16장의 “마지막 고별사”를 말씀하여 주셨다. 그리고 요17장에서 “대제사장의 중보기도”를 베풀어주셨다. 따라서 고별사와 중보기도는 선택된 성도들을 위하여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과 기도에서 우리 성도들은 힘과 위로를 받고 더욱 순종의 삶을 다짐한다.
* 요한복음 17장은 대제사장 예수님의 기도는 한 마디로 “위(=아버지)를 향한 기도”(upward focus)를 드리신 것이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실 것을 소원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오직 하나뿐인 최대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나타난다.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기도의 생애를 사신 예수님의 기록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눅6:12.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위의 눅9장과 마16장을 종합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고 신앙고백 하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이미 따로 중보기도로 뒷받침 하신 것이다.)
눅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다음의 세 가지 제목으로 기도하신다.
● 첫째, 자기를 위한 기도: 안을 향한(inward focus) 기도 (17:1-5):
1. 중요한 말씀: “영화롭게 하옵소서”(Glorify)
2. 영광의 목표: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이전의 영광: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3. 영광의 근거:
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고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17:2).
나. 예수님께 명령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17:4).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를 용서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위함이다. 한마디로 죽기 위하여 오셨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죽음을 죽어야 모든 일을 다 이룬다. 십자가의 죽음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래야만 죽음에서 일으키심을 받고 사망을 정복하고 영원한 영광을 나타내신다.
다. 예수님은 창세전의 영광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 둘째, 제자를 위한 기도: 밖을 향한(outward focus) 기도 (17:6-19)
1. 중요한 말씀: “그들을 보전하옵소서”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 17:11)
2. 보전의 목표:
가.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함(Have unity):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나. 제자들이 기쁨 갖게 함(Have joy):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17:13).
3. 보전의 근거:
가. 그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셨기 때문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17:6-7).
나.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17:8, 14).
다. 아버지의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7:10).
● 셋째, 성도를 위한 기도: 앞을 향한(onward focus) 기도 (17:20-26) - 예수님은 앞날의자기 백성을 위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다.
1. 중요한 말씀: “그들도 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 (They may be one)
2. 하나 됨의 목표:
가. 하나가 되어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목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목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17:26).
3. 하나 됨의 근거: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가 되시기 때문에: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요17장이 가르치는 예수님과 성도가 지닌 동일한 소유
가.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영원한 생명(life)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17:2).
나.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보호(security)를 받고 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다.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소속(separation)을 갖고 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7:14).
라.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보내심(sending)을 받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7:18).
마.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하나 됨(union)을 갖고 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17:21).
바.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영광(glory)을 갖고 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사.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사랑(love)을 갖고 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17:23).
* 요17장에서 가르치는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
가. 성도는 세상에서 나와 예수님에게 주신바 되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17:6).
나. 성도는 세상에 남겨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17:11-15).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다.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17:14).
라. 성도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17:14).
마. 성도는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를 받고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
바. 성도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7:18).
사. 성도는 세상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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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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